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상인-42화 (42/250)

042화 암흑상인을 만나다

그가 고개를 젓는다.

"잘은 모릅니다. 그들이 주로 활동하는 지역이 신강 쪽이라서요. 다만 은발마녀에 대해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요. 예전 그녀가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을 때 무공이 높은 낭인 둘이가 그녀에게 치근덕거리다가 하룻밤 사이에 그녀에게 양기를 빨리고 고깃덩어리로 변해 인육점에 팔려 갔다고 하더라고요."

"혹 인육점이라면 사람고기를 파는 곳을 말하는 겁니까? 소문은 들었지만 그런 곳이 실제 있었나 보네요."

"네, 그럼요, 지금도 버젓이 장사하고 있습니다."

주성진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끄떡이다 방금 감전동이 한 말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모습이라고요? 은발마녀가."

"네. 그녀의 과거 모습은 과히 경국지색이었다고 합니다. 다만 채양보음술의 후유증으로 얼굴이 노화되고 머리도 은빛으로 변했다고 하더라고요."

"채양보음술이라면 양기를 보충하는 것이겠지요?"

감전동이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끄떡였다.

"뭐, 그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채양보음술도 종류가 많아서 어떤 계통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넓게는 방중술에서부터 흡정술과 유사한 것도 있으니까요."

"그게 많이 다른 건가요?"

"방중술은 남녀에게 모두 도움이 되는 것이고, 흡정술은 말 그대로 상대의 공력을 뺏는 것이라 남녀 교합 없이도 상대의 공력을 갈취할 수 있지요."

주성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허, 별의별 게 다 존재하는구나……. 이젠 전설의 강시가 출현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아.'

"음, 알겠습니다. 자, 그럼 일행에게 돌아갈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주성진의 속마음은 딴 곳에 가 있었다.

'일단 숙식할 곳이 정해지면 난 따로 볼일을 봐야겠어.'

상행 초기부터 큰일을 겪을 뻔했던 일행들은 초반 기세등등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모두 풀이 죽어 있었다.

이에 기름을 부은 건 정민아의 사부 화산옥봉이였다.

일행 중 가장 연장자이기도 한 그녀는 강호 경험이 거의 없다시피 한 나머지 일행들과 비교해 풍부한 강호 경험을 간직하고 있었다.

주성진과 감전동이 따로 이야기하는 동안 화산옥봉은 나머지 일행에게 말을 전하고 있었다.

화산옥봉 감여군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연신 한숨을 토했다.

"……. 휴, 원시천존께서 우리를 살펴주신 게야, 까딱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마교 출신인 그들이 한꺼번에 우리를 공격했다면……."

"사부님, 그들 세 사람이 그렇게 강한가요?"

"그렇다, 나보다도 한 배분 위의 고수들이야, 직접 붙어보진 않았지만 느낌으로는 솔직히 그들 중 하나와 붙어도 내가 당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구나."

화산옥봉이 거론하는 인물들은 이강익, 회회마, 은발마녀였다.

"사부님, 그들이 왜 이곳에?"

"제자야, 더는 그들에게 관심을 두지 마라, 과도한 호기심은 목숨을 재촉하는 법이다. 그나저나 두 녀석은 왜 안 오는 것이야, 빨리 여길 빠져나가야지."

정민아가 다급해하는 사부의 모습을 보며 한마디 했다.

"사부님 우리가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어찌 되었든 저희가 호위인데……."

'끙…….'

"알았다, 그리고 너는 오늘 밤에 반드시 신공단을 복용하거라, 조금이라도 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으니까."

"네. 사부님."

사제 간인 두 여인이 대화하는 동안 삼선녀와 김남선은 입에 아교가 붙은 듯 입을 열지 않고 있었다.

사실 그들이 대화에 끼어들기에는 마교의 고수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다. 더구나 아직은 서먹서먹한 관계이기도 했고.

그 순간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뚜벅뚜벅…….

강설현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엿보인다.

"상단주님!"

"하하, 이거 걱정 끼쳐드려서 미안합니다."

주성진은 좌중을 둘러보았다.

"자. 여기를 나가시죠, 별수 없이 인근 농가에 신세를 져야 할 것 같습니다."

"……."

한참 후, 별이 총총히 빛나는 밤에 도둑고양이처럼 농가를 빠져나온 이가 있었다.

그는 바로 주성진이었다. 눈치챈 감전동이 말려봤지만, 주성진의 결심을 꺾을 수 없었다.

'청월미녀도! 뭐 갖고는 싶지… 하지만 그건 내게 그림의 떡! 내가 해야 할 일은 암상을 만나는 것이다.'

휘리릭…….

밤야조가 되어 순식간에 농가를 벗어난 주성진은 다시 마을로 향했다.

'천마상에 절하러 온 인간들이 많다고 했으니까 그들의 흔적들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거야.'

주성진의 생각대로 그들의 흔적은 동정호 쪽으로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저기군!'

눈빛을 반짝인 주성진이 낡았지만 고풍스러운 장원으로 향했다.

잠시 후 천천히 장원의 대문으로 향한 성진 앞에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하하. 늦게 오셨구려."

"늦은 건 아니겠지요?"

"그렇소, 다만 우리가 싸고 좋은 물건들을 많이 준비했는데 그것들이 다 팔렸을까 모르겠소이다. 이젠 비싼 것밖에 없을 것 같은데……."

주성진은 손을 내저었다.

"뭐, 늦게 왔으니 감수해야죠, 그런데 물건이 동난 것은 아니겠지요?"

"물론이오. 자, 그럼 이제 증명하시오."

주성진은 완월당의 무사에게 들은 내용을 상기했다.

'흥, 기운을 역행하라고! 웃기는 이야기지, 내가 미쳤나…….'

"으음, 이보시오, 세상이 변했는데 좀 들어갑시다. 듣자 하니 무림은 이제 총무련으로 하나가 되었는데, 굳이 출신을 가릴 필요가 있소이까? 그리고 무엇보다 난 상인이오, 댁들과 같은……."

주성진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가 주성진의 멱살을 잡으러 왔다.

그렇다고 맥없이 당할 주성진이 아니었다. 그의 손이 옷깃에 닿으려는 찰나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휙…….

"허허, 제법 날쌔군, 그렇다면……."

그가 다시 움직이려는 순간 뒤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염 부전주 뭐 하는 거야, 심심해?"

"헤헤, 제3 암흑전주님 납시었습니까? 한데 전주님도 심심한가 봅니다. 하긴 올 사람은 이미 다 들어갔으니까요."

둘은 친밀한 사이인지 주성진을 아랑곳하지 않고 흰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고 있었다.

"하하하, 하하하……."

주성진은 팔짱을 끼고 그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웃음을 그친 암흑전주가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주변의 불빛 탓인지 주성진의 얼굴이 더욱 영준해 보인다.

"허허, 좀 전에 이야길 들었소. 그 나이에 배포가 대단하구려."

"뭐, 기본이죠, 하하, 반갑습니다. 전 구주상단의 상단주 주성진이라고 합니다."

"하하, 그 나이에 상단주라… 반갑소이다. 난 양세훈이오. 정확히 여기가 어디라는 걸 알고 온 건 맞소이까?"

주성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습니다. 암상이 운영하는 곳인지 알고 찾아왔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는 인사도 할 겸 좋은 물건이 있으면 구매를 하려고요."

"우리 암상이랑 안면을 트고 싶다, 그 말이오?"

"그렇습니다, 제가 알기론 귀 상단에서 타 상단에 필요할 때 연락한다고 들었는데, 이번 기회에 미리 안면을 터놓으면 서로 서먹하지 않고 좋지 않겠습니까?"

암흑전주의 얼굴이 좀 전보다 진지해졌다. 주성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음, 우리가 거대상단에 가끔 연락하긴 하오만, 그 말인즉 그대가 장차 거대상단으로 도약할 거라는 말이오?"

"지켜봐 보시지요. 꼭 그리할 겁니다. 그건 그렇고 제가 실례를 무릅쓰고 여기 온 건 암흑상인 분들을 만나서 인사를 드리려는 것도 있지만 뭐랄까, 혹 귀 상단과 거래할 게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목적도 있습니다. 혹 그런 게 있을까요?"

지켜보는 암흑상단의 부단주도 귀를 쫑긋거리며 눈을 크게 떴다.

입술이 씰룩이는 거로 봐서는 뭔가 말할 게 있는 것 같은데 참는 모양새다.

"허허, 우리의 거미줄 같은 유통망을 이용해 보려는 것 같은데, 그런데 말이요, 유감스럽게도 중원에는 거래할 게 거의 없을 것 같소이다."

주성진의 얼굴에 실망스러운 기색이 스치는 순간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중원에서 새로운 품목이라면 가능할까 싶소이다. 가령 예를 들어 완전히 새로운 것이라든지, 아니면 중원 밖에서 온 물건이라면……."

주성진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아. 그렇습니까? 그런 거라면 제가 가능할까 싶습니다만."

별 기대를 품지 않았던 암흑전주의 얼굴에 작은 파문이 일어났다.

"무릇 상인의 신용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오. 방금 말한 그대의 말에 확실하게 책임질 수 있는 것이오?"

"네, 그렇습니다. 우선은 제가 머지않은 시일에 조선으로 갈 예정인데 필요한 게 있으면 구해드리지요."

"허허, 조선이 좀 폐쇄적인데 자신 있나 봅니다. 음, 명주와 모시라면 무한대로 구매할 수 있소이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사실 조선이 폐쇄적인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안전 문제 때문에 교역이 원활하지 못한 면이 있지요, 육로든 해로든 말입니다."

"주 상단주가 무공을 익히고 있어서 그런지 꽤 자신이 있나 보오. 뭐 냉정하게 그걸 우리가 상관할 바는 아닌 것 같고 어쨌든 물건만 구해오시오. 얼마든지 적정 가격에 사줄 테니."

"알겠습니다."

그 순간 암흑 부전주가 암흑전주를 보며 끼어들었다.

"음음, 전주님 저도 말 좀 하겠습니다."

"그래 해봐."

허락을 받은 부전주가 고개를 주성진에게 돌렸다.

"아까부터 묻고 싶은 건데 말이오, 혹 나이를 거꾸로 먹은 건 아니오? 얼굴은 젊은데 말하는 것은 노련한 상인 같소이다. 그리고 또 하나, 언제 무공을 익혔소? 무공을 익힐 시간이 있기나 했소, 우리 암흑상인들은 무공과 장사를 병행하느라 서른이 되어야 겨우 말단 간부직에 오를 수 있는데……."

그의 말은 그들이 무공을 익혔노라 실토한 거나 다름없었다.

사실 주성진은 이미 그들을 본 순간 그들이 무공을 익혔음을 간파했었다.

"하하. 나이를 거꾸로 먹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부분은 제 개인사로 이 자리에서 말씀을 못 드리겠군요."

"음, 알겠소. 한데 말이오, 입장하고 싶다고 했는데 그 생각은 변함이 없는 것이오?"

"물론입니다. 허락하신다면."

암흑 부전주는 주성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조건이 있소. 초대 신교의 교주님께 절을 하겠다고 해야 입장이 가능하오."

주성진은 그가 자신을 떠보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날 시험해 보겠다는 건가? 나야 뭐 마교에 반감도 없거니와 그깟 절 한 번 한다고 내 믿음이 변하지 않지, 하긴 어찌 되었든 간에 무림 역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이니 경의를 표하는 기분으로 절하면 되겠구나.'

"하겠습니다."

"하하, 그대는 우리와 친구가 될 자격이 있는 것 같소. 그런데 말이요, 우리를 좀 거들어주면 좀 더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물론 후사는 하겠소이다."

주성진은 돌연 눈을 반짝거렸다.

"그게 무엇인가요?"

그 순간 암흑전주는 부하인 부전주의 생각을 읽고 빙긋 웃었다.

'과연 받아들일까? 저 친구가 우릴 도와준다면 부하들의 인명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죽고 사는 건 저 친구의 운이겠지만 얼핏 봐도 고수의 냄새가 풍기니 무리한 부탁은 아닐 거야…….'

"우리가 굉장히 귀한 물건을 입수했는데 문제는 그걸 노리는 자들이 있어서 말이요."

순간 주성진의 머릿속에 번쩍 떠오른 게 있었다.

'설마 청월무녀도는 아니겠지?'

"음 어떡하면 되겠습니까?"

"고수 한 사람의 걸음을 잠깐만 늦추어주시오. 그와 싸워서 이기라는 게 아니라 우리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약간의 시간을 벌어달라는 것이오. 반의반 각이면 충분하오이다. 그리만 해준다면 천잠사를 내어드리리다."

"천잠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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