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4화 언보숭과의 대결 (2)
잠시 후 두 사람은 내기물을 맡기고 객잔 주변의 넓은 공터에 마주 섰다.
일행들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대결을 보려고 슬금슬금 모여들고 있었다.
주성진은 두 발을 굳건히 딛고 서 있는 언보숭을 보며 사부가 이야기한 걸 떠올리고 있었다.
'성진아, 근접전에 능한 자들은 몸이 단단하고 순간 동작이 아주 빠른 자들이 많다. 몸을 단단하게 하는 건 특히 원거리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전술이야. 사소한 것들은 좀 맞아주고 일단 공격권에 들어오면 전광석화같이 상대를 쓰러뜨리는 거지, 한 방에 말이야.'
'명심하겠습니다. 사부님.'
주성진은 상대가 아무리 절정의 고수라고 해도 사부가 말한 근본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부의 말을 곱씹는 순간.
휘이!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언보숭의 주먹이 주성진의 옆구리를 갈라 왔다.
'이 자식, 생긴 대로 노는군…….'
주성진은 그가 빈말이라도 자신에게 선공을 양보할 거로 생각했다. 누가 봐도 자신이 어려 보였으니까.
하지만 그는 고개를 살짝 끄떡이고는 곧바로 출수한 거였다.
주성진은 몸을 살짝 비틀어 그의 주먹을 피했으나 단지 주먹에서 일어난 바람만으로도 옆구리 부분의 옷자락이 찢어질 듯 펄럭였다.
'이런, 권풍이 대단한데. 만만치 않은 자군, 최소 강기를 펼칠 줄 아는 자야.'
순식간에 공방은 가까운 거리에서 이뤄지고 있었다.
쉭…….
타닥, 탁, 탁…….
주성진이 접근하면 그가 전진을 저지했고 마찬가지로 언보숭이 접근하면 주성진이 그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흡, 흡……."
가까운 거리라 서로의 호흡이 느껴졌다.
성진에겐 달짝지근한 내음이, 그에겐 시큼 탈탈한 냄새가 났다.
일진일퇴의 공방 속에 그들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성진은 경험 축적을 위한 지구전을, 반면 그는 빨리 시합을 끝내려는 표정이 역력했다.
언보숭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런, 제기랄. 저 애송이 하나를 어쩌지 못하다니…….'
마음은 급했지만, 그도 경험 많은 고수, 무리수는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다.
초수가 늘어날수록 그들은 상대의 시선이 닿는 곳이 어딘지, 다음에 상대의 공격이 향할 곳이 어딘지 조심스럽게 예측할 수 있었다.
접전이 계속될수록 그들 몸 안의 신경이 예리하게 깨어나고 있었던 거였다.
팽팽한 긴장 속에 잠시만 긴장을 풀어도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성진의 얼굴엔 언뜻언뜻 즐거움이 엿보이고 있었다.
감각을 최대한 열어젖히니, 마치 노련한 낚시꾼이 손맛만으로 물속 깊은 곳을 알 수 있듯, 언보숭의 다음 수가 훤히 내다보였다.
'음, 놈이 본색을 드러낼 때가 됐는데…….'
주성진은 그의 공격이 이것이 다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성진이 판단하기는, 그는 최소 절정 초입에서 중간 사이의 고수였기 때문이었다.
바로 이때, 언보숭의 팔뚝이 급팽창하며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콰우우…….
소리부터 심상치 않았다.
바로 그때, 언보숭의 손이 어지러이 흔들리며 허공에 막대한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
충격파는 주위의 모든 것을 헤집으며 주성진에게 몰려들기 시작한다.
주성진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읽고 급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음, 이제부터 진짜배기군. 저자가 진주언가권의 진수를 펼치기 시작했어. 그렇다면 나도 당할 수는 없지.'
주성진은 주먹 쥔 손바닥을 펼쳐 앞으로 쭉 내밀었다. 그러자 주성진의 장심에서 기운이 쭉 뻗어 나와 상대에게 향한다.
쩌어엉!
주상진은 천산장을 펼쳐 그의 공세를 흐트러트렸다.
'엇, 저놈이 내 권압을 깨!'
어느새 언보숭의 이마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펑, 펑…….
시간이 흐를수록 주성진의 공세는 더욱 날카로워지고, 또한 정묘해지고 있었다.
성진 자신조차 본인이 펼치는 게 천산장인지 귀원장법인지 모호할 정도로 두 가지 장법이 자연스럽게 융합되는 중이었다.
"으윽……."
언보숭은 조금씩 물러나가 시작했다. 이미 정타는 아니지만, 주성진의 장력에 몇 차례 직격당했다.
외공을 단련하지 않았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주성진의 입가에 살짝 놀라움이 번졌다.
'음, 제법인데. 호신강기는 아닌 것 같은데 뭐지. 저 단단함은…….'
주성진은 또 한 번 오래된 명문 문파의 저력을 실감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절기를 해를 거듭할수록 개량하고 있을 터였다.
그것도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힘으로…….
한편 언보숭의 마음은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이렇게 가다간 자신이 불리할 게 자명해보였다.
'으으으, 감히, 듣지도 보지 못한 새파란 애송이 놈한테…….'
그의 얼굴에 심한 분노의 기운이 떠오르고 있었다.
자신이 이렇듯 고전하는 상황이 그를 열불 나게 만들었다.
비록 겉치레인지 몰라도 많은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인정하고 부러워했다. 그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수세에 처한다면 자신이 자랑하고 다닌 명성이 곤두박질칠 거였다.
'더는 묵과할 수 없다, 무리해서라도 저놈을 눌러버려야 해…….'
순간 그의 절친인 모용세가 모용명과의 약속이 떠올랐다.
'미안하다, 친구……. 너 대신 휘주상단의 일을 도와주기로 한 건 지키지 못할 것 같다. 이번에 내가 완성하지 못한 무공을 쓰고 나면 몇 달은 요양해야 할 것 같거든. 뭐 그런다고 별일은 없을 거다. 너희 가문의 후기지수들이 잘 해낼 거야.'
언보숭은 기운을 확 끌어올렸다.
그의 콧등이 일그러지며 동시에 지렁이 같은 굵은 힘줄이 손목을 찢고 나올 것 같았다.
주성진은 그의 변화를 감지했다.
'저놈이 최후의 수단을 쓰려는 것 같은데… 나도 바짝 긴장해야겠다.'
그 순간.
꽈콰콰…….
언보숭의 몸 주위에 흐르는 기운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주성진은 미간을 좁히며 그를 바라보았다. 뭔가가 벌어질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지금껏 펼치지 않은 것일 것이다.
'새로운 수를 선보이려는 걸까…….'
그 순간 주성진의 바라본 언보숭의 눈이 달아올랐다. 그는 살기를 드러내며 성진을 향해가고 있었다.
성진이 처음 보는 갈지자의 행보로 성진의 눈을 현혹한 그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들어왔다.
'놈! 연환금강권으로 박살 내주마!'
쿵!
그가 강하게 발을 내디디며 주먹을 내뻗었다.
콰우우…….
그가 초식을 펼쳐 내자 대기가 완전히 뒤틀리면서 주위에 있던 먼지들과 작은 돌조각들이 허공으로 떠올라 산산이 흩날렸다.
지금껏 언보숭이 펼쳤던 권법과 위력 자체가 천양지차였다.
그 순간 뾰족한 외침이 들린다. 관전하던 화산옥봉의 목소리다.
"사람들을 뒤로 물려, 어서!"
"네, 네……."
일행들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보려는 구경꾼들을 강제로 몰아내기 시작했다.
"어어어……."
"물러나시오, 물러나요……."
개중에 가장 활발히 움직이는 건 그녀의 제자 정민아다. 그녀는 검집을 앞으로 내밀며 사람들을 세게 밀어젖혔다.
"아야야, 왜 이래요……."
"잔말 말고 뒤로 가세요. 안 그러면 다쳐요……."
"젠장, 얼굴이 예뻐서 욕은 못 하겠고, 그래도 시력이 나빠서, 멀리서는 잘 안 보이는데……."
주성진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유한 눈빛으로 희뿌연 먼지 속을 바라보았다.
그는 언보숭의 초식에 담긴 위력을 제대로 알아보았다.
"저건 권강이로군, 과히 강기의 폭풍이야……."
모든 걸 산산이 분쇄할 것 같은 거대한 기운이 주성진을 집어삼킬 듯 밀려오고 있었다.
주성진의 신형이 거대한 폭풍에 흔들리는 조각배처럼 위태해 보였다.
언보숭의 공세 앞에서 그의 신형은 너무나 초라해 보인다.
찰나의 순간에 성진은 갈등했다.
'맞대응할까, 피할까…….'
순간 성진의 신형이 빙글 옆으로 돌았다.
그의 신형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더니 마치 공간의 벽을 깨트린 것처럼 다섯 발짝 이동하며 피하고 있었다.
보고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빠른 이형환위의 동작이었다.
'이씨…….'
성진이 자신의 공세를 벗어난 걸 안 언보숭은 이를 갈았다.
그는 눈알을 부라리며 마치 거친 콧김의 황소가 뒷발을 긁어대다가 그대로 달려가듯 주성진에게 돌진했다.
그러나 그 순간, 주성진의 양손은 너무나도 파란 빛을 뿌리며 아지랑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평소보다 더욱 새하얗게 빛나는 그의 양손에 파르스름한 기운으로 끝없이 용솟음쳤다.
"야합!"
그의 입에서 외마디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와 함께 그의 양손이 모이며 언보숭의 기운 한가운데에 작렬했다.
펑, 펑…….
순간 폭죽 터지는 듯한 소리가 지축을 울리며 눈부신 빛의 파편이 터져 나왔다.
아침 햇살에 안개가 산산이 부서지듯, 공중을 부유하던 짙은 먼지가 삽시간에 종적을 감췄다.
처음엔 호각지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점차 언보숭의 기운을 압도하더니 급기야는 그의 기운을 통째로 집어삼키며 언보숭에게 날아갔다.
'아아, 이럴 수가!'
언보숭의 눈이 크게 떠졌다. 믿을 수 없는 표정이다.
자신이 만들어 낸 기운이 허무하게 산산이 찢겨 사라지고 주성진이 만들어 낸 기운은 그를 향해 몰려들고 있었다.
위기의 순간 언보숭은 쥐어짜듯 모든 공력을 양 주먹으로 돌렸다.
"차아아압……."
기합과 함께 힘을 잔뜩 모은 그의 주먹에서 노도와 같은 강기가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쐐애액!
주성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가 주먹을 내뻗으며 동시에 주성진의 위세에 아랑곳없이 앞으로 걸어 나온 것이다.
'뭐야, 저건! 이번 한 판에 모든 걸 걸겠다는 것인가…….'
바로 그때, 주성진의 눈앞에 언보숭의 신형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상대의 주먹만 크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 저건 신검합일, 아니 신권합일!'
짧은 감탄도 잠시 주성진을 결단해야 했다.
'부딪치면 둘 중의 하나는 죽는다.'
그러면서도 주성진은 자신의 패배를 추호도 생각하지 않았다. 공력에 있어 우위에 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슈악!
주성진은 하늘 높이 신형을 뽑아 올렸다.
언보숭의 거센 권강이 상승을 방해했지만, 주성진도 양손을 가만히 놀리지 않았다.
적절하게 상대의 압력을 제어하며 급가속으로 하늘로 솟구쳤다.
구경하던 김남선의 입에서 탄성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와, 어기충소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그는 고개를 길게 뽑아 눈으로 주성진을 추적했다. 한데 내리쬐는 햇빛에 눈이 너무 부시다.
'어, 어디 갔지?'
그는 극히 잠깐 눈을 감았을 뿐이었다, 눈을 뜬 순간 주성진의 신형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두리번거린다.
'아, 저기! 어…….'
그가 무심코 손가락을 내밀었을 때는 주성진의 신형은 이미 언보숭에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순간.
"윽……."
주성진은 현란한 손기술로 언보술의 양 어깨와 목을 점혈했다.
그가 '그르릉' 소리를 내는 순간 그의 귀에 대고 주성진이 속삭였다.
"항복한다고 큰소리로 외치시오. 안 그러면 분골착곤의 맛을 보여줄 테니까."
"뭐? 분골착곤!"
그가 눈을 까뒤집었다. 까만 눈동자가 사라지고 눈에는 흰자위만 가득하다.
기실 언보숭은 목 이하의 신체가 점혈된 거라 눈과 입은 움직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