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7화 인연을 쌓다
일각 후 찾은 물품들이 땅바닥 위에 올려졌다. 전표와 은자 등등이었다.
한데 역시 성진이 우려하는 데로 계약금 10만 냥은 중원전장에서 지급보증한 특별전표였고, 전표 한 장당 금액은 1만 냥이었다.
사실 일반 전표는 전장에서 발행한 전표이기에 누구나 찾을 수 있지만, 특별전표는 증초익의 상단에서 발행하고 중원전장에서 지급을 보증한 전표였다.
하여 반드시 증원전장에서는 원 발행인에게 대금 지급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게 되어 있었다.
주성진은 콧잔등을 찡그리며 부단주를 바라보았다,
"이거, 어찌하면 좋겠소, 저 전표 말이오?"
"왜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나누면 되지……."
"저거 특별전표요. 중원전장에 간다고 해서 바로 찾을 수 없소."
그러자 그가 빙그레 웃음을 짓는다.
"아이 난 또… 나는 찾을 수 있소이다. 댁의 몫도 내가 찾을 수 있도록 해주겠소."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자가 뭐라는 거야…….'
"이 전표로 말할 것 같으면……."
그 순간 그가 손을 흔들며 성진의 말을 끊어왔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오,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돈을 찾는 방법을 알고 있소이다. 내가 아는 사람이 중원상단 장백 지부장으로 있소이다. 뭐 거기까지만 말하겠소."
그의 말은 중원 상단 장백 지부의 지부장과 짜고 10만 냥을 인출하겠다는 뜻이었다.
"음, 그래도 문제가 없겠소? 자칫 지부장이 문책을 당할 수도 있는데."
"저 뚱보 때문에 장백상단이 풍비박산이 날 터인데 뭐가 문제겠소? 뭐 그래도 문젯거리가 되면 그깟 지부장 자리 그만두면 그만이고……."
주성진은 그와 시간을 끌며 실랑이를 벌이기가 싫었다.
'그래 특별전표 10만 냥은 저들에게 주고, 난 나머지만 취한다. 뭐 금액 쪽으론 손해지만, 뚱보를 잡았으니 이만하면 됐어. 게다다 오늘 밤 더는 살생하고 싶지 않아.
주성진이 부단주를 바라보았다.
"그러면 특별전표는 그대가 다 가지고, 난 나머지만 취하겠소."
부단주는 횡재했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정말이오. 물리기 없기요."
"아따, 속고만 살아왔나, 남아 일언 중천금 아니겠소."
그러자 그가 득달같이 특별전표 10만 냥을 낚아채 간다. 그러자 성진도 주섬주섬 나머지를 챙겼다.
성진은 희희낙락한 부단주를 보며 말문을 열었다.
"장백 산장에 관해 물어봐도 되겠소? 어떻게 하루아침에 소리 소문도 없이 멸문했는지 말이오."
"아. 그 소식! 실은 내가 얼마 전 고향을 다녀오는 길에 들은 소식이요. 그리곤 곧바로 상단주에게 알렸소이다."
"아. 그렇게 된 것이었구먼, 그러면……."
그가 고개를 끄떡이며 입을 열었다.
"뭐 별것 없소이다. 목격자의 말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불타버렸다고 하더이다. 한데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었소, 내가 들린 객잔에만 여럿이 있었소이다."
"누가 흉수일지는 아오?"
"아, 한 군데 짚이는 데가 있소. 증거는 없지만……."
주성진의 눈이 반짝였다.
"어디요, 거기가?"
"흑수단이오. 그들은 때가 되면 한 번씩 장백산 부근에 출몰한다오. 원래 그놈들은 얼어붙은 동토의 땅에 사는 유목민들인데 몇십 년 전 무공 고수가 나타나 그들을 복속시키고 무공을 가르쳤다고 들었소. 아마도 장백산장이 그들과 악연이 있었던 모양이오."
"음, 흑수단은 처음 듣는 것 같소만……."
그러자 부단주가 씩 웃는다.
"하하, 거긴 변방 아니겠소? 중원에서 소식을 접하긴 쉽지 않을 것이오. 뭐 별로 관심도 없을 것이고."
"만일 흑수단이 세력을 뻗치면 요동 지역이 시끄러워질 텐데……."
"그놈들은 무공만 익혔을 뿐이지 사실상 마적들이오, 도둑놈이란 말이오. 그런 자들이 세력에 뭔 관심이 있겠소이까, 그저 재물이 있는 곳을 골라 내키는 대로 돌아다니는 것이지."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면서, 만일 그들이 범인이라면 잡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데 그 순간 돌연 그가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잠깐. 장백 산장이 그쪽에선 꽤 알아주는 세력이라 했었는데, 흑수단이 얼마나 강한지 몰라도 그래도 멸문까지는……. 혹 그 무공 고수라는 작자가 직접 개입한 건 아닐까?'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 보였다.
"허허, 마적들이라……. 잘 알겠소이다."
그때였다.
'음…….'
순간 주성진은 귀를 쫑긋거렸다.
'이건 인기척이다. 못해도 몇십은 되어 보이는데. 또 누가 나 말고 이 밤에…….'
"자자, 이야기를 마무리합시다. 사람들이 지면을 미끄러지듯 다가오고 있소. 뭐 아주 빠른 건 아니지만, 내 생각엔 경신법을 익힌 자들이 분명하오."
부단주는 성진의 말을 듣고 다시 한번 주성진이 고수임을 깨달았다. 본인은 전혀 인기척을 못 느낀 거였다,
"혹 다음에 장백산에 올 기회가 있으면 장백객잔으로 오시오. 거기 주인장이 내가 아는 사람이요. 그에게 나를 찾는다고 하면 하루 이내에 내가 나타날 거요."
"내가 그대의 단주를 죽였는데도?"
"그야 정정당당한 대결 아니었소이까? 우리 여진족은 치사하게 그런 걸로 복수하지 않소. 아마 단주님도 저승에서 복수를 바라지 않을 것이오."
순간 주성진은 죽은 단주에게 미안함이 들었다.
'앞으로 내공의 섬세한 조절과 명검의 날카로움을 십분 유의해야겠어.'
"아, 알겠소이다. 내가 안 그래도 장백산에 갈 예정이었는데 잘되었소."
"오, 정말이오?:
"아마 앞으로 1년 안에는 거기에 가지 않을까 싶소."
"온다면 기꺼이 형제의 예로 대접하겠소이다."
형제의 예는 방문자를 대하는 그들 부족의 최고의 대접이었다.
성진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고맙소이다. 그럼, 조심히 잘 가시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끄떡이고는 성진이 타고 온 말을 가리켰다.
"저 말 명마이니 잘 부탁하오이다. 산책도 자주 시켜주고……."
"하하. 가족처럼 돌보겠소이다."
얼마 후, 그들이 완전히 떠나고 새로운 인물들이 나타났다.
그 순간 성진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 저들은 육선문의 포쾌들이잖아…….'
성진은 증초익을 육선문에게 넘겨주려고 했기에 한편으로는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그들이 중원 각지에 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총무련의 감찰관들에게 신병을 인도할 생각이었다.
그들이라면 육선문에 연락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잠시 후, 그들과 눈이 마주친 성진은 빠르게 그들을 살폈다.
옷은 몹시 더럽혀져 있었고, 몹시 지쳐 보였다. 특히나 경 상단주를 데리고 가는 두 사람은 얼굴이 땀투성이였다.
성진이 먼저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시오?"
왕 대주는 검을 찬 주성진에게 잔뜩 경계의 눈길을 보낸다. 그의 직감이 그에게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음, 저자, 범상치 않아.'
"안녕하시오, 한데 혹 우리에게 볼일이 있소이까?"
"그렇소이다. 우선 난 구주상단의 상단주 주성진이라 하오이다."
그는 성진이 상단주라고 하자 내심 놀라다가 별안간 눈을 번뜩였다.
'가만 저자가 우리의 신분을 알고 있는 것인가?'
"혹 우리를 아시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소.
"그렇소이다. 내가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하겠소."
"좋소. 난 육선문 제3대 대주 왕천유라고 하오. 그래 이야기해보시오."
주성진은 생각을 가다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그대를 보다 먼저 언덕 주막에 당도해 있었소. 원래는 뚱보 상인에게 물을 게 있어서 그를 추적했는데, 그가 언덕 주막에서 저자를 만나지 뭐요."
그러면서 성진은 손가락으로 왕천유가 붙잡은 경 상단주를 가리켰다.
"……."
"그리곤 둘이 호위무사를 물리고 이야기하길래 중요한 말이 오고 가는가 싶어서, 그들의 말을 엿들었소이다."
"……."
"난 이후 그들의 밀담을 듣고 깜짝 놀라 그들을 사로잡으려고 했소이다. 한데 때마침 당신들이 나타나면서 그 일을 보류하고 관망하게 되었소이다."
그 이후로 주성진의 이야기가 길게 이어졌다.
"……. 그렇게 된 것이오."
그러자 그가 고개를 숙였다.
"이거. 은인을 눈앞에 보고도 몰라봐서 미안하외다. 그대가 마차를 정지시키지 않았다면 자칫 우리 측에 많은 사상자가 생겼을 거요."
주성진이 손을 저었다.
"아니요,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오. 내 생각엔 그대들이 밀염꾼의 우두머리를 잡은 것 같은데 말이오."
성진의 말속에는 육선문에서 밀염상을 문초해서 정보를 캐내지 않았느냐, 하는 게 포함되어 있었다. 왕천유도 이를 모르지 않았다.
"맞소. 자세히는 공무라 말 못 하지만 6개월간의 고생 끝에 겨우 그를 붙잡을 수 있었소."
"안 봐도 그 고초가 눈에 선하오이다. 고생하셨소이다."
그가 멋쩍게 웃는다.
"뭐. 우리 일인데… 허허."
"자 그러면 뚱보 상인의 신병을 그대들에게 넘기겠소이다."
그는 주성진이 그 말을 하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분명 붙잡았다고는 했는데 주변 어디에도 그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거 정말 고맙소이다. 하면 그는 어디에?"
"아, 내가 그대들이 다가오길래 저쪽 숲속에 잠시 숨겨났소."
주성진은 그를 데리고 기절한 뚱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왕 대주의 부하 여섯이 따라왔지만 성진은 개의치 않았다.
"내가 기절시켜 놓았소이다."
"그러면 저자를 데려가도 되겠소?"
"당연하오, 사실 저런 놈들 때문에 선량한 우리 상인들까지 손가락질을 받소이다. 아무쪼록 일벌백계로 다스려 주시오."
그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떡인다.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오. 그뿐이겠소, 저들 상단도 흔적도 없이 해체될 것이고 가진 재산도 모두 몰수될 것이오. 불법 소금 판매 행위는 중대 범죄에 해당하니 말이오."
"……."
"아, 그리고 그대의 공을 정식으로 위에 품신 할 것이오. 아마도 황제께서 그대에게 큰 선물을 하사하지 않을까 싶소이다."
주성진의 눈빛이 활활 빛나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은 좋은 일을 해야 복을 받는다니까…….'
"이거 참,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하하."
"아니요, 그대는 충분히 자격이 있소이다. 그리고 원하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말해보시오, 참고하겠소이다."
주성진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잘됐군, 내가 은근슬쩍 그런 식으로 대화를 유도하려고 했었는데.'
"음음, 첫 번째로는 소금전매권을 얻고 싶소이다. 뭐 그냥 달라는 건 아니고 정식 절차를 밟겠소이다."
그가 담담히 고개를 끄떡인다.
"알겠소. 소금전매권 꼭 기억하고 있겠소이다. 두 번째는 뭐요?"
"중앙에 연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소이다. 장사치에게 인맥만큼 중요한 건 없소이다. 하하."
그러자 그가 씩 웃는다.
"내가 아버님께 부탁해보겠소."
순간 주성진은 그의 가문이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아버님 말이요?"
"그렇게만 알고 계시오."
"……."
"그건 그렇게 종결하고, 주 상단주! 나도 부탁 좀 해도 되겠소이까?"
주성진은 흔쾌히 고개를 끄떡였다.
"아, 물론이오, 그래 부탁이 뭔지?"
"나와 대련해 줄 수 있겠소, 가능하면 나의 부하들도. 지금은 그렇고 우리가 휴가를 얻으면 말이오. 지난 6개월을 밤낮으로 쉬지 않고 고생했으니 한 달 정도는 너끈히 휴가를 받을 수 있소이다."
"아 그렇소이까? 뭐 대련은 전혀 문제없소이다. 한데 언제, 어디서 만나야 할지? 난 지금 비단을 사러 사천 성도에 가는 길인데 말이오."
그러자 그가 손뼉을 쳤다.
짝, 짝, 짝.
"참 잘되었소이다. 그럼 성도에서 봅시다. 우리도 그쪽으로 가는 길이오."
"아, 잘됐소. 그러면 보름 후에 낙산 대불 앞에서 봅시다."
"좋소이다. 그 약속 꼭 지키시오."
"하하 그건 내가 할 말이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