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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3화 (3/250)

003화 주성진 환생하다 (2)

'은인이구나!'

주성진은 뭐라고 고맙다고 말해야 할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서글서글한 눈매의 소년이 환하게 웃으며 먼저 입을 열었다.

"셋째 사형! 드디어 깨어났군요. 전 사형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올 줄 알았어요."

'뭐라…….'

고맙다는 말이 쑥 들어갔다.

'아니야, 환청을 들은 거겠지.'

현실을 애써 부정한 주성진은 눈을 크게 뜨고 귀를 활짝 열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러자 약사발을 한쪽에 놓은 소년이 눈을 찡긋거린다.

"에이, 사형! 농담하지 말라고요, 사고를 당했다가 두 달 만에 깨어났는데 제가 반갑지 않은가요?"

"뭐, 사고? 그리고 두 달……?"

"사형! 두 달 동안 혼수상태로 있다고 깨어났다고요."

'하, 이거야 원…….'

얼굴을 찡그린 주성진이 관자놀이에 손을 갖다 대다 무심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억! 내 손이 왜 이래?'

본인의 희고 길쭉한 손이 아니다, 검게 그을리고 투박한 손이었다.

'이건 내 손이 아니야. 굳은살이 박인 손바닥이라니, 그렇다면 내 얼굴을 봐야겠어.'

"저… 혹 거울 있습니까?"

주성진은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어, 내 목소리가 왜 이래!'

방금 내지른 목소리는 이십 대 초년의 듣기 좋은 음색에, 낭랑한 목소리였다.

소년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방 한편에 놓여 있는 낡은 청동거울을 가져왔다.

거울을 들여다본 주성진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절로 헛숨이 터져 나왔다.

'헉!'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매일 보던 자신의 얼굴이 아니었다.

햇볕에 탄 흔적이 보이지만 인상 좋고 젊고 잘생긴 얼굴이 거울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희끗희끗한 머리칼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새까만 흑발이 탐스럽게 자라나 있었다.

'허, 뭐야! 젊고 잘생긴 청년이라니!'

자신의 한창 시절을 되돌아봐도 거울에 비친 얼굴에 비한다면 약간의 모자람이 있었다.

'이것 참…….'

한동안 거울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넋을 놓고 있을 때였다.

흔들흔들.

주성진의 어깨를 흔든 소년이 말을 건다, 소년이 보기에 그의 사형이 좀 이상했다.

"사형! 왜 그러세요? 혹 뭐가 잘못되기라도?"

고개를 도리도리 흔든 주성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난 분명히 살아 있다. 그렇다면 그건가?'

어렴풋이 생각이 든 건 자신의 혼이 타인의 몸에 빙의한 것 같다는 거였다.

"아아,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단지… 음……."

"사형, 왜 이러세요. 갑자기 제게 높임말을 쓰고!"

주성진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 젠장… 적응이 안 되네.'

주성진은 갑자기 목이 말라온다.

"음, 미안하지만 물 좀……."

"그럼, 물 대신 약사발을 드세요. 제가 정성 들여 다린 거리고요."

"고, 고마워……."

주성진은 쓰디쓴 약사발을 물 대신 마셨다.

소년은 그런 주성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돌연 이마를 쳤다.

'아차차.'

"사형! 사부님께 알려야겠어요, 잠시만요!"

"어, 어디 가오, 아 아니 어디 가느냐……?"

소년은 주성진의 말을 무시하고는 곧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주성진은 뻗었던 손을 슬그머니 거두었다.

'휴, 새로운 인물의 등장이군. 사부라…….'

주성진은 턱을 괬다. 무엇보다 지금의 상황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를 판단해야 했다.

'음, 우선 내가 작금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게 먼저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다. 모든 게 꿈속 같고 회의감이 든다면 사사건건 그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할 게 뻔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언뜻 떠오르는 데로 정말 내 혼이 타인의 몸에 빙의한 걸까?'

순간 주성진의 뇌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게 있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그건 바로 불가의 윤회 사상이었다. 전세와 현생 그리고 내세가 수레바퀴처럼 돌고 돈다는…….

주성진은 불심이 깊은 불제자는 아니지만 때때로 절에 들려 시주, 봉양하고 주지 스님으로부터 종종 불법을 듣곤 했었다.

'내가 환생을! 그래 환생한 것이 틀림없어!'

주성진은 지금의 믿기지 않는 사실을 환생이라 믿었다. 뭐,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 수도 있었다.

'그래. 어쨌든 큰 실마리는 풀었으니 이제 하나하나 풀어가 보자. 우선은 내가 누구의 몸에 환생한 거지?'

주성진이 제일 궁금한 건 자신이 누구의 몸에 환생했느냐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몸의 주인에 대한 기억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남의 몸을 빌려 환생했는데, 정작 그에 대해선 아는 게 없으니…….'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린다.

'답답하군.'

그 순간 사부라는 사람이 곧 당도한다는 말이 생각났다.

'만약 내가 사실대로 말한다면…….'

주성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허, 그걸 누가 믿겠어, 사실대로 말한다면 미친놈 취급당할 거야.'

결국, 방법은 몸의 주인으로 사는 것뿐이었다. 더구나 자신은 당장 의지할 곳이 없었다. 모든 기반은 물거품처럼 사라졌고.

순간 주성진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자신의 머리에 붕대가 감겨 있는 것을 보고 그럴싸한 생각이 떠오른 거였다.

'그래, 난 사고의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거다. 이런 일이 왕왕 있다고 들었으니, 허무맹랑, 얼토당토않을 이야기는 아니지, 암…… 그렇고말고.'

한편 밖으로 나간 소년은 공터를 지나 밭으로 향했다. 거름 냄새가 사방에 가득했다.

'아휴, 똥 냄새, 여태 십 년을 이렇게 살았는데도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군…….'

코를 부여잡으며 투덜거린 그가 사부를 발견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사부님, 셋째 사형이 깨어났어요?"

허리를 굽혀 괭이로 밭을 고르고 있던 사부가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그 순간, 같이 작업하던 청년들도 덩달아 허리를 폈다.

모든 이의 시선이 소년에게 쏠렸다.

"뭐라고! 셋째가 깨어났다고!"

"네. 방금 깨어났어요, 단지……."

"단지, 뭐냐?"

소년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섣불리 말하기가 조심스러웠다.

"아. 아니에요. 사부님, 빨리 가보세요."

그들은 괭이를 내팽개치고 한달음에 주성진이 누워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다다다다.

주성진은 인기척을 듣고 방문을 주시했다. 침을 꼴깍 삼킨 주성진은 어느 때보다 긴장한 상태였다.

'음 떨리는군, 침착하자…….'

잠시 후,

덜컹…….

일단의 무리가 방문을 박차고 들어오고 있었다. 주성진은 그들 중 누가 사부인지는 쉽사리 알 수 있었다.

주성진의 눈에 비친 사부의 모습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에 날카로운 눈매를 지니고 있었다.

그들 모두 허름한 농부 차림이지만 절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음, 저 사부라는 사람, 눈매가 날카로운 게, 꽤 성깔 있게 보이는데. 나이는 40대 중반인 것 같고.'

그 순간 사부라는 인물이 주성진을 보더니 돌연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어느새 날카롭던 인상은 사라지고 인자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하하하. 성진아! 깨어났구나. 난 돌팔이 의원 놈이 장례 준비하라는 말을 믿지 않았어!"

'뭐라 성진이, 이름이 같은 건가……?'

주성진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 하나 막상 말을 내뱉으려니 쉽지 않다.

"녀석아! 말 좀 해봐라, 두 달 만에 보는 사부인데 반갑지도 않으냐?"

기다리지 못한 그가 말을 재촉하자 주성진은 심호흡했다.

'잘해 보자, 나는 잘 해낼 수 있다!'

"저 사, 사부님……. 죄송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같습니다. 도통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놀란 그의 모습이 주성진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뭐라! 그게 정말이냐? 내가 누군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냐?"

"죄송합니다, 사부님."

그는 서서히 안색을 회복하더니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음, 네가 미안할 건 아니다. 네가 이렇게 깨어난 것만 해도 하늘이 도운 것이야……."

"그래도요."

순간 사부는 다시 한번 확인하기로 했다. 끔찍한 장면의 기억이 떠오를지도 모를 일이었다.

"성진아! 뭔가, 아주 강렬한 것이 떠오르는 게 없느냐? 아찔했던 것, 뭐 그런 것……."

주성진은 사부라는 자를 바라보며 힘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심 연기하느라 심장이 두근거렸지만, 전생의 상인답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네, 전혀요."

얼핏 그에게서 실망한 표정이 보이다 사라졌다.

"넌 형산 자개봉에 약초를 캐러 올라갔다가 절벽에서 굴러떨어져 머리를 다쳤었지……."

순간 주성진은 이게 운명의 장난인가 싶었다. 너무 공교로웠다.

'하, 똑같이 절벽에서 떨어졌는데, 그는 죽고 난 그의 몸에 환생하고…….'

"성진아! 실망하지 마라, 기억은 차차 돌아올 거야."

"네, 저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하나 주성진은 내심 고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에게는 돌아올 기억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편, 주성진의 회복을 기뻐하던 청년들은 주성진이 기억상실증에 걸렸다는 말에 너도나도 입을 뻥긋하려다 멈추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갈피가 서지 않는 모습들이었다.

그 순간 사부는 눈길을 막내 소년에게 돌렸다.

"막내야. 우리는 파종일을 마무리해야 하니 그동안 셋째를 보살피거라."

"네. 사부님."

말을 마친 사부는 다시 멀뚱멀뚱한 표정의 주성진을 바라본다.

"성진아, 마음을 잘 추스르거라, 모두가 네가 기억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울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네. 사부님."

주성진은 농사일에는 때가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잠깐 서운한 마음이 든 건 어쩔 수 없었다.

'비록 내가 죽은 그는 아니지만 두 달 만에 제자가 깨어났는데 다시 나가다니……. 처지를 바꿔 나라면 과연 저랬을까…….'

주성진은 사부라는 인물이 맺고 끝맺음이 분명한 자로 보였다.

사부와 제자들이 나가고 방 안엔 잠시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그래, 어색할 땐 대화가 최고지, 내 몸의 전(前) 주인에 대해 알아갈 필요도 있고.'

"음, 음, 뭘 좀 물어봐도 될까?"

"네. 그럼요, 셋째 사형, 뭐든 물어보세요."

주성진은 겸연쩍은 표정으로 막내를 바라보았다.

"이름이 뭐야, 그리고 나이는 어떻게 돼?"

"사형, 저는 진한수이고요, 올해 16살이 되었어요."

"아, 그렇구나, 내 이름은 성진인 것 같은데, 그럼 내 나이는 어떻게 되냐?"

주성진은 살짝 얼굴을 붉혔다. 그런 그의 모습에 진한수는 그가 기억이 나지 않아 부끄러워한다고 느꼈다.

하지만 실상 주성진은 그게 아니었다. 환생한 걸 감추고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을 묻고 있는 것이었다.

'이곳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나도 살아야 하니까.'

"사형의 나이는 열여덟이에요, 저와 두 살 차이죠, 그리고 저희 사형제들은 모두 한 살 차이예요. 그러니까 첫째 사형은 지금 스물이죠, 곧 장가를 들 나이에요, 헤헤."

"아, 그렇구나……."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이면서도 속에서는 거센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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