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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35화 (35/250)

035화 형산파 오로검법의 실체

김남선은 서로의 진기가 부딪치고 자신이 밀린다는 걸 감지하자 곧바로 신형을 물린 거였다.

주성진은 뒤로 미끄러지듯 물러나는 김남선을 보며 중얼거렸다.

'빠른 판단력이야. 역시 무당파 출신이라 그런가, 공수의 조화가 안정적이군. 하지만 내가 마지막에 힘을 빼지 않았다면 그리 쉽게 물러나지 못했을걸…….'

주성진은 마지막 순간에 친선 대결임을 자각하며 적당히 힘을 줄인 거였다.

만일 상대가 크게 다친다면 본인이 크게 다친 것보다 후폭풍이 더 클 수 있었다.

어쨌든 상대는 정파에서 소림과 더불어 최고의 성세를 구가하고 있는 무당파 출신이기에…….

잠시 후 김남선이 쌍 부채를 접는 모습을 보이자 성진도 검을 거두었다.

그 순간, 김선우가 손뼉을 치며 두 사람 사이로 걸어 들어왔다,

짝짝짝!

"두 사람 다 훌륭하오. 덕분에 오랜만에 개안했소이다. 두 사람을 보니 나도 무공수련을 다시 해야겠다는 생각이 벅차오르오, 하하."

한데 그때, 그가 코를 벌름거린다.

킁킁킁…….

"이거 매화 향이 가득하군, 돌산에 매화나무가 있을 리 없고, 있다 해도 꽃은 벌써 펴서 이미 졌을 텐데."

그제야 성진도 옅은 매화 향을 느꼈다.

김선우는 미간을 좁히고 있다가 중얼거렸다.

'이거 혹 매화봉밀고 아니야?'

매화봉밀고는 매화꽃과 꿀이 주성분인데 피부에 건강한 생기와 탄력 그리고 주름 개선에 탁월한 화장품이었다.

'으음, 그렇다면 여기에 누군가 있었나?'

그때였다.

샤라락…….

난데없이 노파 연화랑의 손녀인 정민아가 화사한 옷을 입고 나타났다. 세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한다.

"아니 네가 여기에 웬일이냐?"

김선우는 그녀를 보고 아는 척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또 뵙네요."

그 둘은 바로 어제 연화랑이 김선우의 약포 가게를 들렀을 때 인사를 나눈 사이였다.

때마침 김남선은 심부름하러 가고 없었고.

"오라, 범인은 너구나, 하긴 화산파 주위에 매화꽃이 만발하니 매화봉밀고가 없을 리 없지, 내가 그걸 미처 생각 못 했네……."

순간 여전히 머릿속으로 좀 전의 대결을 생각하던 김남선의 눈이 갑자기 커졌다.

'뭐라, 화산파라고! 저 여인이.'

"호호. 할머니가 하도 성화를 부려서 오늘 처음 바른 건데, 용케 알아보시네요."

"녀석, 약포상 주인이 그 정도 냄새도 못 맡아서야 쓰나, 한데 여긴 웬일이냐?"

정민아가 샐쭉 웃는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참 귀여웠다.

"호호. 웬일은요, 제가 선객이에요. 고요히 주변 풍광을 감상하는데 갑자기 청정을 깬 것은 아저씨 일행들이라고요."

"음, 그러면 처음부터 봤겠네."

"네. 기척을 숨기고 봤죠, 한 사람은 할머니가 인정하는 왕 건달이고, 또 한 사람은 그 유명한 태극마선의 제자분이더라고요. 솔직히 재미있게 봤어요. 나보다 내공이 뛰어난 사람들이거니, 생각하니 질투 같은 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그녀는 두 사람의 무위가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내공 차이가 있을 뿐 초식에서는 밀리지 않는다는 뜻을 에둘러 표현한 거였다.

순간 김선우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왕 건달? 그러니까 주 대행수가 왕 건달이라는 거냐?"

"호호, 그건 본인이 더 잘 알겠지요. 그런데 세 분 조합이 참 이상하네요."

"아. 주 대행수는 오늘 가게에 들른 내 손님이고, 태극쌍선의 제자는 내 조카란다. 그냥 서로 간 잘 지내자는 뜻으로 친선 대결 한번 해본 거란다. 하하."

김선우는 슬그머니 태극마선을 태극쌍선으로 고쳐 잡았다.

한편, 갑작스러운 정민아의 등장으로 주성진과 대화 기회를 잡지 못한 김남선이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는 사실상 자신의 패배를 어느 정도 추스른 상태였다.

정민아가 말했던 것처럼 내공에서 주성진에 밀렸을 뿐이지 자신의 초식이 모자란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았다.

더구나 그는 주성진이 명검을 소지하고 있어 초반에 내공 소모가 많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인사합시다, 난 무당 제자 김남선이요."

김남선이 포권하자 그녀도 양손을 모았다.

"반가워요, 화산 제자 정민아라고 해요."

"혹 그대가 화산옥봉 감여군 여협님의 제자요?"

"그런데요, 어떻게 아셨죠?"

"우리 사부님을 거리낌 없이 태극마선이라 부르기에 추측해봤소. 일전에 사부님이 본인을 태극마선이라 칭하는 사람은 정파에서 화산옥봉이 유일하다 하셨소이다."

정민아는 순간 자신의 사부를 떠올렸다.

'이상하다, 사부님이… 왠지 내게 잘못된 사실을 주입했던 것 같아, 남자를 보는 관점도 그렇고 무당의 태극쌍선에게도, 혹 남자에 대해 지독한 편견이 있는 게 아닐까?'

정민아는 김남선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미안해요, 나쁘게 말하려는 의도는 아니었어요. 앞으로 조심할게요."

김남선은 정민아의 사과하는 모습을 대하니 순간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안 되지, 안 돼! 절대 마음을 주면…….'

무당파의 문규상 결혼은 금지되어 있었다. 방법이 있다면 무당 속가제자로 전환하는 것뿐이었다.

그렇다고 한들 화산파의 여인과 맺어지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많았다.

원칙적으로 화산파는 자파끼리만 결혼을 허용하기 때문이었다.

반면 무당파는 아예 여제자를 받지 않기에 그 부분에서는 화산파보다 더 보수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하하, 아니요. 그대나 나나 윗분들끼리 잘 아는 사이이니 우리도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네, 그래요. 한데 혹 총무련 무림대회는 갔었나요? 나도 구경하러 가고 싶었는데 사부님이 다음번에 가라고 만류하셔서……."

김남선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졌다. 갑자기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나는 못 간 건 아니고 안 갔소이다, 참가하려 했는데 기회를 주지 않더라고! 무당의 대표 무공을 수련하지 않았다고 말이요, 젠장!"

무당의 대표 무공이라 하면 뭐니 뭐니 해도 검법이었다.

"음, 그렇군요, 무슨 말인지 이해했어요."

"사부님은 속상한 저를 달래며 중원유람이나 하라고 하셨소이다. 그래서 무당산을 내려온 거요, 무기한으로."

"무기한이라고요?"

김남선의 말에 정민아가 부러운 표정을 지었다.

"무기한이라고요. 그것참 부럽네요."

"그럼 정 소저도 화산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거요?"

그녀는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급히 손을 저었다,

"아, 아니에요, 돌아가야죠."

눈치 뻔한 김남선이 그걸 모를 리 없다.

"정 소저, 화산에 좀 늦게 돌아가도 될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

"사부님을 모셔오시오, 내가 사부님에게 들은 바로는 그대의 사부님도 우리 사부처럼 나돌아 다니길 좋아한다고 들었소."

"그건 젊었을 때고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요."

김남선이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아니요, 우리 사부만 봐도 알 수 있소. 하루에도 열두 번씩 엉덩이가 들썩인다고요. 하지만 장로가 되기 위해 꾹 참고 있소이다. 자리를 비운 사이 누가 채갈까 봐."

정파의 9파 1방에 있어서 장로라는 신분은 개인의 영예요, 본인이 싫으면 일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자리였다.

"음, 이야기해봐야겠어요. 사부가 장로는 아니지만 별다른 직책이 있는 건 아니니까요."

"잘 생각했소. 그런데 주 대행수와도 안면이 있는 모양이오."

좀 떨어져서 조용히 듣고 있던 주성진은 자신의 말이 나오자마자 그들에게 다가갔다.

혹여나 자신의 흉을 본다면 즉시 반박할 생각이었다.

그녀는 다가오는 주성진을 힐끔 바라보더니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 사람, 형산파 출신인데 자칭 상인이 되겠다는 사람이에요, 말인즉슨 형산파를 부흥시키려 그런다는데 그건 명분일 뿐 실제는 본인이 좋아서 그러는 것 같아요."

김선우와 김남선은 깜짝 놀란다. 둘은 동시에 소릴 질렀다.

"형산파!"

"호호. 저도 처음 그 이야길 듣고 깜짝 놀랐지요, 한데 오늘 보니 주 대행수가 선보인 무공은 형산파의 무공이 아닌 것 같아요. 제가 에전에 화산파를 제외한 오악 검파의 무공에 관해 기술한 책을 무고에서 본 적이 있거든요."

김남선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떡였다.

"음, 지금 생각해보니 그런 것 같소이다. 무당파에서도 형산파의 무공 특징과 장단점에 관해서 기술한 책이 있소이다."

주성진은 귀를 쫑긋거렸다. 그 순간 김남선의 말이 계속 이어진다.

"한데 워낙 어릴 때 본 거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형산파 대표검법인 오로 검법은 조금 기억이 나오. 뭐냐면 '오로 검법의 일로일로는 반드시 연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 초식의 끝부분에 이르러 공통으로 오른쪽 무릎이 약점으로 노출된다.' 하하, 뭐 그 정도……."

그러자 정민아가 맞장구쳤다.

"맞아요, 일로일로를 완벽하게 이어 오로를 완성해야 한다고 책에 나와 있더군요. 그 말은 형산파의 오로 검법이 보법과 완전히 일체화된 검법이고 휘두르는 것보다는 찌르는데 특화된 검법이라는 이야기죠. 그러고 보니 그때 책을 볼 땐 별로 눈여겨보지 않았는데 확실히 형산파의 무공이 점혈 필법에서 유래된 것이 맞는 것 같아요."

"그렇소이다. 점혈필법의 단점을 해소하기 위해 길고 뾰족한 장검을 애용한다고 하더이다."

"호호. 무당파에선 타 문파의 연구를 열심히 하는가 보군요. 저희야 과거 오악 검회에서 지지 않기 위해 그랬던 거지만……."

김남선이 손을 흔들었다.

"그건 소저가 잘못 알고 있는 거요. 어느 문파든 상대 무공의 파훼법을 연구하고 있을 거요. 사파나 마교의 무공까지, 지피지기는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왜 나왔겠소, 하하하."

"그런데 귀하의 선법은 왜 무당파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거죠? 특이한 무공이라 상대에게 노출되지도 않을 텐데."

"글쎄 말이요. 내 입으로 내가 속한 문파를 깎아내리기는 그렇지만 확실히 뭔가 잘못된 건 맞소이다."

한편 주성진은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그들의 이야기는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음, 연환식에 찌르는 검법이라… 앞으로 계속 연구를 해봐야겠군.'

확실히 자신이 펼친 회풍무류사십팔검의 전(前) 초식은 오로 검법과는 결이 달랐다.

그때였다, 김남선이 성진에게 다가와 넌지시 말을 건다.

"음, 음, 저들 이야기에 너무 신경 쓰지 마시오. 독문 무공이라는 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아니겠소. 그저 주관적 판단에 따라 나온 말이오. 그러니 주 대행수도 주장하고 우기면 그게 바로 형산파의 독문 무공이 되는 거외다."

"……."

"생각해보시오. 쟤들 문파의 조사들도 처음부터 자신의 무공을 익힌 건 아니잖소. 어디서 배운 걸 발전시켜 독문 무공을 만든 것이지… 따지고 보면 무당파의 조사인 장삼봉 진인은 소림파 출신이었소……. 그러니 그대도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앞으로 내가 펼치는 게 바로 형산파의 무공이라 주장하면 되는 거요."

주성진은 머리가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김선우가 손을 흔든다.

"하하. 뭘 그걸 가지고. 정정당당히 실력과 힘을 과시하면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말 못 하지, 특히나 무림에선 실력이 깡패 아니겠소. 하하. 아 맞다! 그건 그렇고 감정을 의뢰한다고 하지 않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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