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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54화 (54/250)

054화 급변하는 상황 (1)

그러면서 부방주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칫, 저놈! 누가 장사꾼 아니라고 할까 봐…….'

"양이야 일전에 그대 방주와 이야기한 바와 같이 구매할 것이오. 그건 그렇고 내가 일전에 그것 두 부대를 견본으로 부탁했는데 들고 왔는지 모르겠소."

―하하, 그럼요. 제가 지금 소금 두 부대를 갖다 드릴까요?

경 상단주는 손을 흔들었다.

"아, 아니오, 그건 나중에 보도록 합시다."

―네, 그럼 그렇게 하십지요. 그리고 상단주님 옆의 분이 요동에서 오신 귀한 분이시지요?

"하하. 그렇소, 오늘 나와 같이 계약을 체결하러 멀리에서 왔소이다. 그러니 그 수고를 그대들이 잊지 말아야 할 거요."

그러자 부방주가 경천일을 보며 배시시 웃는다.

―그럼요, 일부러 귀중한 시간을 들여서 오셨는데 그 점은 충분히 감안해 드려야지요. 저, 한데 외람된 말이지만 계약금은 가지고 오셨는지요? 죄송하지만 그게 이 세계의 관례라서요.

"가지고 왔으니 그건 걱정하지 마시오."

경천일은 상대 부방주가 계약금 운운하니 더욱 마음이 놓였다.

'음, 저 친구 믿을 만하군, 자 그러면 제대로 협상해볼까…….'

"자 그럼 본격적으로 시작합시다. 한데 우리 셋이 협상할 자리는 어디요? 주막 안이요?"

부방주는 전음을 풀고 경천일을 응시했다.

"네, 그렇습니다. 주막 안에 눈에 띄지 않는 비밀 장소가 있습니다."

"아, 그래서 여기서 만나자고 그랬군."

"그렇습니다. 그 전에 제가 약소하나마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부하에게 손짓했다. 그러자 그의 부하가 목곽 상자 2개를 가져다 바쳤다.

"이곳 특산품인 화병입니다.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방주님이 친히 도방에서 구한 것이랍니다."

경 상단주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하, 내가 도자기 수집광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그야 다 아는 수가 있지요, 헤헤, 화병은 두 개입니다."

"잘했소, 증 상단주도 그쪽으로 취미가 남다르오."

경 상단주는 화병이 빨리 보고 싶었다.

"그럼 빨리 이리 오시구려."

"네, 알겠습니다."

부방주는 걸음을 옮기기 전에 그의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주변을 잘 살피고 있거라. 수상한 자들이 나타나면 그 즉시 고하고!"

"네, 명을 받들겠습니다……."

저벅저벅…….

부방주는 화병이 들은 목곽 상자 2개를 들고 경천일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곤 둘 사이의 거리가 반 장쯤 되었을 때 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한번 열어서 보시겠습니까?"

"안 그래도 양해를 구하고 보려고 했소이다. 궁금한 건 잘 못 참는 성미라서……."

"원래 선물은 그 자리에 보는 게 좋지요."

경천일이 다가오자, 부방주는 목곽 상자 한 개를 땅에다 내려놓고. 나머지 한 개를 그에게 내밀었다.

"열어서 보시지요."

경천일은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소."

목곽 상자를 건네받은 경 상단주가 조심스럽게 뚜껑을 열고는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음, 천으로 한 번 더 포장해놓았군……."

한데 그가 중얼거리는 순간이었다.

휘리릭…….

웬 바람 소리가 이는가 싶더니 그림자 하나가 길게 늘어졌다.

그리곤 느닷없이 경천일의 팔목을 잡아갔다.

'헉…….'

팔목을 잡힌 경천일이 허공에 바둥거리며 상대에게 딸려왔다.

당황한 경천일은 손에 쥐고 있던 상자를 땅바닥으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쿵…….

이 일련의 사태는 실로 눈 깜짝할 사이 벌어졌다.

뒤편에 서 있던 경천일의 호위무사들은 미처 대응하지 못하고 뜬 눈 봉사처럼 멀뚱거리다가 뒤늦게야 일제히 검을 뽑았다.

차차창…….

그러자 부당주가 이를 보고 소리쳤다. 팔목을 낚아챈 그림자는 바로 부방주였던 거였다.

"모두 멈추라! 안 그러면 이자는 죽을 것이다."

그들의 호위무사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사이 뚱보 증초익은 그 체구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그를 호위하던 요동의 무사들이 삽시간에 그를 에워쌌다.

부방주는 뒤로 물러나면서 눈알을 부라렸다.

'하, 저 돼지 같은 놈이…….'

하지만 금세 놀람을 가라앉히고 경천일을 끌고서는 신속히 자신의 진영으로 복귀했다.

이때, 이미 사전에 약속이라도 되어 있었던지 부방주가 데리고 온 부하들은 모두 작은 화살에 화살대를 매기고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편, 느닷없는 변고에 당황한 건 주성진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도대체 어찌 된 일이야.'

그러면서 밀염꾼들이 들고 있는 화살에 주목하였다.

'저건, 쇠뇌 같은데…….'

주성진은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음, 이 상황에서 당장 몸을 드러내기가 좀 그렇군. 그래 조금만 더 추이를 지켜보자.'

그사이 부방주의 음성이 밤하늘에 길게 울려 퍼졌다.

"여봐라, 우리는 관원이다. 당장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해라. 안 그러면 당장 이놈부터 척결할 것이니까! 그리고 잘 들어라, 저들 두 상인 놈은 소금 밀매를 획책하고 있었다는 것을."

순간 경천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입을 열려고 해도 열 수가 없었다.

그는 이미 부방주의 금나수에 점혈되어 그저 뻣뻣한 쇠막대기에 불과했다.

그 순간 뜽보의 시선이 경천일의 호위무사에게 향하고 있었다. 그는 속삭이듯 조곤조곤 말하기 시작했다.

"이봐, 너희들이 항복한다고 저놈들이 곱게 살려줄 것 같은가? 내가 한밑천 마련해 줄 테니 우리와 같이 살길을 모색하자고."

그의 말은 경천일을 배신하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경천일의 호위무사들이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었다.

뚱보는 쐐기를 박기 위해 품에서 전표를 꺼내 흔들었다.

"자. 은자 만 냥짜리 전표다."

경천일의 호위무사들이 일제히 그들의 대장을 바라본다,

"모두 탈출한다."

그러면서 그는 전표를 받는 걸 잊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상대편 부방주가 입술을 씰룩인다. 정황을 보니 본인의 뜻대로 될 것 같지 않았다.

'제길 어쩔 수 없이 피를 보아야겠군, 모조리 끌고 가려고 했는데……. 음 그나저나 저 뚱보 상인 놈이 문제군. 생포하면 좋겠는데 쉽지 않겠어. 자칫 생포하려 했다간 우리 측 손실이 커질 수 있어.'

그는 뚱보가 데려온 변발한 자들을 자세히 눈여겨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음. 좀 전에 경황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저놈들! 휴, 만만치 않아 보여. 요동 변방에서 왔다길래 그렇고 그럴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어.'

그는 굳은 얼굴로 자신이 데리고 있는 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죽여도 좋다, 쏴라!"

"네……."

그들이 일제히 잰 화살을 손가락에서 놓았다.

피융, 피융…….

밤공기를 타고 소나기처럼 화살들이 쏟아졌다.

쉭, 쉭, 쉭…….

그러자 변발한 중에서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급히 소리쳤다.

"모두 피해라!"

그러자 두 집단이 사전에 약속이나 한 듯이 엄폐물이 있는 곳으로 갈라졌다.

경천일의 호위 무사들은 주막 안으로 우르르 몰려갔고, 똥보 휘하의 무사들은 마구간 쪽으로 몸을 날렸다.

그 와중에 풍차처럼 검과 도를 휘둘러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띵, 띵, 띵……!

검과 도에 막힌 화살들이 튕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나 쏟아지는 화살들을 모두 막을 수는 없었다.

개중에 화살에 맞아 비명을 지르는 자들이 속속 나타났다.

"윽."

"으윽……."

"으으윽. 개자식들!"

우두머리가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는 뚱보 상인과 자신의 부하들을 먼저 피신시키고 일행의 제일 뒤에 있었다.

그 순간.

쉬쉬식!

십여 개의 화살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띵, 띵, 띵……!

그는 재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화살 여섯이 도에 맞고 튕겨져 나가고 나머지는 그의 몸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갔다.

그가 버들잎처럼 교묘하게 몸을 비튼 탓이었다,

하나, 화살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또다시 십여 개의 화살이 그에게 쏟아져 왔다.

'흥……!'

그는 미리 대비하고 있다는 듯 콧방귀를 켜고는, 딛고 있던 땅을 박차 위로 솟구쳤다.

휘리릭…….

그의 발밑으로 화살들이 쉭쉭 지나간다.

마지막 한 대의 화살이 그의 발밑으로 지나는 순간 그가 화살대를 살짝 밟고는 다시 도약하더니 스르륵 공중에서 방향을 틀었다.

그리곤 재빨리 마구간으로 날아갔다.

쉬이익…….

숨어서 지켜보던 주성진의 두 눈이 커졌다.

'음, 경공술이 뛰어난 자다, 내가 가장 주시해야 할 자다.'

주성진은 만일 그를 상대한다면 절대 사정을 봐주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저자처럼 상황판단이 뛰어난 자는 절대 틈을 주면 안 돼. 그냥 한 방에 밀어붙여야 해.'

그렇게 주성진이 속전속결을 다짐하는 순간에도 화살들은 쉼 없이 쏘아졌다. 다만 목표물이 달랐을 뿐이다.

마치 마구간이나 주막을 뚫기라도 할 듯이 우박처럼 화살이 쏟아졌다.

보통 같으면 화살 쏘기를 그치고 관망할 것인데,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하고 화살을 넉넉히 가져온 덕이었다.

이때, 마구간 안으로 들어간 우두머리는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치료를 받는 3인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들을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 이만하길 다행이다. 동생 셋이 크게 다치긴 했어도 죽진 않았어.'

바로 그 순간.

히이잉, 히이잉…….

말들이 놀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 녀석들, 고작 이딴 일 가지고 놀라긴, 그간 편하게 지낸 탓이야. 배에 기름만 잔뜩 끼였어, 쯧쯧.'

그 순간 망을 보던 사내 하나가 빠르게 다가왔다. 얼굴 왼편에 커다란 반점이 있었다.

"수리 형님, 무사하셨군요."

"사마귀, 그럼 내가 죽기라도 바란 거야?"

"아니 형님도!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하십니까?"

가볍게 농을 주고받은 그들은 본격적인 대화에 돌입했다.

"그는 무사하겠지? 아까 보니 그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더군."

"네, 그자는 살이 두꺼워 화살 몇 대 맞아도 죽지는 않을 겁니다. 지금 마구간 안쪽에서 동생 셋의 물 샘 틈 없는 호위를 받고 있습니다."

"음,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지. 어쨌든 그가 죽으면 큰일 난다. 큰형님이 이 일을 아시면 우린 죽은 목숨이야. 앞으로 남은 3년 동안 계약 기간을 다 채워야 한다고!"

그러자 사마귀가 고개를 끄떡였다.

"뚱보가 돈을 많이 주긴 하죠. 한데 정말로 저희가 번 돈이 우리 부족을 위해 쓰이는 건가요? 혹여나 중간에서 큰형님이 꿀꺽하진 않겠죠?"

"뭐, 조금은 자기 잇속을 채울 것이다. 억울하면 네가 힘이 더 세지면 된다. 한데 뚱보가 이런 위험한 일을 꾸미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군."

"확, 그냥 주변에 발설한다고 위협할까요?"

"아서라, 그보다는 저놈의 약점을 이용해 두고두고 우려먹자고."

그러자, 사마귀가 실실 웃는다.

"헤헤. 농담입니다, 저, 한데 마구간이 이상하리만큼 크긴 한데, 튼튼하지는 않습니다. 여기 놈들이 대충 지은 것 같습니다."

"원래 중원 놈들이 허풍이 세지, 속은 빈 강정이야. 그건 그렇고, 네 말은 화살이 뚫고 들어올 것 같단 말인데 언제까지 버틸 수 있겠냐?"

그러자 사마귀가 손가락을 가리켰다.

"저쪽 문 위를 보십시오. 화살촉이 마구간 벽을 뚫고 들어와 있지 않습니까?"

우두머리가 눈을 돌려보니 화살의 반 이상이 벽 안쪽까지 삐죽이 나와 있었다.

그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돌연 주먹을 꽉 쥐었다,

"저놈들의 화살이 떨어질 동안 버티려고 했는데 안 되겠다. 뚫고 나가야겠다."

"하오면 전원 말에 올라타라고 할까요?"

"그 전에 뚱보에겐 미안하지만. 마차를 방패로 삼아야겠다. 우리의 희생을 줄이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사마귀가 고개를 끄떡인다.

"좋으신 생각입니다. 뭐 우리 것도 아닌데 좀 어떻습니까. 하면 제가 마차를 끌겠습니다."

"아니다, 마부는 없다. 말의 엉덩이를 칼로 찔러라. 말들이 놀라 정신없이 뛰쳐나가면 우리는 그 뒤를 바짝 따라간다. 여길 떠나면서 놈들에게 북방 전사의 매운맛을 보여 주자꾸나. 명나라 황제의 개들에게 한 방 먹이자고."

"네, 잘 알겠습니다. 놈들은 모를 겁니다. 저희가 말을 타고 있을 때 더 강해진다는 것을요. 동생 셋이 크게 다쳤으니 앙갚음을 해야죠."

우두머리가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

"그럼, 그렇게 해야지. 우리는 위대한 금나라의 후예들 아니냐! 지금이야 호위대로 장백상단에 빌어먹고 있지만 언젠가 권토중래할 날이 다시 올 것이다."

"그럼요. 반드시 그날이……."

금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나라였다. 한때는 중원의 반을 집어삼킨 적도 있지만, 후일 몽골에 의해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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