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환생상인-21화 (21/250)

021화 노파의 도움을 받다

노파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이건 상식적인 이야기야. 자네가 무림 생리를 잘 몰라서 그런 거지, 허허."

성진은 노파에게 자신의 출신을 이야기할까 말까, 잠시 고민했다.

'뭐 말해도 문제없겠지.'

"어르신! 실은 제가 형산파의 제자입니다, 뭐 어쩌다 돈을 벌기 위해 하산했지만요."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자네가 형산파의 제자라고? 음 그럼 형산파의 무공을 익힌 것인가?"

성진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뭐, 기초 무공은 익혔습니다만……."

노파는 대강의 사정을 알 것 같았다. 그녀도 형산파에 얽힌 비화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군, 자네의 어깨가 꽤 무겁겠어."

"뭐, 그렇지요. 그건 그렇고 어르신! 전에 대단한 고수였나 봅니다."

성진의 느닷없는 질문에 노파의 눈꺼풀이 사정없이 떨렸다.

"……."

"아. 제가 실없는 질문을 한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노파가 한숨을 내쉬더니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나중에 결심이 서면 이야기하지. 지금은 좀 그렇군."

"알겠습니다. 한데 무공은 어디서 펼칠까요? 여기는 곤란할 것 같고."

"내가 아는 곳이 있네, 대신 장사하려고 만들어 놓은 음식은 자네가 다 사줘야겠어."

"아이.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성진은 노파가 만든 음식을 사서 본인도 먹고 나머진 모두 거지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노파는 길을 재촉했다.

그녀가 성진을 데려간 곳은 포구에서 그다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갈대가 무성한 곳이었다.

"저기가 좋겠군, 저긴 땅이 무르지 않은 것 같으니 무공을 펼치기 안성맞춤일 거야."

갈대밭 대부분은 뻘밭이었다. 하지만 성진의 눈엔 단순한 갈대숲으로 보이지 않는다.

'여긴 지형이 말굽처럼 되어 있어서 배를 대기 딱 좋은 위치인데.'

"알겠습니다, 어르신. 한데 여기는 왜 개발이 되지 않은 것일까요?"

"허허, 자네가 뭘 좀 볼 줄 아는군, 실은 이곳이 옛날 포구가 있던 자리일세. 오십 년 전 큰 홍수 때 제방이 무너져서 지금은 갈대숲으로 변해버렸지."

성진은 귀를 쫑긋거리며 그녀의 이야길 들었다.

"나라에서는 여길 복구하는 대신에 차라리 새로운 포구를 만드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네, 그게 지금의 포구일세."

"아하, 그렇군요. 그럼, 여기는 나라에서 소유하고 있겠네요?"

"그렇지, 자네 혹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만두게. 나라에서 이 땅을 개인에게 팔지도 모르겠고, 설사 판다고 해도 우기 때 장강에서 밀려드는 물은 장난이 아니야. 튼튼하게 제방을 쌓아도 장담하지 못한다고."

노파의 말에도 성진의 반짝이는 눈빛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뭐 한번 확인이나 해보자고, 여길 개인에게 파는지…….'

잠시 후 성진은 노파가 보는 앞에서 무공을 펼칠 준비를 마쳤다.

'검법을 펼치자.'

성진은 자세부터 제대로 갖추려 노력했다.

무공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사람이라면 자세만 보더라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순간,

스르릉!

성진의 검이 검집에서 부드럽게 뽑혀 나오고 연이어 성진의 발이 들썩인다.

"야합."

힘찬 기합을 내지른 성진은 검을 빠르게 펼쳐나갔다.

성진은 다양한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각양의 초식을 선보이려 했다.

일대일과 일대다의 대결, 근거리와 중거리에서의 대결 등등…….

성진의 검이 미풍처럼 살랑거리더니 갑자기 빠르게 직진하기도 하고, 장중하더니 돌연 여러 변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휘리릭…….

주변의 갈대들이 검풍에 휩쓸려 이리 꺾이며 저리 꺾이면서 몸살을 앓았다.

노파는 팔짱을 끼고 놀라운 표정으로 성진을 바라본다. 순간 그녀의 몸이 저절로 성진의 움직임에 반응한다.

'이런, 내공이 있으면 한번 겨뤄볼 텐데… 내 몸이 움직인 건 저 친구를 인정했다는 뜻일 거야.'

그때였다, 성진의 눈빛이 열기로 일렁거렸다.

'초식은 되었으니 이번엔 검기를 펼쳐보자!'

곧이어 성진의 검에서 짙은 푸른빛이 넘실거렸다.

노파의 동공이 커지다 못해 찢어지려 했다.

'저건 검기! 그것도 상당한 경지를 넘어선 검기야.'

그녀가 말한 상당한 경지를 넘어섰다는 말은 성진이 조만간 또는 마음만 먹는다면 검강을 펼칠 수 있다는 의미였다.

넓은 의미에서 검강도 검기의 일부분이지만 검기가 뭉쳐서 눈에 띄게 유형화가 된 걸 검강이라 불렀다.

검기를 응축시켰기에 그 파괴력이란 검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얍!"

스가각…….

힘차게 뻗어나간 성진의 검이 대기를 갈랐다.

검에서 줄기줄기 검기가 뻗어나가자 한 무더기의 갈대가 밑동부터 잘리면서 하늘로 치솟다 땅에 떨어졌다.

척…….

언제 그랬냐는 듯 성진의 검은 고이 검집에 들어가 있었다.

짝짝짝…….

노파가 손뼉을 치며 다가왔다.

"훌륭했어, 자네! 이게 다는 아니겠지? 내공도 무공도……."

성진은 말을 아꼈다. 사실 그녀의 말이 옳았다.

성진은 전력으로 내공을 뽑지 않았으며, 귀원비록 상의 무궁은 아예 선보이지도 않았다.

"헤헤, 뭐……."

"내 눈이 아직 썩지 않았다면 자넨 절정 고수야, 자네가 검강을 보여주진 않았지만,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네."

성진은 얼떨떨했다.'

'내가 절정 고수라고!'

이야기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며 뭉클했다.

"하하, 절 너무 높게 평가하시는 건 아닌가요?"

"이 사람! 날 뭐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해. 어디서 기연을 얻은 건가? 설마 부인하진 않겠지?"

"저 어르신, 그냥 넘어가면 안 될까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말씀드리겠습니다."

노파가 웃음을 터트린다.

"허허허……. 알겠네. 한데 말이야 자네 검법 중 어디선가에서 본 초식이 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군."

성진의 어깨가 들썩였다.

'어디선가에서 봤다고?'

"아, 기억났네, 회풍무류사십팔검의 전(前) 초식인 것 같군."

'회풍무류사십팔검?'

당연히 성진은 모른다.

"회풍무류사십팔검은 백리세가의 검법이지, 원래는 무림 세가였다가 무림을 떠나 군문에 투신한 가문인데 황궁에서 세력을 잃고 쫓겨났지. 아마 어디서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을 거야."

순간 성진은 대장장이가 백리세가 출신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런 다음엔 조심해서 펼쳐야겠는데, 아저씨에게 피해가 갈 수 있으니.'

"저, 제게 사정이 있습니다."

"누군가 그쪽 출신이 자네에게 가르쳤나 본데, 알겠네, 너무 걱정하지 말게나. 나니까 알아본 것이지 다른 이들이라면 어림없지, 세상에 비슷한 무공이 얼마나 많은데."

노파의 자신감이 넘쳐났다.

"네, 그렇긴 하죠, 아무튼 대단하십니다."

노파는 빙그레 웃었다.

"자, 내가 본 바를 말한다면 흑룡문이 단체로 덤벼도 문제없겠어. 다만 그렇다고 너무 방심하면 안 돼. 그들이 정면 대결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무슨 뜻인지 알겠지?"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저, 책에서 보면 고수들은 마음의 눈이 하나 더 있다고 하던데 그게 어떤 건지 알고 계시나요?"

노파는 잠시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

'무공은 또래에 비하면 월등히 높은 수준인데 기초적인 걸 잘 모르네, 음 그의 사부가 가르쳐주지 않은 것인지, 몰라서 가르쳐 주지 않은 건지…….'

돌연 노파의 잠잠하던 마음속에서 불길이 일어났다.

'저 녀석과 거래를 해야겠어, 잘하면 파괴된 단전을 복구할 수 있을 것 같아.'

노파는 본인의 마음이 정리되는 대로 성진과 본격적인 대화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성진을 바라보았다.

"마음의 눈이라는 건 항상 기감을 열어놓으라는 것이야,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내공을 풀어서 기운을 밖으로 펼치게, 알겠나?"

"기운을 상시 개방하란 말입니까?"

"그래, 다만 상황에 따라 기운을 개방하는 정도가 다르겠지.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선 기운을 강하게 개방해야겠지만,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선 은근하게 개방하는 게 좋겠지. 그게 내공 소모를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고."

성진은 그녀의 말에 깊게 빠져들었다.

"은근하게요? 그게 어느 정도인지요?"

"2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촛불을 촘촘히 동그랗게 배치하게나, 그런 다음 내공을 개방시켜 촛불이 살짝 일렁이게 만들어보라고, 만일 하나라도 빠지면 실패야. 보통은 자신이 가진 내공의 1할을 쓴다고 하는데, 내 느낌에 자네는 1할의 반의반만 써도 충분할 것 같아."

성진은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아니야, 다만 기운을 개방하면 본인의 무공실력이 상대방에게 노출될 수도 있어. 그러니 평상시는 필요한 수준만 개방해야 하네, 무공을 과시할 게 아니라면 말이야 그리고 또 하나! 독을 조심해야 하네."

"……."

"사실 독은 종류도 많고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사용될 줄 모르니 방비하기 상당한 어려운 일이야, 은침과 해독약을 가지고 다니는 게 도움은 되지만 완전하진 않아. 그래서 독에 대한 내성을 키우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성진은 자기도 모르게 손을 들었다.

"독에 대한 내성을 키우라고요?"

"간단해. 내공을 계속 늘려나가면 돼. 호호."

노파의 말은 성진에겐 정말로 주옥같은 말이었다.

"어르신, 제게 많은 걸 알려주셨는데 제가 꼭 보답 드리겠습니다."

"그 말 기억하겠네, 그건 그렇고 일단은 먼저 흑룡문 문제부터 집중하게. 내 생각에 그들이 오더라도 대놓고 활보하진 못할 것이야. 그러니 그 점을 이용해 인적이 드문 곳에서 밤낚시를 즐기고 있게나, 그리고 주변에 소문을 내게. 그러면 알아서 그놈들이 찾아갈 테니."

성진은 입을 벌렸다.

'음, 보통 어르신이 아니야.'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허허, 오늘 나도 오랜만에 눈과 입이 즐거웠네, 호호."

노파와 헤어진 성진은 집으로 돌아왔다. 한데 누군가가 건물 앞에서 서성거린다.

'엇, 총관이 여기를? 혹, 내가 벌인 일 때문에……?'

성진과 그는 지난번 정식으로 인사한 사이였다.

성진이 파악한 바로는 이곳 천화각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바로 그였다. 위로 삼선녀가 있었지만, 그녀들은 경영수업을 받는 중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성진이 먼저 다가가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모용 총관님 아니신가요?"

모용 총관의 본명은 모용진수로 모용세가의 방계출신이었다. 일찍이 무림맹에 투신했으나 무리맹이 해체되고 천화각에 합류한 인물이었다.

삼선녀와는 먼 인척 관계지만 그냥 겉으로는 아가씨라 부르고 있었다.

"이봐, 어디 갔다 오는 건가? 기다리고 있었는데."

"아, 어디 볼일이 있어서요, 오래 기다렸습니까?"

그가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하하, 아니야. 좀 전에 왔어."

성진은 그의 얼굴을 보면서 속으로 염두를 굴렸다.

'음, 설마 나와 강설주와의 거래를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강설주는 총관이 알면 안 된다며 나더러 입도 벙끗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이야.'

"아하, 그러시군요. 다행이네요. 그럼 근처 찻집으로 가실까요?"

"굳이 찻집으로 갈 필요가 있을까? 내부를 보고 싶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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