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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29화 (29/250)

029화 노파의 과거

이낙출이 예리하게 파고든다.

"그 이야긴 어디서 들은 겁니까?"

"하하, 내가 이리 보여도 발이 좀 넓소, 사실 날 문병으로 오는 사람이 제법 있소이다."

"부동산 중개업자입니까? 소문내지 말라고 당부했는데……."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은 아니오, 뭐 따지고 보면 그들과 관련 있는 사람들이지, 하하."

성진은 소문이 퍼질 것을 예상했지만, 그래도 이리 빨리 퍼질 줄은 몰랐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더니, 소문이 급속도로 퍼지겠구나. 이거 천화각에서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를 바라보던 성진은 문득 그가 왜 팔 한쪽과 다리 한쪽 부러졌는지 궁금해졌다. 아까부터 안 보는 척하면 유심히 살펴봤지만 이렇다 할 자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누구와 싸웠다기보다는 사고일 확률이 높았다.

"저, 한데 왜 다친 거죠?"

이낙출은 그때의 악몽이 떠올랐다.

'제길, 얼마 전 돌산 폭포 위에서 술을 마시다 발을 헛디뎠지…….'

"휴, 뭐 그런 일이 있었소, 절대 싸운 건 아니오."

"그렇군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요."

"내가 할 소리요,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개방 분타주 이낙출과 헤어진 성진은 거처로 오자마자 장칠을 불렀다. 그러자 장칠과 같이 있던 감전동이 쭈뼛거리며 다가왔다.

성진은 그를 보고 고개를 끄떡였다. 이야길 들어도 괜찮다는 표시였다.

"부르셨습니까?"

"혹 고리대금업자인 경금철이라는 인물을 아느냐?"

"네, 저희 구역은 아니지만, 독종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한데 무슨 일이신지?"

성진은 손을 흔들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야, 길을 가다 누군가 이야기하기에."

"아, 그렇군요."

그들이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노파가 아침에 만난 손녀를 데리고 성진을 보러 왔다.

"아, 연 어르신 아니십니까? 지금 시간에 웬일로?"

연화랑은 주변을 둘러보다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긴히 할 말이 있어서 말이야. 어디 조용한 데 없을까?"

"2층으로 가시지요."

"잘되었군, 전에 못다 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네."

성진은 기대 어린 눈빛을 보냈다. 궁금했던 노파의 정체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럼 가실까요?"

"그러지, 아 참 내 정신 좀 봐. 내 손녀와 구면이지?"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정식으로 인사하게, 알고 봤더니 둘이 동갑이더라고, 호호."

연화랑은 손녀에게 눈짓을 준다.

"화산파 정민아예요."

주성진은 움찔했다.

한때 같은 오악 검파로 자웅을 겨루었던 문파가 화산파였다. 그런 곳의 제자를 뜻하지 않게 만났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있었는데 그녀의 도포 자락에 매화 문양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형산파 주성진입니다, 화산파의 신진고수를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봐 주 대행수, 너무 예의 차릴 것 없어."

"아, 그래도……."

그 순간 그녀가 입을 열었다,

"왜 할머니가 그대에게 주 대행수라고 하는 거죠?"

주성진은 피식 웃었다.

"그야, 제가 사업을 하니까요. 돈이 있어야 문파를 부흥시키지 않겠습니까? 하하."

정민아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서렸다. 어릴 적부터 화산에서 자라온 그녀로서는 쉽사리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노파는 그 점을 눈치채고 얼른 끼어들었다.

"민아야, 그건 내가 나중에 이야기하마."

"네. 할머니."

2층에 자리를 잡자 주성진은 그들에게 차를 대접했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차를 음미하던 노파는 만족한 표정으로 성진을 바라보았다.

"호호, 이거 귀한 철관음이군, 오랜만에 마시는 차야."

"아, 그렇습니까. 실은 선물 받은 거랍니다. 요즘 들어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서요."

"그렇겠지, 건달들을 내쫓은 장본인인데 당연히 들러 인사해야지. 안 그런가?"

성진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럼요. 그게 장사의 기본이죠, 제가 그들 입장이라도 다른 일을 제쳐두고 달려왔을 겁니다. 제가 그들의 장사에 영향을 미치는 큰 변수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정민아는 아니꼽다는 듯 툭 말을 내뱉었다,

"흥, 왕 건달이 따로 없군요."

"뭐라고요?"

"지금 건달들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해서 거들먹거리는 거 아닙니까?"

주성진은 인상을 쓰며 손을 흔들었다.

"소저. 난 이 지역에서 건달들처럼 영향력을 행사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내 말은 그들이 장사에 지장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려면 직접 날 만나보고 살펴보는 게 최고라는 말을 드린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왜 선물을 받은 거죠, 거절해도 되지 않을까요?"

"뇌물도 아닌데 왜 내가 거절합니까? 오히려 내가 거절하면 그들이 당황할 겁니다. 선물이 부족해서 그러는지 하고요."

그 순간 연화랑이 웃으며 나섰다,

"민아야, 장사라는 게 그런 거란다. 그리고 궁금한 게 있으면 나중에 내게 물어보렴."

그녀의 말은 대화에 끼어들지 말고 잠자코 있으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네……."

연화랑은 말없이 차를 석 잔이나 거푸 마셨다. 그리곤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음, 나는 사실 무림맹 비각 출신이야, 비각은 정보를 담당하는 곳이고 난 그곳에서 분석업무를 맡았네, 정확히는 무공을 분석하는 업무를 맡았지."

"……."

"비각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비각은 음지에서 일하는 부서야. 해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무림맹 내에서도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어, 결혼하더라도 같이 일하는 동료와 맺어질 수밖에 없었어, 난 비각에서 남편을 만났고 딸아이 하나를 낳았지."

"……."

"한데 결혼생활은 길지 않았어, 남편이 병으로 일찍 죽었거든. 딸아이는 열 살 무렵에 화산에 입문했고 그 후 연락을 주고받긴 했으나 10년 동안 만나질 못했어. 내가 딸아일 만난 건 그녀가 시집을 간다고 해서야."

그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휴, 문제는 딸아이가 문사를 사랑하게 된 거지, 결국 딸아이는 화산파의 법도에 따라 자진해서 파문당했고 다시는 무공을 익히지 못하는 몸이 되었지. 그렇게 잘 사는가 했는데 그만 비극이 찾아왔어, 사위의 가문이 역적으로 몰리게 된 거야."

"엎친 데 덮친 격이었군요."

"결국, 부랴부랴 소식을 듣고 화급히 달려갔지만 내 딸과 사위는 구하질 못했네, 천운으로 어린 쌍둥이만 구할 수 있었지. 난 근무지 무단이탈과 병사들을 상해한 죄로 비각의 문책을 받았고, 스스로 단전을 폐하고 비각을 나왔어. 그 후 사위의 가문이 역적의 가문에서 복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지."

"……."

"난 고민하다 손자 녀석을 아이가 없어 고민하던 가난한 유생의 집안에 입양시켰다네. 비록 몰락한 사위의 가문을 복원시키진 못하겠지만 손자 녀석이 정계에서 이름을 떨치길 바랐던 거였어, 그리고 손자와 달리 무에 재능을 보인 저 아이는 어미가 있었던 화산으로 보냈고……."

그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들은 주성진은 가슴이 짠했다.

담담하게 이야기를 마친 노파는 성진의 표정을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정민아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어, 다 지나간 이야기니까. 앞으로 행복하면 되지 않겠어."

"아, 네, 물론 그렇지요."

"그래서 말인데 난 깨져버린 단전을 복원할 생각이야, 어차피 12년 전 무림맹이 해체되었기에 아무 문제가 되질 않아."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반드시 그리하시길 바랍니다."

"한데 말이야 그러려면 자네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 같구먼. 자네가 약초 하나를 키워주게, 그게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지만 자넨 해낼 수 있을 걸세."

성진은 어안이 벙벙해 눈을 껌뻑였다.

'약초를 키우라고, 왜 내가 키워야 하는 걸까?'

"호호, 이 비법은 마교의 비전 비법이야, 신천단이라고 하지. 상처나 염증 그리고 몸의 독소를 치유하는 데는 이보다 뛰어난 명약이 없지, 우연히 마교의 비급을 입수해 분석하다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되었어."

"한데 왜 저입니까?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건가요?"

"그건 내 눈에 자네가 내공을 조금 손해 보더라도 기어이 신천단의 비법을 손에 넣으려는 사람으로 보여서 말이지, 호호."

성진은 콧잔등을 찡그렸다.

"내공을 손해 본다고요?"

"너무 걱정하지 말게, 절반 정도는 곧바로 회복하는 방법이 있으니까."

"……."

"신천단의 비법에 따르면 약초는 내공의 순수한 기운을 불어넣어서 키우는 거야."

성진은 그런 비법이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역시 무림엔 신기한 게 많아. 한데 마교에선 저걸 어찌 알게 되었을까?'

"어때 신기하지? 원래 장백산에는 영험한 약초가 많아 자라는 곳이야. 땅이 신령해서 그렇다는 말이 예부터 떠돌곤 했었는데 문제는 수령이 긴 약초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는 것이야. 그래서 마교의 의원 하나가 속성비법을 연구하게 되었고 그 결과물이 신천단에 녹아들어 간 거야."

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며 물었다.

"저, 그 약초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요?"

"장백 장뇌산삼이라고 하지. 장백산에서만 자생하는 건데, 속성으로 키우려면 최소 수령이 20년 이상에다 뿌리가 죽지 않은 놈이어야 하네. 아, 신천단에 장백 장뇌산삼만 들어가는 건 아니야, 다른 약초도 적정한 비율로 들어가야 하지."

'장백 장뇌산삼이라고, 내가 취급해 본 물목인데 속성으로 키우는 법이 있을 줄 몰랐군.'

성진의 기억으론 수령이 20년이라면 흔한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구하기 어려운 건 아니었다.

"저 순수한 기운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아, 그건 독공만은 안 된다는 뜻이야."

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아하, 그렇군요. 한데 혹시 얼마의 내공 손실을 본다고 되어 있던가요? 너무 손실을 보면 안 되는데……."

아까부터 그런 우려가 성진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노파는 주성진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10년 내공을 희생하면 수령 200년의 장뇌산삼이 탄생한다네. 대신 그걸로 신천단 100개를 만들 수 있으니 생각 여하에 따라선 그리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야."

"좀 전에 손해 본 내공을 빨리 회복할 방법이 있다고 하셨죠?"

"신천단의 비법 속에 방법이 들어 있네. 그걸 마교에선 신공단이라고 불렀나 보더라고."

성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그러면 결국 계산하면 5년의 내공 손실을 보는 것이군, 좀 아깝긴 한데…….'

순간, 성진은 손을 불끈 쥐었다.

'그래, 불철주야 운기조식에 힘쓴다면 손해 본 내공을 빨리 되찾을 수 있을 거야.'

"알겠습니다. 신천단을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호호. 고마워."

성진은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서로 좋은 일인데요, 하하."

"그러면 신천단을 만들어서 내게 20개만 주게나, 5개는 내가 단전 치유용으로 쓸 것이고, 5개는 비상용으로 그리고 나머지 10개는 신공단을 만드는 데 쓰려 한다네."

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 좀 이상한데, 신공단 2개를 먹으면 10년 치 내공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니야?'

계산상은 그러했다. 신천단 20개를 투입하면 5년 치의 내공을 올려주는 신공단 2개를 만들 수 있었다.

순간 노파의 말이 이어졌다.

"단, 효과는 딱 한 번뿐이네, 이후에 신공단을 또 먹는다고 내공 증진의 효험이 나질 않아."

성진은 김이 팍 새는 것을 느꼈다.

'음, 단 한 번이라는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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