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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128화 (129/137)

128화

‘하지만 파훼법까지 알고 있다면?’

소림의 십팔나한진이나 백팔나한진의 경우는, 정파라는 특성도 있었지만 오로지 힘으로 뚫어야 하는 진이었기에 따로 파훼법을 두지 않았지만, 흑룡문은 달랐다.

어떤 사고가 발생할지 모르는 가운데 문주마저 위험하게 할 수 있는 힘을 수하들에게 넘겨줄 수 없었고, 그렇기에 마련해 둔 것이 바로 파훼법이었다.

‘아니야. 놈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파훼법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거야말로 문주님을 제외하면 누구도 알지 못하지 않던가? 전대 문주님이 계셨을 때는 쇄혼랑과 유성우에 대한 이야기만 있었을 뿐 완성된 것이 아니었다. 완성과 동시에 파훼법을 만든 것인 현 문주님이 이뤄 낸 성과였지.’

냉백은 정호기가 파훼법을 모를 것이라 확신했다.

‘놈을 끌어내기만 하면 죽일 수 있다. 더 이상 놈의 뜻대로 놀아날 순 없어.’

지금까지 정호기의 뜻을 따라 준 것은 전서를 날릴 시간과 수하를 빼돌리기 위한 기회를 얻고자 함이었다.

-모두 나를 따라라.

수하들에게 전음을 보낸 냉백이 갑자기 신형을 날렸는데, 그곳은 태력문 등과 파천궁이 싸움을 벌이고 있는 곳이었다.

-비룡전장을 포기하는 것이냐?

정호기의 전음이 들렸지만, 무시했다.

‘놈, 나를 막고 싶다면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아악!”

후미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고, 냉백은 어쩔 수 없이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경계해라!”

수하들이 원진을 만들어 사방을 경계할 때, 냉백은 수하의 시체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게 가능하단 말인가?’

수라파천대와 나찰지옥도객은 흑룡문에서 수위를 다투는 전투 집단이었고, 개개인의 실력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고수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수라파천대의 일원이 허무하게 죽창에 찔려 죽은 것이다.

수하의 몸을 뚫고 있던 죽창을 뽑은 냉백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리 기습을 당했다고 해도 한낱 죽창을 피하지 못하다니…….’

죽창의 비가 내려도 피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컥!”

또 비명이 터졌다.

‘정면… 음…….’

이번엔 정면에서 날아온 죽창을 막지 못하고 죽었다.

기습을 당했다고 해도 배후에서 당한 것과 정면에서 당한 것은 큰 차이가 있었다.

‘우리를 가지고 노는구나. 이런 실력으로도 기습을 한다는 것은 역시 쇄혼랑과 유성우를 경계한다는 것인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암흑뿐이었다.

‘놈도 기습을 하면서 힘을 다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하나씩 처리하는 것이겠지.’

냉백의 시선이 수하들에게 향했다.

‘어쩔 수 없군.’

입술을 깨문 냉백이 어려운 결단을 내렸다.

-최대한 빨리 전장에 파고든다. 그때까지 일어나는 죽음은 무시한다.

냉백의 전음을 받은 수하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지만,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다른 말을 하지 못했다.

“가…….”

말을 하려던 냉백의 입이 다물어졌는데, 어느새 정호기가 모습을 드러내고 그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쥐새끼처럼 뭘 꾸미고 있지?”

마치 비웃는 듯한 정호기의 말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정호기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냉백은 몸을 날렸으며, 수라파천대와 나찰지옥도객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둥그렇게 진을 형성하며 정호기가 빠져나가는 것을 방비했다.

쨍!

도와 검이 부딪치며 날을 마주했고, 그 상태로 냉백과 정호기가 서로를 바라보았다.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으냐?”

정호기의 말에 냉백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넌 여기서 죽을 것이다.”

냉백의 검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정호기의 도에서도 빛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채채채채채챙!

춘절의 불꽃이 이러할까?

두 사람의 기와 기가 부딪치며 주변 일대를 환하게 밝혔다.

‘무리를 하고 있군.’

냉백의 움직임은 정호기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정호기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호각을 이룰 만큼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싸운다면 반각이 지나기 전에 진기가 고갈되어 죽으리라.

‘그나저나 압박이 심한데?’

수라파천대와 나찰지옥도객들이 진을 이루자 무형의 기가 안으로 밀려들어 오며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날 가둘 순 없을 걸?’

정호기는 냉백과 자신이 붙어 있는 동안은 범위를 좁힌다고 해도 냉백을 공격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에 유성우를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냉백이 흑룡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높은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파천궁이 뭔가 준비를 한 것이 있나?’

태력문 등과 파천궁의 싸움이 끝날 때까지만 자신을 붙들어 두려는 속셈 같았다.

정호기가 속셈을 파악하려 염두를 굴리고 있는 그때, 갑자기 냉백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갑자기 검을 버리고는 손을 뻗어 정호기의 도를 잡아 갔던 것이다.

퍽!

아무리 기를 둘렀다고 해도 정호기의 도를 감당할 정도는 아니었다.

피가 튀며 도신이 손을 거의 잘라 버릴 정도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고 도신을 움켜쥔 채 다른 손으로 정호기의 목을 노렸다.

“무슨 짓이지?”

공격해 오는 손을 막으며 정호기가 물었다.

그때, 상처 입은 손으로 냉백이 정호기의 손을 붙들었다.

행여나 손이 빠져나가는 것이 두렵다는 듯이 깍지 낀 손에 힘을 준 냉백이 크게 외쳤다.

“공격!”

냉백의 외침에 수라파천대와 나찰지옥도객들이 일제히 쇄혼랑을 날렸다.

“문주님을 위해서라면! 아니 흑룡문을 위해서라면 목숨 따윈 언제라도 버릴 수 있다!”

냉백의 외침을 듣는 순간 정호기의 등을 훑는 느낌이 있었다.

놀랐다거나 소름이 끼쳐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격정이었다.

‘그랬지.’

이 충절이 한때는 자신을 향해 있었다.

숨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냉백은 충성스런 부하였다.

냉백이 죽는 순간을 지키며 눈물을 보인 것은 그의 그런 마음을 알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 모든 것의 밑바닥에 자신의 손으로 가족들을 모두 죽이게 만든 위선이 깔려 있었다는 것을 알기 전에는 말이다.

‘시작되었나?’

얼굴이 따끔거릴 만큼 날카로운 기가 두 사람의 주변을 장악했다.

“너와 함께 죽을 수 있어 기쁘다.”

잠력까지 모두 격발시켰는지 굵은 힘줄이 전신에 튀어나와 있었고, 구멍이란 구멍에서는 모두 피가 흘러내렸다.

혈인이 된 냉백의 결의가 전해졌고, 그만큼 정호기에게 있어서는 위기였다.

‘유성우가 완벽하게 발동되었군.’

수라파천대와 나찰지옥도객들이 던진 쇄혼랑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땅위에 하나의 반구체를 형성해 갔는데, 그것으로 목표를 가두고 쇄혼랑의 끝에 매달려 있는 뾰족한 추를 이용하여 공격하는 방식이 바로 유성우였다.

칭! 칭! 칭! 칭!

쇄혼랑이 호신강기를 두들겼기에 잠시라도 기가 흐트러진다면 그대로 뚫리고 말리라.

마치 수를 놓듯 튕겨진 쇄혼랑들은 얽히고설키며 완전한 반구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내 하늘에 떠 있던 달마저 모습을 감추고 정호기와 냉백은 세상에서 분리되었고, 쇄혼랑에서 쏘아진 추로 인해 두 사람의 옷이 마치 날카로운 검에 베인 듯 찢어졌다.

“너는… 차라리 주군의 밑으로 들어와야 했다.”

힘겹게 내뱉는 냉백의 귓가에 정호기가 조용히 속삭였다.

“비밀을 말해 줄까? 사마진혁의 아들 따윈 존재하지 않아. 내분 같은 것은 처음부터 없던 거지.”

정호기의 말에 냉백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 그럼 어떻게?”

흑룡문의 비밀들을 알고 있는지 묻는 것이었다.

“저승에 가면 알게 될 거야. 내가 어떻게 혼돈지공을 익히고 있는지도.”

“그것마저!”

“왜 아직까지 내 호신강기가 뚫리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았나?”

냉백이 경악하는 그 순간 진이 완전히 발동되며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되었고, 정호기가 냉백을 밀어냈다.

“컥!”

이미 내력을 모두 소진한 냉백은 진에서 뿜어지는 기를 감당할 수 없었기에 정호기가 장악하고 있던 공간에서 밀려나자마자 기에 난자당했고, 쏘아지는 쇄혼랑의 추에 꿰뚫렸다.

퍽!

산산이 부서지는 냉백의 파편을 바라보며 정호기는 통쾌함보다는 아쉬움을 느꼈다.

‘좀 더 화끈한 싸움을 하고 싶었거늘…….’

하지만 감상에 빠져 있을 여유 따윈 없었다.

냉백을 갈가리 찢어 버린 추가 자신을 향해 독아를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우웅!

정호기의 호신강기가 급격히 팽창하며 영역을 넓히더니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칭! 칭! 칭! 칭! 취릭!

호신강기를 뚫기 위해 쇄혼랑이 공격을 하는 와중에 소리가 변했다.

취리리리릭!

쇄혼랑이 호신강기에 닿으면 튕겨 나가는 것이 아니라 호신강기를 따라 감기고 있었다.

***

“이익!”

수라파천대 부대주인 간이구는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쇄혼랑을 억지로 잡아당기고 있었지만, 마치 땅에 뿌리를 박은 천 년 고목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말도 안 돼!”

유성우의 진을 막으려면 수라파천대와 나찰지옥도객들이 쇄혼랑에 실은 내공을 감당해야 가능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배 속에서부터 내공을 익혔다고 해도 그것은 어림없는 얘기였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게다가…

“이, 이 느낌은 분명…….”

옴짝달싹 못하는 와중에도 계속 기를 끌어당기는 느낌은 조당이 혼돈지공을 펼쳤을 때의 그것과 같았다.

[모두들 천천히 힘을 거둬라. 나와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내공의 충돌로 인해 쇄혼랑이 산산조각 날 것이다. 혼돈지공의 영향으로 모든 조각이 밖으로 비산할 것이니 너희의 생명을 장담할 수 없다.]

조당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지금 내력을 거둔다고 해도 이미 늦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

결단을 내린 간이구가 막 소리를 지르려고 할 때, 천지가 뒤집혔다.

쩡!

어둠을 단숨에 몰아낼 빛과 함께 정호기를 가두고 있던 쇄혼랑이 조각조각 쪼개지더니 사방으로 파편이 쏘아졌다.

“크아아악!”

가장 멀리 있던 이는 그나마 운이 좋아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수만 조각으로 쪼개진 쇄혼랑의 파편에 맞아 갈가리 찢기며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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