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화 천화각의 정체
강설현의 의도는 천화각의 외관과 내부 장식 그리고 정원에 대한 평을 말해달라고 한 것이었는데 성진은 그녀의 의도를 완전히 빗나가게 했다.
"뭐라고요, 사업성요?"
"네.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곳의 땅값은 아주 비싸 보입니다. 게다가 접근하기 좋은 위치나 잘 꾸며진 건물과 정원을 봤을 때는 음, 고급 객잔보다는 기원을 연다면 훨씬 수익성이 좋을 것 같습니다. 하하."
그녀는 귀에서 연기가 날 정도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충격은 금세 분노로 바뀐다.
"야! 너! 방금 뭐라고 지껄였어, 내가 손님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라는 말이냐?"
바로 반말이 터져 나온다. 주성진도 이에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내가 분명 사업성 면이라고 말했을 텐데, 그리고 너보고 잠자리하라고 한 적 없다."
씩씩거리던 그녀가 점차 숨을 고른다.
"이봐, 그딴 것도 책에서 배웠냐?"
"물론이지. 난 상술을 열심히 공부했다고."
"좋아. 일단 밥은 먹게 해준다. 하지만 날 모욕한 건 참을 수 없어, 나랑 비무해!"
성진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흥, 방금 내 말이 아니어도 날 어떻게 구슬려서 비무할 심산이었을 거야, 그렇다면 나도 대안이 있지.'
"좋아, 정확히 열흘 후에 하자. 대신 그냥 비무하면 밋밋하니까 내기를 하자고. 아, 내기는 네가 정해도 된다."
강설현은 지긋이 성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열흘이라… 그래 열흘 사이에 뭐가 바뀌겠어, 천지개벽이 일어나도 저 자식은 날 못 이겨.'
"좋다. 그러면 열흘 후 비무한다고 수결해라. 그리고 내가 이기면 넌 열흘 동안 상술에 관해 이야기해줘야 한다. 내가 질 경우는 음… 금나술을 가르쳐 주겠다."
"그러자고, 하하."
강설현은 웃는 성진을 보며 불안한 마음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음, 뭐가 있는 건 아니겠지…….'
주성진은 강설현의 안내로 특2관의 문턱을 넘었다.
자리를 잡기 무섭게 군침이 절로 드는 음식들이 쏟아져 나왔다.
'맛있겠다.'
향긋하고 맛있는 음식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를 정도다.
강설현은 성진이 식사를 하는 동안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간간이 술도 따라 주기도 했는데 상당히 능숙했다.
"그러니까 뭐냐, 형산파의 총인원이 너를 포함해 모두 6명이란 말이냐?"
그녀는 형산파에 대한 호기심이 확 반감되었다.
"왜, 너무 적냐? 소수 정예란 말은 들어봤겠지?"
"호호 좋아, 일인 전승으로도 이름을 날리는 문파도 있으니까. 하지만 일인 전승의 문주들은 무림에서 오랜 기간 서서히 명성을 쌓아서 인정을 받은 사람들이지. 그러니 형산파도 무림에서 다시 인정받으려면 그렇게 해야 할 거다."
주성진은 그녀의 말을 되새겼다.
'음, 역시 무림은 힘이 모든 걸 말해주는 세상이야…….'
"그래, 네 말이 맞는 것 같군, 그런데 말이야 개인이 단시일 내에 명성을 날리는 방법은 없냐?"
"호호. 너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을 모르느냐?"
주성진은 미간을 좁혔다.
'뭐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렇다는 건 가까이에 있다는 말인데. 음,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
순간 뇌리를 번쩍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렇다면 이곳, 천화각!'
그러고 보니 이곳에 미심쩍은 게 한둘이 아니었다.
무림인들만 묵을 수 있는 별관이 있는 것도 그렇고, 여기 주인들도 특이했다.
그녀가 무공을 알고 있으니 십중팔구 그녀의 언니들도 그럴 것이다.
또한, 총관도 미심쩍었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자신을 주눅 들게 만드는 무엇이 존재했다.
'음, 그녀가 내게 무림인이냐고 물어봤을 때부터 뭔가가 있었어. 게다가 그녀는 대로변에서도 당당히 경공을 펼쳤다고, 그렇다는 건 숨길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건데.'
주성진의 눈빛이 반짝거리자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이봐, 뭔가 낌새를 눈치챈 모양이지……?"
"그래. 도대체 천화각의 정체가 뭐냐? 혹 무림 문파냐?"
"너, 무림 초출이지? 하긴 산속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알 턱이 있나, 호호호."
그녀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비웃고 있었다.
성진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아직 애들 같은 치기가 남아 있군, 음 그렇다 해도 무슨 변명이라도 대야 할 것 같은데.'
"이봐, 사부님이 무공에 집중하라고 해서 그리된 것이다."
"흥, 뭔가 앞뒤가 안 맞는군, 그럼 상술은 어떻게 된 건데, 무공에 집중하라고 하셨다며?"
주성진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제길, 저런 실수를 하다니, 머리가 퇴보한 게 틀림없어.'
사실 그는 전생에서 무림 통람을 보기는 했지만, 그 속에는 무림의 대표 문파들과 유명한 인물들만 열거되어 있을 뿐이었다.
"솔직히 사부 몰래 상술을 익혔어."
"호호, 진즉에 그리 말했어야지……."
"그건 그렇고 설현아! 제발 속 시원하게 말 좀 해주라, 응?"
강설현은 성진이 본인의 이름을 부르자 기분이 묘했다.
'뭐야, 이 기분, 두근거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고…….'
아직 남자를 사귀어 본 적이 없는 그녀였다.
"주성진! 좋아 말해주지. 난 네가 웬만한 무림인이라면 다 알고 있는 천화각을 모를 때부터 알아봤다고, 호호."
주성진은 눈을 치켜떴다.
'뭐야. 남들은 다 알고 있었단 말이야, 이거 빈말이 아니고 무림을 속속들이 공부해야겠구나.'
주성진은 돌아가면 무림 정세에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무림도 다른 세상과 똑같아. 아는 게 힘이라고!'
강설현은 자신의 술잔에 술을 따라 한 잔 마시더니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아버지 모용승운은 모용세가 출신이었다.
18년 전 모용세가에선 차기 가주 위를 놓고 배다른 형제간의 갈등이 있었고, 결국 내부 진통 끝에 전대 가주의 차남이었던 모용승운은 그길로 본가를 떠나게 되었다.
그 후 모용승운은 죽은 어머니를 따라 성을 강씨로 바꾸고 자신 곁을 끝까지 지켰던 인물들과 합심해 하남, 호북, 호남에 천화각을 세웠다.
이는 모용세가와 대립하지 않으려는 고육지책이었다.
하나, 상계 쪽으로 눈을 돌리긴 했지만 천생 무인이었던 모용숭운은 무림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아쉬워하다가 어느 날 번뜩 생각이 난 것이 있었다.
그때가 모용세가를 떠난 지 5년이 흐른 후였다.
주성진은 그녀의 말을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아버지는 곧바로 천화각에 비무장을 설치했고 사방에 알렸지, 돈을 받고 비무와 비무평을 해준다고 말이야. 물론 우리 쪽에는 비무에 나설 사람이 아버지를 포함해 많이 있었으니까 가능한 것이었어. 당연히 비무 상대자의 신분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 준다고 확약했지."
"음, 그러다 비무 중에 불상사라도 생기면?"
"호호, 비무평을 알려준다는 걸 유념해보라고, 뭐 떠오른 것 없어?"
주성진은 피식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하수를 골라 비무하는 것이로군. 넌 그걸 배워서 나한테 써먹으려고 하는 것이고."
"야, 그건 아니다, 뭐……."
어찌 되었든 성진은 그녀 아버지의 생각에 내심 찬사를 보냈다.
'돈도 벌고, 근질거리는 몸도 풀고, 이거야말로 일거양득이로군. 그러고 보니 사부도 우리와 대련하면서 내부에 쌓인 울화를 푸는 것 같은데, 사랑의 매를 빙자해서 말이야.'
"성진아. 한데 말이야. 애초에 아버지는 크나큰 욕심은 없었어, 그런데 회를 거듭해 비무를 하면 할수록 비무로 인한 지식과 정보가 쌓이는 것이야. 이게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줄은 누가 알았겠냐고."
성진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뭐. 황금알을 낳는 거위?"
"비무자들의 다양한 절기들을 참조해서 새로운 무공서를 만든 거야. 그리고 그 책을 비무하려는 사람에게 팔았지. 나중에는 비무보다는 무공서가 탐이나 비무를 신청하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었지."
"……."
"그것뿐인가, 처음엔 돈을 받고 비무를 받아줬는데 돈 대신 다른 것으로 대신해달라는 사람들이 생겨났지. 비급, 무기, 영약, 무림의 중요 정보 등 참으로 다양했지. 호호."
성진은 고개를 끄떡끄떡했다.
"하. 그러면 그것들도 원하는 사람에게 다시 되파는 건가?"
"그렇지. 아니면 다른 것과 물물 교환할 수도 있고."
성진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산법(算法)을 떠올렸다.
'하. 파생 효과가 대단하겠는데. 가령 물물교환으로 비급을 받아서 그것의 필사본을 만들어 놓고 다시 또 다른 것과 교환하면… 이건 더하기가 아니라 곱하기로 늘어나는 거잖아.'
"대단하구나. 비급 하나가 2개가 되고, 2개가 4개로, 다시 4개가 16개로, 16개가……."
순간 그녀가 끼어들었다.
"그만 됐어, 너 머리 좋구나. 혹 그 어렵다는 산법도 배운 거니?"
"그래……."
그녀는 엄지를 치켜들었다.
"대단하네, 난 일찌감치 포기했는데, 그런데 말이야 요즘 들어 골치 아픈 일도 생겨나고 있어."
"무슨 일?"
"비무 교관이 되겠다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말이야. 아 비무 교관은 비무를 해주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그거 뭐, 안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 뭐가 문제지?"
"애초에 비무 신청자들이 넘쳐나서 믿을 만한 비무 교관을 좀 고용했는데 소문을 들었는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초고수들까지 지원해서 부친이 머리가 좀 아파. 그들의 요청을 단칼에 거절하기 쉽지 않은 거지."
"그런 초고수들이 왜?"
"뭐긴 뭐야. 돈이 궁하니 그렇지. 해서 내부에서는 단기 계약직으로 그들을 고용하려고 가닥을 잡고 있어."
성진은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긴, 학식이 뛰어나도 가난한 자들이 수두룩하니까. 그렇다고 농사나 도둑질은 체면상 못할 것이고.'
"음, 그렇구나. 근데 아까부터 물어보려고 한 건데, 네가 나에게 말하는 건 주변에서도 다 알고 있는 거냐?"
그녀는 고개를 끄떡였다.
"그럼, 다 알고 있지."
"음, 그래도 무공서를 파는 건 문제 될 소지가 있을 것 같은데?"
"문제 되지 않도록 다 미리 알아보고 하는 거지, 아 참고로 무림에서 남의 무공을 흉내 내는 건 흔한 일이야. 전혀 문제 될 일이 아니라고."
주성진은 그녀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보았던 상술 책도 누군가의 상술을 모아 집대성한 것이었다.
"알았어, 그럼 이제 천화각을 이용해 명성을 얻는 방법을 말해줘 봐."
"그거야 우리가 비무를 하고 난 뒤에 본인이 허락하면 널리 무공 수준을 알려준다고 했지. 천화각이 평가한 무공등급은 세인들에게 상당히 신뢰를 받고 있거든, 사실 그런 목적으로 비무를 신청하는 자들이 제법 많아."
"……."
"또 한 가지의 방법은 천화각의 비무 교관이 되면 되는 거야. 돈도 벌고 명성도 얻고, 꿩 먹고 알 먹기라고. 물론 그만한 자격이 되어야 하지만……."
성진의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그렇단 말이지, 참고해야겠어.'
이야기가 한참 무르익어 갈 무렵 주성진은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진즉부터 물어보려고 입이 근질근질하던 이야기를 꺼냈다.
"저, 말이야 내가 사업에 관심이 있어서 하는 말인데 휘주 상단에 대해 좀 알려주라, 중원 5대 상단 중에 유독 관심이 가서 말이지, 헤헤."
"흥, 왜 하필이면 휘주 상단이야?"
주성진의 예상과 달리 그녀의 말투가 차가웠다.
'이크, 내가 말을 잘못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