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설마 정파에?”
“예?”
조당의 혼잣말에 전서를 가지고 온 수하가 반문하자 자신의 실수를 눈치 챘다.
“아, 아니다. 그만 물러가 보거라.”
“알겠습니다.”
수하가 나간 뒤 공손우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의 전말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정호기란 놈의 배경이 태력문일 수도 있다는 정보가 신빙성이 있고, 지금 산서는 태력문이 장악하고 있다. 그렇다면 전대문주님의 아들은 정호기를 전면에 내세우고 사부란 위치를 이용해 정파에 깊숙이 들어갈 생각일 것이다. 아니, 태력문을 집어삼킬 생각인지도 모르지.’
지금 정호기가 흑룡문을 부순 것도 그것의 일환이라고 판단했다.
‘정호기의 위명이 높아질수록 놈의 위상도 같이 올라갈 것이고, 우리가 아무리 음해를 한다고 해도 결코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그것의 구 할은 성공한 듯싶었다.
‘여기서 소림이 무너진다면 정호기란 놈이 정파의 구심점이 될 확률이 높다. 그렇게 된다면…….’
상상하기조차 싫은 결과가 나올 것이었다.
‘놈은 진정한 중원 통일을 이룰지도 모르지. 우리를 제물 삼아서.’
사마진혁의 아들은 막후에서 모습 한 번 보이지 않고 중원을 손아귀에 쥐게 되는 것이다.
흑룡문을 단숨에 끝내는 정면 대결은 피한 채 조금씩 힘을 갉아 먹는 수법을 쓰려고 할 것이었다.
‘놈이 아직 문주님의 상태를 모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점은 없다고 봐야 해. 만일 내가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면 결코 문주님과 싸우려고 하지 않을 테니까. 마지막 순간, 정파와 사파 모두가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나서겠지. 대미를 장식하고자.’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어떻게든 정호기를 끌어내서 문주인 조당과 일전을 벌이게 해야 했다.
지금 공손우가 느낀 대로라면 조당이 승리할 확률이 더 높았다.
‘정호기란 끈이 떨어져 나가면 배후에 있는 것들이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겠지.’
계획을 여러 방향으로 세워야 할 것 같았다.
사마진혁의 아들이 존재한다는 정호기의 거짓말이 너무도 많은 오류를 만들고 있다는 것은 모른 채.
***
“대형.”
“왜 그러느냐?”
영초린의 부름에 정호기가 멧돼지의 다리를 뜯으며 대답했다.
“아예 소림으로 가시죠?”
아직 소림이 공격당하지 않았다는 정보를 얻었는데, 그것을 알고 영초린이 처음 계획대로 한시바삐 소림으로 가자고 재촉하는 것이었다.
“소림으로?”
반문하는 정호기는 아직 무당을 떠나지 않고 있는 흑룡문의 다음 행보를 본 후에 결정하자는 입장이었다.
“예. 흑룡문이 어디를 치든 간에 소림이 나설 것은 분명한 사실이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소림을 설득해서 무당으로 가도 되고요.”
“그렇습니다.”
나상진도 거들었다.
“흑룡문의 본거지를 부순 지금이라면 소림도 형님의 부탁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거기에 천수신의 님과 태력문이 동조한다면 길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것은 아마도 어려울 것이다.”
“예? 어째서 말입니까?”
“무당이 무너졌다. 이런 상황에서 소림이 집을 비울 것 같으냐?”
“그거야 무당에 있는 흑룡문을 먼저 치면 될 일이지 않습니까?”
“그게 어려우니 정파들이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어렵다니요?”
“지금 무당산은 어지러운 상태다. 무당을 무너뜨린 흑룡문에 매료되어 이곳저곳에서 사파들이 모여들고, 줄을 대려는 이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지. 만일 소림이나 다른 정파가 그들을 치려고 나섰다는 소문이 돌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나상진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흑룡문이 멀쩡하면 몰라도, 본거지가 박살 난 지금은 모였던 이들이 흩어지지 않겠습니까?”
“본거지가 박살났다고 해도 떠나는 이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모여든 이들의 대부분은 정파가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흑룡문과 정사대전을 벌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할 테니.”
“정사대전이 일어나지 않다니요?”
“단숨에 무당을 무너뜨린 흑룡문이 어디를 노릴 줄 알고 집을 비운단 말이냐? 특히나 호북은 다섯 개의 성도와 경계를 마주하고 있는 곳이니 어디로 갈지 예측을 하기도 힘든 곳이다. 거기다 중경으로 돌아가 문을 걸어 잠근다면 그들이 다시 나오길 기다리거나 중경으로 직접 쳐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쉬울 리 없지 않느냐.”
정호기의 말을 들어 보니 또한 그럴듯했다.
“그렇긴 합니다만, 그런데 어째서 무당에 틀어박혀 있는 것일까요?”
“가만히 있어도 찾아오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지. 또한 정비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도 너무 오래 있는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나도 그것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어쩌면 이미 무당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떠났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그 말에 영초린이 반대 의견을 냈다.
“개방과 다른 정파들이 눈이 빠져라 보고 있는데, 가긴 어딜 가겠습니까?”
“그들이 보기 전에 갔다면?”
“예?”
“무당을 무너뜨리자마자 정파의 눈이 미치기 전에 주요 인물들을 미리 빼돌린 연후, 무당을 찾았던 사파들이 내려가는 틈을 이용해 나머지 인물들이 떠났다면 말이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지금 매일같이 사파들을 만나는 것이 조당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아까 형수님이 가져오신 전서에도 그리 적혀 있었는데요.”
유옥접은 지금 이들 세 사람에게 정보를 조달하고 있었다.
“유 매가 가져온 것이니 확실한 정보겠지만, 그쪽에서 작심을 하고 속였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겠지.”
“그렇다고 해도 그런 가정까지 하고 개방이나 모든 정보 조직들이 눈에 불을 켜고 살피는 와중입니다. 어찌 그들의 눈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있지.”
“예?”
“지금 찾는 것은 사파의 움직임이지 정파의 움직임까지 파악하지는 않고 있지 않……?”
말을 하던 정호기가 벌떡 일어났다.
‘이 방법이 있었어!’
갑자기 말을 다문 정호기를 보면서 나상진과 영초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흑룡문은 사파보다 정파에 더 많은 인원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물론 그 인원들 중에서도 확실한 흑룡문도를 추리면 그 수가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어쨌거나 문파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흑룡문도이지. 그렇다면 그들을 이용해 무당을 빠져나가 어딘가로 이미 이동했을 수도 있어!’
어째서 지금까지 이것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한심했다.
“적을 것 좀 있느냐?”
정호기의 말에 나상진이 품에서 종이와 목탄을 꺼냈다.
그것을 받아 든 정호기가 전서를 적고는 영초린에게 서둘러 일월문에 전달하고 개방에서 정파의 움직임에 대해 알아 오라고 시켰다.
“형님, 무슨 일입니까?”
“흑룡문이 정파로 위장해 이동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일단 초린이를 기다려 보자.”
“예.”
타닥타닥 타들어 가는 모닥불을 보면서 정호기는 현허 대사의 말을 떠올리고 있었다.
[저놈, 사람 만들기는 힘들 것 같네.]
‘빠져나갔다면 그들이 숭산으로 향할 것 같구나.’
***
중원이 뒤집혔다.
정파를 대표하는 문파들이 모두 일시에 참화를 당했기 때문이었다.
명망 있는 속가가 본가의 어른들이 모인 자리에서 벽력탄을 터뜨리고, 독을 뿌렸다.
화산, 아미, 청성, 종남을 비롯한 구파에 속하던 문파와 남궁, 당가, 모용, 팽가 등 칠대세가라 불리던 그들이 그곳에 속했고, 가장 피해가 심한 곳은 바로 개방이었는데, 방주를 비롯한 장로들이 일시에 죽음을 맞았다.
이런 참화 속에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 곳이 있었으니 바로 숭산과 무당산이었다.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소림과 무당에 숨죽이고 있는 흑룡문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리라.
참화의 배후에 흑룡문이 있을 것이란 추측이 있었지만, 증명할 길은 없었다.
그리고 그 복수를 하고자 하는 마음은 간절했지만, 자파를 비울 수는 없었다.
그리고 이틀이 흘렀다.
***
“문… 주님?”
각파에 있는 세작으로 하여금 그 문파의 연락망을 통해 주요 인사들을 한 자리에 불러들인 후 벽력탄을 터뜨려 피해를 크게 만든 공손우였다.
자신의 계책이 성공했다는 만족감에 조당을 기다리고 있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그를 보고는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모두 어디 있느냐?”
충혈된 눈과 핼쑥한 얼굴, 옷 군데군데에는 피가 묻어 있었고, 머리는 산발을 한 채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씻지도 않았는지 몸에서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한 시진 거리에 모여 있습…….”
갑자기 조당이 모습을 감췄기에 공손우는 하던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 시진?”
어느새 나타난 조당이 다시 물었다.
“예.”
“좋다. 그럼 한 시진이 지난 후 바로 소림을 치겠다.”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이며 대답을 마친 공손우가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는 이미 조당이 모습을 감춘 후였다.
똑똑.
“무슨 일이냐?”
“홍 장로님과 냉 장로님께서 도착을 하셨습니다.”
“알았다.”
한 시진밖에 안 남았으니 냉획, 홍의만과 앞으로의 일을 잘 의논해야 했다.
정면 대결이라고 해도 누굴 선두에 세우고, 누굴 후미에 두고, 또한 어느 부대를 우회해서 공격을 하는가도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두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방문을 열었을 때, 공손우는 이상한 점을 느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비장한 표정의 냉획과 심각한 얼굴의 홍의만과 인사를 나눌 때도 가슴 한구석이 찜찜한 것이, 결전을 앞두었기에 그러한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문주님께서는 아직 도착하지 않으셨소?”
홍여립의 부친인 홍의만의 말을 듣자 어째서 자신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냄새.’
조당을 만났을 때 맡았던 냄새가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코끝을 간질이고 있었다.
‘내 몸에 밴 냄새라면 이렇게 진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문주님이 어딘가 계신다는 것인데, 어째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시고…….’
짐작이 가는 것이 있었다.
‘의심. 우리 모두를 의심하시기에 숨어서 지켜보시는 것이겠지.’
그런 조당의 행동과 행색을 맞춰 생각하자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밖에 없구나. 바로 주화입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