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화 비검술을 펼치다
다시 반 시진이 흐르고 주성진은 책을 덮었다.
탁…….
'뭐 그런대로 내가 연습하는 방향이 틀리지는 않은 것 같다. 계속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밀고 나가자고, 세상에 정답이 어디 있어, 계속 수정 보완하는 것이지.'
한데 그때였다. 무슨 바람소리가 휙 나는 것 같더니.
툭…….
작은 돌 하나가 2층 창문을 통해 날아들었다.
"누구야!"
주성진은 누가 장난삼아 돌을 던졌는지 보려고 창으로 걸어가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러자 아래에서 강설현이 고개를 쳐들고 배시시 웃고 있었다. 그녀 옆에는 그녀의 언니 둘이 주성진을 쳐다보며 함께 손을 흔들고 있었다.
"호호. 불이 켜져 있길래, 던져 봤어……. 방해한 건 아닌지 몰라!"
"아, 아니야. 한데 그러는 세 사람은 밤늦게 정원에서 뭐 하는 거야? 달밤에 체조?"
주성진이 농담 삼아 한마디 툭 던지자 강설현이 눈이 흘긴다.
"달밤에 체조는 무슨… 실은 여기 객잔 정원에 다른 건 천화각보다 별로인데 석등 하나가 꽤 쓸 만하더라고, 그래서 살펴보는 중이야. 석등은 불이 켜진 밤에 보는 게 제격 아니겠어?"
주성진은 살짝 감탄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음, 역시 그녀들은 본분을 잊지 않았군, 석등 하나에도 저리 신경 쓰니…….'
순간 주성진의 뇌리에 번뜩 스쳐지나가는 게 있었다.
'하하, 달밤의 체조! 그래 그녀들 앞에서 비검술을 펼쳐볼까나,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한데……. 그러고 보니 비검록이라면 그녀들도 한 번 정도는 읽어 봤을 것 같고.'
주성진은 그녀들을 보며 소리쳤다.
"내가 내려갈게!"
휘리릭…….
주성진은 곧장 창문을 뛰어내렸다.
천천히 하늘하늘 하강하는 모습에서 물오른 그의 경공 실력을 엿볼 수 있었다.
"와 대단한데."
강설현이 진심으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탁…….
가볍게 땅을 밟은 성진이 강설현을 바라보았다.
"내가 최근에 익힌 검법이 있거든, 비검록이라고, 아마 너도 알 것 같은데."
강설현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문을 열었다.
"아. 그거……. 한데 그거 익히려면 줄이 달린 작은 검이 있어야 할 텐데."
"아니 난 줄 없이 해보려고……."
"뭐야……!"
강설현은 주성진이 그리 말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비검록의 후반부에 언급된 걸 직접 시현하겠다고 하니 그녀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너, 지금 무형 진기로 검을 조정하겠다는 거냐?"
"그래. 아직은 초보지만, 뭐 연습하다 보면 차차 늘겠지. 모든 게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잖아"
"뭐, 첫술이라고! 그럼 난 뭐야, 난 첫술은 고사하고 빈술이라고!"
그 순간 강설주가 끼어들었다,
"주 상단주, 내가 기억하긴 그 책이 이기어검의 입문서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고 대단히 효용 가치가 있는 건 아니야.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만 잔뜩 늘어놓은 책이라고. 나도 보다가 하품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몰라."
"하하, 저도 처음에 볼 땐 그랬습니다만 차츰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한번 해보자 했던 것이죠."
"음……."
그녀가 말을 잇지 못하는 순간 주성진이 강설현에게 고개를 돌렸다.
"너, 나 믿지?"
"응, 그런데?"
"그러면 검을 들고 나를 노려보고 있으라고, 단 움직이지 말고. 아무래도 혼자 시범을 보이는 것보다는 그게 집중력이 더 올라갈 것 같아서 말이야."
강설현이 눈을 치켜떴다.
"나더러 허수아비가 되라는 거냐?"
"이봐, 당하는 입장이 되어보아야 무공이 늘 수 있다고. 약간의 공포는 있겠지만 날 주시하고 있으면 분명 배울 게 있을 거야."
그러자 강설주가 한마디 한다.
"그렇게 해라. 설마 주 상단주가 널 해치기라도 하겠니? 요즘 들어 둘이 죽이 척척 맞는 거 같은데.'
"음, 그래도……."
달 밝은 밤에 때아닌 무공 시범이 벌어지려 했다.
"후유."
강설현은 짧은 숨을 내쉬었다. 결정은 내려졌다. 이제는 주성진만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다.
문제는 주성진의 검을 놓치지 않는 것! 상대 검의 궤적을 알 수만 있다면 한결 마음이 편할 거였다.
물론 이는 주성진을 신뢰하는 마음과 별개로 그녀 자신에게 하는 주문이었다.
순간, 강설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자신은 검을 앞으로 쭉 내민 상태지만 성진은 검을 잡고 있지 않았다. 단지 그녀를 바라볼 뿐이다.
그러길 잠시, 순간 주성진의 손이 허리춤을 향해 가더니, 검자루를 툭 치고 있었다.
"어……."
그녀의 소성이 밤하늘을 가른 순간,
슈우욱!
검이 저절로 검집에서 빠져나와 성진의 눈앞까지 떠올랐다. 마치 보이지 않는 줄이 성진의 손과 검에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하하. 이건 맛보기야.'
강설현이 침을 꼴딱 삼키고 있는 사이, 성진은 공중에 뜬 검자루를 손으로 잡아채더니 마치 낚싯대를 집어 던지듯 뒤로 한껏 젖혔다가 앞으로 냅다 집어 던졌다.
츄아아아!
검이 빛살 같은 속도로 강설현을 향해 날아갔다.
하나 원리는 비수를 날리는 것과 검의 크기에서 차이 날 뿐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아, 미치겠군…….'
강설현은 죽을 지경이다. 검이 굉장한 속도로 날아오는데 자신은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만 했다.
그럴수록 공포는 켜졌지만, 검의 궤적은 끝까지 놓치지 않았다. 여차하면 마지막 순간에 몸이라도 비틀 심산이었다. 가벼운 부상이라도 면하려고…….
점점 성진의 검이 강설현의 가슴으로 다가왔다. 3장에서 2장, 2장에서 1장. 그리고 반 장…….
이에 비례해 강설현의 얼굴은 점점 흙빛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아아아아!"
바로 그 순간, 성진의 검이 강설현의 가슴 반 장 앞에서 휙 가로로 돌아갔다. 흡사 성진이 강설현의 가까이서 횡소천군을 시전한 것 같았다.
"후유……."
강설현이 안도의 한숨의 내쉬는 순간 검이 저절로 위로 솟구치더니 이번에는 돌연 강설현의 머리 쪽으로 내리쳐왔다.
분명 삼재검법 상의 태산압정이 분명한데 검을 부리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쉭…….
"악!"
강설현은 이를 꽉 깨물고 날아오는 검 끝을 주시했다.
'반 장의 차이가 있어, 검은 내 눈앞 반 장 앞에서 아래로 내리꽂힐 거야…….'
강설현의 염원이 통했을까, 검은 강설현을 건드리지 않고 바닥으로 직행했다.
이제는 바닥에 꽂히는가 싶었는데 검이 바닥 근처에서 팽그르르 돌더니 돌연 강설현의 허리 뒤로 돌아갔다.
'어…….'
강설현의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다.
검은 불쑥 그녀의 엉덩이를 찌르는가 싶더니, 곧바로 그치고 다시 강설현의 반대쪽 허리를 돌아 강설현의 정면을 노리고 있었다.
당사자인 강설현뿐 아니라 나머지 삼신녀들도 성진의 신기에 놀라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성진의 손짓에 따라 검이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당겨졌다, 퉁겨졌다, 회전했다…….
스르륵…….
어는 순간, 마음껏 허공을 뛰놀던 검이 주성진의 손으로 날아오는가 싶더니 곧바로 그의 검집으로 빨려 들어갔다.
착…….
그 순간 강설현은 휘청거렸다. 긴장이 풀려서 다리에 힘이 풀린 거였다,
성진도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냈다, 그도 막대한 진기와 심력을 쏟아부은 탓이었다.
"고생했어, 설현아! 덕분에 나도 최대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었어."
"흥……."
강설현이 코웃음을 치며 성진을 암팡지게 노려보는 순간,
짝, 짝, 짝.
강설주가 박수를 치며 성진을 바라보았다.
"대단해, 주 상단주, 덕분에 개안했어. 이거야말로 어검술 아닌가……."
삼선녀의 둘째 강설진도 이에 질세라 큰 박수로 호응한다.
짝, 짝, 짝.
"호호. 방금 펼친 어검술이 어른거려서 잠이 올 것 같지 않아요, 대단해요, 정말!"
그러자 성진이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어검술이라뇨? 저를 너무 높게 평가하신 것 습니다. 만일 제가 이기어검을 펼쳤다면 무당도사와 화산검사들이 당장 산에서 뛰쳐 내려왔을 겁니다, 하하."
"그러면 뭐야?"
강설주가 묻는다.
"뭐, 비검술이지요. 일면 검이 시전자와 일정 거리를 두고 돌아다니는 건 어검술과 비슷해 보이지만 차원이 다릅니다. 어검술은 심령과 연결된 것이죠,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검은 이미 상대를 베고 다시 본래의 자리에 돌아와 있겠지요. 저는 그래서 이기어검을 광검이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강설주가 고개를 끄떡끄떡했다,
"음, 그렇단 말이지, 광검이라… 검이 빛과 같다는 뜻인데, 그러면 이기어검이 광검이면 심즉검은 뭐지?"
그녀도 들은 풍월은 있었다.
"그건 무형검이 아닐까요. 마음속의 검인 게죠, 실체가 없는……."
"그러니까 이기어검보다 한 단계 높은 단계의 검술이다, 그 말이지?"
"글쎄요, 그건……."
그 순간 강설현이 삐죽거리며 입을 열었다.
"너, 언제 그렇게 유식해졌지? 아무리 괄목상대했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사실은 책에 나와 있는 걸 그냥 내 나름대로 유추해 본 거야. 왜냐면 나는 그런 검술의 경지가 허황한 게 아니라 실재한다고 믿는 부류라서. 그러니 다는 사람들보다는 좀 더 진지하게 접근한 거지."
"믿는다고? 그걸! 난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해서 그런 건 일소에 부쳤는데……."
주성진은 그녀의 심경은 알 것 같았다.
하나 자신은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환생한 몸이었다. 그러니 다른 이들이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훨씬 개방적인 편이었다.
강설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좋아, 어쨌든 난 십년감수했고 너 덕에 수명까지 갉아먹은 것 같단 말이야, 이 일을 어떻게 보상할래?"
"너의 담력이 이전보다 커졌을 테니 된 것 아닌가, 하하. 농담이고 원하는 게 뭐야?"
"난 영단을 원해, 지금보다 공력을 20년 이상 올리고 싶거든."
주성진은 그녀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았다.
'음, 농담이 아니라 진짜인데…….'
"방법이 있으면 말해봐?"
"공청석유! 반의 반 방울이면 충분해, 그걸 구해줘. 내가 알긴 암상에서 구할 수 있다고 들었어."
주성진은 그녀의 입에서 암상이 거론될 줄 몰랐다.
'하하, 좋아. 암상과는 인연을 만들어 두었지, 한번 부딪쳐 보자. 죽은 사람의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하물며 그녀는, 그녀는 장차 허허…….'
"알겠어, 암상에서 구해보도록 할게. 그런데 공청석유가 천고의 영약이란 소린 들었지만 한 방울도 아니고 과연 반의 반 방울 가지고 충분할까?"
"음 실은 다른 약재는 모두 준비되었거든, 약재를 다룰 명의와 함께. 그런데 한 가지 부족한 게 공청석유야. 아주 소량만 있으면 태을신단 세 알을 만들 수 있다고 들었어."
"……."
"태을신단은 모용세가에서 전해 내려오는 영단이야. 대환단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20년 공력은 무난히 올려줄 수 있다고 들었어."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말없이 조용한 강설주와 강설진을 바라보았다.
"왜 두 분은 말이 없지요? 내가 공청석유를 구한다면 두 분에게도 혜택이 돌아갈 것 같은데, 아닌가요?"
그러자 강설주가 배시시 웃는다.
"그야, 우리까지 부탁하면 나중에 따로 부탁을 못 하니까, 호호."
"오라, 그렇게 깊은 뜻이… 부탁을 아껴두었다는 말이네요. 잘 알겠습니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