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화 사천으로 향하다
"상단주님 저 사람! 무당의 김남선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김남선이 표국 앞에 서성거리고 있었다.
"감 대행수 말이 맞네요, 우리가 사천으로 가는 걸 알고 배웅하러 온 모양인데요."
주성진은 본인이 상단주로 취임함에 따라 장칠과 감전동 그리고 삼선녀를 모두 대행수로 임명했다.
삼선녀 모두 부친의 허락이 떨어졌고 더 나아가 모용세가의 눈치보다는 개개인의 안전이 중요하다며 모용세가의 무공을 사용함은 물론 얼굴도 내공 소모를 유발하는 역용은 하지 말라는 명이 떨어졌다.
주성진은 말을 탄 채 그에게 소리쳤다.
"아니, 웬일이세요?"
"상단주님 안녕하십니까. 삼촌이 꼴 보기 싫다고 여기 가라고 등 떠밀더라고요. 가면 자리 하나 내줄 거라면서요, 헤헤."
"하하. 삼촌께서요?"
그가 고개를 끄떡인다.
"네, 그렇습니다, 겸사겸사 세상 물정도 넓힐 겸."
주성진은 그가 삼촌의 입김도 있었겠지만, 스스로 합류하고 싶다는 마음을 그의 표정으로 읽어냈다.
"하하, 이거 동업자인 그분의 요청을 무시할 수도 없고, 그러면 임시 호위직으로 고용하면 어떻겠습니까? 호칭은 호법으로 하지요."
"저야 좋지요, 상단주님, 앞으로 깍듯이 모시겠습니다."
주성진이 손을 내저었다.
"뭐, 깍듯할 것까진 없지만, 대신 저희도 위계질서라는 게 있으니 그 점은 잘 지켜주시기를 바랍니다."
주성진의 말은 한마디로 명령에 복종하라는 뜻이었다.
"아이고 그럼요, 상단주님, 저에게 하대해도 좋습니다."
"아이, 대 무당파 제자를 그렇게 할 수는 없지요, 한데 개인 짐은 없습니까?"
"헤헤, 수락하실 줄 알고 말과 짐을 준비해 놨지요. 저쪽 뒤편에 말입니다."
그가 손을 가리킨 곳에 말 한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아니 저 말은 김 의원님의 말인데… 허허.'
그 순간 김남선의 말이 이어졌다.
"좀 전에 여인 다섯이 포국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세 사람은 눈에 띄는 미인들이던데 그보다는 만만치 않은 무공을 가진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정민아 소저와 그녀의 사부인 화산옥봉 선배였거든요."
"아하, 그래요, 그러면 인사는 나눴겠네요?"
"네, 그저 형식적으로만, 자세한 연유는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화산옥봉 선배의 눈초리가 무섭더라고요."
"음,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삼선녀를 모르십니까? 이곳에서 유명한 여인들인데."
주성진은 세 여인이 삼선녀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순간 김남선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그럼 제가 봤던 세 여인이 천화각의 삼선녀란 말입니까?"
"십중팔구 그럴 겁니다, 하하."
김남선이 툴툴거렸다.
"제길, 가보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는데, 음식값이 비싸서 말이죠."
"하하, 같은 정파인데 설마 음식값을 받기라도 할까요? 대무당 제자가 인사차 왔다고 하면 융숭한 대접을 해주었을 것 같은데……."
"그래도 공짜로 얻어먹을 순 없죠, 체면이라는 게 있는데. 한데 혹 그녀들과 동행하는 건가요?"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습니다. 앞으로 제 밑에서 대행수로 일할 겁니다."
순식간에 김남선의 얼굴에서 화색이 돌았다.
"하하, 대행수란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김남선은 신나는 마음이 가시자 그다음에 궁금증이 치밀어 올랐다.
'이거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네, 내막을 알아봐야겠어. 언제 저 친구가 천화각과 가까워졌는지…….'
* ? ? * ? ? *
표국에서 상견례를 마치고 마른 음식들을 준비한 일행은 계획했던 예정과 달리 먼저 말을 몰고 길을 떠났다.
원래는 표국의 표행과 같이 가기로 하였으나 표국의 일정표를 받아본 주성진은 고개를 흔들고 말았다. 너무 지체되었기 때문에…….
하여, 사천의 성도에 먼저 도착해서 볼일을 마무리하고 표국이 도착하면 그때 비단을 싣고 표국과 같이 돌아오기로 계획을 바꿨다.
두두두두…….
묵묵히 일행들은 관도를 따라 쉬지 않고 빠르게 달렸다.
하루 내내 나아가자 일행은 저녁 무렵에 어느덧 악양에 가까운 고을에 도달하게 되었다.
그 고을은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악양과 동정호에 가깝기 때문인지 요식업이나 상업 등이 발달하여 제법 번화해 보였다.
일행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날이 상당히 어두워져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길거리에는 행인들이 별로 없었다.
'하, 적막하네.'
주성진은 곧장 하룻밤을 쉬어갈 객점을 구하려 했다.
하여 간신히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여흥 객잔에 도착했는데, 그의 표정이 별로다,
'이거야, 원…….'
여흥 객잔에는 숙박할 방이 없었다.
그 후로 주성진과 일행들은 이곳저곳을 알아보러 다녔다.
고을 규모와 비교해 유달리 객점 등이 많은 곳이었기 때문에 주성진은 당연히 쉽게 객점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을의 모든 객점이 이미 거의 다 투숙객들로 만원이 되어 있었다.
할 수 없이 노숙을 결정한 주성진은 그래도 맛있는 저녁을 포기할 수 없어 여흥 객잔을 다시 찾아갔다.
점소이에게 몰고 온 말들의 여물을 부탁한 주성진과 일행은 둥근 탁자에 삼삼오오 자리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
늦은 시각이라 그런지 객점 음식점의 실내에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
한쪽의 구석진 자리에 한 명의 노인과 두 명의 젊은 남녀들이 다였다.
한데 그때였다.
순간 느닷없이 밖에서 소음이 들려와서 고개를 돌린 주성진은 수십 명의 사람이 객잔으로 들어오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타난 사람들은 모두가 흑색의 장삼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들 장삼의 가슴팍에는 만월이 수놓아져 있었다.
허리춤에 똑같이 한 자루씩의 낭아도를 패용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필시 모두가 한 문파의 무리인 모양이었다.
그들의 인상은 하나같이 평범하지 않았고 두 눈에선 제각기 칼날처럼 날카로운 눈빛을 일으키고 있었다.
순간 주성진의 귓전으로 다소 경직된 듯한 감전동의 전음이 들려왔다.
―저들은 완월당의 무리입니다. 장가계 쪽에 자리 잡은 문파인데 도대체 여기까지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요.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저들은 옛 마교와 관계가 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들은 주성진의 눈썹이 일그러졌다. 뭔가 일이 생길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었다.
'제길 상행 시작부터 삐끗거리네.'
흑의인들은 주성진의 일행을 보며 일시 주춤하는 듯하다가 이내 관심을 끊고 서서히 노인과 젊은 남녀가 있는 곳으로 포위하듯 다가가기 시작했다.
주성진과 일행들은 낯선 불청객의 등장에 모두 가볍게 안색을 굳히는 듯했고 유사시를 대비하여 전신의 공력을 서서히 일으키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 주변의 공기가 팽팽한 긴장을 일으키고 있었다.
잠시 후, 흑의인들은 곧장 한 명의 노인과 두 명의 남녀의 주위를 둥글게 에워싸 버렸다.
흑의인들이 뽑아 들고 있는 낭아도의 칼날이 불빛에 반사되자 일순 그 살벌한 기운이 실내를 가득 메우는 것 같았다.
'허, 도대체 무슨 일이지?'
주성진은 다소 걱정이 되어 다시 한 번 탁자에 앉아 있는 세 사람의 행색을 살폈다.
'음, 기세를 감추고 있으나 보통 인물들이 아닌 것 같아, 필시 무림인일거야…….'
지금 그 세 사람은 흑의인들의 살벌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태연한 기색을 바꾸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일면 미묘한 상황의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그 와중에도 태연히 술을 마시고 있는 노인은 얼핏 보기에 그다지 특색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었다.
체격도 왜소하고 다소 마른 편이었으며 안색도 누렇게 그을려 보여서 흡사 시골에서 흔히 대할 수 있는 촌로와도 같았다.
얼굴에 주름살이 가득해서 나이를 추측하기 어렵지만, 보아하니 그 눈빛마저도 평범하게 느껴졌다.
주성진은 특히 그 노인을 눈여겨봤다.
'음, 저리 보여도 대단한 무공을 갈무리하고 있을 거야, 틀림없어.'
주성진은 지금의 살벌한 상황에서 그가 조금도 위축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높이 샀다.
그리고 자연스레 성진의 시선이 두 남녀에게 옮겨갔다.
그들은 각기 푸르고 붉은 옷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들 남녀 역시 무위가 절대 낮지 않은 수준일 것 같았다.
실내의 점소이들은 이미 혼비백산하여 주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고 있었다.
꾸르륵.
'이런 밥이나 제대로 먹을 수 있을는지.'
팽팽한 긴장이 감돌려는 무렵, 노인의 옆에 있던 청의 사내가 구레나룻이 덥수룩한 40대 장한을 주시하며 날카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강동휘! 감히 네놈 따위가 여기가 어디라고 나타난 거냐?"
지명당한 강동휘는 청의 사내를 거들떠보지 않고 곧장 노인에게 포권했다.
"이강익 선배님, 불초 강동휘가 문안 인사 여쭙니다."
물끄러미 팔짱을 끼고 강동휘를 쳐다보는 노인을 대신해 이번에는 홍의 여인이 말문을 열었다.
"강동휘 당신은 근래 들어, 갈수록 대담해지는군요?"
그녀의 얼굴에는 사뭇 요염하고 차가운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강동휘는 이번에는 홍의 여인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이봐, 혈나찰! 난 선배님께 정중히 한 가지 부탁을 드리려는 것이지 결코 무례한 짓을 하려는 건 아니야."
혈나찰은 홍의 여인의 별호인 것 같았다.
"호호, 부탁이라고요? 패거리들을 다 끌고 와서는."
"이봐, 넌 좀 빠져."
그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혈나찰의 발이 지면에서 떨어졌다.
'뭐야!'
휘리릭.
느닷없이 혈나찰의 신형이 갑자기 흐릿하게 변하는 듯하더니 홀연 한 줄기의 붉은 그림자가 날아올랐다.
그녀의 움직임은 매우 신속했다.
공중에 붉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고 느껴진 순간 그녀의 신형은 어느새 포위한 흑의인 중 하나의 눈앞에 도달해 있었다.
또한 그보다 약간 앞서서 이미 그녀의 허리춤에서 한줄기의 요사한 기운이 흡사 뱀의 혓바닥처럼 흑의인의 목줄을 휘감아 가고 있었다.
"으아악."
쿵…….
느닷없이 외마디의 비명이 울려 퍼지며 바닥에 선혈들이 질펀하게 튀기 시작했다.
사실 그녀의 허리춤에서 뽑혀 나온 것은 채찍이었다.
공격받은 흑의인은 낭아도를 이미 뽑아 들고 있었지만 조금도 이를 막아내지 못하고 이승을 하직하고 말았다.
바야흐로 장내에는 피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주성진과 그 일행은 상황이 삽시간에 살벌해지는 것을 보고 이맛살을 찌푸렸으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에서 함부로 자리를 떠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지금의 상황을 좀 더 지켜보자는 게 이심전심의 일치된 마음이었다.
동료가 죽고, 나머지 흑의인들이 크게 경악하여 저마다 낭아도를 휘두르며 반격하려고 했을 때는 어느새 혈나찰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 채찍을 거두고 있었다.
아주 빠른 움직임이었다.
이때, 그 순간 그 누구보다도 경악한 건 완월당의 우두머리인 강동휘 본인이었다.
강동휘는 혈나찰의 공격이 있는 순간 곧바로 몸을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발바닥에 아교가 달라붙은 것처럼 전혀 움직이질 못했다.
노인이 쏘아 보낸 무형 진기에 꼼짝달싹 못 한 거였다.
'이럴 수가 1장의 거리를 격하고 무형 진기를 쏘아 보내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