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상인-48화 (48/250)

048화 적포문 외당 당주와의 대결

주성진은 씩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허허, 갈 때 가더라도 자초지종이나 들어봅시다. 구원을 요청하는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주성진이 전혀 기죽지 않고 답하자 장년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봐, 도둑놈을 비호하는 것이냐?"

"그건 아니지만, 당신이 저 젊은 사내를 죽인다고 하니 그러는 것 아닙니까, 사람 목숨을 두고 장난치는 건 옳지 않은 일이에요."

"흥,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녀석이 감히 날 가르치려 들어! 분명 네놈의 번드르르한 말 뒤에는 묘안석에 대한 흑심이 있을 것이야, 안 그러냐?

주성진은 그를 쏘아보았다.

"흑심은 무슨 얼어 죽을… 저 친구가 방금 묘안석을 주겠다고 소리치지 않았소?"

"시끄럽고, 죽고 싶지 않으면 썩 물러가라."

주성진이 과장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쯧쯧. 나이깨나 든 것 같은데 말끝마다 죽인다고 하면 쓰겠소, 참 나이를 헛먹었나 보군."

주성진이 도발하자 그가 분을 못 참고 주성진을 잔뜩 노려봤다.

"이 새끼가! 진짜 죽으려고 환장했나. 오냐, 내가 저놈과 같이 널 저승으로 보내주마."

주성진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본색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하하, 긴가민가했는데 저놈이 명분을 만들어 주는군, 분명 저놈은 좋지 않은 부류야.'

한편, 실망이 역력했던 젊은 사내는 주성진이 세게 나오자 희망을 본 듯했다.

"이보시오. 난, 공공문의 13대 제자 이문량이오. 저자는 적포문의 외당 당주인데 묘안석은 예전에 적포문이 강탈해간 것을 내가 되찾은 것뿐이요."

"……."

"그리고 또 한 가지, 이번에 적포문에서 무림에 해를 끼치려는 중대한 음모를 발견했소이다. 겉으론 총무련에 몸담은 척하지만, 뒤로는 혈교의 부활을 모의하고 있소이다. 왜냐면 그들이 오래전에 사라진 혈교의 무공을 되찾았기 때문이오."

주성진은 그의 말을 듣고 인상을 찡그렸다.

'뭐라 혈교! 예전 마교에서 반역을 일으키다 쫓겨난 놈들 아닌가? 그럼 적포문이 혈교와 관련 있는 문파란 말이네, 음 그들은 사파라고 들었는데…….'

여하튼 무림이 요동치는 건 주성진에겐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장년인은 적포문의 기밀이 폭로되자 적지 않게 당황했다. 그는 사실을 불식시키려 다급히 말문을 열었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사실이오. 내가 증거를 갖고 있소."

증거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장년인의 눈까풀이 급격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 새끼가… 죽여버리겠다!"

장년인은 젊은 사내의 입을 영원히 막으려 했다.

외당 당주가 기습적으로 우수를 휘두른 순간, 희뿌연 그림자가 그 앞에 나타나 손을 내뻗었다.

희뿌연 그림자는 바로 주성진이었다.

펑…….

장력과 장력의 충격에 장년인은 술에 취한 듯 비틀거렸다.

일수에 손해 본 그가 주성진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다.

"결국, 네놈이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새삼 왜 그러시오? 좀 전에 날 죽이겠다 하지 않았소."

"이이… 네놈의 혓바닥을 잘라버리겠다!"

살기 어린 눈초리로 주성진을 쏘아본 그가 장심에 기운을 모으기 시작했다.

고오오오…….

주성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음, 심상치 않군, 저자가 시전하려는 것이 혹 혈교의 무공인가?'

한데 더는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이크, 온다!'

장년인의 오른 손바닥에서 붉은색의 구체가 벼락같이 쏘아져 왔다.

쉬이익…….

형상화된 장력을 저토록 쉽게 날린다는 건 보통 고수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주성진은 검을 발검할 여유가 없자 그대로 우수를 내밀었다.

주성진이 급히 펼친 건 귀원장법의 제1초 귀원창천이었다. 장력의 끝이 뾰족한 창처럼 날카로운 게 특징이었다.

꽝!

눈 깜짝할 사이에 주성진의 장심에서 뻗어나간 푸른빛 장력과 그의 붉은 장력이 부딪쳐 허공에 불똥을 일으켰다.

장년인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게 상기되었다. 예상외의 반격에 상당히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젠장, 저놈! 나의 혈광기를 아무렇지 않게 막아내다니, 내 생각보다 더한 고수였어. 어디서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나타났단 말인가, 정파의 후기지수 중에 저런 놈이 있다는 정보는 없었는데 말이야. 하여간 제수 옴 붙었네,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놈이 나타났으니.'

자칫 길보다 흉이 많을 것 같은 예감이 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가자 그는 애써 불안감을 잠재우고 다시금 장력을 끌어올렸다.

그는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무인 특유의 본능으로 느끼고 있었다.

곧이어 그의 손바닥에서 적색의 구슬이 더욱 선명한 빛을 발했다.

전과 비교해 훨씬 강력한 위력의 혈광기였다.

반면 주성진의 얼굴에선 여유가 넘쳐났다.

'해볼 만하군, 초식의 위력은 비슷, 하나 공력은 내가 위야…….'

이런 주성진의 자신감은 회회마와 은발마녀를 상대한 경험이 크게 작용했다.

'이이이…….'

담담한 주성진을 노려보며 장년인은 부드득 이를 갈아붙였다.

'오냐, 두고 봐라!'

그 순간 그가 한껏 공들인 장력이 빠르게 허공을 갈라 짓쳐왔다.

주성진은 붉은 손그림자가 1장 가까이 다가오자 기다렸다는 듯 손을 휘둘렀다.

꽈앙!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굉음이 터져 나왔다.

엄청난 굉음에 관전하던 사람들은 놀라 귀를 막고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으으으…….'

하나 주성진은 잠깐 멈칫했을 뿐이다.

반면 비틀비틀 다섯 걸음을 물러난 장년인의 안색은 하얗게 탈색되어 있었다. 놀라움에 턱까지 덜덜 떨려온다.

'어어 이럴 수가, 혹시…….'

순간 그는 눈앞의 상대가 반로환동한 고수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음, 그렇다면 내가 혈광기를 대성하더라도 버거운 자야, 그렇다면…….'

주성진이 눈치 못 채게 미미하게 고개를 내저은 그가 꼬리를 말 준비를 했다.

'일단 살고 보자, 추종향이 있는 한 저 도둑놈은 절대 나를 벗어날 수 없어!'

도망치기로 작정한 그는 젊은 사내 쪽으로 손을 휘두르는 척하다가 곧바로 뒤로 신형을 날렸다.

휘이익…….

순간 그의 허초에 움찔한 주성진은 한발 늦게 그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이런…….'

잠깐 사이에 그와 거리가 벌어졌다. 그는 성진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갈지자로 공중을 휘젓고 다녔다.

'흥, 그런다고 내가 놓칠 줄 아냐.'

주성진은 그의 속셈을 간파하고 부드럽게 허공을 유영했다.

그를 가까이서 따라잡기보다는 행적을 놓치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거리를 두고 그를 뒤쫓았다.

그렇게 한동안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추격전이 진행될 무렵 주성진의 눈빛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옳거니 인적 없는 외곽이다, 그리고 저놈 힘이 빠진 것 같아…….'

거리를 유지하던 주성진은 그가 인적이 없는 외곽으로 향하자 돌연 속도를 배가하였다.

'이제 마음껏 싸움을 펼칠 수 있겠구나.'

그리고 얼마 후. 폭발적인 추진력으로 그를 완전히 따라잡은 주성진이 벼락같이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언제 발검했는지, 그의 손에는 자신의 보검이 들려 있었다.

"멈춰!"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던 그는 급히 걸음을 멈추었다. 그대로 달려가다간 주성진의 검에 몸이 꿰뚫릴 것 같았다.

"헉헉."

'저럴 수가! 내가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자다. 짐작대로 저자는 자신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았어…….'

장년인은 달아나는 것을 포기하고 주성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잡히면 끝장이다, 차라리 잡힐 바에는 목숨을 끊는 게 좋지 않을까…….'

그는 혈교의 오랜 염원이 자신으로 인해 망쳐지길 원치 않았다.

'그래, 혈교의 영광을 위해!'

곧이어 그의 얼굴에 세상사를 초월한 듯한 달관한 표정이 떠올랐다.

주성진은 그의 표정을 보고 흠칫했다.

'뭐지, 꼬락서니가 모든 걸 포기한 표정인데.'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은 자가 더 무서운 법이다. 무슨 짓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때였다.

그의 입에서 짐승의 그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다,

"크크 흐흐흐……."

주성진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뭐 하는 거야, 저놈!'

그 순간,

"하하, 저승길의 동무가 생겼으니 외롭지는 않겠어……."

그는 고대 혈교에서 전해져 내려온 혈천잠력공을 시전하기로 한 것이었다.

"닥치고 곱게 항복해라! 안 그러면 매를 더 벌 것이다."

"마음대로 해보아라. 곧 죽을 놈이, 클클."

주성진은 그의 표정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느꼈다.

"이보시오, 설마 동귀어진이라도 하겠다는 거요?"

주성진은 바로 얼마 전에 은발마녀의 몸이 폭발한 것을 보았기에 잔뜩 예민해져 있었다.

"왜 두렵나? 설마 인제 와서 다시 돌아가지는 않겠지, 뭐 그런다면야 나야 좋지만, 흐흐……."

장년인의 이죽거림에 주성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말았다.

'휴. 역시 무림엔 별종이 많아. 좋아, 저놈이 죽을 둥 살 둥 나오는 이상 나도 가만있을 순 없지. 일단 거리를 벌려 놓고 장풍으로 끝장을 내자.'

주성진은 만일을 대비해 지면을 미끄러지듯 뒤로 물러났다,

그리곤 뽑았던 검을 다시 집어넣고는 공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바람 없는 날임에도 장년인의 옷자락이 부풀어 오르며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았다.

비로 그때.

고오오오.

장년인의 몸에서 폭풍 같은 기세가 줄기줄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선천지기까지 끌어올린 그의 내력은 이전보다 두 배나 폭증해 있었다.

'흐흐흐, 내공이 충만하다는 게 이런 맛이군.'

장년인은 주체하기 힘든 내력을 느끼며 우수에 진기를 모아 갔다.

일측촉발의 상황, 주성진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본인도 오른손에 진기를 모아갔다.

상대가 동귀어진의 수법을 쓰는 만큼 티끌만큼의 방심도 허용할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순간. 그가 벼락같이 우수를 내밀었다.

"야합!"

쒜애액…….

대지를 찢어발길 듯한 파공음이 주성진의 귓전을 스쳐 지나갔고, 그와 동시에 전보다 족히 두 배는 커진 붉은색 구체가 성진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음…….'

주성진은 상대의 위력적인 공격에 감히 태만하지 못하고 빠르게 장풍을 일으켰다.

쉬이익…….

순간 그의 손에서 뻗어나간 장력이 허공에서 기하학적인 도양을 그려내며 움직이다가 점점 윤곽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짙푸른 빛의 창날이었다.

성진의 깊은 눈에서 열화가 이글거린다.

'깨부숴!'

강력한 염원이 담긴 성진의 장력이 상대를 맞이하러 질주했다.

그리고 찰나.

쿠아아아앙!

긴 여운을 남기는 폭음과 함께 한 인영이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튕겨 나갔다.

"크아아아……."

뒤로 날아간 건 장년인이었다.

'휴, 끝났어, 공력의 우위가 승부를 갈랐구나…….'

주성진이 언뜻 본 건 자신의 장력이 상대의 혈광기를 꿰뚫고는 상대 늑골 부위에 작열한 거였다.

그 순간에도 주성진의 어깨는 거칠게 흔들렸다. 몸에 문제는 없다고는 하나 무방비 상태에서 누가 등짝을 세게 친 것 같은 충격파였다,

'음, 상당히 얼얼하네! 어랏 저게 뭐야!'

돌연 그의 얼굴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종국에는 살가죽만 간신히 뼈에 붙어 있었다.

이는 그의 몸에서 선천지기가 급속도로 사라지는 현상이었다.

'허, 해골바가지…….'

주성진이 놀라는 순간 그의 말라빠진 입술이 꿈틀거렸다.

"놈! 혈신이 반드시 너를 응징할 것이다!"

"……."

그는 그 한마디를 남기고 이승을 하직했다.

'휴, 죽어 버렸네, 그나저나 마교 출신들은 하나같이 저 모양인가. 이건 숫제 끝까지 안심할 수 없으니, 나 원 참!'

순간 책에서 본 그 뭔가가 생각난다.

'설마 죽은 몸뚱어리가 벌떡 일어나는 건 아니겠지…….'

주성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돌연 고개를 돌렸다.

"나오시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