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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130화 (131/137)

130화

쨍!

“크윽!”

좌무량의 도를 막은 곽기태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는데, 이 상황에서 이미 승부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좌무량이 사용하는 도법은 중도였기에 상대가 그와 상응하는 내력이나 힘이 없다면 무기끼리의 접촉은 피해야 했다.

힘을 흘리거나 피하면서 기회를 노리는 것이 좌무량을 상대하는 방법이었다.

아니면 누군가가 도움을 주어 숨 돌릴 시간을 갖거나.

하지만 패천대가 다가오는 이들을 막고 있는 지금은 누구도 곽기태를 도울 수 없었다.

“또 짖어 봐라! 뭐? 좌 궁주? 이 개새끼야, 또 짖어 봐!”

도와 도가 부딪칠수록 곽기태는 뒤로 밀려나며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쩡!

결국 곽기태의 도가 힘을 이기지 못하고 부러졌고, 좌무량의 도가 땅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헉, 헉…….”

반으로 갈라지며 쓰러지는 곽기태의 시신을 뒤로하고 숨을 몰아쉬던 좌무량이 광기 서린 눈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방주님!”

곽기태의 죽음으로 오도방도들이 더욱 광분하여 달려들었기에 패천대원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고 있었다.

“하압!”

기력을 모은 좌무량이 도를 앞으로 찔렀다.

쾅!

폭발음과 함께 땅거죽이 뒤집히며 달려오던 오도방도들의 몸을 난자했다.

“물러서라!”

좌무량의 명령에 패천대원들이 빠르게 뒤로 물러나자, 좌무량은 오히려 그들을 지나치며 오도방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폭뢰정을 받아라!”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하던가?

크게 외치며 무언가를 던지자 오도방도들이 급급히 뒤로 물러났다.

“이놈들! 나중에 두고 보자!”

당장 싸운다면 좌무량이 죽을 수도 있었다.

곽기태를 단숨에 끝장내고자 무리하게 내공을 운용했기에 부담이 되었고, 곽기태 말고도 고수들이 여럿 포진해 있었기에 더 이상 싸우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거기다 상처 입은 멧돼지처럼 달려드는 이는 지금 상황에서 확실하게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이놈! 게 서라!”

처음 폭뢰정을 썼을 때, 침을 막느라 뒤로 물러난 오도방의 부방주 천오산이었다.

‘일단 수하들을 수습하는 것이 먼저다.’

스스로에게 정당성을 부여한 좌무량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날렸다.

***

슈슈슈슉!

“크악!”

어둠을 가르고 날아온 것은 화살이 아닌 육 척 길이의 죽창이었다.

퍽! 퍽!

아름드리나무의 둥치에 박힐 정도로 죽창에 담겨 있는 힘은 대단했는데, 그 끝을 뾰족한 쇠가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사람의 몸뚱이는 어떻겠는가?

위잉!

대기를 가르며 나무 사이에서 툭 튀어나온 죽창 하나가 대지와 수평으로 회오리를 일으키며 파천궁도들을 향해 쏘아졌다.

“으아악!”

위쪽만 신경 쓰던 십여 명이 갑자기 파고든 죽창에 속절없이 꿰뚫렸다.

“막아!”

파천궁의 무사들은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그렇게 쉽게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때, 정운성을 필두로 일단의 인물들이 죽창의 공격이 멈춘 순간을 노리고 빠르게 덮쳤다.

팔꿈치까지 가리는 철로 만든 수투와, 역시 철로 만들어 무릎까지 덮고 있는 각반을 착용한 태력문의 최고 전투 부대인 철갑대였다.

주먹과 무릎이 있는 곳에 뾰족한 송곳을 달아 그 공격을 맞으면 무사하기 힘들었다.

바로 지금 정운성의 주먹에 맞은 이처럼.

“컥!”

주먹을 가슴에 맞은 파천궁도의 입에서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졌지만, 그는 자신의 가슴을 때린 손을 잡고 놓지 않았고 그의 그런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또 다른 파천궁도가 정운성을 공격했다.

“이놈!”

슬픔과 분노가 함께 묻어나는 고함을 지르며 달려드는 이는 좌기정이었고, 그가 슬픔을 표현한 것은 정운성의 주먹을 잡고 있는 이가 바로 그의 동생인 좌영정이었기 때문이다.

“흥!”

코웃음을 친 정운성이 좌영정을 들어서 뒤로 던져 버렸다.

주먹에 있는 송곳이 깊숙이 파고들었기에 따로 잡을 필요 없이 그대로 매칠 수 있었다.

“쿨럭!”

정운성이 움직이자 좌영정이 기침과 함께 피를 뿜었는데, 힘이 다했는지 정운성의 팔을 잡고 있던 손도 풀려 버렸다.

“영정아!”

날아오는 좌영정을 받아 든 좌기정이 그를 땅에 눕혔다.

“혀, 형님. 머… 먼…….”

말을 다 마치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인 좌영정의 손을 힘껏 잡은 좌기정이 정운성을 노려보았다.

“왜? 나를 원망하는가?”

정운성이 주변을 가리켰다.

“뭐가 보이지?”

죽고 죽이는 싸움.

피와 살이 날아다니고 비명과 절규가 밤하늘을 떠돌고 있었다.

“그래도 형제라고 이별의 시간을 준 내게 고마워하지는 못할망정 그런 눈빛이라니. 이해할 수 없군.”

“닥쳐!”

“뭐, 좋아. 막 형제를 잃은 상황이니 무례를 용서해 주지. 거기다 원한을 갚을 수 있는 기회까지 줄 테니, 덤벼.”

정운성이 손가락을 까딱이자 좌기정이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됐다.’

정운성은 좌기정의 공격을 흘리는 한편 주위를 훑어보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동요가 일었는데, 그것은 좌영정의 죽음을 목도하고 좌기정이 무모하게 덤비는 것을 본 그의 형제자매들과 전여욱과 같은 파천궁의 고위인사들 사이에서 발생했다.

아직 인정을 받지 않았다고 해도 좌기정은 좌무량의 큰아들이었고, 그것은 곧 소궁주가 될 가능성이 가장 크다는 것을 뜻했다.

그런 이가 정운성과 일대일로 대결을 벌인다니, 어찌 걱정이 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좌영정의 죽음으로 이성을 잃은 상황인데.

‘그래, 더욱 발악해 보거라.’

미친 듯이 휘두르는 좌기정의 도를 피하거나 튕겨 내면서 전여욱과 다른 이들의 마음을 더욱 어지럽게 만들었다.

“미향아!”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고 좌기정의 눈이 그곳을 향했다.

뭉개진 얼굴로 쓰러진 좌미향의 시신을 안고 오열하는 것은 좌배정이었다.

“아악!”

또 다른 비명 소리.

좌기정의 고개가 그쪽으로 향하자 옆구리에 구멍이 뚫린 채로 쓰러지고 있는 좌옥향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고 있는 거구의 여인이 보였다.

“으…….”

천지가 빙글빙글 돌고 피가 거꾸로 솟았다.

터질 것 같은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단 한 사람.

지금 좌기정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한 사람뿐이었다.

그가 있다면 지금의 이 모든 상황은 거짓이 되고 산서의 패자(覇者)가 되어 중원을 활보할 꿈에 젖었던 어제의 시간으로 돌아갈 것 같았다.

“아버지!”

***

좌기정이 목 놓아 찾던 좌무량은 한 사람에 의해서 가던 길이 막힌 상황이었다.

“네놈이 이곳에 나타나다니…….”

좌무량은 냉백이 배신을 했다고 생각했다.

결코 이런 애송이에게 냉백을 위시한 수라파천대와 나찰지옥도객들이 당했을 것 같지 않았다.

‘결국 흑룡문은 우리를 완전히 버렸구나. 이 싸움에서 패한다고 생각했거나 이겨도 쓸모가 없다고 판단했겠지.’

우스웠다.

한때나마 산서, 아니 어쩌면 중원의 패자가 될 것이라 상상한 자신이 한심했다.

‘결국 이용물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애써 외면한 결과가 이것이었다.

‘허… 내가 욕심을 부려 너희만 고생이구나.’

옆을 돌아보니 남은 패천대는 겨우 열한 명인데, 그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오도방을 뚫고 나오느라 무리를 한 탓이었다.

“우리는 흑룡문과 관계를 끊을 생각이다. 그래도 앞을 막을 생각인가?”

좌무량의 말에 정호기가 도를 꺼내 들며, 행동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태력문 출신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사실인 모양이군.”

그것은 정호기도 이미 들어 본 말이었다.

비단 파천궁이 아니라 오도방과 태력문 내에서도 그런 말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이 일사천리로 너무 빠르게 흘러 정호기를 태력문의 사람이라고 소개하려던 기회조차 없었던 정운서이었다.

그렇기에 추측으로만 소문이 돌았다.

“하압!”

말이나 나누자고 찾아온 것이 아니기에 정호기가 땅을 박찼다.

호아가 한 번 휘둘러지자 거대한 혈랑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패천대를 휩쓸어갔다.

콰콰콰쾅!

폭음과 함께 신음이 들렸고, 뒤이어 내리찍은 호아에게서 솟아난 강기들이 혈랑이 휩쓸고 간 곳을 다시 두들겼다.

“컥!”

피를 토하며 가슴을 부여잡는 좌무량의 모습은 처참했다.

옷은 넝마처럼 찢어졌으며 머리는 산발이 되었고, 수염은 피로 인해 붉게 물들었다.

“어, 어떻게…….”

마치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움 같았다.

거기다 어른은 손에 검을 쥐고 아이는 맨손으로 싸우는 듯했다.

“잃어버렸던 것을 찾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지.”

광랑십삼검의 최후초식을 마음껏 펼친 정호기는 감흥에 젖었다.

좌무량은 정호기의 말을 들었음에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할 생각도 없었다.

지금 그의 뇌리에 떠오른 것은 불타는 파천궁의 모습이었으니까.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시오. 모든 것은 내 개인의 욕심으로 인해 벌어진 일. 그것을 따른 자식 놈들과 수하들이 무슨 죄가 있겠소? 이 한 목숨으로 사죄를 드릴 터이니 모든 것을 여기서 끝내 주시길 바라오.”

말을 마치자마자 스스로 도를 가슴에 박고 천천히 앞으로 무너졌는데, 마치 대례를 올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흠, 찜찜하긴 하군.”

무릎을 꿇고 손을 앞으로 향한 채 엎드려 있는 좌무량의 시체를 보면서 정호기가 아미를 찌푸렸지만, 이내 고개를 돌리고는 비명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몸을 날렸다.

“그대도 알고 있겠지. 삭초제근이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를.”

전쟁이 종식되지도 않았는데 후환을 남겨 두는 어리석은 일을 한다는 것은 대단한 모험이었다.

“어쨌거나 이제 산서는 평정이 되겠군.”

흑룡문의 다음 행보가 어디로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무당을 무너뜨린 후이니 휴식을 가질 것이라 생각했다.

‘내부 정비도 해야겠지.’

자신이 내준 또 하나의 과제를 풀어야 할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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