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화 급변하는 상황 (2)
한편, 부하들을 독려하던 부방주는 팔짱을 끼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일이 자신의 의도대로 되지 않은 거였다.
그 순간 그의 좌측에서 눈썹이 반달처럼 휘어진 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왕 대주님, 철수합시다. 대주님의 계교로 흑목상단의 상단주를 잡았으니 이걸로 충분할 듯싶습니다. 자칫 지체하다간 저들의 반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들 호위무사들의 무공이 음, 예상을 훌쩍 뛰어넘네요."
"그러자고 부 대주, 한데 이거 참 아깝군. 장백상단의 돼지 놈까지 잡았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현행범으로 잡아들여야 저놈들의 두둔 세력이 끽소리를 못할 것인데……. 음, 내 촉으론 저들이 밀염을 유통하려는 게 단독 결정이 아닐 것 같아. 환관 놈들과 짜고 한 것일 수고 있어."
그러자 부대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 글쎄 말입니다. 이거야 원! 저희 육선문의 포쾌가 밤낮없이 열심히 범인을 잡아들이면 뭐 합니까. 끈 있는 놈들은 죄다 풀려나지 않습니까?"
"어쩌겠어, 우리는 우리 일만 할 뿐이지, 윗선까진 파고들다간 우리가 역으로 다친다고……."
육선문은 명나라 특수 수사기관이다. 국가와 관련돤 큰 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강호의 고수, 자객, 밀탐객 등을 끌어들여 만든 조직이었다.
조직의 행동은 비밀스러웠고 수단도 대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거침이 없었다.
그들은 세상의 갖가지 사건을 마주하면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하였다.
독특한 지위와 공작 내용으로 비록 나라에 구속되어 있지만, 강호와 교류하면서 강호의 법도도 잘 알고 있었다.
하여 혹자는 그들을 관에 소속된 강호 인물이면서 동시에 강호 속의 관원으로 평하기도 했다.
순간 어둠에 동화되어 있던 인영 하나가 꿈틀거렸다.
'뭐라, 저들이 육선문이라고!'
주성진은 전생 시절부터 육선문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다.
'육선문이 저놈들을 일망타진하려 했구나. 어쩐다, 자칫 잘못 나섰다간 나도 한패로 오인당할 수도 있는데. 원래 관부의 포쾌들은 일단 이유 불문하고 잡아들이고 보잖아. 음, 안 되지, 나까지 저 나쁜 상인 놈들과 엮이면…….'
주성진은 인상을 찡그리며 좀 더 기회를 보기로 했다.
그는 총무련의 감찰관 부부에게 장백 산장의 변고에 대해 알아본다고 약속한 바가 있어 쉽사리 뚱보를 포기하고 떠날 순 없었다.
주성진이 잠시 고민하는 사이에 그들의 대화가 주성진의 고막으로 파고들었다.
사실 주성진이 내공으로 청력을 극대화해서 그런 것이지 일반인이 저들 대화를 엿듣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망할 환관 놈들! 나나 너나 힘을 길러 언젠간 부패한 환관 놈들을 모조리 잡아들이자고."
"네, 반드시 그렇게 해야지요. 솔직히 지금은 글렀고, 황태자께서 황위를 물려받으면 새 세상이 오겠지요. 그때까지 죽지나 말자고요."
"죽으면 너무 억울하지, 자 그러면 철수하자고."
그렇게 육선문의 왕대주가 막 부하에게 명을 하달하라고 한 순간.
두두두두두, 끼익끼익…….
'뭐야…….'
육선문의 왕대주가 두 눈을 치켜들었다.
어둠을 뚫고 마차 한 대가 무섭게 그들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급히 시력을 돋구었다. 마차에는 마부가 보이지 않을 뿐더러 말들이 겁에 질린 듯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었다. 마차 뒤에는 말을 탄 자들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아뿔싸! 저들이 말을 타고 온 것을 간과하고 있었구나, 제길 부하들이 다치겠어…….'
"모두 공격을 중단하고 각자 숲속으로 흩어져, 어서!"
육선문의 포쾌들이 허겁지겁 후퇴하기 시작했다. 그들도 이미 마차와 그 뒤로 이어지는 수많은 말발굽 소리를 듣고 있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와아아아아!"
장백상단의 호위대가 함성을 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그 순간 주막 안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다.
"우리도 이 기회에 탈주하자! 자 빨리 마구간으로 가자!"
경 상단주의 호위대장이 부하들에게 다그쳤다.
"네, 네……."
그렇게 그들은 허겁지겁 자신들이 타고 온 말들로 향했다.
한편 주성진도 어둠 속에서 모든 상황을 꿰뚫고 있었다.
'음 이대로 두면 육선문의 포쾌들이 많이 죽겠는데, 가장 문제는 저 마차야…….'
사실, 원래 후퇴할 때도 전열을 갖춰 질서 있게 후퇴해야 하는 법이었다. 그래야 적의 공세에도 주눅 들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다.
한데 지금 상황은 그것과 너무 달랐다. 마치 전쟁에 진 패잔병처럼 허겁지겁 도망치고 있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투지와 전의도 깡그리 사라진 것 같았다.
주성진은 이 상황이 자신이 개입해야 할 때라는 걸 알았다.
'좋았어. 육선문을 도와주자. 내 도움을 받고도 나를 엮으려 들면 저놈들은 인간도 아니지…….'
바로 그 순간! 주성진의 눈에 곧 마차에 깔려 곧 죽을 것 같은 포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크, 어영부영할 때가 아니군, 빨리 움직여야겠어!'
휘리릭!
주성진은 곧장 숨어 있는 곳에서 뛰쳐나와 질주하는 말들을 향해 횡으로 검을 그어 갔다.
말들은 전혀 주성진의 존재를 헤아릴 수 없었다. 갑자기 측면에서 불쑥 나타났기에…….
쏴악!
누가 본다면 주성진이 마치 허공에다 검을 휘두르는 것 같았다. 그만큼 달리는 말과 주성진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그의 검에서 줄기줄기 뻗어 나온 검기가 그 틈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아아악!"
바로 뒤에서 말들이 달려오자 겁에 질린 포쾌가 자지러진 비명을 내질렀다.
'하하 아직 그대는 죽을 팔자는 아닌 것 같소.'
주성진의 독백하는 순간 쇠라도 단박에 잘라버릴 것 같은 검기가 말들의 다리를 강타하고 있었다.
사실 정말 아슬아슬했다. 검기가 다다른 시점이 마차를 끌던 말들이 포쾌를 막 깔아뭉개려는 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욱한 피 안개가 피어오르며 말들의 다리들이 무처럼 쓸려나가고 말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히이이잉, 히이이잉…….
그러기를 잠시, 졸지에 다리를 잃은 4필의 말들이 그대로 지면으로 무너져 내렸다.
쿵, 쿵, 쿵…….
마차 뒤를 바짝 뒤따르던 장백상단의 호위대 대장은 자신의 말을 급히 정지시켜야 했다.
"워워……."
한데 그때였다.
꽝!
"구웩……."
설상가상으로 마차가 달리는 가속도를 이기지 못해 뒤집히며 다리가 잘린 말들을 덮친 거였다.
호위대 대장은 변발을 이리저리 흔들며 두 눈을 부릅떴다.
'젠장!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순간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는다. 그가 봤을 때는 질주하는 마차가 갑자기 멈춘 걸로 보였다.
머리를 몇 번 뒤흔든 그가 그와 말을 섞었던 자에게 입을 열었다.
"작전을 바꾼다. 동요하지 말고 동생들을 데리고 여길 빨리 떠나라. 나도 주변을 살펴보고 곧 뒤따라가겠다."
"알겠습니다,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요……."
호위대 대장의 휘하들이 언덕 아래로 사라졌을 때였다.
저벅저벅…….
그의 측면에서 어둠을 가르며 빠르게 다가오는 인영이 있었다. 호위대 대장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저 새끼 뭐야, 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네.'
그 순간 주성진이 그를 바라보았다. 성진은 뚱보의 행방을 알 수 없어 그를 붙잡을 요량이었다.
"이봐, 네놈이 우두머리냐?"
순간 그가 어금니를 질끈 물었다.
바짝 겁에 질려 있어도 시원찮은데, 건방지게 이야기할 정도로 여유를 보인다는 것이 가까스로 가라앉힌 그의 속을 다시 뒤틀리게 했다.
그는 말의 고삐를 당겨 정면으로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이 새끼! 내가 누구냐고? 죽어서 염라대왕에게 물어봐!"
그가 말에 박차를 가했다.
"이럇!"
두두두두…….
주성진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어럽쇼. 바로 온단 말이지, 그놈의 성질머리 하고는…….'
주성진은 검을 앞으로 뻗었다.
한데 본능적으로 금방이라도 부딪칠 듯 코앞에 다가온 말의 떡 벌어진 가슴을 보니 본능적으로 두려움이 몰려온다.
'에이, 뭐야…….'
"엇!"
말에 잠깐 시선을 빼앗긴 주성진은 별안간 그의 머리가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씨이잉…….
그는 말 배를 두 발로 꽉 감싸 조인 채 미끄러져 떨어질 듯 몸을 옆으로 내려뜨리며 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대단한 기마술이군!'
성진은 급히 이형환위로 뒤로 물러났다. 바로 눈앞으로 그의 도가 사나운 기세로 스쳐 지나갔다.
한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성진이 자세를 잡기 전에 두 번째, 세 번째 도세가 숨 돌릴 새도 없이 떨어졌다.
달리는 말의 고삐를 잡지 않은 채 재빨리 방향을 트는 기마술은 놀라웠다.
하지만 그것보다 마치 말과 한 몸이 된 듯 착 달라붙어서 자유롭게 칼을 휘두르고 내리치는 우두머리의 능숙한 기마술은 주성진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도 남았다.
주성진이 공격의 주도권을 빼앗긴 사이 적의 말까지도 신이 나서 거칠게 휘이잉! 울부짖으며 두 발을 번쩍 들고 성진의 머리를 밟아 버릴 듯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주성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 적이 하나인 줄 알았는데 둘일세그려…….'
하지만 말의 놀라운 투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되겠다, 이대로는…….'
성진은 내공을 더욱 끌어 올렸다. 곧바로 기가 반응한다.
휘리릭…….
준비 자세 없이 그 자리에서 신형을 뽑아 올린 성진의 입에서 격한 기합성이 터져 나왔다.
"야합!"
완벽히 제공권을 장악한 성진에겐 거리낄 게 없었다.
그의 검이 좌우를 번갈아 가며 무섭게 떨어져 내리며 휩쓸어 가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기세만으로 무시무시하다,
성진은 굳이 검기를 펼치지 않았다. 명검에 강한 진기를 덧씌운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력적이었다.
한편 순간 표적을 잃은 우두머리는 재빠르게 허리를 꼿꼿이 세우며 주성진의 검을 맞이해갔다.
심상치 않음을 느꼈는지 그의 팔뚝에 굵은 힘줄이 꿈틀거린다.
'아. 내가 저놈을 과소평가 했어…….'
때늦은 후회였다. 바로 그 순간.
챙…….
적의 우두머리는 공중에서 휘몰아치는 주성진을 안간힘을 다해 막아나갔다. 간신히 막긴 했어도 팔이 반쯤 꺾인 상태였다.
급히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뒤의 초식이 앞의 초식을 밀어내는 연환검세에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대응하지 않으면 곧바로 죽음이었다.
챙챙챙…….
우두머리는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도 그의 나름 경공에 조예가 있었다. 하여 지어진 별명이 수리였다.
하지만 쉼 없이 공격하면서 한동안 공중에서 자유로이 유영한다는 건 그의 상식 밖이었다.
'아아, 시간은 내 편이 아니야…….'
분명 좀 전까진 시간이 자기편이라 생각했었다. 주성진이 어쩔 수 없이 땅에 착지하려는 틈을 타 그 자리를 빠져나오려 했었다.
'이렇게 당할 순 없어…….'
그는 있는 힘껏 말에 박차를 가했다. 그러자 급가속으로 말이 앞으로 움직이려 한다.
그와 동시에 남은 공력을 탈탈 털어 양손으로 도를 움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