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화 청천벽력 같은 소식
주성진은 빠르게 말을 둘러댔다.
"아니, 그게 아니고 내가 사실 고아인데 휘주 보육원 출신이거든, 그래서 휘주 상단에 관심이 간 거였어, 특별히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휘주 보육원 출신이란 말은 사실이었다.
처음 그가 그의 사부에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몸을 남기고 죽은 자와 묘한 인연을 느꼈었다. 전생의 자신도 휘주 출신이었기에.
그녀의 표정이 누그러졌다, 주성진이 고아라고 하니 애처로운 생각까지 들었다.
"음, 그렇구나, 내가 좀 예민했어, 미안해."
"아. 아니야."
"실은 휘주 상단의 곽천일 상단주가 모용세가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상단주에 올랐다는 소문이 있어, 그는 20년 전만 해도 일개 행수에 불과했다고 하더라고. 내가 꼭지 돈 건 너도 알겠지만 모용세가의 모자만 들어도 기분 나빠서야."
과거 그런 소문이 잠깐 있기는 했다.
휘주 상단의 상단주가 갑자기 물러나면서 후계자로 휘하 부하를 지목한 일이…….
그래서 혹자는 그 속에는 거대한 음모가 깔렸으며, 모용세가가 개입했다는 말이 한동안 돌았다.
하지만 그런 소문은 미풍에 그치고 얼마 가지 않아 소문은 잠잠해졌다.
한편 주성진은 그녀의 입에서 곽천일이라는 이름이 거명되자마자 눈까풀에 경련이 일어나면서 동시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어깨가 들썩였다.
'이럴 수가. 어찌 그놈이 상단주가 되었단 말인가! 날 죽음에 몰아놓고 그놈은 상단주가 되었다고!'
"너 왜 그래? 어머 안색까지 새빨갛게 변했네……."
주성진은 깊은 심호흡을 여러 번 한 후에야 간신히 자신의 떨림을 잠재울 수 있었다.
'흥분하지 말자, 흥분하지…….'
"아 그게 말이야, 내가 보육원에 있을 때 날 괴롭힌 놈이 있었어, 혼자로는 내 상대가 안 되니까 비겁하게 덩치 큰 형을 데리고 와서 늘 날 못살게 굴었었지, 그놈이 곽천일이었어."
주성진은 순간의 기지를 발휘해 없는 말을 지어냈다.
"아. 그랬었구나. 어릴 때 안 좋은 기억은 평생 간다고 하더라, 호호."
"그래 그런 것 같아, 그래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 느낌에 곽천일 상단주라는 사람도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아. 그가 외세를 끌어들여 상단주가 된 것 같거든, 물론 소문이라 하지만."
주성진은 최대한 휘주 상단의 정보를 알아내려 노력했다. 특히 그의 친부의 안위가 몹시 궁금했다.
"음, 글쎄…. 그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여튼 내가 아버지께 언뜻 듣기로는 전 전대에 조중혁 상단주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는데 갑자기 급사하고부터 휘주 상단이 꼬였다고 하더라고, 더는 잘 몰라."
주성진의 얼굴에 굵은 주름이 생겼다가 사라졌다.
'아아. 아버님이 급사하셨구나, 내가 죽었다는 소식에 충격받은 것이 아닐까…….'
주성진은 이쯤 해서 화제를 돌렸다. 좀 더 깊은 내막은 본인이 직접 알아볼 생각이었다.
"저기, 어찌 특2관이 많이 한가한 것 같은데, 호남성에 무림 문파가 적어서 그런가?"
"호호, 왜 형산파가 있잖아, 미안 너무 아픈 곳을 찔렀나?"
성진은 손을 흔들었다.
"됐어, 뭐……."
"그게 말이야. 왜 여기가 한가하냐면 총무련에서 주최하는 무림대회에 사람들이 대거 몰려가서 그래, 뭐 개중에는 직접 대회에 참가하는 자들도 적지 않을 거야."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총무련이 뭐지? 최근에 생긴 단체인가?'
강설현은 성진의 모습을 쳐다보며 더럭 의심이 들었다.
'동네 꼬마들도 다 아는 무림대회를 모른다고, 제 정말 형산파 출신이 맞는 거야?'
"너, 솔직히 말해라! 형산파 출신이 틀림없는 거지?"
성진은 그녀가 왜 그러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본인도 답답했다.
'이것 참, 사부가 말해주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내가 모르고 있는 건지?'
어쨌든 바로 해명에 들어갔다.
"실은 내가 2년 전에 머리를 다쳤는데. 과거의 기억 중 일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그러면서 성진은 그 이후 벌어진 일에 대해 뺄 것은 빼고 필요한 것만 간추려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그렇게 된 거야."
강설현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성진을 안됐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너도 참, 우여곡절이 많았구나, 음 총무련은 지금으로부터 12년 전에 정, 사파와 마교에 속한 문파들 대부분이 뜻을 모아 만든 곳이야. 평상시 주 역할은 각 세력 간의 분쟁 조정이지만, 전란이나 무림에 큰 위기가 닥쳤을 때는 하나의 구심점 역할을 맡게 되어 있어."
"……."
"그리고 총무련 창설을 기념해서 만든 게 총무련 무림대회야. 4년 주기로 하고, 자격은 30세 미만으로 제한했지만, 참가 신청자들이 워낙 많아서 본 대회에 참가하려면 그 지역의 예선전을 거쳐야 해."
"……."
"참석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는 자들도 있고, 문파의 명예를 위해 출전하는 자들도 있어. 아니면 둘 다이든가……. 한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무림대회가 혈기방장한 무림인들의 욕구 배출구로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야. 뭐 높으신 분들이 의도했을 수도 있겠지만……."
성진은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면서도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하, 변했구나, 그것도 너무 많이.'
그의 기억에는 총무련이라는 단체는 존재하지도 않았다.
무림맹, 사도련 그리고 마교가 각각 정, 사, 마를 대표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주성진은 세 개의 단체가 어찌 되었는지 궁금했다. 내심 짐작은 하지만 한 번 더 확인하고 싶었다.
"네 기억에 무림맹, 사도련, 그리고 마교가 뚜렷이 남아 있는데……."
"호호, 그건 기억하고 있었나 보네, 한데 어쩌지 무림맹과 사도련 그리고 마교는 해체됐는데. 특히 그중에 주목할 만한 건 마교야, 마교는 마교를 지탱하던 스무 개의 가문이 각자 독립을 선언했지."
성진은 미간을 찌푸렸다.
'역시 그렇게 된 것이군. 내가 모르는 20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있었어.'
"음, 그래도 뭐냐, 총무련에 가입하지 않은 문파도 있을 것 같은데."
"있지, 대부분은 나쁜 놈들이야."
"뭐. 나쁜 놈들이라고?"
그녀가 고개를 끄떡였다.
"그래, 자세한 건 네가 알아봐라, 난 가봐야 할 것 같으니까."
"간다고?"
"깜빡했던 일이 있어. 그리고 약속 꼭 지켜라."
성진은 살짝 비틀거리며 떠나는 그녀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취기 때문에 자리를 뜬 것이로군, 술을 좀 많이 먹더라니…….'
성진은 혼자 자작하며 그녀에게 들었던 내용 들을 음미했다.
그냥 무작정 듣기만 했을 때는 몰랐는데 다시금 생각하니 여러 궁금증이 고개를 쳐들었다.
'차차 알아보자, 조급해하지 말고. 그건 그렇고 음, 휘주 상단을 되찾아야 하는 데 쉬운 일이 아닌 것 같군. 그냥도 버거운데 모용세가의 그림자가 휘주 상단 어딘가에 어른거리고 있다면 나로서는 모용세가까지 상대해야 하는 이중고를 안게 되는 것인데.'
주성진은 앞으로가 험난하고 머나먼 여정이 될 것 같은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래, 시작이 반이고.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니까, 뚜벅뚜벅 가보자고.'
다음날, 성진은 그녀와 같이 아침을 먹고는 천화각을 떠났다.
그가 가고자 하는 곳은 악록산의 동굴이었다.
부지런히 발품을 판 그는 당일 오후에 악록산 어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음, 여전히 사람들이 많군.'
아름다운 산세에 그다지 험하지 않은 산이라 등반객들이 많이 있었다.
그는 취구환을 발견했을 때를 떠올렸다.
'난, 장사에서 일을 끝내고 유람 삼아 이곳에 왔었지…….'
하지만 그날은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갑자기 산 정상에서 쏟아진 폭우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 성진은 비를 피하려 여기저기를 살피다 바위틈 사이의 오목하게 들어간 작은 틈새를 용케 발견할 수 있었다.
'뭐야 동혈인가?'
작은 틈새의 안쪽에는 간신히 사람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뚫려 있었다.
그는 바위틈의 동혈 입구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거센 비는 계속 내렸고 비는 그가 피한 틈새에도 들이치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살짝 겁이 났지만 동혈 안쪽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게다가 날은 점점 추워졌다.
잠시 후 구멍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간 그는 동굴 안쪽이 점점 커지자 안으로 좀 더 들어갔다.
컴컴한 동굴이 무서웠지만 앉아서 편하게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싶었던 거였다.
대략 일 장 정도 더 들어갔을까? 그는 뭔가가 발에 걸리적거리는 것을 느꼈다.
'뭐야! 뼈 같은데.'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의 뼈라고 생각하지 못한 그는 배낭 속에 들어 있던 죽통을 꺼냈다.
곧바로 죽통의 뚜껑을 열고 속에든 화섭자를 입으로 후후 분 순간 불씨가 발화되었다, 그리고 그는 화섭자를 바닥에 비추었다.
'아악!'
사람의 백골이었다, 시신이 죽은 후에 산짐승이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뼈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다.
혼비백산한 그는 뒤로 물러나다 동굴의 벽에 등이 부딪혔다.
그리고 그 순간 벽이 쑥 들어갔다,
쿵!
'아야야!'
잠시 후. 아픔이 좀 가시자 그는 뛰쳐나갈 생각을 했다.
쏴…….
'제길…….'
보통 때 같으면 당장 뛰쳐나갈 것이지만 밖에선 억수 같은 비가 계속 쏟아졌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백골과 불편한 동거를 시작한 그는 백골을 생각했다.
'음, 시신이 백골이 된 것을 보니 제법 오래된 것 같은데, 어쩌다가 죽었을까.'
시간이 흐르고 그는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백골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지고 죽은 이에 대해 측은함이 느껴졌다.
'쯧쯧, 여기서 홀로 죽음을 맞이하다니…….'
그는 다시 화섭자를 꺼내 불을 붙이고 흩어져 있는 뼈를 한곳에 모았다.
그리곤 가볍게 고개를 숙이곤 뒤돌아섰다.
순간 희미한 불빛 아래에 좀 전 자신이 부닥쳤던 벽면이 눈에 들어왔다.
'맞아.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생각 못 했는데 벽이 함몰된 것 같았어…….'
그는 화섭자를 들고 가까이 다가갔다.
'어라, 저건 뭐야, 나무곽이잖아.'
움푹 들어간 동굴 벽면에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원래는 자연적으로 들어간 부분을 물건을 감추기 위해 누가 진흙을 발라 가린 것 같았다.
회상을 끝낸 성진은 부지런히 산 정상으로 올라갔다.
'후후. 후에 안의 내용물이 취구환이라는 걸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성진은 씩 웃으며 등반로를 따라 산에 올라갔다.
성진은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과 가볍게 인사를 건네며 물었다.
"안녕하세요, 정상에 사람이 많은가요?"
성진이 일을 하려면 정상 주변에 인적이 없어야 했다.
"많이들 있지요. 하지만 다들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어요. 아시다시피 산의 밤은 빨리 찾아오니까요……."
"아. 그렇군요."
"한데. 지금 올라가려고요?"
성진은 배시시 웃었다.
"뭐 후딱 올라갔다가 빨리 내려오죠, 헤헤."
자세한 말을 하지 않은 성진은 슬쩍 경신법을 구사해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다 왔구나! 하하. 오랜만이다."
감개무량한 성진은 나뭇가지를 한아름 손에 들고 있었다. 올라오다 자른 것들이었다.
날이 금세 어둑어둑해졌다.
서둘러 바위틈으로 간 성진은 크게 심호흡했다.
그의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고 있었다.
두근두근!
'제발 있어야 할 텐데.'
순식간에 그의 신형이 바위 틈새로 사라졌다.
안으로 들어간 성진은 화섭자에 불을 붙였다.
'아, 다행이다. 전과 그대로인 것 같다.'
그는 준비한 나뭇가지에 얼른 불을 옮겨 붙이고는 흩어진 유골을 전생에 그랬던 것처럼 가지런히 모았다.
'부디 극락왕생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