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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23화 (23/250)

023화 감전동과 대결하다

감전동은 입술을 깨물었다.

'음, 저 어린 녀석의 내공이 대단하구나.'

순간 감전동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은밀하고 유령 같은 몸놀림은 휘영찬 달빛 아래서 그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음…….'

침을 꼴딱 삼킨 성진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을 펴고 오른발을 조금 내민 상태에서 검을 쥔 팔은 자연스럽게 중단세(中段勢)를 취하고 있었다.

중단세는 모든 검법의 기초와 같은 자세였다.

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안다. 중단세의 자세에는 움직이지 않음으로써 모든 움직임을 제압하는 장중함이 숨겨져 있음을…….

성진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진의 부리부리한 눈은 흐느적거리듯 부유하는 감전동의 몸놀림을 철저하게 주시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감전동은 답답함을 느꼈다. 성진의 검은 3장 거리의 허공을 격하여 그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위치를 바꿔도 인후를 겨누고 있는 검봉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그는 기세 싸움에서 이미 성진의 기세에 눌린 것이다.

성진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와라. 어서 공격하라고!'

움직이는 쪽과 움직이지 않은 쪽은 같은 힘을 쓰더라도 피로도의 차이가 현격하다.

감전동은 이대로 가다가는 손 한 번 내밀어보지 못하고 허물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감전동은 기세를 극도로 끌어올렸다.

"야합……!"

소리의 여운이 길게 이어진다. 그 순간 감전동이 성진을 향해 쇄도했다.

직선으로 쏘아져 가는가 했더니 1장 앞에서 튕겨나듯이 오른쪽으로 미끄러졌다.

성진의 눈은 빠르게 감전동을 쫓아갔다.

마치 허공에서 푹 꺼지듯 사라져서 느닷없이 옆쪽에 나타나는 감전동의 그림자를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았다.

만약 눈으로만 그를 따라잡으려 했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눈빛과 어우러진 그의 기운이 눈의 착시를 잡아주고 있었다.

감전동은 어느새 방향을 다시 바꿔 성진에게 쏘아져 오고 있었다. 자신이 전개할 수 있는 최상의 신법으로 성진의 정중동에 맞서려 했다.

그때였다, 감전동의 눈빛에서 붉은빛이 일렁인다.

'흐흐. 앞으로 두 번만 더 움직이면 내가 이긴다. 반드시 놈의 허리에 구멍을 내줄 것이다.'

한데 그 순간,

쉐애액!

느닷없이 성진의 왼발이 비스듬히 앞으로 나아가며 빠르게 좌에서 우로 검을 그어갔다.

성진의 한 수는 적절할 때 상대의 의표를 찌른 거였다.

"헛!"

감전동은 급히 허리를 뒤로 꺾었다. 싸늘한 기운이 그의 목과 간발의 차를 두고 지나갔다.

감전동은 몸을 퉁기며 급히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아지랑이 같은 붉은 빛이 넘실거리더니 곧바로 장력이 쏘아져 나왔다,

펑, 펑…….

순식간에 검기와 장력이 부닥쳤다.

성진은 처음으로 실전에 귀원검법의 제3초 귀원창파를 펼치고 있었다,

귀원창파는 검의 기운이 부챗살 같이 뻗어나가기에 살상반경이 넓을 뿐 아니라, 연환식인 관계로 쉼 없이 상대를 몰아치는 장점이 있었다.

신법과 보법이 표홀한 상대에겐 아주 적절한 대응이라 할 수 있었다.

다만 내외공의 조화가 높은 경지에 다다라야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었다.

찌이익!

'이런 제길…….'

감전동은 자세가 불안정했던 탓에 오른쪽 어깨에 가볍게 일검을 허용하고 말았다.

감전동은 이를 악물고 우수를 펼쳤다.

쉭…….

그의 칼날 같은 장력이 성진의 왼쪽 측면을 노리고 펼쳐졌다.

하나 주성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펑.

오히려 검에서 흘러나온 기운들이 감전동의 장력을 잘게 부수어 버린다.

그 순간 감전동의 신형이 엿가락처럼 늘어나더니 오른쪽으로 이동하였다.

주성진의 눈에 수많은 감전동이 겹쳐 보였다.

'이형환위 같은데, 뭐 대단한 절기지만 그래도.'

성진은 귀원창파를 계속 펼쳐나갔다.

펑, 펑, 펑…….

눈 깜짝할 사이에 감전동과 주성진은 방어와 공격을 번갈아 펼치며 거세게 부닥쳤다.

공격과 방어 사이에는 바늘 끝이 찔러 들어갈 틈새도 없어 보였다.

방어는 자연스럽게 공격으로 전환되었고, 공격은 자연스럽게 방어로 전환되었다.

쿵, 쿵…….

순간 감전동은 뒤로 물러났다. 전열을 정비하려는 거였다.

'제길, 어린 녀석에게 밀리다니.'

주성진은 뒤로 물러서는 감전동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자신감의 발로였다.

감전동은 주성진을 강하게 노려보았다.

'이번에 승부를 건다!'

"얍!"

우렁찬 기합을 터트린 감전동은 쌍장을 비스듬히 들어 가슴 앞으로 세운 채 성진에게 재차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음, 비장한 얼굴인데…….'

주성진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어느새 두 사람의 거리가 2장에 못 미칠 정도로 가까워졌다.

순간, 감전동의 전신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다. 마치 활시위를 떠나려는 화살처럼…….

휘익…….

감전동이 위로 힘차게 도약하였다. 그리고 허공에서 정점에 달한 순간 그의 쌍장이 교차로 아래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쉐애액!

성진은 위에서 비스듬히 강한 압력이 내리꽂히는 것 같았다. 얼굴이 따끔거린다.

검법으로 치자면 자신의 귀원천붕과 비슷한 수법이었다.

'그럼 나도,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지.'

내공을 끌어 올린 성진은 검을 쭉 뻗어 밀려오는 압력을 갈라치기 시작했다.

찌이익, 찌이익…….

순간 듣기 거북한 소리가 성진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마치 비단 천이 날카롭게 찢어지는 소리 같았다.

"으음."

주성진은 굉장한 압력을 느꼈고 그의 두 팔이 부러질 듯 휘청거렸다.

어느새 손가락 사이의 살갗이 찢어지며 붉은 핏물이 튀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주성진은 상대의 엄청난 압력을 계속 갈라 쳐 나갔다.

그리고 한순간, 그의 눈빛은 환희로 넘쳐났다.

'됐다!'

막혔던 공간이 활짝 열리며 상대의 엄청난 압력이 힘을 잃는 순간이었다.

한껏 좁혀진 거리 사이로 감전동의 절망하는 모습이 망막에 자리 잡았다.

펑!

"욱!"

감전동은 술에 취한 듯 몸을 휘청거렸다. 목구멍에선 비릿한 핏물이 솟구쳐 나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자신이 죽지 않았단 거였다.

마지막 순간에 성진이 검을 거두고 왼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친 거였다.

"왜 살려준 거요?"

"뭐. 치사하게 나쁜 짓 할 사람으론 보이지 않아서, 뭐 그 정도로 합시다."

감전동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순간 자신이 살아온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문의 전통에 따라 제자를 들이기 위해 길을 나섰던 그가 우연히 도박장에 들르기 전까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딱 한 번의 실수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빚을 하룻밤 사이에 지고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문제는 사문의 땅을 담보로 고리로 급전을 빌린 것이었다.

결국 사문의 땅을 몽땅 날려버린 그는 뒤늦게 후회했지만 소용없었다.

광오문의 문주로서 선조들을 대할 면목이 없었다.

결국 사문의 땅을 되찾기 위해 지금껏 돈을 벌러 강호의 낭인으로 전전한 거였다.

여전히 땅을 되찾지는 못했지만, 낭인 세계에서 그의 명성은 나날이 높게 치솟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흑룡문 근처의 음식점에 우연히 들렀다가 흑룡문 문주와 조우하고 성진을 죽여 달라는 제안을 받은 거였다.

그때만 해도 성진을 나쁜 놈으로 생각했기에 거리낌은 전혀 없었다.

"어쨌든 감사하오."

"돌아가거든 흑룡문 문주에게 전하시오. 한 번 더 도발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음, 난 사실 흑룡문 출신이 아니오. 그의 제안을 받고 이리 오게 됐지만 어쩌면 잘 된 일인 것 같소, 내가 졌으니."

성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지?'

흑룡문에서 직접 문도를 보내지 않고 제3자에게 의뢰를 한 것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가 의문투성이다.

'음 장칠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흑룡문에서 상납금을 받고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들로서는 손해가 막심할 텐데……. 저자를 굳게 믿었던 것인가, 하긴 무위가 보통은 아니었지만.'

성진은 여러모로 생각해봤다.

'그럼, 천화각의 눈치를 보느라 감전동을 대신 보낸 것인가? 혹 피치 못할 내부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감전동을 바라보았다.

"한데 잘된 일이라니, 그게 무슨 뜻이오?"

"내가 앞뒤 따지지 않고 덥석 제안을 받아들인 것부터 문제가 있었소. 난 자객이 아닌데 결과적으로 자객 노릇을 한 셈이오. 지금껏 돈을 받고 여러 일을 해왔지만, 이번 일만큼 졸속으로 처리하진 않았소이다."

성진은 슬며시 미소 지었다.

"하하, 내가 악인일 수도 있지 않겠소?"

감전동은 담담한 눈빛으로 성진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나이에 비해 노숙해 보이지만 무림 강호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것 같소. 아마 무림에 발을 들여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았나 싶소이다."

"음, 그건 사실이오만 무슨 뜻으로 한 말이오?"

"강호 밥을 먹었다면 바로 알 수 있는 것이오, 설령 정파의 인물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죽이러 온 자를 웬만하면 그냥 돌려보내지 않소이다. 죽이지 않는다면 병신을 만들어 버리지……. 무림의 세계란 그만큼 비정하다오, 사실이 그러한데 그대가 악인이라면 오죽할까?"

성진은 그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내 마음가짐이 여전히 무림인이 되기에는 모자란 모양이구나, 좀 독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알겠소, 그러면 흑룡문엔 돌아가지 않을 작정이오?"

"흑룡문에 돌아갈 일이 뭐 있겠소? 승리보수도 받지 못하는데."

"하나만 물어봅시다. 날 죽이러 흑룡문에서 직접 오지 않고 그대를 보낸 연유가 무엇이오?"

감전동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건 말이요, 날 시험한 것이오. 내가 이번 일을 완수하면 더 큰 일을 주겠다고 약속했소이다. 요즘 장강의 수적들이 날뛰고 있어서 그쪽으로 손을 보태달라는 거였소."

"수적들이?"

감전동이 고개를 끄떡였다.

"그렇소, 요즘 수적 놈들이 강에서만 놀 것이지 야금야금 뭍으로 올라와 세력을 확장하고 있소이다. 그런 일로 흑룡문도 머리 아파하고 있소이다."

"음, 그런 일이……."

"뭐 예전에도 그놈들이 간혹 그리했었지만, 과거에는 무림맹이나, 사도련, 마교가 나서서 그들을 적절히 제어해 왔소이다. 하지만 구심점이 없어졌으니 그들을 상대하려면 일일이 문파들이 직접 나서야 하오, 물론 이해가 같은 문파들끼리 연합할 수도 있겠지만 그 일 자체도 예전에 비하면 번거로운 일 아니겠소?"

성진은 산적들의 동향도 궁금했다. 수적들이 날뛴다면 산적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산적들은 어떻소?"

"그놈들도 마찬가지요."

성진은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총무련이 있지 않소?"

"총무련은 힘이 없소, 중소 문파들은 모르겠지만 거대 문파들은 총무련에 예속되길 원하지 않소이다."

사업을 구상하고 있는 성진에게도 산적들이나 수적의 준동은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럼 요즘 예전보다 표국이 많이 성행하고 있겠소이다. 수적이나 산적들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으니 말이오."

"그렇다마다요. 덩달아 표물 운송비도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들었소이다. 이를 기회로 무림 문파에선 직접 표국 사업에 뛰어들거나 검토하는 곳도 늘어나고 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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