065화 새로운 인물의 등장
주성진은 빙그레 웃었다.
"하하, 싫은가 본데, 그렇다면……."
"아, 아니오, 잠깐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을 점혈한 수가 고도의 수법 같았다.
그는 강시술에서 유래한 신체 단련공을 익히고 있기에 웬만한 점혈은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저놈이 진짜로 분골착곤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아, 제기랄 개망신이다.'
전형적인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그가 마침내 꼬리를 내렸다.
"무조건 항복이오!"
일순 장내에는 환호의 소리가 가득하다.
"와아아아."
"와아아……."
주성진은 그의 점혈을 풀어주었다.
"우리 다시는 만나지 맙시다. 잘 가시오."
"……."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성진에게서 돌아서자마자,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나 몸을 휘청거렸다.
"으음……."
그러자 그의 두 제자가 급히 그를 부축한다.
"괜찮으십니까……."
"어서 가자……."
무리하게 내공을 끌어 올려 진원진기가 상한 그는 물에 빠진 생쥐 마냥 축 처진 몸을 이끌고 장내를 떠나갔다.
유난히 그의 축 처진 어깨가 처량해 보였다.
잠시 후, 구경꾼들이 모두 떠나고 공터에는 주성진과 그의 일행들만 남았다.
탁탁탁!
주성진이 열심히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내고 있었다. 한데 털어도 털어도 끝이 없다.
'제길 이게 마지막 새 옷인데…….'
그 순간 화산옥봉을 선두로 나머지 일행들이 주성진에게 다가왔다.
화산옥봉이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주성진을 바라본다.
"주 상단주, 고마워요. 덕분에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먼지 털기를 중단한 주성진이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의당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어디까지나 일행의 책임자는 저니까요."
"그래도… 이거 호위랍시고 따라와서 그대에게 신세만 지는군요. 마지막에 그와 정면으로 부딪치지 않는 건 날 생각해서였죠?"
주성진은 내심 고개를 저었지만 그리 말할 수는 없다.
"아 네, 그런 측면도 컸었죠, 헤헤. 이번 대결이 생사투는 아니잖아요? 적당한 선에서 끝내야지요."
화산옥봉이 고개를 끄떡였다.
"잘했어요, 사실 그가 나에게 기고만장한 건 다 이유가 있답니다."
"……."
그러면서 그녀는 성진이 음식점에서 나타나기 전 상황부터 모산파 반도의 재출현까지 일목요연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다른 일행들도 경청하다 실혼강시의 등장에 놀라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주성진은 그녀가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입을 열었다.
"잘 들었습니다, 한데 말로만 듣던 강시의 출현이군요. 이것 참, 무림이 어찌 되려는지……."
"한동안 조용했던 시절이 지나간 거죠. 앞으로 무림이 좀 시끄러워 뭐 질 것 같아요. 고대 혈교의 무공이 등장한 것도 예사롭지 않고……."
"그러면 문파들도 바짝 긴장하겠군요."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가로젓는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문파마다 호전적인 인물들은 이런 사태를 오히려 반길지도 몰라요, 몸이 근질근질 할 테니까."
"그 참 평화롭게 살면 좋은데, 왜 그러실까……."
"호호, 그게 힐난만 할 건 아니에요. 보통 사람과 다른 무림인의 생리라고요, 그 범주에는 나나 그대도 예외는 아니라고 봐요."
주성진이 자신을 가리켰다.
"저까지요?"
"무공을 익힌 사람들의 숙명이죠. 열심히 배우고 익혔는데 언젠가 써먹고 싶지 않겠어요?"
성진은 잠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도 그런가? 음, 하긴 무공을 익히기 전과 후가 다른 것 같기는 해.'
"하하, 알겠습니다, 아 참, 성도까지 오셨는데 당가 가주의 회갑연에는 안 가보실 겁니까?"
"음, 오면서 생각해봤는데 안 갈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인사는 해야겠지요. 내 생각에 화산에서도 누가 대표로 오지 않았나 싶은데……."
"지리적으로 상당히 먼 거리인데 다들 정성이 대단한 것 같아요."
화산옥봉은 슬며시 미소 지었다.
"왜 같이 가보게요?"
"하하, 저도 사람들과 교류를 좋아한답니다. 형편 봐서 형산파의 부활도 알리고 싶고요."
"뭐, 그건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요. 한데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건 가주의 회갑연 같은 큰 잔치는 단순히 축하만 하는 자리는 아니에요. 회갑연을 빙자해서 무림 대소사도 의논하고 서로 우의도 다지고 하여튼 다목적이라고요."
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아, 네 그렇군요. 저 혹시 제가 문전박대 당하는 건 아니겠죠, 초대받지 않아서……."
"내 생각에 그럴 일도 없겠지만 설사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슬기롭게 잘 헤쳐 나갈 것 같군요, 그대는……. 안 그래요?"
"솔직히 장삿속 같아 보여서 말을 아꼈습니다만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게 장사의 기본이죠, 그나저나 선물로 뭘 준비해야 할지, 아……."
주성진은 비단을 떠올렸다.
'그래 이참에 내가 비단 장사를 한다는 것을 널리 알려야겠어. 뭐 그래도 비단만 선물하면 그러니까 천잠사를 조금 잘라서 선물하지 뭐, 요놈이 쓰임새가 많지만 당가라면 더욱더.'
주성진은 당가의 절기인 독과 암기 중 암기에 주목했다.
한데 막 주성진이 선물에 관해 말하려고 할 때였다.
뚜벅뚜벅…….
풍채가 좋은 인물 하나가 주성진과 일행들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그는 초로에 접어든 나이지만 얼굴에는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다만 어딘가 모르게 얼굴색이 검은빛이 감돌고 언뜻언뜻 비치는 안광이 날카로웠지만, 웬만히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는 한 알 수 없었다,
그가 일행들을 쭉 살펴보고는 마지막으로 시선을 화산옥봉 감여군에게 주었다.
"하하, 안녕하시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그대는 화산옥봉 감여군일 것 같은데……."
감여군은 자신보다 훨씬 연장자인 그를 살펴보았다.
'음, 녹의를 입은 것으로 보아서는 사천당가의 인물인 것 같은데, 내가 본 적이 있었나…….'
아무리 보아고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 순간 그의 말이 이어졌다.
"이거, 좀 실망인데… 20년 전에 내가 가주 형님을 모시고 화산파를 방문했을 때 그대가 묵을 숙소를 안내해 주지 않았소, 안 그러오?"
감여군이 화들짝 놀랐다. 이제야 그가 기억이 난 거였다.
"아, 이거 몰라 봬 죄송합니다. 화산의 감여군이 당청균 선배께 인사드립니다."
"하하, 괜찮소, 좀 전에 내가 한 말은 귀담아듣지 마시오, 농담으로 한 말이니까. 그대의 외모가 많이 안 변해서 내가 알아본 거요. 벌써 20년이나 흘렀는데……."
"그래도 죄송합니다. 선배님."
감여군이 거듭 사과하자 그가 손을 내저었다.
"에이 됐고, 자자 환영하오. 형님의 회갑연에 온 것을……."
순간 화산옥봉 감여군은 눈을 깜빡거렸다,
'어쩐다, 사실대로 말하면 선배가 무안해 할 텐데… 그래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고.'
"무림의 큰 잔치인데 응당 와 봐야죠, 호호."
"하기야 무림인이 환갑을 넘게 살면 오래 산 거지.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안 그렇소?"
감여군은 멀뚱멀뚱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의도로 저리 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자 그가 씩 웃는다.
"하하, 내가 그대를 당황하게 했나 보군, 난 그저 일반적인 이야기를 한 것뿐이오. 형님 이야기가 아니라……."
"아. 네……."
"아 참, 우리 서서 이러지 말고 객잔에 들어가서 이야기합시다. 내가 그대와 일행들에게 손님 대접하겠소이다."
그녀는 고개를 끄떡였다,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점심을 먹으려고 했답니다. 호호."
* ? ? * ? ? *
시간이 흐르고 식사를 마친 그들은 입가심으로 차를 마셨다,
후룩…….
당청균이 미소 띤 얼굴로 감여군을 바라보았다.
"하하. 차 맛이 일품일 거요? 달콤하면서 동시에 씁쓸하지 않소이까?"
"네, 그렇습니다, 솔직히 이런 차는 처음 마셔봅니다."
"그럼, 그럼, 내가 좀 전 화장실에 갔다 오면서 좀 달달한 걸 넣었거든……."
또다시 뜬금 없는 소리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떴을 때였다.
돌연 그의 얼굴에 미소가 사지고 그의 눈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흐흐흐, 이제 쓰러질 때가 되었는데…….'
그 순간, 그녀가 배를 부여잡았다. 한데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다.
"아아악!"
"아아악……."
주성진도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갑자기 아파져 오는 배,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순간 주성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이건 독이다…….'
시뻘겋게 달군 쇠꼬챙이로 찌르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아아, 이 일을 어찌할꼬…….'
주성진은 아픔을 참으며 정신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내공을 끌어 올리자!'
힘들지만 내공을 끌어 올리니 조금은 아픔이 가시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또다시 아픔이 몰려온다.
그럴수록 주성진은 사지백배에 계속 내공을 돌렸다.
비햐흐로 주성진의 몸속에서 내공과 독 간의 한판 싸움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아픔이 잠깐 가신 사이 성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니 언제 다 쓰러졌지, 설마 죽은 건 아니겠지…….'
감여군만 경련을 일으키며 꿈틀거렸지만 나머진 이미 의식 자체가 없어 보였다.
주성진은 팔짱을 끼고 자신을 쳐다보는 당청균과 시선을 교환했다.
'저자가 언제 하독했단 말인가. 아 그가 우리에게 차를 가지고 오는 점소이와 잠깐 이야기하는 것 같았는데. 그럼 그때…….'
주성진이 잠시 생각할 무협 그는 계속 음흉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어린 녀석이 대단한 내공을 지니고 있나 보군, 흐흐 그래 봤자야, 애송아. 잠깐만 기다려라, 똥파리들을 내쫓고 다시 보자구나!"
그는 돌연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다섯을 셀 동안 모두 꺼져라! 안 그러면 이렇게 된다."
그는 토끼 눈을 뜨고 쳐다보는 상인 차림의 사람에게 지풍을 발사했다.
쉬익…….
"아아악."
상인은 영문도 모른 채 사지를 꿈틀거리며 피를 토하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축 늘어졌다.
죄라면 그냥 가까이 있었던 죄밖에 없었다.
우당당탕…….
음식점은 공포의 도가니가 되었다. 사람들은 서로 빨리 음식점을 빠져나가기 위해 아우성이었다.
이에는 손님이나 종업원의 구분이 없었다.
삽시간에 음식점이 비자 그가 다시 성진을 바라보았다.
성진의 내부는 여전히 사투 중이었다.
"흐흐흐, 고 녀석 잘 버티는데. 아직 쓰러지지 않았군. 이봐 해독단을 줄까. 안 되지 내가 왜…… 하하."
말이 오락가락한다. 성진은 그를 노려보았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한단 말이오?"
"캬캬, 왜냐고? 내 눈에는 다 벌레로 보이는데, 벌레는 밟아야 제격이지, 안 그래?"
도저히 말로는 상대할 자가 아니었다.
'미쳤구나…….'
그 순간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 뭐 아무래도 좋겠지, 모른다면 알게 될 것이고 곧 모든 것이 의미가 없어질 테니까."
"무슨 뜻이요?"
"한 시진 내에 내장이 모두 녹아내릴 놈이 알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뜻이다. 그렇게 궁금하다면 그저 복수극의 희생양이라 생각해라."
주성진은 두 눈을 크게 떴다
'흥, 한 시진 내에 죽는다고! 절대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다. 내가 왜 알량한 복수극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데!'
주성진은 전 내공을 모두 개방하기 시작했다.
'모두 끌어 올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