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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5화 (5/250)

005화 주성진 환생하다 (4)

"한데 말이다. 형산파에도 서고 아니, 그러니까 무고가 있을 것 같은데?"

"제가 막 그 말을 하려는 참이었어요, 그러니까 실종사건이 일어난 직후에 본 파에 의문스러운 큰 화재가 일어났어요. 그 바람에 무고를 포함한 전각들이 모두 불에 타버렸고 화재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제자들은 살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답니다."

"……."

"당시 일곱 살에 불과했던 사부님도 형산파를 쫓기듯 떠났다가 나중에 고아였던 저희를 데리고 다시 형산에 돌아온 거예요."

'음, 고아라……. 한데 그 화재 좀 많이 구린데?'

이야기를 듣던 주성진은 화재 사건에 크나큰 의문이 들었다.

'화재는 뭔가 곡절이 있는 게 틀림없어, 혹 암상 놈들이 무공을 훔치고 불을 지른 건 아닐까?'

어디까지나 막연한 추측이었다.

그러면서 주성진은 자신에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허허, 뭐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벌써 새로운 삶에 적응하기 시작했구나. 그래, 기왕 이리된 것, 앞으로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자고!'

굳게 마음을 잡은 그의 눈이 샛별처럼 빛났다.

'음, 일단은 여기에 적응해야겠지. 그리고 기회를 봐서 휘주 상단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봐야겠다. 그리고 날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놈들도…….'

"사형,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세요?"

"아. 아니다. 그럼 한수야, 우리는 사부님이 어릴 적에 거두신 거냐?"

주성진이 친근하게 불러주니 진한수는 기분이 좋아졌다.

"뭐, 완전히 어린 나이는 아니에요, 사부님이 저흴 거두실 때 제가 여섯 살로 제일 어렸어요, 저희는 사부님이 근골이 우수하다고 해서 여러 보육원에서 선별해서 데려온 거예요."

주성진은 아이들을 보육원에서 데려온 게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사부님은 왜 우리를 거둔 것이냐? 그냥 우리가 불쌍해서?"

"뭐. 그런 것도 있지만, 저희를 데려온 건 문파를 재건하기 위해서랍니다. 사부님은 사실 막싸움에 길들어 있기에 다른 무공을 제대로 익힐 수 있는 몸이 아니에요. 그래서 저희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어요."

성진은 문파를 재건하기 위한 사부의 의지, 집념에 절로 머리가 수그러졌다.

동시에 본인의 근골이 무공이 익히기 나쁘지 않음을 알고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그럼 우리의 이름과 성은 보육원에서 지어주었겠네?"

"네. 맞아요, 사형은 주성진이죠, 헤헤."

주성진은 정말 운명의 장난 같았다.

'허, 나와 똑같은 성에, 똑같은 이름을…….'

주성진은 잠시 감상에 젖다 전생의 상인답게 지금 이곳의 재정 상태가 궁금해졌다.

"한수야,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 말아라."

"……."

"미안한데 먹고는 살 만하냐?"

"헤헤, 그럼요, 저희 경작지가 꽤 되거든요. 사부님이 그러시는데 이 일대 땅들이 모두 저희 소유래요, 황제로부터 인정받아 세금도 내지 않아도 되고요."

주성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세금은 내지 않는 거냐? 나라에서 정한 게 있을 텐데."

"그야, 저희가 나라에서 인정한 무림의 일원이니까 그렇지요, 하지만 나라에서 협조를 요청하면 반대급부로 도와줘야 한대요. 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군요, 형산 일대의 땅에 대한 권리는 사부님이 우연히 밭을 일구다 땅문서를 발견해서 알게 되었데요."

성진은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음 무림이 별개의 세상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세금을 한 푼 내지 않을 줄은 몰랐구나. 아무튼, 다행이다, 땅이 있으니 굶어 죽진 않겠구나. 가만 아까 화재로 모든 게 타버렸다고 한 것 같은데.'

"한데 말이야, 땅문서는 타지 않았던 모양이구나?"

"네. 다행히요, 철궤 안에 들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요. 그거 아세요, 무에 대한 재능도 저희 중에 사형이 으뜸이라는 걸?"

주성진이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말이냐?"

"그래요. 사부님이 늘 한탄하셨어요, 뒷받침만 제대로 한다면 크게 될 재목인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고요."

"그렇단 말이지……."

주성진은 주먹을 꽉 쥐었다. 돌연 복수심이 불타올랐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무공을 배워야겠다.'

미래가 뒤틀리지 않았다면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 간 자들은 분명 살아 있을 게 분명했다. 병이나 사고로 죽지 않는 한…….

'잘살고 있어라, 네놈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주성진은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차근차근 풀어 가보자,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니까. 우선 생각과 말투부터 젊어져야겠구나.'

주성진은 자신의 젊었을 적을 생각하며 그 나이에 어울리는 사고방식과 말을 연습하기로 했다.

그 순간 진한수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성진을 바라보았다.

"사형, 제발 그 쉽게 흥분하는 성격 좀 고치세요, 구엽자초를 발견했다고 좋아하다가 발을 헛디뎌 그만 사고가 일어났잖아요."

주성진은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후후, 난 무턱대고 흥분하는 성격은 아니거든…….'

"알았다, 앞으로는 조심하마."

저녁이 되었다.

조촐한 식사 자리에 값싼 분주가 올려져 있었다.

주성진은 첫째 사형 곽진규, 둘째 사형 임정후, 그리고 바로 밑 사제인 양찬기와 말을 섞으며 그들에게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다. 여전히 기억상실증에 걸린 모습을 연기하면서…….

사부인 오강일은 흐뭇한 표정으로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자. 이제 파종은 마무린 듯하고… 후후."

사부와 달리 후덕한 인상의 곽진규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사부를 바라보았다.

그는 얼마 전 그의 사부가 동네 서점에서 책 한 권을 사 온 걸 알고 있었다.

"아이코 사부님, 보아하니 새로운 비급이라도 구한 모양입니다, 헤헤."

익살스러운 표정과 달리 그의 몸은 근육질에 우람했고 누가 봐도 힘이 장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녀석, 본 모양이구나……. 이번에 내가 은자 1냥이라는 거금을 들여 구한 것이 있느니라, 아주 괜찮은 무공이지, 하하하."

주성진은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무공에 관한 문외한이라 해도 은자 1냥으로 괜찮은 비급을 구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에이, 사부님, 예전에 구해주신 삼재 검법과 육합권도 아주 괜찮은 무공이라 하셨지요. 알고 보니 저잣거리에서 흔한 무공이던데……."

"녀석아, 너희가 깊은 뜻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삼재 검법과 육합권도 아주 괜찮은 무공이야, 너희는 삼재 검법과 육합권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줄 아느냐? 오랜 세월 수정 보완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야."

그 순간 둘째인 임정후가 돌연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키가 커서 호리호리하게 보이지만 단단한 근육을 옷 속에 감추고 있었다.

"사제. 설마 글자를 까먹진 않았겠지?"

"네. 그렇습니다만……."

"다행이다. 그러면 이번에도 쉽게 풀어 줄 거지? 지난번처럼."

주성진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사부인 오강일이 나섰다. 그는 주성진의 표정을 보고 자신의 제자가 기억을 잃어버렸다는 걸 상기한 거였다.

"성진아. 저 녀석의 말을 들어주지 말아라, 네가 그럴수록 공부는 안 하고 게을러질 테니까."

그러자 임정후가 툴툴거렸다,

"휴, 사부님이 책의 내용을 자세히 풀어주지 않으니까 그렇지요. 달랑 시범 몇 번 보여주는 게 전부잖아요."

"이 녀석! 풀어줄 게 뭐 있어, 그냥 글을 읽을 줄 알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는데! 더욱이 친절하게 그림도 그려져 있잖아."

매상을 올리기 위해 서점에서 파는 비급들은 삽화가 꼭 들어가 있었다.

"사부님, 글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요, 농사짓느라고요."

오강일이 임정후를 노려보았다,

"이것아! 그럼 성진이는 어찌 글을 깨우칠 수 있었지? 핑계 대지 마!"

"그야, 저 녀석이 똑똑해서 그런 것 아니겠어요. 헤헤."

그 순간 넷째인 양찬기가 입을 열었다. 날카로운 눈매가 사부를 연신 빼닮았다.

"저, 사부님, 제가 알기론 삼재검법과 육합권만 익히고도 무공 최고수 반열에 오른 분이 있다던데요."

오강일은 고개를 끄떡였다.

"맞는데, 다만 그 사람은 내공이 범접 불가였어,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

"그러면 내공만 강하면 천하제일 고수로 거듭날 수 있는 건가요?"

"뭐 적어도 5할은 먹고 들어간다고 봐야지. 말 나온 김에 호흡법을 말해 보아라, 성진이 기억을 되찾을 수 있도록 우리가 도와줘야지 않겠냐!"

"네, 그럼요."

양찬기는 청풍무결 상의 좌식 호흡법을 떠올렸다.

"음, 정신을 한군데 집중하면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이니… 기운은 하단전에서 시작해서 기경팔맥을 돌아 다시 하단전에 모이고, 이 기운은 천지의 조화 속에 사람과 천지를 일치시키는 힘이 된다……."

양찬기의 말이 끝나자마자 흐뭇한 표정을 짓던 오강일은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찬기가 말한 게 좌식 호흡법의 기본이란다, 여전히 기억이 나진 않겠지?"

주성진은 순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뭐가 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죄송합니다. 사부님."

"음, 괜찮아, 아무래도 새로운 비급은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성진이가 이전 무공을 되찾으면 그때 너희들에게 배포하마."

"……."

"성진아, 청풍무결과 삼재 검법 그리고 육합권을 다시 익히거라."

"네. 사부님."

"좋아, 그리고 일주일 후부터는 새벽 체력 훈련에 동참하도록 해라. 뭐니 뭐니 해도 기본 체력을 가지지 못하면 무공을 본궤도에 올려놓을 수가 없는 법이다. 알겠느냐?"

주성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떡였다. 아직은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맞는 말 같았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일주일이 화살같이 지나갔다.

"헥, 헥."

입에서 단맛이 난다.

동이 틀 무렵 일어난 주성진은 사형제들의 손에 이끌려 뜀박질하며 산을 타고 있었다.

늘 있는 일이라지만 환생한 그에게는 심리적으로 몹시 힘든 일이었다.

'이런, 미치겠군! 이러다 쓰러질라.'

한데 숨소리는 거칠었지만, 몸은 용케도 잘 버텨주고 있었다.

이는 전생의 몸이었다면 도저히 엄두조차 못 낼 일이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주성진은 큰 소득을 얻어 가고 있었다.

그건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한 믿음이었다. 두 달 동안 누워 있던 몸치고는 잘 적응하고 있었다.

물론 지난 일주일 동안 열심히 몸을 만들긴 했다.

'그래, 이런 추세라면 머지않아 사형제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한 시진이 흐르고 땀이 뒤범벅된 그들이 돌아오자 사부가 그들을 반겼다,

"자, 수고했다, 모두 씻고 운기조식으로 피로를 풀도록 하여라, 그리고 성진이 너는 씻고 바로 내 방으로 오거라."

"네. 사부님."

잠시 후 주성진이 방으로 들어오자 오강일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자, 앉아라."

"네, 사부님."

"그래, 할 만하더냐? 두 달 동안 쉬었는데……."

주성진은 내심 투덜거렸다.

'뭡니까, 두 달 동안 쉬었는데 배려를 해주어야지.'

속마음과 달리 주성진은 씩씩하게 말한다.

"괜찮습니다. 할 만했습니다."

"녀석, 다행이다, 입이 댓 발로 나올 줄 알았는데, 허허."

오강일은 성진의 어깨를 다독이며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운기조식을 해보도록 하자. 네 몸은 이미 알고 있으니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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