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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33화 (33/250)

033화 새로운 무공을 익히다

한데 잠시 후, 성진의 어이없는 목소리가 방안을 감돌았다.

"에잉!"

장력을 내뻗었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소리가 나지 않을뿐더러, 표적인 의자도 멀쩡했던 거였다.

주성진은 혹시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닌가 하여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하여 장력을 발출해 보았다.

그런데도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 내공이 맞지 않는 걸까? 아니면 혹시 내가 구결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내공을 좀 더 끌어 올려 장력을 발출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온 정신을 집중했다. 한데 비로 그 순간이었다.

빠지직…….

막 그가 장력을 내뻗으려고 하는 찰나에 느닷없이 표적이던 의자의 한 부분이 자근자근 부서져 내렸다.

주성진은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환한 얼굴로 소리쳤다.

"하. 이미 쏘아졌던 거였어, 내공을 너무 적게 끌어올려 느끼지 못한 거야."

사실 이미 주성진의 혈도는 취옥환 덕에 진기가 원활히 순항할 수 있도록 넓고 튼튼히 변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몸에 전혀 무리가 가지 않는다.

하여, 오히려 그러한 점이 이번 장력 발출에 성진이 헷갈리도록 더욱 부채질했다. 진기가 쏘아졌는지 아닌지…….

하나, 그래도 한 가지 의문점은 더 남아 있었다.

'음, 장력이 쏘아져 나갔다면 약간의 바람소리라도 들려야 하는데, 이거 영 이상하군, 혹 무음에 가까운 장력이라서 그런 건가?'

성진은 조바심에 곧장 내공을 세게 끌어올렸다가 그만두었다.

'허허, 집을 날려버리려고! 아서라.'

유혹을 뿌리친 성진은 곧장 달려 나갔다.

그리곤 부서진 의자 다리의 면을 세세히 확인하고, 연이어 다시 멀쩡한 의자 다리를 뽑아 든 다음에 이번에는 가볍게 검지로 지풍을 날려 보냈다.

퍽……!

놀랍게도 의자 다리 가운데에 구멍이 나 있었다. 역시 일체 소음은 없었다.

성진은 자신이 그저 가볍게 날린 지풍에 구멍이 뻥 뚫려버리는 것을 보고 매우 놀라워했다.

'대단하군, 방 안이라 가볍게 펼쳤는데도 이 정도라니, 물론 가까운 거리라고 하지만…….'

순간 기분이 동한 성진은 내친김에 장법과 지법을 번갈아 가며 펼치기 시작했다.

파바박……!

퍽, 퍽……!

대략 반 각이 흐르자 방안에 멀쩡했던 탁자는 산산조각이 나고, 그 전에 이미 의자는 가루로 변해 버렸다.

성진은 팔을 축 늘어트렸다.

처음의 들뜬 마음이 어느덧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다음으로 넘어가자, 방이라서 수박 겉핥기식으로 가볍게 해본 거지만 이 정도만으로 충분해. 가장 큰 수확은 무음으로 장력과 지력을 펼칠 수 있다는 거야.'

하지만 성진은 야외에서 마음껏 무공을 펼친다면 지금처럼 소리가 나지 않을지는 확신하지 못했다.

'분명 소리는 날 것이야. 그래도 여타 무공보다는 소음이 적지 않을까 싶은데…….'

나름 분석을 해본 성진은 이윽고 보법인 천산보에 도전하게 되었다.

'음 보법이라 그런지 변화가 많군. 거기에 음률처럼 강약 조절까지 해야 하니 쉽지 않겠어.'

천산보는 느린 듯하면서도 빠르고 빠른 듯하면서도 느리며, 변화가 적은 듯하면서도 크고, 변화가 많은 듯하면서도 변화가 적은 보법이었다.

일단 성진은 강약을 무시하고 천천히 보법을 펼쳤다.

'됐어. 그러면 속도를 조금씩 높여서 다섯 번만 더!'

다섯 번을 펼친 성진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스스로 만족해했다.

'이만하면, 잘한 것 같은데.'

자신감을 얻은 성진은 보법을 펼치며 점차 보법 속에 강약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강약약, 중간약약…….'

한데 갑자기 속도에 변화를 주자 그만 헷갈리기 시작하고, 그로 인해 집중이 깨지면서 진기의 운용에 큰 혼란이 닥쳐왔다.

"아이고!"

성진은 몇 번이나 심하게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다가 끝내는 방바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쿵…….

순간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온다.

"허허허……. 그러면 그렇지 내가 너무 얕보았어."

그때였다, 허허롭게 웃던 성진의 얼굴이 돌연 진지해졌다.

갑자기 귀원보록상의 보법인 귀원보의 마지막 구절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너무 뜬구름 잡는 것 같아서 여태 완전히 깨우치지 못한 구절이었다.

그때부터 인상을 폈다, 찡그리기를 수십 번 반복하던 성진이 급기야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뭔가 실마리를 잡은 모습이었다.

'하하 그렇군, 난 천산보를 펼치면서 외형상 변화에만 집착한 거였어.'

한 번의 깨달음으로 귀원보의 마지막 구절까지 쏙쏙 이해되었다.

'변화를 마음속에 담그니 어찌 어지러움이 일겠는가? 그런 마음이라면 전개해도 전개하지 않은 것이고 전개하지 않아도 이미 전개한 것이다……. 마음속에 모든 초식이 들어 있는데 외형상의 변화에 집착한 게 웃기지 아니한가?'

성진은 머릿속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

'결국, 문제는 마음이구나, 내 입으로 어르신이 주신 무공이 깨달음의 무학이라고 평가해 놓고는 정작 나는 내가 익힌 귀원보록이 깨달음의 무학이라는 걸 인지하지 못했어.'

성진의 이번 깨달음은 부지불식간에 귀원보록상의 무공을 한 계단 올려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성진은 계속해서 천산보의 보법에 자신의 깨달음을 접목해나갔다.

역시 그래도 한 번에 잘되지는 않는다. 나뒹굴고, 자빠지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리고 어느 한순간, 그의 얼굴에 무한한 기쁨이 넘쳐났다.

'하하. 된다, 돼! 고비를 넘겼으니 야외에서 제대로 펼치는 것도 문제없을 거야.'

성진은 반 탈진상태에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헉헉, 오늘은 그만하자. 검법과 신법은 어차피 좁은 방에서 펼치기도 어렵고."

그리곤 다시 이틀이 흘렀다.

주성진은 환한 얼굴로 장사의 약포 골목에 들어섰다.

'후후, 일이 원만히 마무리되어 다행이야, 이제 이 검은 내 것이 되었구나.'

성진은 약포 골목에 들어서기 전 변장을 하고 검의 원주인을 만나 원만히 합의를 본 거였다.

검의 원주인은 검보다는 자신이 고리대금업자의 닦달에 더는 시달리지 않게 된 것에 몹시 고무되어 있었다.

'후후, 적당한 검집을 장만하면 앞으로 늘 차고 다닐 수 있겠구나. 그건 그렇고 아직 수적이 죽었다는 소문이 나지 않았으니 개방에 의뢰해 소문을 내도록 해야겠어, 분타주도 개방 명의로 소문을 낸다면 좋아할 거야.'

실실 혼자 웃는 성진의 얼굴을 사람들이 쳐다보며 지나간다. 그러거니 말거나 주성진은 약포 골목 안쪽으로 계속 걸어갔다.

'여기군, 천하 약포라, 이름 하나 거창하구나.'

천하 약포는 노파가 알려준 그 약포였다. 하지만 이름에 걸맞게 규모가 큰 가게는 아니었다.

그저 약포 골목에 즐비한 점포 중 하나로 보일 뿐이었다.

주성진이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젊은 친구가 더운지 부채를 부치며 성진을 맞이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주인장을 뵈러 왔습니다만……."

그는 잠이 부족한지 크게 하품을 하고는 성진의 이모조모를 뜯어본다.

성진은 버릇없는 그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때 그가 입을 열었다.

"무공을 익혔죠? 나보다 어려 보이는데 대단하네요, 하하."

주성진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무공을 익힌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그야. 좀 전에 그대가 인상을 쓸 때 몸에서 잔잔한 바람 같은 기세가 잠시 뻗어 나왔습니다."

주성진은 앞으로 주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감정이 격해지면 나도 모르게 기운이 뻗어 나오는 모양이야, 한데 이자! 정체가 뭐지?'

그때였다. 멋들어진 수염을 휘날리며 중년인이 나타났다.

그는 성진을 보며 가볍게 고개를 끄떡인다.

"약재를 구하러 오셨소이까?"

"그건 아니고요, 사실 전 연화랑 어르신의 추천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거래할 일이 많을 것 같아 인사도 드릴 겸 제가 가진 게 있는데 감정 좀 부탁해 보려고요. 물론 감정 비용은 내겠습니다."

"음, 감정을 의뢰한다? 그거 내 실력을 보겠다는 것이구려, 허허."

주성진은 급히 손을 내저었다.

"아아,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하하. 농담이오. 연 선배가 내 이야기를 한 것을 보니 연 선배와 친한 모양이오. 안 그래도 어제 선배가 다녀가고 난 뒤 내가 좀 바쁘다오. 아 맞다, 댁이 혹 주성진이라는 분이오?"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렇습니다. 한때 의원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허허. 그렇소. 나더러는 댁과 잘 지내보라고 하더이다. 크게 사업을 펼칠 인물이라며."

"아, 그러셨군요. 어르신께선 약재 사업에 관심이 있으면 천하 약포를 찾아가 보라고 말씀하셨지요."

그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하하하. 내가 좀 사업 욕심이 많소. 반갑소, 난 김선우라 하오."

"저도 반갑습니다. 김 의원님."

"에이, 의원은 무슨, 김 선배라 부르시오. 아, 그리고 여기 멀대처럼 서 있는 친구는 김남선인데 내 직원 겸 호위이자, 조카요. 얼마 전 무당산에서 하산했는데 갈 데가 없는지 여길 찾아오지 않았겠소. 그래서 고용했소이다."

그 순간 김남선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하하. 삼촌, 갈 데가 없다뇨? 다 이게 바쁜 삼촌을 생각해서 이리 온 거라고요."

"녀석아. 내가 모를 줄 아느냐, 중원을 유람하려니 돈이 필요하고 그래서 온 거 다 아니까 열심히 일해!"

"제가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십니까?"

김선우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조카를 바라보았다.

"에그, 무당에서 넌 있으나 마나 한 존재 아니냐. 그래서 하산한 거 다 알아. 어쩌다 사부를 잘못 만나 부채춤을 배웠을꼬, 쯧쯧. 어휴, 내가 널 자주 만나러 갔어야 했는데……."

김선우는 자신이 바빠 자주 무당산에 못 들른 걸 후회했다.

일찍이 그의 조카가 선법을 배우는 걸 알았더라면 못하게 막지는 못해도 검법을 병행해서 배우도록 방법을 찾았을 거였다.

그러자 김남선이 펄쩍 뛴다.

"삼촌, 저! 있으나 마나 한 존재 아니라고요, 사부께서 친구도 사귀고 경험도 쌓으라고 내보내 주신 거예요. 그리고 부채춤이라뇨! 태극 선법은 유서 깊은 무공이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김선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쯧쯧 녀석아, 태극 선법인지 나발인지는 잘 모르겠고, 여기 있는 동안 일이나 잘해. 덤벙대니 호위나 잘할까 모르겠다."

김선우는 그의 삼촌이 전에도 늘 했던 말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어쨌든 일찍 부모를 여의고 무당에 큰 기부를 하고 자신을 맡긴 건 그의 삼촌이었다. 그래서 삼촌의 실망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헤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요, 삼촌, 앞으로는 태극 선법을 절대 무시하지 마시라고요."

"그럼 내게 보여봐, 나도 소싯적에 무공을 좀 익혔다고."

김선우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에이, 삼촌은 제 상대가 아니죠, 꼭 보고 싶다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요."

"무슨? 혼자 부채춤이라도 추려고?"

"아뇨, 상대가 바로 제 눈앞에 있는데요. 헤헤."

주성진은 흥미롭게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뜻밖에 김남선이 자신을 지명하자 눈을 치켜떴다.

"저, 말입니까?"

"우리 친선 대련 한번 해보시죠, 나에게도 그대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자고로 무공 고수가 되려면 실전 같은 대련을 많이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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