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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34화 (34/250)

034화 친선 비무를 하다

김남선은 주성진의 사부가 늘 입버릇처럼 해왔던 말을 읊조렸다.

'허허. 비무라, 한번 붙어봐…….'

"좋습니다. 그전에 볼일을 보고 하지요."

"아닙니다, 그러면 흥이 식어요. 쇠뿔도 단김에 빼라는 말도 있으니 지금 당장 하자고요!"

그 순간 김선우가 끼어들었다. 그도 대련 구경에 동한 모양이었다.

"그러면 돌산에 가자! 미안하지만 주 대행수, 우리 볼일은 이따 보면 어떻겠소?"

"하하, 어르신이 제 직함까지 말한 모양이군요, 그렇게 하시지요."

김남선이 이야기를 듣고는 씩 웃음을 짓는다.

'뭐라, 상인이었어?'

김남선은 그의 삼촌을 힐끔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성진을 바라보았다.

"주 대행수님, 둘둘 말린 게 검인 것 같은데 검을 펼쳐보시지요."

주성진은 검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지만 그가 청하니 괜히 거절하면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같았다.

'그래. 검을 쓰자고.'

"알겠습니다. 제 검이 상당히 날카로우니 조심하십시오."

"제가 허구한 날 무당에서 대련한 게 검수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괜한 걱정입니다. 하하하."

* ? ? * ? ? *

주성진과 김남선,

그들은 비무가 시작되었음에도 서로를 가만히 지켜보면서 그저 서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주성진의 뇌는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음, 훌륭하다, 역시 명문 대파 출신이라 그런 건가…….'

주성진은 진심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남선의 뻗어 나오는 기세가 은은하면서도 상대를 위축시키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이 돌연 거센 풍랑을 일으킬 것 같은 느낌이다.

순간, 조용히 상대를 지켜보던 주성진의 두 눈에도 이채가 발했다.

'대단한 자인데, 내공을 끌어 올려야겠어. 후기지수 중에 나의 내공을 따라올 자가 없을 줄 알았는데, 저 친구도 기연을 얻은 건가? 이것 참 기연이 너무 흔한 것 아냐?'

돌산의 펑퍼짐한 정상에는 분명히 바람이 불지 않고 있었다.

하나, 가만히 서 있는 김남선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듯 하늘거리는 게 아닌가?

자세히 바라보니, 그의 옷자락 또한 약하게 펄럭이고 있다.

'하, 저절로 바람이 분다?'

보통의 무림인들에게서는 잘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주성진은 갈수록 대결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 커가는 자신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저도 모르게 주성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즐거웠다. 온몸이 점점 찌릿해진다.

'이런 느낌… 내 몸은 즐거워하고 있군.'

스윽…….

주성진은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곧 죽어도 명문 대파 출신이라 이거지, 선공을 양보하는 꼴이. 좋아, 그럼 내가 먼저 갈 수밖에.'

타앗!

주성진의 신형이 쏜살같이 김남선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내공이 본격적으로 운용되기 시작하면서, 청명하고도 기분 좋은 진기가 경맥을 타고 흐르기 시작한다. 몸도 덩달아 가벼워진다.

체내를 돌고 있는 진기의 느낌이 충만하다 보니 전신의 감각이 계속해서 열리고 있었다.

그 순간, 김남선의 머리카락이 아까보다 더 세차게 휘날리기 시작했다.

깡……!

주성진이 휘두른 빠른 검을 김남선은 섭선으로 막아냈다.

한 번의 부딪힘이 있자, 김남선은 약간 놀란 눈으로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예상외로 충돌 후의 반발력이 거셌던 탓이다.

샤샤삭.

시선을 주는 것도 잠시, 김남선의 발이 호쾌하게 보법을 밟으며 주성진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촤라라락…….

어느새 펼쳐진 김남선의 부채에는 이미 충만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움직임이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김남선은 태극 선법의 제1 초식을 펼쳐 내었다.

나비가 봄바람에 나부끼듯. 마치 부채로 주위의 공간을 가볍게 애무하듯.

김남선의 부채는 그렇게 휘둘러졌다.

파파파팡!

주성진의 검과 김남선의 부채에 주입된 진기가 부딪히며 가죽 북 터지는 소리가 났다.

순간 주성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음, 기를 저리 쉽게 내뻗는단 말이지, 처음 대치할 때 알아봤지만, 역시 내공이 대단하다는 뜻…….'

이때, 주성진은 자신처럼 상대도 기연을 얻은 걸 확신했다. 그러다 책에서 읽은 선법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역시 시중에 파는 책은 믿을 것이 못 돼.'

책에서 읽은 선법은 주로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다가, 접힌 부채를 이용해 상대를 점혈하는 식이었다.

어떻게 보면 부채는 그저 팔의 연장선상이었다.

슈슈슈슉…….

연달아서 주성진의 검이 펼쳐졌다.

그가 펼친 검법은 회풍무류사십팔검의 전(前)초식을 일부 변형한 검법이었다.

저번 대장장이에게 배운 검법을 연화랑이 알아채자 그 후 자신의 심득을 넣어 개조한 거였다.

일견하기에 가볍고 빨라 보이지만, 쏘아진 검은 중검의 묘리를 담고 있어 꽤 무거운 위력을 담고 있었다.

캉……!

김남선이 날렵하게 막아냈다 싶은 순간, 주성진은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공격을 펼친 후, 계속 밀어붙이려는 심산이었다.

'그래! 이 기회에 천산보를 펼쳐보자.'

아까보다 더욱 어지러워진 보법으로 인해, 주성진 신형은 엿가락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오오오오!'

관전하던 김선우가 절로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멋진 수네, 어쩐지 연 선배가 그를 칭찬하더니만, 역시 명불허전이야.'

그 순간 주성진의 검이 수차례나 허공을 가르기 시작했다.

어떨 때는 길게 베고, 어떨 때는 짧게 베고, 어떨 때는 찌르고…….

퍼버버펑!

김선우는 여전한 모습으로 그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아직도 서 있는 자리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얼핏 보기에도 막기가 쉽지 않아 보이는 그의 공격을, 김선우는 계속해서 어렵지 않게 막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내심 김선우는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음, 그의 검이 예사롭지 않군, 마치 날카로운 검기가 쏘아지는 듯해.'

그 순간 그의 얼굴에 살짝 그늘이 졌다.

'만약에 그가 검기성상의 고수라면!'

명검을 소유한 자가 검기까지 내뿜는다면 이건 보통 일이 아니었다.

김선우는 자신의 진기를 더욱 끌어 올리며 수비에서 공격으로의 전환을 꾀하기 시작했다.

가가캉!

주성진의 검과 김남선의 부채가 부딪치며 격렬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격돌한 두 사람은 전열을 정비하기 위해 서로의 보법을 펼쳐 뒤로 물러났다.

그때였다.

돌연 김남선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휘이익!

주성진의 눈이 위로 올라가고 바로 그 순간 김남선의 부채에서 연달아 무거운 기운이 쏟아져 나왔다.

쉭, 쉭, 쉭…….

그리고 그 기운은 빠르게 주성진을 향해 쏟아지고 있었다.

"음……."

저도 모르게 신음을 내뱉은 주성진이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의 상체와 하체가 기묘한 각도로 틀어지며 김남선의 기운을 절묘하게 피해서 허깨비처럼 김남선의 공격권에서 빠져나갔다.

'주성진, 대단한데!'

김남선은 감탄하며 다시 착지하자마자 재차 낮게 도약하며 주성진을 향해 쇄도했다.

빠르게 쇄도하는 와중에도 이미 그의 전신 기운은 부채에 모이고 있었다.

그 순간 김남선의 허리가 뒤로 확 젖혀진다.

순간적으로 주성진이 뭔가를 느끼고 측면으로 몸을 빼낼 때.

김남선은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빠르게 앞으로 부채를 흔들었고 부챗살에서 쏟아져 나온 기운들이 반원을 그리며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음, 김남선의 공격 강도가 세졌어, 친선 대결이라 하더니 날 반드시 이겨보겠다는 거네.'

주성진은 기운을 배가시키며 천산보를 빠르게 펼쳤다.

순간 그의 신형에 희미한 잔상이 그려지며 상대의 예봉을 피함과 동시에 검을 힘껏 떨쳤다.

우우 응…….

주성진도 예상하지 못한 맑고 웅장한 검명이 울러 펴졌다.

'역시 명검이라는 건가…….'

슈욱!

마치 수평으로 세상을 가르듯, 성진의 검은 힘차고 빨랐다. 검에서 뻗어 나온 푸른 검기가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퍼엉!

두 사람의 진기가 처음으로 부닥쳤다. 바로 그때 주성진은 김남선이 미처 방어하지 못하도록 빠르게 그의 하체를 쓸어갔다.

"읍!"

주성진의 빠른 역공에 김남선은 신음성을 흘렸다.

처음으로 변하지 않던 그의 안색이 벌겋게 변했다.

'역시 저자는 검기성상의 고수였어.'

지금 주성진이 보여주는 위력은 갑작스레 차원이 달라져 있었다. 조금 전의 격돌 때와는 완전히 다른 거였다.

'무조건 막아야 한다, 아니면 개망신이야.'

이를 악문 김남선의 부채가 순간적으로 펼쳐진다 싶더니, 그 부채는 곧 주성진의 검을 막아 갔다.

파앙!

"큭!"

어떻게 해보긴 했는데 방어가 완벽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둔중한 충격에 김남선은 속으로 신음을 삼켰다.

그나마 마지막에 상체를 돌리며 충격을 약간 흘린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김남선은 서둘러 무당파의 상승 보법인 태극무영보를 밟으며 얼른 측면으로 이동했다.

부드러우면서도 빠른 보법, 게다가 그의 보법에는 기척을 죽이는 묘리가 담겨 있었다.

여하튼 물 찬 제비 같은 보법이 아니었으면, 좀 전 성진의 공격에 일패도지 당했을 거였다.

하나 그렇다고 피한다고 피했지만, 끝이 아니었다.

김남선이 숨을 돌릴 새도 없이 주성진은 마치 하나의 검이 되어 매우 빠른 속도로 쭉쭉 다가오고 있었다.

'저건 신검합일 아닌가!'

김남선은 주성진에 대해 완전히 생각을 달리했다. 무공은 모르겠지만 내공은 자신보다 한 수 위라고 인정한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반드시 이겨야겠다는 중압감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최선을 다하자, 진지하고 진중하게!'

11성 내공을 끌어올린 김남선의 눈이 점점 그윽하고 깊어졌다.

차라라락!

'어라! 쌍 부채! 가만 또 하나는 재질이 다른 것 같은데.'

막 찔러 들어가던 주성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새 김남선이 왼손에 먹빛의 부채가 들려 있었다.

순간 칠흑처럼 검은 부채가 펼쳐지자, 김남선의 주위를 돌고 있던 기운이 더욱 세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양팔이 마치 날아오르는 독수리의 힘찬 날갯짓을 연상시키듯

힘차게 펄럭였다.

활짝 펴진 두 개의 부채에서 미증유의 기운이 성진에게 폭사되고 있었다. 그중에서 먼저 다가온 건 김남선의 오른쪽 부채였다.

주성진도 순간 내공을 끌어올려 맞섰다.

카가가강…….

서로 간의 기운이 충돌로 상쇄되고 최종적으로 쌍선과 검이 부딪혔다. 그러자 그 순간 불꽃이 사방으로 튀며 하늘을 수놓는다.

일견 주성진이 우세한 것처럼 보였다. 성진은 계속 앞으로 미는 자세를 유지했고, 김남선은 밀리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김남선의 왼손에 들려진 부채가 기습적으로 주성진의 가슴에 얼추 도달해 있었다.

여태까지의 대결 중에서 주성진이 겪은 최대의 위기 상황 같이 보였지만, 주성진은 이를 예견하고 있었다.

'흥, 내가 모를 줄 알고? 나의 왼손은 주워다 놓은 보릿자루가 아니라는 걸 똑똑히 보여주겠어!'

순간 성진의 좌수에서 강한 바람이 일었다. 그것도 이제껏 선보이지 않은 강력한…….

퍼엉……!

동시에 김남선의 몸이 빠르게, 뒤로 튕겨 나갔다. 하지만 의외로 그의 몸놀림은 가벼웠다.

주성진의 눈이 치켜졌다,

'어라! 막판에 힘을 뺐네, 노련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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