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9화 공공문 이문량과의 대화
짝짝짝…….
"하하, 대단하십니다."
손뼉을 친 자는 공공문의 제자 이문량이었다.
주성진은 누군가가 대결이 막바지로 치달을 때 나타난 걸 알고 있었다.
한데 그가 이문량이다. 주성진의 얼굴에 가느다란 미소가 흐르기 시작했다.
'반쯤 포기하고 있었는데, 음 그러고 보니 말투가 경어체로 바뀌었네. 역시 사람은 재주가 있어야 해, 권위가 절로 생기는 건 아니거든…….'
"이보시오, 난 그대가 그냥 간 줄 알았소이다. 물론 그랬다면 이 세상 끝까지 찾을 생각이었소만, 내가 손해 보는 체질이 아니라서, 하하."
주성진의 말은 절반은 엄포였지만 그래도 그는 굴러 들어온 복을 쉽게 걷어찰 위인은 아니다.
"에에, 왜 그러십니까, 남아일언중천금 아닙니까. 사내가 약속했으면 반드시 지켜야지요."
"뭐 맞는 말이긴 한데 이 상황에서 그걸 지키는 건 쉽지 않은 일 아닙니까. 더구나 대결에서 내가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만약 그랬다면 당신까지 모든 걸 빼앗기고 죽을 수도 있다고요."
그러자 그가 손을 흔들었다.
"저는 은인께서 반드시 이기리라 생각했습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제 직감이 빗나간 적은 별로 없거든요."
"하하, 그래요, 그리고 은인은 무슨……. 나는 주성진입니다. 아직은 사업 초기라 미약하지만, 어쨌든 구주 상단의 상단주를 맡고 있지요."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야, 무인이 아니었어……. 가만 상단주라면 사업체의 주인이라는 뜻인데, 아무리 햇병아리 상단이라도 저 나이에 상단을 일으켰다는 말인가.'
그는 주성진을 다시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이거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솔직히 저도 사람인지라 여기 오길 조금은 망설였습니다만, 역시 잘 왔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솔직히 제 몸에 진드기 같이 붙어 있는 만리추종향이 사라지기 전까진 제가 어딜 가든 누워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요."
"만리추종향요? 그거 혹시 냄새로 사람을 추적한다는……."
그가 고개를 끄떡인다.
"네, 그렇습니다. 적포문 비고에 그런 장치가 있었는데 그걸 제가 몰랐습니다. 죽은 저자의 부하 한 놈을 때려눕히고서야 그놈의 입을 통해 알 수 있었습니다, 날짜를 세보니 앞으로 보름은 지나야 추종향의 향기가 사라질 것 같군요."
"아, 그래요, 대단한 추종향이네요."
"네, 저도 만리추종향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설마 제가 당할 줄은 몰랐습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하여 그러니까 뭐냐… 차라리 불안에 떨 바에는 직감을 믿고 대결의 결과를 보고 싶었다는 말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성진의 눈치를 살핀다.
"저, 제가 길을 떠나야 할 것 같아서요. 그래서 이만 약속을 이행하려 합니다만……."
주성진은 그가 먼저 말을 꺼내 주니 한결 편했다.
눈앞에 묘안석이 눈에 아롱거린다.
그리고 직감에 보통의 묘안석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좁쌀만 한 묘안석은 귀한 축에 끼질 못했다.
그 정도의 묘안석은 성진이 전생에서 여러 번 본 적 있었다.
"하하하, 그럽시다……."
잔뜩 기대에 부푼 성진을 바라보며 그가 말을 이었다.
"저, 그 전에 제가 제안할 게 있는데요. 물론 제 제안을 거부하셔도 무방합니다만."
"제안이라고요?"
"네. 실은 제가 가진 묘안석은 과거 문파에서 잃어버린 걸 되찾은 것인데, 그걸 제 임의로 처분하려 하니… 음 아까는 너무 급해서 그리 말했지마는……."
주성진의 얼굴에 얼핏 실망의 빛이 감돌았다.
'음, 완곡하게 돌려 말하고 있지만 결국은 자기의 제안을 들어달라는 이야기군. 내 느낌이 맞았어. 그가 가진 묘안석은 특상품이 분명해. 그러기에 적화문에서 강탈해 간 것이고, 공공문에선 기어이 그걸 되찾으려 한 것일 테지…….'
구슬만 한 특상품의 묘안석이면 보통은 은자 만 냥 이상에 거래되었다.
그리고 그 크기가 작으면 값어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그다지 구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한데. 그가 묘안석을 대신할 뭔가를 과연 그가 가지고 있을까…….'
성진은 살짝 숙였던 고개를 들었다.
"음, 그래 제안이 뭔지 말해 보시구려."
"저, 그게 말입니다, 묘안석 대신에 제가 귀한 영단이 한 알 있는데 그걸로 대신하면 어떨는지요?"
주성진의 동공이 급격히 커졌다.
"영단요?"
"네 그렇습니다, 취구환이라고 맛과 냄새는 고약하지만 대환단에 버금가는 영단이지요."
주성진은 취구환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무슨 운명의 끈이 취구환과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걸 내가 먹으면 단번에 내공 40년이 올라가는데…….'
주성진은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음, 천고의 영약을 왜 저에게 주려 합니까?"
"저희 내공심법의 특징상 취구환은 맞지 않습니다. 상생이 안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그래도 혹 모르니 위급할 때 쓰려고 가지고 다니고 있습니다. 비록 내공을 늘릴 수는 없어도 상처를 낫게 하는 데는 특효가 있으니까요."
"그렇군요. 개방에서 이 사실을 알면 무척 배가 아플 텐데요."
그가 손을 내저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습니다만, 이건 2백 년 전에 개방과 거래해서 정당하게 받은 것이랍니다."
"호, 그래요, 그렇다 하더라도 영약의 진위는 확인해야 할 텐데요. 제가 명색이 상인 아닙니까, 기분 나쁘더라도 이해하시길. 하하."
주성진이 제기한 문제를 이문량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진심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차분히 생각해보니 주성진의 말이 옳긴 옳았다.
"괜찮습니다, 제가 상단주님의 처지였더라도 그랬을 것 같군요, 어……."
말을 하다 보니 문제가 있었다.
그건 영약을 어떤 방법으로 판별하느냐 하는 거였다.
"저. 그런데 어쩌시려고요?"
"제가 냄새를 맡아 보겠습니다. 그러면 알 것 같군요."
주성진은 취구환 특유의 냄새를 맡아봤기 때문에 그리 말한 거지만 이문량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걸로 가능하다고?, 애고 모르겠다, 일단은.'
의문을 뒤로 한 채 그는 고개를 끄떡였다.
"알겠습니다, 혹 약효가 달아날 수 있으니 아주 잠깐만 맡으셔야 합니다."
"그럼요, 잠깐이면 충분합니다."
"흡흡……."
잠시 후 냄새를 확인하고 진짜 취구환임을 확인한 성진은 취구환을 다시 곱게 잘 싸서 자신의 품에 후딱 집어넣었다.
이문량에게 다시 돌려주지 않고서…….
"하하. 잘 해결되었군요. 한데 가지고 있는 묘안석은 특상품이겠지요?"
"보여 드릴까요. 상단주님"
"아아. 아닙니다. 견물생심이라고 제가 공연한 마음을 품을까 저어됩니다. 그나저나 혈교의 무공을 익힌 자들이 나타나면 무림이 꽤 시끄러워지겠군요. 장사하는 처지에서 세상이 뒤숭숭하면 이는 절대 좋은 일이 아니지요."
그가 고개를 끄떡인다.
"그렇겠군요. 전쟁상인이 아닌 바에는."
전쟁상인은 무기나 갑옷을 파는 상인을 일컬었다.
"그렇긴 한데 전쟁상인도 외상거래를 하다간 자칫 큰 손해를 볼 수 있습니다. 싸움에 패한 측에 돈을 떼일 수도 있고 싸움에 승리한 측에서 오리발을 내밀 수도 있거든요. 그리고 아셔야 할 건 국가 간 전쟁에서는 국가가 강제로 가져갈 수도 있답니다."
이문량은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걸 성진이 지적하자 감탄이 절로 앞섰다.
'대단하군, 저 나이에 무공도 그렇고 상술도 그렇고.'
그 순간 주성진이 말을 이어갔다.
"이거 만난 것도 인연인데 술이라도 같이 나누어야 하는 건데… 한데 어딜 그리 급하게 가려는 겁니까?"
"사실 제가 서두르는 건 혈교의 무공이 출현했다는 걸 개방에 알리기 위함입니다. 그리고요, 상단주님이 주소를 알려주시면 나중에 제가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하하. 호남성 장사로 오면 됩니다. 한데 가까운 데 개방 분타가 있는 모양이군요?"
그가 고개를 끄떡거린다.
"네, 그렇습니다. 그들의 전서구를 이용한다면 총무련에 이 사실을 빠르게 알릴 수 있을 겁니다. 음… 사실 저희 공공문의 제자라면 반드시 해야 할 사명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음지에서 양지로 나가는 것에 일조하는 것과, 다른 또 하나는 신투 조상님의 유언을 받드는 것이죠."
신투는 이백 년 전의 인물로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중원 최고의 도둑이었다.
"……."
"신투께서는 자신이 잠깐 집을 비운 사이 물건을 도둑맞는 일에 극도의 화가 나셔서 유언을 남기셨지요. 무조건 도난당한 물건을 되찾아오라고요."
주성진은 그에게 비수 같은 말을 던지고 싶었으나 꾹 눌러 참았다.
'뭐야! 신투 그 사람 이상한 사람이네, 자신이 도둑질한 건 생각 안 하고 자신이 도둑맞은 일에는 가슴 아파한다고. 허허 기가 찰 노릇일세 그려…….'
"……."
"그래서 그 후로 다른 건 다 되찾았고 마지막으로 남은 게 바로 묘안석인데 이번에 제가 되찾게 된 것이랍니다. 아, 그리고 제가 이번 일을 총무련에 알리려는 건 총무련에 가입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지요. 저희가 공을 세우면 총무련에서 저희 공공문을 달리 볼 수 있으니까요."
주성진을 고개를 끄떡이며 공공문이 도둑질을 그만두면 무슨 일을 할지 궁금했다.
문파를 이끌어 가는데, 무공도 중요하지만 먹고사는 문제도 상당히 중요한 문제였다.
"그럼 만약 총무련에 가입하면 앞으로 공공문은 어떤 일을 하려 합니까?"
"빠른 경공을 활용한다면 할 것이 무궁무진하지요. 특히 저희 문주님이 생각하고 있는 건 특송 배달업이랍니다. 남들보다 신속히 서신이나 가벼운 물건을 전해주자는 거지요. 저는 분명, 이 사업이 성공할 거라고 확신합니다."
성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 일리가 있어. 무공을 사업 쪽으로 활용하는 건 나도 쭉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하. 그러면 앞으로 제가 부탁할 일도 생기겠는데요."
"그럼 좋지요, 상단주님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곧 큰 도시에 지부가 생길 테니까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작별 인사를 한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오늘 여러 가지로 정말 감사했습니다. 상단주님 앞날에 무궁한 발전이 있길 기원합니다."
"아이코 고맙습니다. 그대와 공공문도 그리되길 바랄게요."
한데 그 순간, 그가 품속에서 붉은색의 주머니를 꺼냈다.
"하하. 이거 마령단이라고 하는 건데 그냥 드릴게요. 적화문에서 슬쩍한 건데 죽은 저놈은 모르고 있는 듯합니다."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령단이 뭡니까? 느낌에 영단 같은데요."
"네. 사실 고대 혈교의 보물 중 하나지요. 사람의 생기를 혈교의 대법으로 뽑아 모은 것이랍니다."
주성진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저 찝찝한 걸 왜 내게 주려는 거지? 아무리 그쪽의 보물이라 하지만…….'
"제가 두 알이 있어서 하나를 선물로 드리는 겁니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절대 먹지는 마십시오. 저도 충분히 알아본 후에 먹을지 버릴지를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제 기억에 자칫 잘못 먹으면 마기가 골수에 사무쳐 광인이 된다고 하는데, 반대로 잘만 먹으면 대환단에 버금가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