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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22화 (22/250)

022화 천화각 총관과의 거래

성진은 눈을 살짝 찡그렸다가 곧바로 폈다.

"하하, 그러면 들어오시지요."

성진은 열쇠로 잠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열쇠와 자물통은 어제 장칠을 통해 구한 거였다.

총관은 내부를 돌아보며 성진에게 말을 걸었다.

"건달 놈들이 이 좋은 곳을 무단으로 차지하고 있었군. 건물주가 누군진 모르지만, 몹시 억울했겠어, 안 그런가?"

성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다행이다. 그는 내가 주인이라는 걸 모르는 눈치야.'

"헤헤, 총관님, 다름이 아니라 건물주는 접니다. 해서 어제 일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소중한 저의 집을 건달들이 차지하게 내버려 둘 수는 없지요, 안 그렇습니까, 총관님!"

성진의 말에 총관의 눈이 동그래졌다.

'뭐라, 저 녀석이 주인이라고? 여기가 맘에 들어 집주인을 만나 매입하려 했는데.'

"이 건물이 정말 자네 집이라고?"

"네, 실은 칠성파 건달들이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해서 제가 싸게 매입했습니다."

성진은 사실관계를 적절하게 각색했다.

"아, 그렇게 된 것이군, 난 자네가 주인일 줄 꿈에도 몰랐네. 한데 말이야 이곳 말고도 다른 4개 파도 모조리 박살 냈다고 하던데 그리한 연유가 뭐지? 설마 이곳에서 왕초가 되려는 건 아니겠지?"

성진은 손을 내저으며 잠시 뜸을 들였다.

"음… 그건, 누군가가 제가 귀띔을 해주었습니다. 4개 파가 기원에서 칠성파의 일로 대책 모임을 한다고요, 그래서 궁금해서 가봤는데 이것들이 절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간 김에 싹 정리했습니다."

"음, 그렇게 된 것이군, 한데 그들 뒤에 흑룡문이 있다는 걸 알고 있나?"

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놈들에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비를 단단히 하려고요."

"그렇단 말이지, 원하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아, 아닙니다, 제가 벌인 일이니, 제 힘으로 해결하겠습니다. 한데 정확히 절 찾아오신 거나 건달들의 뒷배를 아시는 걸 보니 어딘가에 정보원이 있나 봅니다."

총관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뭐… 알아서 판단하게, 하하. 그건 그렇고 자네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게 있어. 만일 흑룡문 놈들이 떼로 물려온다면 자네가 나서기 전에 우리가 먼저 나설 것이야, 도발에는 응전으로 갚아주는 게 진리니까."

"아, 그렇군요."

"뭐 그렇지만 그들도 확전을 원치 않을 것이야, 내 생각에 그들 문도 몇몇이 신분을 숨기고 잠입할 것 같아."

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잘 알겠습니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진은 다 아는 내용이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알고 있다고 말하면, 어떻게 알았냐고 물을 테고 그러면 구구절절 설명해야 하는데 그런 게 귀찮았다.

순간 총관은 성진의 표정을 살피며 목청을 가다듬었다.

"음, 그간 이곳 건달 놈들이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는데 자네 덕에 물이 맑아졌어. 하하."

"아,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괜한 소란을 일으킨 건 아닌지 걱정했었는데……."

성진이 소란 운운한 건 그저 예의상 한 말이었다.

"아니야. 그건. 한데 말이야 여기서 무얼 할 건가? 보아하니 객잔을 열 것 같은데."

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러려고 합니다."

총관의 몸이 불끈 달아올랐다.

"이봐, 그러지 말고 웃돈을 얹어 줄 테니 여길 팔게나, 여기를 천화각 분점으로 꾸미고 싶어."

전혀 예기치 못한 이야기를 듣자, 성진의 머릿속이 바빠졌다.

'이런, 이를 어찌해야 하나?'

공교롭다면 너무 공교로웠다.

'이것 참, 강설주와 맺은 계약서가 먹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말이야.'

성진은 총관의 말을 거절했을 때의 후폭풍을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득본단 실이 큰 것 같았다.

돈이야 노력해서 다시 벌면 되지만 한번 틀어진 관계는 되돌리기 쉽지 않다.

'음, 지금 시점에서 내게 더 중요한 건 인맥이야, 뭐 그래도 바로 꼬리를 내릴 순 없지.'

성진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총관을 응시하며 말문을 열었다.

"저. 이곳 말고 다른 곳도 많을 텐데요."

"아니야. 여기가 제일 좋아. 이미 다른 곳도 둘러보고 왔거든, 오는 길에 겸사겸사 주변을 둘러봤는데 여기만큼 좋은 데가 없었어."

성진은 총관의 재빠른 행보에 어이가 없었다.

'뭐야 내가 차린 밥상에 숟가락을 얹겠다는 거네. 재주는 내가 부렸는데 잇속은 자신들이 챙기겠다고, 흥!'

"포구는 여태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갑자기 지금에 와서……?"

총관은 내심 움찔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신경을 왜 안 써, 다만 건달 놈들 때문에 미적거린 거지."

"아무리 건달 놈들이 설친다고 해도 천화각에서 장사를 하겠다고 하면 아무 소리 못 할 것 같은데요, 보호세나 자릿세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할 것이고."

"그거야 그렇겠지. 하지만 건달 놈들이 설치는 곳에, 장사를 한다는 게 내키지 않았어."

성진은 그의 변명이 몹시 궁색해 보였다.

'쯧쯧 속내를 들켰으면 나 같으면 차라리 솔직히 말하고 이해를 구할 것 같은데, 총관이 시야가 좁네. 그나저나 천화각도 좀 답답하군, 정파라는 이유로 여태 건달들을 내버려 두다니, 그들이 끼친 패악이 크다면 개입한다고 누가 뭐라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야. 오히려 민심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을까?'

성진은 향후 자신에게 그런 일이 닥친다면 절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그 자신도 정파인 형산파에 적을 두고 있지만…….

"알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얼마를 주실 겁니까?"

"이곳 시세의 3배를 주겠네."

성진은 냉정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합니다만 시세는 과거 가격의 반영이죠. 건달들이 없어졌으니 곧 시세가 많이 오를 겁니다. 게다가 총관님이 여기 말고 좋은 데가 없다면서요, 그러니 더더욱 곤란합니다."

총관은 얼굴이 울긋불긋해지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내가 뱉은 말 때문에 꼬리를 잡혔군. 저 녀석! 무인인 줄 알았더니 장사꾼이 따로 없었네, 이럴 줄 알았으면 같이 온 참모를 돌려보내지 말걸.'

천화각에 합류하면서 뒤늦게 장사를 배우긴 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의 곁에는 언제나 그를 보좌하는 참모가 둘씩이나 있었다.

"음, 음, 그래서 내가 3배를 주겠다는 거 아닌가?"

"이럴 때는 부르는 게 값입니다. 총관님."

"정말 이러긴가?"

성진은 피식 웃었다.

"좋습니다. 얼마를 주실 건가요?"

총관은 참모가 건의한 마지막 상한선인 7만 냥을 떠올렸다.

"이봐, 그럼 은자 6만 냥에 하지, 더는 곤란해."

서류상으로 성진이 산 건 은자 1만 냥이었다.

'음, 시세대로 한다면 대략 이곳은 은자 3만 냥은 되었을 거야. 하지만 건달들이 사라졌으니 단기간에 최소 2배는 더 오르겠지.'

그렇게 따지면 성진이 크게 이익 볼 건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팔아도 최소 그 가격에는 팔 수 있었다.

하지만 성진은 그와의 관계를 추가로 고려해야 했다. 그와 껄끄러운 관계로 계속 지낼 수는 없으니까.

"6만 냥에 은자 3천 냥만 더 보태시지요. 제가 장담하건대 앞으로 1년 후면 이곳의 가치가 은자 10만 냥은 훌쩍 넘어갈 겁니다."

"후후, 그리된다면 내가 건하게 술을 사지. 자 그러면 계약할까?"

성진의 눈이 동그래졌다.

"지금요?"

"그렇다니깐, 내가 전표를 끊어줄 테니 제반 서류를 모두 넘기게."

"아, 네, 다만 집은 3일 후에 넘기도록 할게요."

총관은 웃으며 고개를 끄떡였다.

"뭐. 계약에 서명하고 손도장을 찍는다면야 3일이 아니라 일주일도 기다려 줄 순 있지, 하하."

"그러면 일주일 후에 비어드리지요."

"그래, 아. 그리고 흑룡문 놈들에게 절대 죽지는 말게, 누가 많이 슬퍼할 테니까, 하하하."

총관은 이번 거래에 매우 흡족해했다. 그의 눈에 삼선녀의 놀라는 모습이 떠오른다.

'저 녀석 덕에 내가 큰소리칠 일만 남았군.'

* ? ? * ? ? *

보름달이 서쪽 하늘에 걸려 있는 밤,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한 포구에 낚싯대를 드리운 자가 있었다.

누가 봤다면 고기를 낚는 것인지, 세월을 낚는 것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여유로워 보였다.

하나 강태공은 오감을 극대화하며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음, 오늘은 허탕인가…….'

두 시진이 넘도록 포구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지만 나타난 자가 없었다.

그때였다.

저벅저벅…….

강태공의 얼굴에 긴장감이 흐른다. 강태공은 바로 흑룡문에서 보낸 일단의 무리를 기다리고 있는 성진이었다.

그간 장칠을 통해 밤마다 낚시한다는 소문을 내고 자신이 기거하는 건물 앞에는 친절하게 방까지 붙여 놓았다.

자신에게 볼일 있으면 포구의 낚시터로 오라고…….

발걸음 소리는 점점 커지고 의문의 객은 성진의 2장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성진의 뒷모습으로 보고 말을 걸었다.

"하하, 고기를 낚는 것이요? 사람을 낚는 것이오?"

'음, 저자가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걸 눈치챘군. 목소리가 까랑까랑한 것이 나이는 40줄에 들어서지 않은 것 같고, 대략 30대 중반…….'

"뭐, 그대가 날 죽이러 온 거라면 난 고기 대신 그대를 낚을 것이오."

그의 낯빛이 삽시간에 변했다.

'이런 건방진…….'

"하면, 그리 자신만만한 자가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치사하게 건달들을 건드린 건가?"

그의 말투가 갑자기 짧아졌다.

"노는 물이 다르다 해서 나의 재산과 목숨을 빼앗으려 하는데 그럼 가만히 있겠소?"

"세 치 혀가 제법 매끄럽구나, 너의 혀만큼 실력도 매끄러운지 봐야겠다."

"좋소, 나도 바라는 바요, 그전에 누구인지나 좀 압시다. 묫자리에 무명이라고 쓰면 좀 그렇지 않소이까?"

바람도 불지도 않는데 그의 피풍의가 들썩였다. 그는 성진의 도발에 분노하고 있었다.

"난 감전동이다. 어서 검을 뽑아라."

"잠깐, 흑룡문에서 혼자 온 것이오?"

"고작 널 상대하는데 많은 인원이 필요할까?"

성진이 낚싯대를 놓고 뒤돌아섰다.

'음, 검을 차고 있지 않군, 그렇다면 권법이나 장력을 쓰겠구나.'

감전동도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성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 속엔 놀라움이 스쳐 지나간다. 성진과 말을 주고받으며 어느 정도 감을 잡고는 있었지만, 정면에서 바라보니 상상 이상이다.

'제길, 내 하수가 아니야.'

성진의 심정도 마찬가지였다.

'음, 만만치 않은 자다. 흑룡문에 저런 자가 있었나?'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다 대결을 위해 자리 잡았다.

성진은 공격보단 방어를 택했다.

선공이 유리한 걸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다만 그에겐 계획이 있었다.

성진은 노파의 조언을 되새기며 한껏 기를 발산시켰다. 지금의 성진에게 가장 자신 있는 것을 뽑으라 하면 역시 내공일 것이다.

감전동은 자신에게 몰려드는 기파를 느끼며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성진과 마주 선 지 채 반 각도 지나지 않아 그가 내뿜는 기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꼭꼭 찌르는 바늘 같은 예기가 그를 한곳에 계속 머물 수 없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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