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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생상인-1화 (1/250)

환생상인

001화 프롤로그

칠흑 같은 밤, 휘주 상단의 내원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웅장한 전각에 두 인영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은 나란히 경비 무사가 열어준 문을 열고 안쪽으로 사라졌고 얼마 후 상단주의 집무실 밖에서 한 사내가 안절부절못하고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주성진, 나이는 36세다. 남들 같으면 이미 결혼해서 아이를 서넛 낳았을 나이건만 그는 아직 독신이었다.

반 시진 전, 그는 부랴부랴 새 옷을 갈아입고 몸단장을 해야만 했다.

다음날 상행을 떠나기 위해 잠을 일찍 청한 그를 깨운 건 처음 보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녀는 상단주의 개인 호위이자 시비로 상단주의 명으로 주성진을 데려오기 위해 그의 거처를 방문한 거였다.

"어서 들어가 보세요."

"아, 네……."

도대체 자신을 왜 찾았는지 알 수 없다. 일개 행수인 그에게 있어 상단주는 범접할 수 없는 존재다.

더구나 휘주 상단은 보통 상단이 아니었다. 당당히 중원 5대 상가에 이름을 올린 거대 상단이었다.

그가 거느린 무수한 사업체에 일하는 자만 물경 만 명이 넘었다.

똑똑…….

"들어와!"

주성진은 문을 열고 들어가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상단주님, 안녕하십니까, 대외무역단 소속 행수 주성진입니다."

집무실 책상에 앉아 서류를 보던 그가 일어났다. 백발이 성성한 머리카락이 그의 연륜을 말해주고 있었다.

"저기로 앉지."

"네."

주성진이 앉자 그가 접객용 탁자 맞은편에 앉아 물끄러미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후후, 긴장 풀어."

"네. 상단주님."

"내가 널 왜 보자고 했는지 모르겠지?"

주성진이 고개를 끄떡이자 그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마셨다.

후르륵.

주성진은 초긴장 상태라 느낄 수 없었으나 상단주의 마음속엔 잔잔한 파도가 일고 있었다.

"크음, 내가 널 보고자 한 건은 긴히 할 말이 있어서다. 지금부터 내가 한 말은 추호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니 놀라지 말고 평정심을 유지하기 바란다. 할 수 있겠나?"

조성진은 심호흡을 크게 하고 상단주를 바라보았다.

'내게 일생일대의 기회라고, 티끌만 한 실수도 용납 안 돼!'

"네, 제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도 평정심을 유지하겠습니다."

"하하, 빠른 적응력과 배포는 젊은 날의 나를 보는 듯하군."

"……."

그가 또 한 모금의 차를 마시더니 재차 입을 열었다.

"너는 내 성과 이름을 아느냐?"

갑자기 뜬금없다.

"성은 주, 이름은 중 자, 혁 자십니다."

"그렇지, 나는 주중혁이지, 그리고 너는 주성진이고."

주성진은 한 번도 그와 성이 같다는 걸 의식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뭔가 느낌이 이상하다.

그가 성이 같다는 걸 말하기 위해 밤늦게 자리를 마련했을 리는 만무했다.

'뭐지? 뭔가 있는데?'

"너의 성진이라는 이름은 내가 직접 지었다, 지금껏 내 기대대로 잘 커 주었지……. 음, 내가 너의 아비다!"

주성진은 둔기로 머리를 두들겨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내 아버지라고!'

주성진은 여태 자신을 업둥이로 알고 있었다. 강보에 싸여 버려진 그를 발견하고 키워준 건 휘주 상단의 행수였던 그의 양아버지였다.

그런데 지금 그게 사실이 아니란다.

"믿기 힘들겠지만 그건 사실이다. 널 나의 자식으로 키우지 못한 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미안하구나."

주성진은 그가 말한 행간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난, 결국 떳떳하지 못하게 태어난 것이로구나, 그러면 어머니는?'

"그리고, 네 어미는 네가 태어난 이듬해에 병사했다. 고질병이 있었던 게지, 그녀의 유언대로 강물에 재를 띄워 보냈다……."

갑자기 슬픔과 애잔함이 밀려들어 왔다.

간신히 감정을 억누른 성진이 그의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하나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이지 그에 대한 원망의 마음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음… 잘 알겠습니다. 상단주님."

"후후, 아버지라는 말이 쉽게 나오지는 않겠지. 자, 그러면 이제부터 본론이다,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건 바로! 널 나의 후계자로 지명하는 거다!"

주성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라, 나를 후계자!'

"너는 잘 모르겠지만 난 오랫동안 널 지켜봤다. 심지어 한번은 내가 직접 상대 상인으로 분장해 너를 관찰해보았지……."

"……."

"그리고 내린 결론이 더는 너를 후계자로 발표하는 걸 미루면 안 되겠다는 거였다. 넌 상인이 갖추어야 할 내 기준을 모두 통과했다. 이번 상행에 돌아오면 본격적으로 후계자 수업을 받도록 해라."

"……."

성진은 너무 갑작스럽고 놀라 할 말을 잃었다.

"너의 커다란 장점은 눈앞의 작은 이익에만 급급하지 않고 사람과의 신뢰 관계를 중시하더구나, 아주 좋은 모습이다. 인맥 관리가 허술하면 작은 장사에서 일시적으로 득을 볼지 몰라도 큰 장사에서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리고 너 밑의 부하들에게 신상필벌을 명확히 하는 것과 과감히 일을 맡기는 모습에서 큰 점수를 주었다."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든 솔선수범하고 책임 회피하지 않는 너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뭐 그 외 계산이 빠르다든가 두뇌가 명석하든가 하는 것들은 일일이 언급하지 않으마."

"……."

"네가 이번 상행을 다녀오면 정식으로 그리 선포하겠다. 그리고 3년 이내에 내 자리를 물려주겠다."

주성진은 정신이 멍멍한 가운데에서도 후계자가 되는 길이 그리 녹록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우선은 상단주에게는 자식이 있었고, 또한 휘주 상단 원로연석회의에서 다수결로 표를 얻어야 했다.

상단주라고 해도 후계문제만큼은 독단으로 처리할 수 없었다.

"네가 뭘 생각하는지 훤히 알겠구나, 하나 네가 생각하는 문제는 일어나지 않는다. 나를 믿어라."

'믿어라, 믿으란다…….'

상단주의 힘주어 말하는 말이 주성진의 머릿속에서 빙글빙글 돌았다. 불현듯 그의 마음속에서 야망이 눈을 떴다.

'그래, 해보자! 이런 얘기를 이렇게 갑자기 하는 데에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 같지만. 일단 해보는 거다.'

"잘 알겠습니다.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해 보이겠습니다. 아버님!"

"하하하. 역시 넌 내 아들이다. 자, 그럼 너에게 보여줄 게 있다. 지금, 이 순간 밖은 개미 새끼 한 마리 들어오지 못하도록 진식이 펼쳐져 있다. 천둔팔궤진이라고 하지, 나중에 이의 운용법을 알려줄 테니 그리 알고 일단 나를 따라와라."

"그러니까 전각 밖에 절진이 설치되어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다. 지금 이 전각 안에는 너와 나 단둘밖에 없다."

상단주는 주성진을 데리고 집무실을 나와 복도를 걸었다. 그리고는 집무실 옆쪽의 방으로 들어갔다.

막상 들어가 보니 방이라기보다는 커다란 전시관이었다.

거기에는 각종 골동품과 금불상 그리고 아름다운 수묵화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었다.

'와, 이거 돈으로 환산하면…….'

"놀랐지? 취미 삼아, 열심히 모았는데 이 정도가 되었지, 하하."

"대단하십니다."

"후후, 이걸 다 팔면 휘주 상단이 가진 재력의 2할은 족히 되고도 남을 것이다. 은자로 따지면 은자 300만 냥 정도."

주성진은 그저 입을 벌릴 수밖에 없다. 자신의 예상을 10배는 뛰어넘는 가격이었다.

"저, 이 귀중한 걸 이렇게 전시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경계는 철저히 하시겠지만요."

"하하하, 이건 다 모조품들이다. 진짜는 섬서성 장안에 있다. 지금이야 우리가 휘주에 자리 잡고 있지만, 너의 선조들은 섬서성 장안에서 천산제일 상단이라는 이름으로 비단교역을 하셨지."

"아, 그렇군요, 몰랐습니다. 그러면 혹 옛 천산제일 상단이 있는 곳에?"

상단주가 고개를 끄떡이며 자신의 품에서 둘둘 말은 종이를 꺼냈다.

"그렇지, 그곳 안전한 곳에 있다, 그리고 이건 내가 급히 작성한 것이다. 그곳을 찾는 지도와 기관을 여는 법이 적혀 있으니 지금 외우고 삼키거라."

"삼키라고요?"

"그렇다, 설마 못 하겠다는 건 아니지?"

주성진은 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단지 왜 삼키라는지, 그 의미를 되새겼을 뿐입니다. 무림인에게 무공이 생명이라면 상인에게는 돈이 생명이라는 걸 절절히 알고 있습니다, 아버님!"

"하하, 역시 내 아들이다. 그렇다! 상인에게는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허투루 볼 수 없고 허무하게 누군가에 빼앗기는 건 더더욱 안 된다!"

상단주는 혹여나 비밀이 노출될까 봐 종이를 삼키라고 한 거였다.

잠시 후, 주성진은 종이 속의 내용을 완전히 외우고는 입으로 삼켰다.

꿀꺽, 꿀꺽!

"하하, 종이가 이리 달콤하고 맛있는 줄 몰랐습니다."

"좋아, 좋아, 넌 내가 왜 그걸 줬는지 잘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저를 아들로 인정한다는 증표이기도 하지만 혹여나 그럴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휘주 상단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재기의 발판으로 삼을 밑천이라는 것을."

상단주는 만족한 웃음을 머금으며 주성진을 바라보았다.

"하하, 좋아, 역시 넌 내 뜻을 잘 알고 있었어. 그건 그렇고 아들아! 어쩌다 보니 이번 상행은 너에게도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실수 없이 잘하고 오너라. 솔직히 이번 상행에 너를 빼고 후계자 위를 선포할까 생각해보았지만 이미 계획된 일이라 그만두었다."

"잘, 알겠습니다. 아버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잘 완수하고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오늘 우리 이야기는 마음에만 두고 밖으로 내색하지 마라. 그저 평소처럼 행동하길 바란다. 허허. 이것 참! 나이가 드니 잔소리가 많아지는군, 어련히 잘할 텐데."

주성진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갑자기 아들이라고 밝힌 것도 놀라운데, 처음부터 많은 것을 알게 됐어. 기쁜 만큼 마음을 다잡아야겠어.'

"아닙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알겠다. 한데 결혼은 왜 안 한 것이냐? 이거 또 잔소리인가……?"

"그게 안 하려고 한 것은 아니고 그간 중원 여기저기 상행을 다니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좋은 반려자를 구해 반드시 이른 시일 내에 결혼하도록 하겠습니다."

상단주가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내가 너에게 적합한 배필 후보자 셋을 알아보겠다. 그중에 맞는 여인을 골라 잘 사귀어 보아라."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물러가라. 네가 바깥으로 나가는 순간, 진은 해제될 것이야."

"네, 편히 주무십시오, 아버님!"

주성진은 상단주에게 인사하고 물러났다.

여러 번 그에게 고개를 숙이고 뒤로 돈 순간, 그가 다시 부른다.

"잠깐, 너에게 줄 게 있다. 염 대행수가 예전에 암상 놈들에게 구했다면서 내게 선물로 준 것이 있었지, 그간 필요가 없어 보관만 하고 있었는데 너에게 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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