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상인-43화 (43/250)

043화 암상과의 거래

"그렇소, 설마 천잠사를 모르진 아닐 테고, 음 천잠사 한 뭉치를 내어드리도록 하겠소. 천잠사 한 뭉치면 대략 성인의 겉옷 한 벌은 족히 만들 분량이오."

주성진은 그의 제안에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음, 아무래도 그 고수라는 인간이 그 노인네 같은데, 어떡한담, 만약 붙었다가 설마 한칼에 목이 달아나는 것은 아니겠지.'

주성진은 지금껏 본인보다 훨씬 배분이 높은 자와 상대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귀하디 귀한 천잠사의 유혹은 너무 컸다. 마치 생사 대적을 만난 듯 그의 표정이 비장하게 변해갔다.

'그래, 한번 해보자, 생사투를 치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나의 내공과 보검이라면 그의 앞길을 잠시 막을 수는 있을 거야.'

만일 주성진이 화산옥봉의 이야기를 들었다면 생각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자리에 주성진은 없었다.

"음, 그 전에 그 고수가 누군지, 상황이 어떻게 된 건지 들을 수 있겠습니까?"

"그건 내가 언급하려고 했소이다. 그리고 그 전에 오해할까 봐 말하는 것인데 내가 자랑은 아니지만, 남들이 그러는데 무공을 판별하는 눈이 뛰어나다 하더이다. 내 말인즉 내가 그대를 유혹해서 일부러 사지로 몰아놓으려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요. 물론 죽고 사는 건 하늘에 달려 있겠지만……."

"하하, 그러니까 저를 불쏘시개로 쓰려는 건 아니라는 말이군요. 뭐 한번 믿어보지요."

암흑전주는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떡였다.

"믿으시오, 만일 그대의 무공수준이 별볼 일 없다면 굳이 내가 시간을 들여 입 아프게 떠들 이유가 없소이다. 난 분명히 댁의 몸속에서 용솟음치는 기의 흐름을 느꼈소이다."

주성진은 그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정말로 저의 내기가 꿈틀거리는 걸 느꼈다는 말입니까? 전 양세훈 전주님의 무공을 잘 읽지 못했는데요."

"하하, 그럴 것이요. 우리가 익힌 신공은 워낙에 외부로 노출이 잘돼서 나름 그 부분을 희석하려는 노력을 오랫동안 해왔소이다. 특히나 우리는 상인 아니겠소, 남들에게 위화감을 주면 절대 안 되지, 암, 그렇고말고."

마공을 익히면 상대를 억압하는 마기가 흘러나온다는 건 주성진도 익히 알고 있었다.

"……."

"자, 내가 시험해 보겠소. 내가 무형 강기로 그대를 꽁꽁 묶어볼 테니 빨리 벗어나 보시오. 빠르면 빠를수록 좋소이다. 만일 그대가 벗어난다면 내 말이 증명되는 셈이요, 아니 그렇소?"

주성진은 곧바로 고개를 끄떡였다. 게다가 상대 전주의 무공을 엿볼 기회였다.

"알겠습니다. 기왕에 하는 것, 좀 세게 해 주세요."

"하하, 자신 있나 보오. 아, 그리고 무형 강기는 보통 고수들이 하수들을 농락할 때 흔히 쓰는 수법이요. 나중에 그를 대면할 때 참고하시오."

"감사합니다. 알려 주셔서."

잠시 후, 일장을 격하고 암흑전자와 주성진이 마주 섰다.

암흑전주는 성진에게 살짝 눈인사를 보내고는 돌연 우렁찬 기합을 내질렀다.

그와 동시에 그의 두 손은 활짝 펴져 있었고 성진을 향해 뻗어나가고 있었다.

"얍!"

우우웅…….

주성진은 그의 강력한 기운이 대기를 뚫고 다가오자 자신의 공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음, 만만치 않은데…….'

순식간에 암흑전주의 강기가 성진의 주변을 감싸고 쇠사슬처럼 칭칭 성진의 몸을 옥죄어 왔다.

아교처럼 끈끈한 기운들이 주성진을 성가시게 한다.

'그럼 나도 반격해볼까!'

곧이어 주성진의 몸이 들썩거리더니 성진의 옷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기의 팽창으로 인한 거였다.

'허, 저럴 수가!'

암흑전주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상대의 예상 밖 강한 내공에 그의 입술 언저리에 피었던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얼굴이 점점 굳어져 갔다.

'음 내 자존심이 걸린 문제야.'

"야아합!"

또 한 번의 기합을 내지른 암흑전주는 내공을 급속히 끌어올렸다.

그러자 봉인되었던 마기까지 자연스레 그의 몸에서 피어 나오기 시작한다.

주성진도 이에 질세라 내공을 끌어올렸다. 순간 그의 얼굴이 잠깐 일그러진다.

'뭐야. 이 칙칙한 기운은… 이게 말로만 들었던 마기인가…….'

사실 마기는 그 자체로 또 하나의 무기였다.

꼭 집어서 말할 수 없지만, 상대의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과 두려움을 주는 존재였다.

마기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정신착란으로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그렇다면…….'

파!

주성진은 내공을 더욱 끌어올렸다.

그러자 바야흐로 주성진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펼쳐지려 했다.

성진의 몸에서 내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와 삽시간에 암흑전주의 기운을 밀어내 버렸다.

한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노도와 같은 기운이 여세를 몰아 암흑전주에게 밀려든 것이었다.

쏴아아!

"헉, 으으음!"

암흑전주는 도리어 수세의 위치에 처하며 주성진이 내뻗은 내공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그 와중에 그의 얼굴은 점점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그 순간 널찍이 떨어져서 두 사람을 지켜보던 부전주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헉, 전주님이 전 내공을 끌어올렸구나, 저자의 내공이 그토록 대단했단 말인가…….'

"야하합……."

암흑전주는 젖 먹던 힘을 다해 소릴 질렀다. 그 소리가 처절하다 못해 울부짖는 것 같았다.

잠시 후, 가까스로 압박하던 기운에서 벗어난 그가 급히 뒤로 물러났다.

쿵쿵쿵쿵…….

"헉, 헉, 헉……."

그의 허둥지둥한 모습에 주성진은 침착하게 진기를 거두어들였다. 하나 그의 마음속에선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넘실거렸다.

'하하, 이 짜릿한 기분, 적어도 내공의 4할 이상은 남겨두었다고!'

얼마 후 간신히 본래의 신색을 회복한 암흑전주는 주성진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아, 내 60년 공력을 가볍게 눌러버리다니."

그는 혼잣말처럼 뇌까린 말이지만 주성진을 이를 모두 들어버렸다.

"과찬입니다. 사실 운 좋게 기연을 얻었습니다, 하하."

순간 암흑전주는 아차 싶었다. 자신의 공력을 주성진이 알아버린 것 때문에.

'이런, 경솔했다.'

"음… 내 공력은 혼자만 알고 계시오. 부탁이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너무 자만하지 마시오, 그대에게 내 말이 핑계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 난 살기를 배제하였소."

주성진은 그의 말에 의문이 생겼다.

"저 살기를 배제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요. 뭔가 다른 뜻이 내포된 것 같은데요……?"

"그건 말 그대로 이해하시오. 죽이겠다는 마음을 배제했다는 말이니까. 우리는 피가 들끓어야 최고가 된다오.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패도를 지향하는 속성이 있으니까."

"아, 그렇군요, 한데 책에서는 마음을 비우고 무념무상으로 임해야 최고가 된다고 하던데요. 나를 잊고, 적을 잊고, 그렇게 말이지요."

암흑전주가 피식 웃었다.

"허허 참, 불문과 도문의 케케묵은 이야기가 그대의 입에서 또 출현했군. 뭐 마음대로 생각하시오, 생각도 자유, 착각도 자유니까."

주성진은 무공을 보는 관점에서 정과 마의 커다란 괴리를 느꼈다.

'현실적으로 그의 말이 맞기는 하지. 전쟁에서도 언제나 불굴의 정신, 불패의 마음을 강조하니까. 생즉사, 사즉생…….'

생각을 정리한 주성진은 암흑전주를 바라보았다.

"하하. 그럼 저는 제 식대로 가보겠습니다. 언제나 이기는 쪽으로 말이죠."

"호, 그거 상인다운 발상이구려, 자 그러면 이제 그대가 상대해야 할 고수가 누군지 알려 주겠소. 그의 별호는 회회마요. 과거엔 신강, 감숙을 제집처럼 헤집고 다니던 자인데 이젠 늙어서 그런지 은발 마녀와 함께 완월당의 태상 당주를 차지하고 있소이다. 뭐 썩 좋은 자는 아니오."

"……."

"그가 솔직히 공력 면에선 나보다 우위에 있을 것이오. 다만 나이가 들면 근력이 약해지는 경향이 있으니 붙어봐야 승부를 가릴 수 있을 것 같소. 그는 지법, 장법이 두루 능하고 그의 별호가 말해주듯 얼굴이 회색으로 변할 때가 가장 무섭다고 알려져 있소이다."

"……."

"왜냐하면, 그가 회변심공을 익혔기 때문이오. 뭐 따지고 본다면 신공에서 뻗어나간 곁가지라고 볼 수 있소, 정통은 아닌 셈이지……."

주성진은 그의 말을 귀를 쫑긋거리며 듣다가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궁금했던 게 있었다.

"저, 회회마가 암상에서 귀한 물건을 입수했다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암흑전주는 잠시 고민의 빛을 보이더니 이내 곧장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뭐 말해줘도 무방하겠지…….'

"내게 물건을 판 인물은 이강익이라는 인물로 그 또한 신강과 감숙에서 이름을 알렸던 고수요. 그대들 표현대로 한다면 마교 출신의 고수가 되겠지. 그는 부하처럼 부리는 남녀들을 데리고 이곳 장원으로 들어와서는 우리를 만나기를 청했소."

"……."

"그리곤 우리와 일을 마치고는 곧장 여기 장원을 빠져나갔소이다. 한데 그들이 떠난 직후 혈나찰로 불리는 여인이 다시 우리를 찾아왔소이다. 그녀가 이강익의 음모를 우리에게 알려 주었소. 내용인즉슨 이강익이 우리에게 판 물건을 회회마와 그의 일행에게 밀고했다고 하더이다."

주성진의 머리가 민활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성진은 이미 암흑전주의 말에서 이강익이 청월무녀도를 판 것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와, 그 노인네, 엄청 교활하네, 그러니까 뭐야. 기회를 봐서 청월무녀도를 다시 차지하려고 암상과 회회마 패거리를 양패구상하려 했구나. 한데 그 채찍을 잘 쓰던 여인은 왜 이강익을 배신한 걸까……?'

그 순간 암흑전주의 말이 이어졌다.

"혈나찰이라는 여인이 다시 온 건 우리가 물건을 산 대가로 건네준 영약에 강한 불만이 있어서였소. 그걸 모두 이강익이 꿀꺽하려 했다고 하더이다. 원래는 3할이 자신에게 돌아올 몫이었는데 말이오."

"……."

"물론 혈나찰 그녀도 순순히 우리에게 입을 열지는 않았소. 그래서 그녀가 원하는 것을 다는 아니고 좀 집어주었소이다. 하하, 어떻소, 재미있지 않소? 원래 이쪽 무림 세계가 늘 배신이 판을 치는 곳이오. 눈 뜨고도 코 베이는 세상이지, 이번에 우리도 이강익 그자에게 보기 좋게 당한 셈이요……."

주성진은 마교의 실상에 대해 간접적이나마 적나라하게 알게 되었다.

'앞으로 그쪽 출신들을 만나면 조심해야겠어. 아니지, 이런 것들이 비단 마교뿐만은 아닐 것이야.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정파나 사파도 오십보백보가 아닐까 싶은데.'

"잘 들었습니다. 제가 해보도록 하지요."

"하하. 고맙소이다. 일이 성공하면 인편을 통해 천잠사 한 뭉치를 반드시 보내 드리겠소. 그리고 암상 대주님께도 그대의 이름을 꼭 거론하리다."

암상대주는 암상의 최고 책임자였다.

"한데 천잠사는 어디에 파는 게 가장 이익이 큰가요? 아무래도 무림 쪽이겠죠?"

암상전주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소, 물론 뒤가 두려운 부자들에게 팔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무림인에게 파는 게 훨씬 이득이오. 그들이라면 천잠사를 비상용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 테니까, 솔직히 돈을 떠나 귀한 천잠사를 보의로 해 입는 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요. 아무리 창, 검이 들어가지 못한다 하더라도 양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