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4화 감전동을 고용하다
시간이 흐르고 성진은 그를 통해 여러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전에 강설현이 말한 나쁜 놈이 많다는 게 실감이 났다.
'그렇군, 무림맹, 사도련, 마교가 없어지고 나니 잔챙이들이 날뛰는 형국이군, 무릇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법이지. 아마 모르긴 해도 산적, 수적 말고도 각 문파 간의 알력도 예전보다 더 치열해졌을 거야.'
성진은 그를 붙잡고 싶었다.
"그래. 어디 갈 곳은 있소? 나로 인해 계획이 무너졌으니."
"허허, 날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부평초처럼 떠도는 거지, 또 뭐가 있겠소?"
성진은 아직 그의 심중을 잘 모른다. 확실한 건 그가 돈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내 밑으로 오시요, 내가 고용하겠소이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뭐라고 하셨소?"
"내가 사업을 준비 중이니 사람이 좀 필요하오. 보수는 적절하게 쳐주겠소이다."
"무슨 사업을 준비 중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일단은 무역과 유통업을 염두에 두고 있소이다. 여기서 기반을 좀 닦고 난 뒤에 움직일 것이오."
"음, 그대는 그러면 무공을 익힌 상인이오?"
성진은 손을 내저었다.
"하하, 아니요. 상인이 되고 싶은 무인이라 봐주시오. 내 사문은 형산파요."
"뭐, 형산파?"
"하하. 다들 그대처럼 놀라더이다. 형산파도 언젠간 도약해야 하지 않겠소? 나는 그 일을 위해 돈을 벌려는 것이오."
감전동은 형산파에 얽힌 비화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음, 그렇다면 과거의 일도 파헤쳐 볼 것이요?"
"당연하오, 무슨 단서가 나온다면 바로 그리할 것이요."
"좋소, 보수와 직책은 그대가 정하시오, 따를 테니."
성진은 화가 복이 된 것 같아 내심 기뻤다.
"앞으로 날 주 대행수라 부르시오, 난 그대를 감 행수라고 부를 테니."
"감 행수?"
"그렇소, 앞으로 무공뿐만 아니라 상인의 길도 공부 좀 해야 할 것이오."
"……."
다음 날 성진은 감전동을 장칠에게 소개했다.
장칠은 그가 흑룡문의 사주을 받고 성진과 대결한 인물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깜짝 놀랐다.
성진은 장칠의 놀라는 모습을 보며 씩 웃는다.
"자자. 그만 놀라고 시킨 일은 어떻게 되었지?"
"아, 네. 여러 중개업자를 만났습니다. 생각보다 매물이 꽤 있더라고요."
성진은 장칠에게 포구 일대에서 건물을 구하라고 지시한 거였다.
"그럼, 아예 오늘 계약을 성사시키자고!"
"저. 대행수님, 그 많은 건물을 사서 어찌하시려고요?"
"뭐하긴, 내 건물은 하나면 충분하니 나머진 세를 주다가 적당한 때에 팔면 되지, 하하……."
장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객잔은 안 하실 겁니까?"
"왜, 내가 했으면 하는 건가?"
"그게 아니라 사업에 대해 좀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셔야 제가 준비를 할 텐데……."
성진은 대략의 사업 방향에 대해 그에게 이야기해주기 시작했다.
"……. 이상이야. 계획은 때에 따라 바뀔 수 있으니 그 점은 감안하라고."
"네,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장 행수는 이곳 관리들을 좀 알고 있나?"
그러자 그가 돌연 이마빡을 쳤다.
"아이코. 대행수님, 그걸 깜빡 잊고 말씀드리지 않았네요. 전에 저희가 관리들에게 정기적으로 뇌물을 주었거든요. 다른 파들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주성진도 그 점은 예상하였지만 여태 까먹고 있었다.
"그렇군, 부패한 관리 놈들이 수입이 줄었으니 난리를 치겠군, 일일이 가게를 돌며 건달처럼 돈을 뜯어내는 것은 못 할 테고."
"저. 실은 제가 그 일을 담당했었는데요. 때가 되면 기원에서 접대도 하고요."
"잘되었군, 앞으로 계속 그 일을 담당해. 대신 관리들에게 공돈을 줄 순 없으니 중요한 일을 맡기겠어."
장칠의 눈이 반짝인다.
"다름이 아니라 포구 옆의 갈대밭 있지, 거기를 좀 사고 싶거든."
"거긴, 상습 침수지역인데요. 아, 그러고 보니 예전에 포구였다는 소릴 언뜻 들은 것 같기도 한데."
"맞아, 포구였지, 장 행수가 관리들을 만나서 갈대밭을 살 방법이 있는지 알아봐. 내가 알기론 농토를 개간하는 건 초대 황제로부터 내려온 국시(國是)라서 그들이 외면하진 못할 것 같기는 해."
장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사하겠다는 사람이 농사 운운하니 이상한 거였다.
"정말로 농사를 지으시려고요?"
"당연히 농사를 지어야지, 하지만 그건 명분이고 그게 다는 아니지, 후후."
"설마, 포구를……?"
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정확히는 개인 전용 포구이지, 하하. 하지만 그 전에 제방을 쌓는 일이 관건이야."
"만일 제방 쌓기가 불가능하면요?"
"뭐, 그땐 돈을 날리는 셈이지. 그렇다고 지금 이것저것 재 볼 수는 없잖아."
장칠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러실 거라면 나라에서 뭔가를 받아내야죠."
"돈은 주지 않을 테니 세금을 낮춰달라고 할까? 하하. 장 행수,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은 매입하는 데 집중하자고, 이 일이 고위층까지 관여할 일이면 그땐 내가 나서지."
"어떻게요?"
"어떡하긴! 내가 나설 수는 없으니 그들을 꼼짝 못 하게 하는 대리인을 내세워야지. 하하하."
가만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고 있던 감전동은 그저 놀랄 뿐이었다.
'허허, 참. 통이 큰 인물일세. 잘하면 나도 빚을 청산하고 선대의 땅을 되찾을 수도 있겠는데.'
감전동은 성진이 어디까지 성장하는지 꼭 보고 싶었다.
'그래, 아무리 생각해도 장사는 내 체질이 아니니 무공수련이나 열심히 하자. 내가 살아야 그 끝을 볼 수 있으니까. 아 참 나의 진전을 이을 제자도 구해야지.'
열흘이 흘렀다.
그간 바쁘게 계획한 일을 마무리한 주성진은 장칠을 대동하고 철물점 황씨의 가게를 방문했다.
이번에 주거 겸 사무실로 매입한 건물의 바로 옆에 철물점 황씨의 건물이 있었기에 인사도 할 겸 볼일도 볼 겸 겸사겸사 그를 방문한 거였다.
황씨의 외형은 평범했다. 백발에 다소 몸집이 있는 몸매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주성진이 눈여겨 본 건 그의 심유한 눈빛이었다.
보통 그런 인물은 깊은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눈빛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주성진이라고 합니다."
"오, 소문의 그 인물일세, 반갑소이다, 여기로 앉으시오."
"이웃사촌인데 인사도 드릴 겸 잘 지내보자고 방문했습니다."
성진은 황씨의 웃는 얼굴을 응시했다.
"아. 참 난 황일동이라 하오, 언제든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하시오. 내 싸게 드릴 테니……."
성진은 철물점 내부를 둘러보다 자신들을 쳐다보는 눈들이 있음을 알았다.
"직원이 많으시군요."
"하하, 내가 직접 작업을 할 일이 많아서 가게를 맡길 직원 몇을 두고 있소이다. 그리고 내 작업을 보조하는 녀석들도 있는데 두 놈 다 내 아들이오."
자식 이야기를 한 그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피어오르자 성진은 맞장구를 쳐 주었다.
"축하드립니다, 대를 이어 번성하시겠습니다. 하하."
그가 손을 흔들었다,
"아직은 그저 햇병아리요. 가르칠게, 산더미라오."
"저, 제가 듣기로는 기관술을 배우셨다고 하던데요?"
황일동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성진을 바라보았다.
"네가 이래 봬도 호남성에서는 최고라고 자부하오이다. 뭐 필요한 게 있소이까?"
"사실 제가 필요로 한 건 기관술은 아닙니다만 연관이 없는 건 아니지요. 튼튼한 제방을 만들려고 하거든요."
"아. 그 이야긴 들었소, 갈대밭을 나라로부터 매입했다고."
성진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순간 조용히 있던 장칠을 바라보자 장칠은 급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어떻게 알았지, 유일하게 내 일을 아는 분은 어르신뿐인데?'
황일동은 주성진의 당황한 모습을 보며 말문을 열었다.
"실은 연화랑 선배에게 이야길 들었소. 가판대에서 국수를 먹다가 그 이야길 들었소."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아, 그러시군요, 두 분은 허물없이 지내나 봅니다."
"그분과 나는 그렇소, 저번에 4개 파의 모임을 알려준 것이 나외다."
주성진은 기억을 떠올렸다.
'그럼 그때 황씨라는 사람이 바로 이분이었구나.'
"아이코 그러셨군요. 감사드립니다."
황일동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요. 그리고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입이 무거운 사람이오. 선배를 빼면."
"그렇군요, 어떻게 튼튼한 제방을 만들 방책은 있을까요?"
"방법이야 많소이다. 하하. 내가 소싯적에 성과 제방 보수를 여러 번 한 적이 있소이다."
성진은 그의 말을 듣고 미소 지었다.
'내가 잘 찾아왔군.'
"이번 거래가 첫 거래는 아닐 테니 잘 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공사 기간을 앞당길 복안이 있습니다."
"그게 무슨?"
"힘을 좀 건설적인 데 써보려고요. 저와 제 동료가 무거운 것을 들 생각입니다."
황일동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니까 뭐요. 무공을 노동에 쓰겠다는 말이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있습니다. 요즘 수적들이 날뛴다고 하니 이에 대한 대비도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하. 갈대밭을 요새로 만들 생각이오?"
성진은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그런 건 아니고 일부만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음, 무거운 것을 드는 건 요즘 기중기라는 게 개발되어서 큰 문제는 아니오. 다만 돌을 깎고 다듬는 게 문제인데 그대와 그대의 동료가 그 일을 해준다면 제방공사와 요새화를 한꺼번에 해낼 수 있을 것 같소이다."
"저, 혹시 돌로 제방을 쌓자는 말은 아니지요?"
"왜 아니겠소, 그래야 튼튼하지, 다만 외벽만 그렇게 하고 나머진 흙을 쌓아 올릴 것이오. 하지만 단순히 흙을 채워 넣지는 않을 거요. 나만의 비법이 있으니까."
"혹시 그 비법이라는 게?"
황일동이 팔짱을 켰다.
"계약한다면 말해주겠소, 무척 효율적인 방법이요, 흙이 비에 쓸려 내려가는 것도 방지하고……."
성진은 더 다그쳐도 대답하지 않을 것 같아 묻는 건 포기했다.
"그건 알겠습니다. 한데 말입니다. 돌로 제방을 쌓는다는 건 너무 큰 공사인데요. 암석을 구하는 것도 문제고 그 공사가 수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인데요."
"일단 돌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소, 가까운데 작은 돌산이 있소. 그걸 내게 매입하시오. 내가 팔 테니까, 하하."
"네?"
"겉으로 보면 평범한 구릉 같소, 한데 그 안이 모두 딴딴한 바위요. 집과 같이 매입했던 것인데……."
성진은 그래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무리 가까운 곳에 있다 하더라도.
"아무래도 그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가 후배라 불러도 되겠소? 그대는 날 선배라 부르고."
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러십시오, 말도 놓으시고요."
"후배, 혹 돌로 정교하게 깎아 성을 쌓는 걸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건 아니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다니까, 투박하게 절단한 돌을 비스듬히 쌓을 것이니까."
"그래도 옮기려면 힘들지 않겠습니까?"
황일동은 손을 내저었다,
"어허, 그게 뭐가 어렵다고, 소가 끌 텐데. 혹 일하기 귀찮아서 그러는 것 아니고?"
"그건 아닙니다."
"내가 무공은 잘 모르지만, 고수들이 돌을 쪼개는 걸 몇 번 본적이 있지. 내가 그래서 그때 조심스럽게 다가가 고수 한 분에게 물었지, 왜 그렇게 하냐고?"
"……."
"그가 웃으며 대답하더라고, 검기를 연습하는 거라고. 그러니 후배도 무공 연습하는 셈 치고 그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 안 그런가?"
성진은 밤마다 욱신거리는 어깨를 부여잡고 킁킁 앓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했다.
"음,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