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9화 건달들을 제압하다 (3)
장칠은 숨을 크게 내쉬더니 다시 말을 이어갔다.
"자, 그렇게 해서 줄을 잡아당기면 말입니다. 위장막이 아래로 접힘과 동시에 놈이 함정으로 떨어지는 것이지요, 일견 간단해 보이지만 위장막을 정교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황씨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목금파의 두목이 심드렁한 표정을 짓는다.
"이봐, 뭘 그리 복잡하게 해. 그냥 구덩이 위에 가마니를 얹고 흙을 솔솔 덮어서 위장하면 되겠구먼, 안 그래?"
"아. 네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만에 하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놈은 무공을 익힌 자이니, 예민한 감각을 지니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해서 전 놈을 완벽히 속이기 위해 먼저 기녀들을 동원할 것입니다. 그가 이화원의 문을 열고 들어오면 기녀들이 그를 열렬히 환영하면서 조금씩 뒤로 물러나도록 말이에요."
"……."
"그러면 놈이 기녀들을 따라 들어오겠지요. 그리고 놈이 위장막으로 걸어올 때 그 순간 함정을 발동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영천파의 두목이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한데 말이야, 줄을 당기는 자들이 놈이 위장막 위를 걸어가는 것을 어찌 알지? 무슨 방법이 있으니 있는 거냐?"
장칠이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건 바로 공기구멍을 통해서입니다. 숨어 있는 자들이 숨을 쉴 수가 있도록 대나무로 대롱을 만들 텐데 그걸 이용해 신호하는 것입니다. 풍악이 울리면 그때 줄을 담기라고 말이지요."
영천파의 우두머리가 되물었다.
"그러니까 뭐야, 애초 함정을 설치할 때 공기구멍 2개도 같이 설치해야 하는 것이군."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추가로 황씨가 보유한 쇠뇌 10대까지 빌렸으면 합니다."
"그 쇠뇌 말이야, 황제의 개들이 쓴다는 그것과 성능이 비슷한 건가?"
장칠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가 말하길 동창의 고자 놈들이 가진 것보다 우수하다 합니다. 물론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후후, 그거 좋을 것 같군. 한데 쇠뇌 말이야. 사면되지, 왜 빌리려고 하는 거야?"
"그게 말이죠, 실은 아주 비쌉니다. 전에 한 번 물어보니까 하나에 은자 300냥을 달라고 하더군요."
그러자 영천파의 두목이 흥분했다.
"뭣아 그리 비싸! 내 이자를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 순간 청구파의 두목이 영천파의 두목을 노려보며 말문을 열었다.
"너 이 자식! 쇠뇌 사기만 해, 가만두지 않을 거다."
"야 인마! 원래는 살 생각이 없었는데 네 면상을 보니 꼭 사야겠다."
그 순간 황동출이 끼어들었다.
"어이 두 사람, 조용히 해, 그리고 이 자리에서 쇠뇌는 모두 안 사는 것으로 하자고!"
"찬성, 찬성……."
마지막에 남은 영천파의 두목도 결국 고개를 끄떡였다.
장칠은 우두머리들의 눈치를 보다 말을 이어갔다.
"음 음, 구덩이 바닥에는 날카로운 철질려(鐵?藜)를 깔아 놓을 겁니다. 아, 그전에 철질려에 마비독을 발라놓을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일단 놈이 함정에 빠지면 저희는 일제히 공격을 개시해야 합니다. 암기든, 화살이든, 창이던 가릴 것 없이 쏟아붓는 거죠."
"흐흐흐, 난 바윗덩어리를 택하겠어. 육포처럼 납작해진 그놈의 면상을 보고 싶거든, 흐흐."
장칠은 황동출의 말에 맞장구쳤다.
"아,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하하."
그때였다.
쉭…….
시커먼 신형 하나가 포물선을 그리며 누각의 지붕에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기원 마당 곳곳에 설치된 불빛이 잠시 바람에 흔들렸다.
제일 먼저 신형을 눈치챈 황동출이 소리쳤다.
"어떤 놈이냐?"
"나?"
성진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빙긋이 웃고는 돌연 강한 눈빛을 황동출에게 보낸다.
황동출은 서늘한 한기를 느끼며 저도 모르게 한 발 물러났다.
"흐흐, 난 네놈들이 오매불망 찾던 사람이다. 아주 간특한 모의를 하던데 어쩌냐? 내가 다 들어 버렸거든."
그 순간 마당에서 포진한 건달들이 누각 가까이 몰려들었다.
황동출은 순간 염두를 굴렸다. 하지만 달리 뾰족한 수가 없다.
'제길, 쪽수로 미는 수밖에!'
그는 누각 아래에 몰려든 건달들에게 소리쳤다.
"저놈을 깨끗이 정리해!"
정리하라는 건 죽이라는 그들의 은어였다.
"와아아……."
목소리만 컸지, 건달들의 걸음은 굼벵이 걸음이었다.
그들 두목이 뻔히 보고 있는 터라 명령을 안 들을 수가 없지만 다들 몸을 사리고 있었다.
성진은 고개를 돌리더니 혀를 찼다.
'쯧쯧, 하룻강아지 같은 것들, 그래도 운 좋은 줄 알아.'
성진은 곧바로 몸을 띄웠다.
휙…….
"내가 너희들을 놔두고 조무래기들을 상대할 것 같냐?"
성진은 일성을 내지르며 곧바로 누각 속으로 날아들었다.
'헉…….'
순식간에 누각 안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단번에 누각 위로 올라간 성진은 그들 면면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황동출이 다급히 소리쳤다.
"뭐해, 빨리 공격하라고!"
곧이어 사방에서 검날이 쏟아져 나왔다.
'이것들이 장검을 소지하고 있었네.'
성진은 날아드는 검날을 이리저리 피하며 미간을 잔뜩 좁혔다. 그를 향해 휘둘러지는 칼날에는 진한 살기가 어려 있었다.
스릉!
성진의 허리춤에서 스르륵 검이 뽑혀 나왔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겠지…….'
동시에 성진은 날렵하게 검을 휘둘렀다, 성진의 검이 허공을 가르자 맨 먼저 공격했던 자의 팔이 잘려 붉은 피가 솟구쳤다.
스걱!
"아아악!"
성진은 고개를 내저었다.
'쯧, 이건 좀 아니네.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을 순 없지.'
너무 쉽게 팔을 잘라버린 성진은 검을 도로 검집에 꽂아놓고는 그대로 돌격했다.
순간 정면에서 검 하나가 찔러 들어오자 성진은 몸을 낮춰 피하곤 곧바로 주먹으로 그의 명치를 가격했다.
"크아악!"
마지막에 성진이 힘 조절을 하지 않았다면 내장이 파열되었을 것이다.
그 순간, 또 다른 자가 성진의 어깨를 내려치고 있었다. 성진은 손대신 발을 들어 올렸다.
'후후, 내가 더 빠를걸.'
성진은 그자보다 한발 앞서 그의 낭심을 걷어찼다.
"커억! 아아악!"
강렬한 한 방에 낭심을 움켜쥔 자가 울부짖었다.
'이거 너무 심했나…….'
성진이 잠시 한눈 판 사이 돌연 허리가 서늘하다.
'이런! 피하긴 늦었다.'
성진은 다급하게 찔러 들어오는 검을 움켜잡았다. 아슬아슬하게 검이 살갗에 닿는 순간 멈추었다.
'휴!'
순간 회심의 미소를 짓던 자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상대가 맨손으로 검날을 쥘 것이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이이……."
그가 힘을 줘 보지만 검은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는다.
'너. 죽었어!'
성진은 검날을 쥔 채로 그대로 검을 밀어버렸다. 상대의 복부가 움푹 들어갔다.
"욱."
성진은 곧바로 그에게 다가가 턱을 가격했다.
퍽!
"아아악!"
상대의 턱이 옆으로 돌아가는 순간 그의 벌린 입속에서 부러진 이빨들이 튀어나왔다.
삽시간에 성진에게 넷이 당하자 그들 사이에 동요가 일어났다.
"이것들이 어딜 튀어!"
성진의 손이 고무줄처럼 쭉 늘어나더니 도망치던 자의 머리끄덩이를 잡아채고는 팔꿈치로 명치를 찍어버렸다.
"쿠웨액!"
연이어 성진은 도망치던 자들을 차례로 날려버렸다.
퍽, 퍽……!
쿵, 쿵……!
이제 멀쩡한 사람이라곤 누각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남과 여, 두 사람만 남았다.
마당에 있던 건달들은 이미 도망치고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성진의 눈길이 닿자 그들은 무릎을 꿇고 싹싹 빌기 시작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세요."
성진은 기녀를 보며 말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합니다. 돌아가도 좋습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는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녀가 가고 난 직후 성진의 눈에서 비릿한 조소가 피어났다.
살려달라고 외치는 자의 목소리가 누각 위에서 훔쳐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오라, 날 함정에 빠트리려고 한 장본인이었네."
장칠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설마 그가 자신이 한 말을 들었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살고는 싶었다. 무슨 짓을 해서든…….
순간 한 가지 그의 머릿속을 파고든 건 작은 희망의 불씨였다.
'그가 내 이야길 들었다면 내가 우두머리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을 터!'
"대인. 소인은 그저 두목 놈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안 그러면 죽도록 얻어맞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러면서 빠르게 그의 과거를 털어놓는다. 그가 바라는 건 오로지 성진이 조금이라도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도록 하는 거였다.
"흑흑, 저는 어릴 적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었습니다. 배를 곯고 헤매던 중 어쩔 수 없이 살기 위해 흑도가 되었지만, 지금껏 한 번도 사람을 해쳐본 적이 없습니다."
뻔한 이야기지만 성진의 마음이 약간은 움직였다.
자신의 사형제들과 자신에게 몸을 주고 죽은 이도 모두 고아였다. 그들이라고 흑도가 되지 못한다는 법은 없었다. 사부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봐, 그래도 넌 머리를 잘못 굴려 많은 사람을 못살게 굴었을 거야. 안 그래?"
"그건 인정합니다, 평생토록 제 잘못을 뉘우치며 살겠습니다."
"후후, 그래? 하지만 말이야. 날 죽이려고 무서운 흉계를 꾸몄는데 널 가만두면 내가 이상한 놈이 되지 않을까, 아까 뭐라고 했더라? 함정에 빠뜨린 것도 모자라 철질려에 독을 바르겠다며……!"
순간 장칠이 성진의 다리를 붙잡았다.
"대인! 제발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살려만 주시면 뭐든 다 하겠습니다."
"뭐든, 다 한다. 잠깐 기다려!"
성진은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린 이들에게 차례로 분골착근을 선사했다.
"으아악……."
삽시간에 기원에 돼지 멱따는 소리가 가득했다.
그들은 엄청난 고통에 자지러지더니 또다시 모두 혼절하고 말았다.
순간 장칠은 몸을 벌벌 떨었다.
'아아. 지독한 인간이다.'
성진은 겁에 질린 장필에게 다가가 갑자기 그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살려면 주면 뭐든 다 한다고?"
"네. 그렇습니다."
"배신하지 않을 거지?"
장칠은 도리도리 고개를 흔들었다.
"절대로요."
"좋아 그러면 넌 앞으로 내가 그만두라고 할 때까지 내 명을 들어야 한다, 알겠나?"
"감사합니다. 대인."
성진은 그의 잔꾀를 높이 산 것이었다.
"그러면 첫 번째 명령을 내리지, 쓰러진 자들의 품을 샅샅이 뒤져라."
"네 알겠습니다. 주군!"
장칠은 철저했다.
성진에게 잘 보이려고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기절한 자들의 옷을 모조리 벗기고 샅샅이 몸을 수색했다.
심지어 은밀한 곳과 입속까지도 뒤졌다.
잠시 후, 장칠이 찾은 것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성진에게 다가왔다.
"여기 있습니다. 주군."
성진은 다른 건 거들떠보지 않고 열쇠를 뚫어지도록 바라보았다.
"역시 예상대로 열쇠가 있었군, 이거 누구, 누구의 열쇠인지는 알고 있겠지?"
"네. 그럼요."
장칠은 각각의 열쇠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성진에게 말했다.
"좋아. 그러면 두량파, 청구파, 영천파, 목금파를 차례로 돌자. 아, 가면서 이곳 흑도의 사정에 대해서 내게 말해봐."
"네. 그전에 주군, 꼭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뭐지?"
성진이 장칠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실은 저희가 흑룡문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정확한 인원은 모르지만, 사흘 이내에 고수들이 당도할 것입니다."
"날 죽이려고?"
"네. 그렇습니다."
성진는 노파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알았어, 고마워. 내일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우선 갈 길을 가자고."
"네 알겠습니다. 주군! 너무 심려하지 마십시오. 가보면 각파 본거지가 엉망이 되어 있겠지만 그래도 금고는 안전할 겁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