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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58화 (58/250)

058화 도공의 초대

주성진이 유주객잔의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벌써 동이 트려는 새벽이었다.

'아이코, 늦었군, 어제 약속도 못 지키고 이를 어쩐담.'

그는 유주객잔에서 만난 남궁은하 일행과 지난밤 저녁을 먹기로 약속한 바 있었다.

또한, 총무련 감찰관 부부가 자신이 소식을 가져오기를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웅성웅성……

'어, 이 시간에 음식점에 사람들이 많은데…….'

혹시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닌지 재빨리 문을 열고 유주객잔에 들어선 주성진은 일제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14쌍의 눈과 마주했다.

'어어, 다들 모여 있었네.'

그들은 주성진의 일행들과 남궁은하의 일행 그리고 감찰관 부부 두 사람이었다.

주성진은 겸연쩍은 얼굴로 주시하는 그들을 바라보다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제가 좀 늦었지요, 죄송합니다."

그러자 그들 중 가장 먼저 총무련 감찰관인 장보옥이 침통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녀는 주성진이 가져다 올 소식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장백 산장의 참화에 관해서…….

"주 상단주, 어떻게 되었나요?"

"아 네, 제가 소상히 말씀드리지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장보옥은 성진의 말투에서 혹시나 하는 기대와 달리 그가 좋은 소식을 가져오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만일 좋은 소식을 물고 왔다면 물어보는 즉시 말했을 거였다.

'아, 이를 어쩌나…….'

잠시 후 주성진은 그들이 앉아 있는 탁자로 가서 비어 있는 의자에 자리 잡았다.

그들은 서로 이야기하기 좋게 탁자를 길게 붙여서 모두 함께 자리 잡고 있었다.

주성진은 잠깐 좌중을 둘러보고는 장보옥에게 초점을 맞추었다.

"음, 유감스럽게도 장백 산장의 불행한 소식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좋은 소식이 아니라서 저도 대단히 유감입니다."

그러자 그녀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기세다.

"흑흑, 사실이었군요. 그래 흉수도 알아냈나요?"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의심되는 곳을 알아냈습니다……."

주성진은 차근차근 자신이 겪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장백 산장의 불행에 대해 유감을 표합니다, 감찰관님."

거의 실신할 것 같은 장보옥을 대신해 그녀의 남편인 이무송이 말을 받았다.

"수고했소, 주 상단주, 그대의 노고를 잊지 않겠소."

"아, 아닙니다."

주성진이 손을 내젓는 걸 무표정하게 쳐다본 그가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여러분, 여기서 작별 인사를 건네야 할 것 같군요. 저희 부부는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그들 부부와 비슷한 연배인 화산옥봉 감여군이 급히 입을 열었다.

"음음, 두 분의 심정은 모르는 바는 아니나,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습니다. 복수를 꾀하더라도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무작정 요동으로 달려간다고 될 일은 아닌 듯싶습니다."

그러자 이무송이 담담히 말을 받았다.

"충고 감사합니다. 저희도 그런 부분을 충분히 감안할겁니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그들 부부는 총총히 자리를 떠나갔다.

잠시의 침묵이 흐르고 일행의 가장 연장자인 감여군이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주 상단주, 그대는 참 특이한 사람이네요. 내가 어제 일을 대강 들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 상황에서 섣불리 나설 수가 없는 것 아닌가요? 당사자도 아니고."

주성진은 그녀의 어감에서 자신을 질책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뭐, 그냥 넘어가자, 내가 개인적으로 뚱보에게 관심이 간 건 사실이니까.'

"그때는 그게 최선이라 느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니 제가 주변을 헤아리지 못했네요. 아무튼 지난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게 해서 대단히 송구합니다."

그러자 그녀가 손을 흔든다.

"무림인에게 하루 정도 잠을 자나, 안 자나 그게 대수인가요? 다만 어제 그대에게 좋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명색이 호위로 따라나선 나인데 내 마음이 편하겠느냐고요?"

"헤헤, 앞으로 신중히 처신하도록 하겠습니다. 화를 푸시지요."

"지금 내가 화가 난 게 아니에요, 결과적으로 그대는 크게 칭찬받을 일을 했어요. 다만 앞으로는 젊은 혈기를 앞세우지는 말길 바랄게요."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됐어요, 나는 피곤하니 그만 자러 갈래요."

"……."

그녀가 떠나자 주성진이 속으로 한마디 한다.

'뭐야, 호위가 먼저 자리를 떠나다니…….'

그 순간, 남궁은하가 주성진에게 다가왔다. 간밤에 술을 좀 마셨는지 얼굴이 발그스름하다.

"이봐, 친구, 사정은 알겠는데 약속을 어겼으니 어떡할 거야?"

그것에 대해선 성진도 할 말이 없다.

"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봐."

"두 가지야. 하나는 이곳 충칭에서 성도로 정기적으로 왕복하는 마차가 있다고 들었어. 그래서 그걸 우리가 타게 해주고, 두 번째는 성도에서 거하게 한 번 쏘라고. 어때 들어 줄 수 있겠어?"

성진은 그녀가 괜히 온 게 아니라 그들 일행과 이야기한 후 온 거라는 걸 눈치챘다.

'뭐, 저 정도의 요구야 귀여운 수준이네, 하긴 밤새 술을 마셨으니 편하게 가곤 싶겠지. 물론 내공으로 주독을 몰아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최소 40년 이상의 내공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고…….'

성진은 책에서 본 기억을 떠올리다가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다.

'그래, 무림 문파라고 모두 자급자족할 수는 없지, 필요한 게 많을 테니까. 우선 그들과 좀 더 친해지면서 뭘 가장 필요로 하는지 알아봐야겠어.'

성진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남궁은하를 바라보았다,

"알았어, 네 말대로 할게."

그러자 그녀가 살쩍 놀라는 눈치다.

"호호. 자세히 묻지도 않고 화통한데… 사실 운임이 꽤 비싸거든, 왜냐면 음식과 숙식이 포함되기 때문에."

"뭐,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했으니 책임을 져야겠지, 한데 그러면 오늘 떠나는 거야?"

그녀가 고개를 끄떡였다.

"응, 그래. 너랑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피부가 따끔거려서 더는 이야기 못 하겠다. 간다! 아, 그리고 운임 비용은 이곳 주인에게 지급하면 된다. 호호."

잠시 후 그녀의 일행들이 다음을 기약하고 떠나갔다.

이때, 그 순간을 기다렸는지 강설현이 쪼르르 성진에게 다가왔다.

"너, 저 여우와 꽤 친한 모양이다, 언제 그렇게 가까워졌지?"

주성진이 그녀에게 귓속말했다.

"그녀도 알고 보면 불쌍한 여인이야. 선천적인 병이 있어서 살기 위해 음한 계열의 무공을 익혔는데 그 때문에 아기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되었어. 그래서 나이도 동갑이고 해서 친구 하기로 했다."

그녀도 똑같이 귀엣말로 말한다.

"알겠어, 일단은 넘어간다, 보는 눈이 많아서 말이야.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 한데 왜 전음을 펼치지 않은 거야. 귀엣말을 하면 사람들이 우리 관계를 오해하잖아."

"왜 싫어? 난 너와 가까이 있으니 좋은데. 하하."

곧바로 강설현의 얼굴이 환하게 변한다.

"호호, 그런 거였어, 일단 알겠고, 나도 일행들을 대표해 한마디 해야겠어."

"뭔데?"

"우리도 성도까지 마치로 갔으면 해. 타고 온 말들이야 번갈아 가며 인솔하면 되고."

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하자고."

"이봐. 너, 돈 벌었어? 묻지도 따지지도 않네. 평소에는 꽤 까다롭게 굴잖아."

"내가 좀 피곤해서 그래, 난 좀 쉬어야겠다."

그때였다.

두 사람이 다정스레 이야기하는데 훼방꾼이 나타났다.

어른이라면 이 상황에서 눈치껏 기다릴 텐데 어린아이였다.

"아저씨! 도자기 공방에서 왔어요."

성진은 어린아이에게 고개를 돌렸다.

"나, 아저씨 아니다. 너의 형뻘이라고, 그래 무슨 일이냐?"

"그럼 형이라고 불러도 돼요?"

성진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그럼, 그래라."

"헤헤, 그게요, 형! 할아버지가 좀 보자고 하더라고요. 형은 우릴 모를 거예요, 우리 공방에는 들르지 않고 그냥 지나쳐갔으니까요."

"아니 그런데 어떻게 날 찾아왔지?"

"아, 그건 할아버지 말씀이 건너편 작은아버지를 통해 형의 직업과 이름 그리고 연락처 등을 물어본 모양이더라고요."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공방은 얼추 다 둘러본 것 같은데, 빠트린 데가 있었나? 사람이 없는 곳이 있긴 했지만 웬만한 곳은 다 들렸는데 말이야.'

그 순간 어린아이의 말이 속사포처럼 이어졌다.

"할아버지 말씀이 안 오면 후회한대요."

"안 오면 후회한다고!"

주성진은 뭔 일인가 싶었다.

"그러면 말이다, 내가 점심 먹고 나서 바로 들르마."

"알겠어요, 형! 저 그럼 바빠서 이만 갈게요."

"잠깐, 위치를 알려줘야지?"

어린아이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아야야."

좀 세게 때렸는지 인상을 찡그리는 모습을 보며 성진은 절로 웃음이 나온다.

'저 녀석, 하하.'

점심 후 주성진은 어린아이가 가르쳐준 도자기 공방 앞에 이르렀다.

'하, 여기였군, 그땐 그냥 흔한 가정집인 줄 알고 지나쳤었는데, 아니었어. 가만 저 맞은편 공방은 내가 방문했던 곳인데…….'

"계십니까?"

주성진이 밖에서 외치니 아침에 들렀던 어린아이가 나타났다.

"헤헤, 형 오셨어요, 한데 이분들도 오셨네요, 예쁜 누나들도 왔고."

어린아이는 특별히 누구를 지칭하였지만 그래도 꼬마의 눈에도 미인은 미인으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자식, 아침에 경황이 없어 보이던데 그래도 볼 건 다 봤군, 하긴 너도 남자니까.'

주성진은 빙그레 웃으며 어린아이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나의 일행들인데 다 들어가도 되는지 모르겠다. 괜스레 너의 할아버지께 폐를 끼치는 것 아닌지 몰라."

어린아이가 손을 흔든다.

"아니에요, 문제없을 거예요. 다 일행 분이잖아요."

사실 주성진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데리고 온 일행은 처음 장사에서 출발했던 일행들이었다.

천화각의 삼천녀는 동업자 관계이고, 감전동이야 측근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나머지 무당파의 김남선과 화산파의 두 여인은 따라가겠다고 요구해서 동행한 것이었다.

뭐 호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하니 주성진으로서도 딱히 거절할 명분이 서지 않았다.

한데 호위를 서겠다고 한 이들은 주성진이 가는 곳마다 무슨 일이 발생했기에 이번에는 꼭 놓치지 말자는 생각이 강했다.

그들이 딱히 도자기 공방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었다.

잠시 후 주성진과 일행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니 얼굴이 누렇게 뜬 노인이 탁자에 앉아 있다가 일어났다.

그는 주성진을 아까부터 쭉 기다리고 있었는데 평범한 탁자에는 주성진이 처음 보는 모양의 도자기가 놓여 있었다.

주성진이 먼저 고개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구주 상단의 상단주 주성진이라고 합니다."

"하하. 반갑소이다, 나는 장생환이라 하오이다. 예기치 않게 뵙기를 청해서 결례가 아니었는지 모르겠소."

주성진은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실은 오늘 관광이나 즐길까 했습니다만, 그보다는 일이 우선이지요. 주변 경치야 내일 떠나기 전에 짬을 내서 봐도 되고요. 아 참 보시다시피 제 일행이 좀 많습니다. 번거롭게 하지는 않을 테니 양해해주십시오."

"물론이오, 다른 분들도 모두 환영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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