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문주님께서는 이미 도착을 하셨습니다. 한 시진 후, 모든 문도들이 모이면 그때 모습을 보이실 것입니다.”
냉획은 인사를 끝낸 후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냉백의 죽음이 준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래도 냉 장로님께 말을 하는 것이 나을 것 같구나.’
조당이 그러했듯이 공손우도 냉가를 더 신뢰했다.
만에 하나 배신자가 있다면 그것은 홍가에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렇기에 조당의 이러한 증상에 대해서 홍의만에게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냉 장로님, 아무 내색하지 마시고 들어 주십시오. 아무래도 문주님의 신상에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공손우의 전음에 냉획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지만,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제가 생각하기엔 주화입마에 걸리신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때, 홍의만이 미간을 찡그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이건 무슨 냄새요? 뭔가 썩는 냄새 같은데…….”
“글쎄요. 근처에서 두엄이라도 푸는 것이 아닐까요?”
공손우가 대답하자 홍의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군. 그런데 정면으로 공격을 한다 하셨는데, 어떤 방안을 가지고 계신지 말씀을 해 주시지요.”
자꾸 끼어드는 홍의만으로 인해 전음을 보낼 기회를 놓친 공손우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어서 냉획과 조당의 일을 의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하건만, 그로 인해서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일단 차라도 드시면서 말씀을 나누시지요. 곧 가지고 올 것입니다.”
잠시 시간을 번 공손우가 다시 전음을 보냈다.
-지금 풍기는 이 냄새의 근원지가 바로 문주님입니다. 아마도 어딘가 숨어서 이곳을 엿보고 계신 것 같습니다.
냉획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 상태로 부딪친다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군사의 생각은 어떠시오?
-냉 장로님이 문주님을 만나 뵙고 정확한 판단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소.
-감사합니다.
그때, 시비가 차를 가지고 왔다.
‘어떻게 문주님과 냉 장로님의 자리를 마련할까?’
이 상태라면 조당은 소림으로 향할 시간에 맞춰 모습을 보일 것 같았다.
‘그 전에 두 분이 함께할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차를 따르면서도 공손우는 조당에 대한 생각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자리를 만든다고 하여도 문주님이 그것을 받아들이실지 의문이구나.’
그래도 이대로 소림을 향해 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자, 그럼 차도 마셨으니 구체적인 방법을 얘기해 보시오.”
홍의만이 질문을 하고 공손우가 대답을 하려고 할 때, 그 자리에 갑작스레 조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지?”
공손우의 면전에 얼굴을 들이대고 조당이 물었다.
“무, 문주님?”
냉획과 홍의만의 얼굴에 놀람의 빛이 가득했다.
“말해 봐. 전음으로 누구와 무슨 얘기를 나눈 거지?”
‘망설이면 안 된다.’
“냉 장로님과 문주님의 상세에 대해서 의논을 하였습니다.”
“나에 대해서? 나에 대해 뭘 의논을 했다는 것이냐?”
질문을 하는 조당의 몸에서 은근히 살기가 풍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문주님께서 주화입마에 걸리신 것이 아닌가 하는 제 의견을 전달하였고, 출진하기 전에 냉 장로님께서 문주님을 뵈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조당이 공손우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동안에 홍의만이 무어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냉획이 제지했다.
“내가 이상하다는 것이냐? 내가 미쳤다고? 그런 식으로 나를 몰아내려는 것이냐?”
은은하던 살기는 어느새 방을 가득 메웠다.
“문주님.”
냉획의 부름에 조당의 신형이 그를 향해 바람처럼 돌아섰다.
“지금 문주님의 행색을 보십시오. 만일 이대로 수하들 앞에 나선다면 수하들의 사기는 떨어질 것입니다.”
“나? 내가 어때서?”
“동경이라도 가져다 보여 드리리까? 몸에서 나는 냄새조차도 맡지 못한단 말입니까? 옷을 보십시오. 개방도와 다르지 않은 그 몰골을!”
답답했던 것일까?
냉획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 이면에는 조당을 걱정하는 마음이 짙게 깔려 있었지만, 문제는 현재 조당에게는 그것을 읽어 낼 정도의 판단력이 없다는 것이었다.
“지금 내게 고함을 지른 것이냐? 감히 나를 윽박질러? 내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냐!”
방을 가득 채웠던 살기가 점점 날카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냉획은 진정으로 안타까웠다.
이 상태로 소림에 오른다면 필패일 확률이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었다.
흔히들 소림을 단순히 무공이 높은 곳으로 알고 있지만, 진법이 뛰어나다는 것을 간과하는 이들이 많았다.
십팔나한진이나 백팔나한진을 말할 때도 그것이 가지는 파괴력과 힘만 생각할 뿐, 그 힘을 내뿜는 진에 대해서는 이야기 하는 자가 드물었다.
진이란 것은 일단 걸리지 말아야 하고, 만약 걸렸으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진의 약점을 찾아 파훼하려 노력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조당의 상태로 보아서는 진에 무작정 달려들 것 같았고, 진을 오로지 힘으로 돌파하려 들 것 같았다.
아무리 이쪽에서 좋은 전술을 가지고 적을 상대한다고 해도 수장이 죽어 버리면 사기는 급격히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아들의 원수를 갚고자 했건만, 이대로라면 원수를 갚기는커녕 죽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게 아니라고? 그럼 어째서 내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냐? 어째서 내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냐? 너도 이 자리가 탐이 나는 것이냐? 응? 그런 것이냐?”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것 같은 조당의 모습이었다.
“문주님, 고정하시지요.”
말을 하면서 홍의만이 조당의 옷깃을 잡으려 했다.
그것도 옆이나 정면이 아닌 뒤에서.
“안…….”
공손우가 그의 그런 행동을 말리려 했지만, 늦고 말았다.
“컥!”
갑자기 몸을 틀어 홍의만의 목을 움켜쥔 조당의 행동에 공손우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지금 문주님은 일촉즉발의 상태인데, 거기서 접촉을 하다니…….’
조당의 심리 상태는 매우 불안정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의 접촉은 자칫 폭력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데, 홍의만의 행동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것과 같았다.
공손우는 그것을 알고 홍의만을 말리려 했던 것이었다.
“뒤를 노린 것이냐? 네놈이 감히 나를 기습하려고 해?”
차라리 가만히 있었다면 사태가 진정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조당의 공격과 목을 파고드는 손길에 위기감을 느낀 홍의만이 내공을 끌어 올려 조당의 가슴을 후려쳤다.
일단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에서 한 행동이지만, 그것이 비극의 시작을 알리는 전초가 되었다.
펑!
홍의만의 손바닥은 정확히 조당의 가슴을 가격했고, 그 자리에서 폭음이 터졌다.
그 충격에 옷이 가루가 될 정도였으니 결코 약하다고 할 수 없었지만, 조당은 가볍게 어깨를 떤 정도의 반응밖에 보이지 않았다.
“네놈이 드디어 마수를 드러내는구나!”
우득.
실로 어이없는 죽음이었다.
흑룡문의 한 축을 담당하는 홍가의 가주가 다른 누구도 아닌 문주에 의해 목이 부러지며 생사를 달리한 것이다.
자신의 친우였고, 수하였던 이의 목을 부러뜨렸지만 조당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전광석화와 같이 몸을 돌리며 도를 뽑아 드는 냉획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대각으로 잘린 도신이 땅에 떨어질 때, 냉획은 자신의 옷을 적시는 핏물을 보고 있었다.
“허…….”
허탈한 웃음.
아무리 기습적으로 공격을 당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허무하게 죽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건만, 조당의 손짓 한 번에 무력하게 무너지고 말았다.
“이 사람아…….”
원망보다는 안타까움이 깃든 목소리로 조당을 부른 냉획의 눈이 흐려졌고, 사선으로 잘린 몸뚱어리는 두 조각이 되어 바닥을 굴렀다.
“네놈이지?”
조당은 냉획의 마지막을 보지 않고, 공손우의 목을 움켜쥔 채 채근하고 있었다.
“무, 문주님…….”
“네놈이 수상했다. 네놈이 아니라면 정호기 그놈이 어찌 내공을 회복하고 나를 공격했겠느냐? 어찌 문을 무사히 빠져나갔겠느냐? 그렇지? 네놈이 냉획 저놈에게 일부러 놓아주라고 시킨 것이지?”
이미 얘기가 끝난 것이었다.
조당도 일부러 놓아준 것을 알고 있었고, 냉획은 그 계획에서 제외되어 아무것도 몰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지가 흐려진 조당은 의심과 불신만 남고 기억조차도 스스로의 합리화를 위해 조작하고 있었다.
“말해!”
붉게 충혈 된 두 눈으로 노려보는 조당을 보면서 공손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답을 내놓았다.
“마, 맞습니다.”
공손우가 인정을 하자 조당이 목을 잡고 있는 손의 힘을 살짝 풀었다.
“저와 냉 장로, 홍 장로가 정호기 그놈과 짜고 모든 것을 꾸민 것입니다.”
“그렇지? 네놈들이 나를 몰아내고 문을 차지하려 꾸민 계획이지?”
“예, 그렇습니다. 우리가 놈에게 무공을 빼돌리고 정보도 제공했습니다. 놈을 이용해서 문주님을 제거하려 했지만, 조금 더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살려 둔 것입니다.”
“놈은? 놈은 어디 있느냐?”
“문에서 문주님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소림을 무너뜨리고 바로 문으로 복귀할 생각이었기에, 소림과 싸워 조금이라도 힘이 빠진 문주님을 제거하기 위해 그곳에서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소림에도 이미 함정을 파 놓아 문주님을 암습할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사부의 아들은?”
“없습니다. 모두 꾸며 낸 말입니다. 정호기 하나만을 키웠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냈습니다.”
공손우는 정호기를 부각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지만, 그것이 진실이라는 것을 몰랐다.
“이런 가증스러운 놈들! 감히 그따위 수작을 부리면서 나를 문주라 불렀단 말이냐!”
“문주님이 너무도 강하고 현명하시어 우리들의 시대가 오지 않을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우리는 정상에 서고 싶었을 뿐입니다.”
“네놈들이 갈 곳은 지옥뿐이다!”
우둑.
생명의 불꽃이 꺼지는 와중에도 공손우는 자신의 계략이 통하기를 빌었다.
지금이 아니라 나중을 기약하며 조당이 문으로 돌아가길 원했다.
‘문주님, 부디…….’
축 늘어진 공손우의 시체를 내팽개친 조당이 방 안을 둘러보았다.
세 구의 시체.
조당의 인생에서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었고, 가장 가까웠던 이들이었다.
“흐, 흐흐흐, 흐하하하하하하!”
쾅!
조당이 뿜어낸 강기로 인해 건물이 터져 나가며 세 사람의 시체도 그 속에 묻혀 버렸다.
***
“가자! 중놈들의 씨를 말려 버리자!”
조당의 외침에 모여 있던 흑룡문도들이 함성을 지르고는 소림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봉두난발의 조당을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무당을 무너뜨린 기세를 타고 드디어 중원의 태두라고 할 수 있는 소림을 쓰러뜨리러 가는 길이었으니까.
공손우와 냉획, 홍의만은 특수 임무를 띠고 먼저 출발했다고 말했기에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다.
무당에서도 후방에서 교란작전을 펼쳐 수월한 싸움을 하지 않았던가?
흑룡문도들은 그것과 같은 일을 벌이기 위해 먼저 갔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문주인 조당이 거짓을 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들을 추호의 의심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하하하! 감히 이 조당을 가지고 놀다니. 기다려라! 너에게 보여 주겠다. 소림을 무너뜨리고 중원을 발아래 둔 내 모습을! 너 같은 놈이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줄 테다!”
결국 공손우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당은 소림을 먼저 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