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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7화 (7/250)

007화 무공을 익히다 (2)

정확히 열 번의 공격과 열 번의 패배를 맛본 성진은 먹었던 음식을 모두 토하고 있었다.

"우욱!"

도저히 속이 울렁거려서 참을 수 없었다. 그래도 먹었던 음식을 게워내니 속이 좀 편해진다.

'제길, 온몸이 멍투성일 것이야.'

그런 성진의 모습을 지긋이 바로 보던 오강일이 입을 열었다.

"고생했다. 성진아, 하하!"

"사부님도 때리느라 수고하셨습니다."

"허허. 녀석……."

주성진이 구경하던 사형제의 자리로 돌아가자 오강일은 환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식들, 모두 애썼다. 자, 그러면 지난번에 보류한 비급을 내어 줄 테니 열심히 익히도록 해라."

"네……."

잠시 후 사부가 돌아가고 주성진에게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그의 사부는 똑같은 책을 제자들에게 하나씩 배포한 거였다.

돈을 아끼기 위해 한 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본인이 직접 쓰고 삽화도 그렸다.

성진은 얼떨결에 받아 든 책의 제목을 바라보며 묘한 감흥에 사로잡혔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거였다.

'허허, 이게 무인의 마음인가?'

그 순간 둘째 임정후가 그의 허리를 툭 쳤다.

"잊지 않았겠지?"

"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머지 제자들이 우르르 주성진에게 다가왔다.

막내인 진한수가 고개를 꾸벅 숙인다.

"헤헤,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뭐든지 말씀만 하십시오, 제가 있는 힘껏 도와드릴게요."

주성진은 때마침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막내 사제, 대신 자주 대련해줘."

"그럼요, 하하."

"나도, 나도! 나도 대련해 줄게……."

주성진은 햇볕이 따뜻하게 비추는 바위에 걸터앉아 책의 표지를 바라보았다.

'음, 태극오행장이라, 바른 힘을 키우는 수련법이라고…….'

바른 힘을 키우는 수련이라는 글귀가 무척 마음에 와닿은 그는 곧바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얼마 후 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와, 정말로 마음에 드는 책이군, 궁금한 게 많았는데 그에 대한 설명이 깨알같이 쓰여 있잖아.'

상인이었던 그에게는 고치기 힘든 버릇이 있은데, 그건 항상 뭐든 계산을 하는 거였다.

가령 무얼 하더라도 '이렇게 하는 게 왜 내게 이득이 되는 거지?'를 되새기는 식이었다.

그런 면에서 시키는 대로 익히기만 했던 그동안, 마음 한편 구석엔 답답함이 쌓여가고 있었다.

'옳거니, 바른 자세가 결국 내 몸의 기가 가장 잘 통하는 자세였어!'

성진이 그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어깨를 펴고, 허리를 꼿꼿이 하고,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턱을 바짝 당기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온몸을 쓰라는 것이었다, 걸을 때도, 팔을 쓸 때도 모두…….

그렇게 하나둘 쌓인 의문을 풀어가며 책에 빠져든 성진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다.

사실 이러한 건 그에게 절대 낯선 게 아니었다.

상술도 숙달과 반복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보니 성진은 상술과 무공이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도 깨달아 가고 있었다.

'그래, 상인이 즉흥적으로 대처를 한다는 건 무인의 빠른 반응과 일맥상통으로 하는 것이야.'

* ? ? * ? ? *

2년이 흐르고 주성진은 어느덧 스무 살이 되었다.

한데 주성진의 깊고 그윽한 눈 속에서 열화가 피어나고 있었다.

'드디어 밖으로 나가는구나.'

주성진은 열심히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간 휘주 상단의 소식을 알려고 백방으로 노력해봤지만 궁벽한 형산 주위에선 무리였다. 그의 사부는 물론 주변 동네 사람들 모두 아는 자가 없었다. 오히려 왜 그런 것을 묻는지 의아해하는 모습들이었다.

시간을 거슬러 며칠 전 그는 사부의 부름을 받았다.

"성진아. 장사에 다녀와야겠다."

"장사는 왜요?"

호남성 장사는 초한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유구한 역사를 가진 호남성 제일 도시였다.

특히나 양자강이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어 예부터 상업이 발달한 항구도시였다.

오강일은 한껏 콧잔등을 찡그리더니 성진을 바라본다.

"음, 예전 같으면 얼씨구나 하고 내가 갔겠지만, 이번엔 네가 다녀와야겠다. 곧 추수철인데 내가 자리를 비우기도 그렇고 번번이 허탕을 쳐서 긴가민가하단다."

주성진은 기억이 없어 모르지만 오강일은 몇 년에 한 번씩은 장기외유를 떠나곤 했었다.

그는 아는 지인들을 통해 형산파의 비급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그것을 찾으러 떠났었다.

하지만 막상 비급을 접하면 껍데기만 형산파의 비급일 뿐 내용은 전혀 관계가 없는 삼류 무공이 대부분이었다. 한마디로 가짜였던 거였다.

오강일은 그런 사정을 담담히 주성진에게 밝히며 떠날 것을 명했다.

그가 주성진을 택한 건 제자 중에 제일 똘똘했기 때문이지 별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장사의 문진당이라는 고서점에 가서 은자 1냥 내에서 비급을 사 오라는 말씀이지요."

"그렇다."

"사부님, 한데 비급을 그보다 비싸게 부르면 어쩌지요?"

오강일은 빙그레 웃는다.

"녀석아. 그게 진짜일 리가 있겠느냐? 이번에도 가짜가 분명하다. 만약 진짜라면 동네 방방곡곡에 소문을 내겠느냐. 은밀히 유통했겠지……. 그래도 살 사람은 많으니까."

"……."

"성진아, 그래도 가봐야 하는 건 형산파의 장문인으로서 내가 해야 할 책무이기 때문이다. 설령 소식이 가짜라도 외면할 수 없는 것이야."

"네, 잘 알겠습니다."

주성진은 대답하면서 한편으론 전생에 자신이 거처에 감춰놓은 형산파의 무공을 떠올렸다.

'아, 아버님이 주신 형산파의 무공, 그게 지금도 고이 그 자리에 있을까…….'

세월이 흘러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방바닥 아래 깊숙이 감춰둔 것이라 일말의 희망은 포기할 수 없었다.

'있다면 반드시 형산파에 돌려주리라!'

그 순간 사부의 말이 이어졌다.

"더 물어볼 게 없느냐?"

"없습니다."

몇 가지 소소하게 물어볼 것이 남았지만 성진은 굳이 묻지 않았다. 자칫 그의 사부가 마음이 바뀔까 봐 두려웠던 거였다.

그가 묻고자 했던 것들은 예상을 깨고 비싸게 부르면 사는 것을 포기해도 되는 건지, 또는 고서점에 비급이 없으면 어떡해야 하는 건지 등등이었다.

"그래. 여행 준비 잘하여라."

"네, 철저하게 준비하겠습니다."

씩씩하게 대답하던 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가고 있었다.

'하하. 공교롭게 장사란 말이지, 가까운 시일 내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가보려 했는데 이렇게 빨리 기회가 찾아오다니…….'

성진의 마음이 들떠있는 건 전생에 취구환을 발견한 곳이 바로 장사에서 가까운 악록산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20년 미래로 온 그였기에 그 사이에 누가 발견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절대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주성진의 표정이 돌연 진지해졌다.

'기필코 가서 확인해 보자. 또한, 휘주 상단의 최신소식도 반드시 알아보고!'

전생에 여행을 다니는 데 이골이 난 주성진이었지만, 이를 지켜보는 오강일은 성진이 강가에 내놓은 자식 같아서 걱정이 앞선다.

"첫째도 조심, 둘째도 조심. 셋째도 조심이다. 알겠느냐?"

"네, 명심하겠습니다."

"성진아, 아랫마을 장씨에게 검 하나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해 놓았으니 잊지 말고 들르거라. 장씨 그자가 좀 괴팍하니까 언행에 조심하고……."

"네, 진검은 처음인지라 익숙해지려면 수시로 연습해야 할 것 같네요."

"그럼,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단 수련하려면 인적 없는 곳에서 해야 한다. 음, 노파심에 말하는 건데 너의 그 곱상한 얼굴로 괜한 여인들에게 치근덕대다간 죽을 줄 알아라, 무슨 말인지 알겠지?"

주성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손을 휙휙 내저었다.

"아이, 사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았다, 어디 딴 길로 새지 말고 일을 마치면 곧바로 돌아오거라."

제법 불룩한 배낭을 짊어진 청년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바로 성진이었다.

"룰라룰라……."

콧노래를 흥얼거린 성진의 얼굴에는 환한 기쁨이 어려 있었다.

그때였다.

땅, 땅, 투쿵, 투쿵.

어디선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경쾌한 망치질 소리가 들려온다.

'아, 사부님이 말씀하신 그 대장간이구나!'

주성진은 그 소리를 따라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채 반 각도 되지 않아 만물대장간이라고 적힌 낡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대장간의 외관은 큰 규모도 아니고 허름했다. 전생에 큰 대장간만 접한 성진에게는 그 모습이 성이 차지 않았다.

'하긴, 여긴 시골의 평범한 대장간이지.'

삐죽하게 문이 열려 있는 대장간에 들어서자마자 후끈한 열기가 성진에게 몰려왔다.

'음, 상당히 덥군.'

대장간 구석에 놓인 화로에는 시뻘건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화로 옆에는 담금질할 때 사용하는 물통이 놓여 있었고, 그 옆에 놓인 모루 위에 검을 얹고 상의를 탈의한 채 망치질하는 중년인이 보였다.

땀이 번들거리는 상체에는 우람한 근육이 불끈 치솟아 있었는데,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제법 큰 흉터가 몇 군데 눈에 띄었다.

한참 일에 열중하는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성진은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았다.

한편 대장장이는 대장간에 들어온 성진에게 눈길 한 번 돌리지 않고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 순간 성진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그의 발이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 발로 풀무질을 동시에 하고 있었구나, 보통은 사람을 두어 일을 나누어서 하는데.'

그러고 보니 그 외엔 일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지지직…….

대장장이는 방금 담금질한 검을 물속에 넣고 식히더니 다시 꺼내 살펴본다.

'뭐, 그런대로 괜찮군.'

그러던 그가 지켜보는 성진에게 고개를 돌렸다.

"이봐. 네가 구두쇠 영감의 셋째 제자냐? 아니지 일꾼인가? 흐흐."

성진은 욱했지만 애써 감정을 누르고 있었다.

'사부 말마따나 괴팍한 자로군.'

"안녕하세요, 형산파 제자 주성진이라 합니다. 한데 아저씨, 일꾼이라뇨, 제가요?"

그러자 그가 싱긋 웃는다.

"하하. 네 사부가 고아들을 데리고 키우면서 일꾼으로 부려 먹는다는 소문이 자자하거든, 그러고 보니 네 녀석은 얼굴이 반반한 게 여자깨나 울리게 생겼는데……."

"아이, 그런 것 아닙니다. 그리고요, 저희 사부님은 훌륭하신 분입니다."

"오 그래? 그 구두쇠가 그렇다는 말이지, 하하. 어린 녀석이 제법 심지가 굳구나."

"저 어린아이 아닙니다. 이래 봬도 꽉 찬 스물이라고요."

대장장이는 간만에 성진과 토닥토닥하는 게 즐거운 모습이다.

순간 그가 쇠로 만든 탁자를 가리켰다.

"저기 앉아서 잠시 기다려라, 손잡이를 만들어야 하니까."

성진이 탁자에 가서 앉자 곧바로 그는 완성된 검의 손잡이에 가죽을 입히는 작업을 시작했다.

잠시 후,

'다, 되었군. 녀석이 귀여워서 내가 신경 좀 썼지, 후후.'

그는 완성된 검을 들고 성진의 맞은편에 앉았다.

"전에 죽다 살아났다며?"

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네. 그렇습니다."

"끌끌, 운이 좋구나. 난 이무송이라 한다. 구두쇠 영감과는 시답지 않은 인연으로 엮인 사이지, 하하."

"무슨 인연인지?"

"네 사부에게 물어봐라."

성진은 대화 중에 대장장이를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음, 아무리 봐도 평범한 대장장이는 아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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