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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2화 (2/250)

002화 주성진 환생하다 (1)

"지금은 거의 존재감이 없지만, 한때는 대단했던 형산파의 무공이다. 내공심법과 몇몇 비급이 들어 있으니 심심할 때 읽어 보도록 해라. 난 별로 그런 쪽에 관심 없어서."

주성진은 고개를 끄떡였다. 하지만 속마음은 흥분의 도가니다, 내공심법이 들어 있다고 하니까…….

'하하, 내가 가진 취옥환 3개! 하오문에 팔려고 의뢰했던 건데 취소해야겠다. 이제 난 노후 걱정할 위치는 아니니까. 그중에 1개는 아버지께 깜짝 선물로 드려야지.'

취구환은 개방의 비전 영약이었다. 숨이 붙어 있는 자는 기사회생을, 무인이라면 최소 30년의 공력을 보장해준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취구환은 과거 그가 상행을 나갔다가 우연히 동굴에서 뼈만 남은 시신을 수습하다 습득한 영단이었다.

'그래, 기왕이면 무공도 익혀보자고, 한데 암상은 뭐지, 내가 알지 못하는데?'

"저, 방금 암상이라고 했습니까?"

"하하, 넌 모를 수도 있겠구나, 은밀하게 밤을 지배하는 상인집단이지. 거슬러 올라가면 역사가 상당히 오래되었어. 신기루처럼 있는 듯 없는 듯, 그런 존재야. 그리고 언제나 전면에 내세우는 건 다른 이름이지, 어쨌든 확실한 건 그들의 뿌리는 마교라는 것이야."

"그러면 저희에게 위협을 가할 수도 있겠군요."

상단주는 고개를 끄떡였다.

"물론, 다만 그들과 잘 협의하면 된다. 그들은 언제나 그들의 사업에 지장이 생기면 먼저 연락이 오거든, 암상의 이름으로……. 무조건 그들의 요구를 거절하면 문제가 생기지만 타협하면 된다. 난 한 번도 그들에게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 그 말은 휘주 상단이 하는 사업이 그들에게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뜻이겠지."

* ? ? * ? ? *

"워, 워, 워……."

갑자기 앞서가던 짐수레들이 줄지어 멈춰 섰다.

표행의 말미쯤에서 말을 몰고 가던 주성진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앞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휘주 표국의 서 표두가 쏜살같이 말을 몰고 주성진에게 다가왔다. 둘은 막역한 친구 사이였다.

"주 행수, 아무래도 하루 정도는 쉬어 가야 할 것 같아. 소금을 너무 많이 실었더니 노새들이 힘들어하네."

"이봐, 서욱, 양주에서 내가 그러지 않았나! 표행을 둘로 나누자고 말이야, 무거운 것과 덜 무거운 것으로 말이야, 그때 뭐라고 그랬어, 문제없다면서?"

"휴, 미안하네, 나도 이리될 줄은 몰랐어. 그런데 말이야 우리도 사정은 있어. 변방에 군량미를 보내느라 표사들과 쟁자수들이 긴급히 차출되었다고! 그 바람에 인원이 빠듯해진 거지. 그러지 말고 성진아, 우리는 한 몸 아니냐. 네가 사정을 좀 이해해줘라."

주성진이 속한 휘주 상단에는 다섯 개의 단이 있었는데 그중 한 개의 단이 표국업을 하는 곳이었다.

그때였다, 주성진의 옆에서 말을 몰던 곽 행수가 입을 열었다.

"형님. 묵어가시지요, 하루 정도 늦는다고 조장님이 뭐라 할 것 같진 않거든요. 저희의 사정을 안다면 용인해 주실 거예요."

주성진은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문제야 없겠지, 최우선으로 군량미 조달을 차질 없이 해야 차와 소금전매권을 나라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으니까. 그래도 빨리 가고 싶은데.'

주성진은 조선의 개경 상인으로부터 산 고려인삼을 가지고 호위 없이 먼저 떠날까를 생각하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 산적에게 모두 털리면! 그것뿐인가, 목숨까지 털릴지도 모르는 일이야.'

결국, 표국의 도움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이 직접 경쟁 상단의 상인들을 물리치고 최고급 비단 100필과 바꾼 고려인삼이었다.

한숨을 내쉰 주성진은 서욱을 보며 고개를 끄떡인다.

'휴…….'

"딱 하루만이다. 한데 어디로 갈 거냐?"

서욱은 미리 생각한 곳이 있는지 주저 없이 말한다.

"영곡 객잔에서 쉬어 가자고."

"이봐, 영곡사가 있는 곳 말이냐. 거긴 우리와 가는 방향과 다른데."

"뭐, 그래 봤자, 반 시진이야. 대신 영곡 객잔은 내가 보장하지."

그 순간 주성진은 기억을 더듬었다.

'음, 영기(靈氣)가 있는 골짜기에 지은 절이라서 영곡사라 했다던가…….'

잠시 후, 영곡 객잔에 여장을 푼 주성진은 잠시 낮잠을 청하려 누웠다.

똑, 똑.

"누구요?"

"형님. 곽천일입니다. 옆에 서 표두님도 같이 있어요."

"아직 저녁때도 안 되었는데 곽 행수가 웬일이야?"

곽천일은 서욱을 바라보며 서로 눈짓 교환을 한다. 두 사람의 얼굴에서 살기가 피어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헤헤, 아직 저녁이 되려면 멀었는데, 여흥 삼아 자금산이나 오르시지요. 저희가 미리 술과 다과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하산하는 길에 영곡사도 들리고요……."

자금산은 강남사대 명산의 하나로 불리나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니었다. 주성진은 회가 동했다.

'음, 그럼 바람이나 쐐볼까, 정상에서 가볍게 한잔하는 것도 운치가 있을 것 같군.'

"알았어, 곧 준비하고 나가지."

* ? ? * ? ? *

산 정상에 자리 잡은 세 사람은 음식을 펼쳐놓고 주거니 받거니 술을 기울였다.

얼굴이 살짝 발그스레해진 주성진은 산 아래를 바라보며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허허. 이거 정상에서 골짜기의 절경을 보려 했는데, 뜻밖에 운무를 볼 줄이야."

사실 동이 트려는 새벽 무렵도 아니고 대낮에 운무를 보는 건 좀체 드문 일이었다.

서욱이 씽긋 웃는다.

"이봐, 오늘 산 오르기를 잘했지, 안 그런가?"

"그건 그래."

"성진아. 우리 이러지 말고 자리를 옮기자, 낮술은 이만하면 된 것 같으니 좀 더 가까이서 운무를 감상하는 것이 어때?"

주성진은 얼굴을 찡그렸다. 지금 그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처지다.

"이봐 절벽 가까이 가는 건 위험한데, 갑자기 강풍이라도 불면, 그러지 말고 이만 하산해서 영곡사에 들리자고."

서욱은 주성진 모르게 곽천일에게 슬쩍 눈웃음을 치며 말한다. 그 순간 곽천일이 미미하게 고개를 끄떡이고 있었다.

"이봐 내가 누군가! 표두 중에 가장 무위가 뛰어난 서욱이라고! 네가 있는데 웬 걱정이야, 이거 오늘따라 너무 소심한데, 너!"

"그래, 그래 알았다. 대신 오래 있지는 말자고."

"그럼, 차 한 잔 마실 시간이면 충분하지, 하하."

셋은 정상 아래의 절벽에 가까이 다가갔다. 한데 어느 순간 주성진만 앞서가고 둘은 뒤에서 멈추었다.

스윽.

순간, 이상한 낌새에 놀란 주성진이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헛!'

곽천일이 단검을 들고 비웃고 있었다. 주성진은 놀라 소리쳤다.

"이봐, 곽 행수, 뭐 하는 짓이야?"

"흐흐흐, 형님, 좋은 말 할 때 취구환 세 알을 내놓으시오, 어서요!"

"네놈이 어떻게 그걸?"

주성진이 놀라 되물었다.

"당신이 그걸 몰래 처분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하오문 친구한테서 들었소이다. 하하. 그리고 전부터 당신이 아니꼬웠소, 이건 나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이들의 공통된 생각이오. 단주님이 칭찬 한 번 했다고 기고만장한 꼴이라니……."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실력이 있으면 나를 밟고 올라서면 되는 거지!"

"흥! 당신만 없다면 내 앞길은 탄탄대로야!"

주성진은 곽천일을 보며 그만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자신을 향한 편협한 질투심이 취구환으로 폭발한 것 같아서였다.

'아뿔싸, 보물은 화를 부른다더니, 결국…….'

주성진은 징그럽게 웃고 있는 서욱을 애절하게 바라보았다.

"서욱. 우린 친구 사이 아니었나?"

"물론 친구였지, 곽 행수에게 취구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흐흐."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주성진은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을 직감했다.

'아아. 이들에게 취구환을 내준다고 해도 날 죽여 입막음할 게 분명해!'

주성진은 품속의 취구환을 만지작거리며 염두를 굴렸다.

'어차피 난 저놈들에게 죽는다, 그렇다면 차라리 절벽에서 뛰어내리자. 요행히 취구환이 날 살릴지도 몰라.'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었지만, 주성진은 애써 침착하려 노력했다.

'부처님, 굽어살피소서…….'

"아아악!"

등허리를 깊게 베인 주성진의 비명이다. 그는 절벽으로 도망쳐 뛰어내리다 그만 서욱에게 일 검을 얻어맞고 말았다.

쉭!

그 순간 주성진의 신형은 무섭게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한데 주성진의 한 서린 소리가 또다시 들려온다.

"아악, 안 돼! 내 취구환!"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이 뒤집힌 주성진의 품속에서 취구환이 빠져나온 것이었다.

꽈꽈꽝!

그 순간 마른하늘에서 뇌성벽력이 치더니 먹구름이 끼고 강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영곡사의 주지가 이 광경을 보며 염주를 움켜잡았다.

'아, 백 년 만에 천겁윤회진이 발동하는구나. 아미타불…….'

* ? ? * ? ? *

"끄으응."

앓는 소리를 낸 주성진이 눈을 번쩍 떴다.

'여기가 어디지? 천국인가, 지옥인가…….'

의식이 돌아온 주성진은 낯선 풍경을 돌아보며 멍하게 눈을 깜빡였다.

자신은 정갈하지만 낡은 침대에 누워 있었고 나무로 투박하게 만든 가구들이 눈에 띄었다.

과거 자신이 시골 농가에 유숙했을 때와 어딘가 비슷했다. 단지 다른 게 있다면 은은한 약 향이 콧속으로 감돌고 있다는 거였다.

'음…….'

왠지 묘하고 아련한 기분이 든다.

그 순간 절벽에서 뛰어내렸던 일이 떠올랐다.

등허리에 일 검을 얻어맞고 속절없이 추락하며 온몸이 산산조각이 날 것 같은 느낌에 치를 떨었다.

그러다 한없이 밝은 빛으로 빨려 들어가다 의식을 잃었다.

'난 분명 죽었을 텐데,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것인가.'

주성진은 자신의 허벅지를 강하게 꼬집었다.

'아야…….'

아프다, 이건 뭔가 굉장히 이상하다. 주성진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등허리에 자상이…….'

손을 더듬어봤지만,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다. 한데 머리가 왠지 부자연스러웠다.

뭔가가 조이고 있는 느낌이 든 거였다.

손을 이마에 갖다 댄 주성진은 붕대의 감촉을 느끼고 슬그머니 미소 지었다. 나름대로 짧은 순간 상황분석을 한 것이다.

'하하, 그런 거였어. 난 절벽에 떨어져 머리를 다쳤고 누군가가 날 구한 것이다. 의식을 잃은 동안 등허리의 상처는 말끔히 나았던 거고.'

살았다는 안도감에 다시 온몸이 나른해졌다. 피곤함이 몰려오자 주성진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끼이익…….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자 주성진은 다시 벌떡 일어나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더벅머리에 주근깨투성이인 소년이 약사발을 들고 들어오고 있었다.

둘은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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