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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126화 (127/137)

126화

“저게 뭐냐?”

“대나무 숲 같습니다.”

몰라서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어째서 이곳에 대나무 숲이 있지?”

아무리 우후죽순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대나무가 빠르고 무성하게 자란다고 해도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산비탈을 옆에 둔 분지였고, 이 길을 몇 번 왕복을 한 경험이 있는 고새헌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대한 조사는 태력문 등과 갈등이 심해지면서 거른 적이 없었다.

‘어제만 해도 없던 대나무 숲이었거늘, 언제 생겼단 말인가?’

“확인하도록. 그리고 너, 궁주님께 보고를 드려라.”

“예.”

선발대로 나왔으니 이상 징후에 대해서 보고를 올리는 것은 당연했다.

“대체 무슨 일이냐?”

일각의 시간이 흐른 후, 본대가 도착하고 좌무량이 고새헌에게 다가왔다.

“보고 드린 것처럼 수상쩍은 대나무 숲이 있어 살펴보라 했습니다.”

“그런데?”

“벌써 열 명이 들어갔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다.”

고새헌의 말에, 오십여 장 앞에 있는 대나무 숲을 바라보던 좌무량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태력문 등은?”

“반 시진 전에 우리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대비를 하고 있다는 연락이 마지막이었습니다.”

태력문이나 파천궁이나 서로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럼 반 시진 전에는 저곳을 통과했다는 말이냐”

“최단거리로 오기 때문에 이곳을 지나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찜찜했다.

‘십여 장 정도의 크기일 뿐이다. 그런데도 섬뜩한 기분이 드는군.’

“다른 길은?”

“물론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길게 늘어서게 됩니다.”

적이 저곳을 점거하고 있다면 그것을 노린 것이리라.

“사실 저곳은 눈여겨본 곳 중의 하나이기에 풍뢰단 이십여 명을 상주시켜 놓고 하루에 한 번씩 보고를 받았습니다.”

풍뢰단은 파천궁의 전투 집단 중의 하나였다.

“그때가 언제였지?”

“항상 오시 말에 보고를 받습니다.”

“그럼 오늘 오시까지는 멀쩡했단 말이군.”

“예.”

이미 사십여 리를 달려왔고, 겨우 십 리만 가면 태력문 등이 있는 곳이었다.

난데없이 등장한 대나무 숲 때문에 멈췄지만, 겸사겸사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이대로 바로 달려가서 싸워도 지장이 없었다.

좌무량의 시선이 왼쪽으로 향했다.

“저 길은 이상이 없느냐?”

양쪽으로 봉우리가 올라 마치 계곡과 같았고, 길의 너비는 이 장 정도였다.

“예, 이미 확인을 마쳤습니다.”

“얼마나 돌아가지?”

“대략 오 리 정도입니다.”

“음…….”

‘아무리 생각해도 정호기 그놈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구나.’

겨우 십여 장의 대나무 숲이었다.

아니, 숲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정도의 규모였다.

그러한 곳에 사람이 숨어 봤자 얼마나 숨어 있겠는가?

‘그렇다면 냉 대주를 따라가지 않았다는 말인데, 도대체 그놈의 속셈이 뭐란 말인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적운을 불러라.”

“예.”

적운은 일시일명(一矢一命)이라 불릴 정도로 활을 잘 쏘는 사람이었다.

“부르셨습니까?”

적운이 오자 좌무량이 준비해 둔 불화살들을 가리켰다.

“저곳을 불태워라.”

좌무량의 명을 받은 적운이 바로 화살을 쏘지 않고 기름을 찾았다.

“기름을 충분히 적신 후에 화살을 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

수하가 가져온 기름병을 화살에 묶은 적운이 대나무 숲을 향해 쏘더니 이내 화살 하나를 더 날렸다.

이는 기름병이 대나무 숲에 다다르면 그것을 깨뜨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숨 한 번 돌리기도 전에 불화살을 시위에 메운 후에 날렸다.

“허…….”

또 예상이 깨졌다.

화살이 날아가면 그것을 막으려는 어떤 움직임이라도 보일 것이라 예상했건만 좌무량의 추측을 무색하게 대나무 숲은 활활 잘 타고 있었다.

“이 무슨 도깨비놀음이란 말인가?”

도무지 정호기의 속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크악!”

후미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냐!”

좌무량의 외치는 사이에도 비명 소리는 멈추지 않았고, 후미에서 사람들이 앞쪽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멈춰라!”

달려오는 이들의 어깨를 밟으며 뒤쪽으로 달려간 좌무량의 눈에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오는 돌멩이가 보였다.

“흥!”

쾅!

좌무량의 주먹과 돌멩이가 만나며 폭음이 터졌다.

“으음…….”

저릿한 것이, 적지 않은 내공이 실린 것 같았다.

퍽!

돌멩이를 막고 내려서는 와중에도 수하 하나가 돌멩이에 맞아서 머리가 터졌고, 피와 뇌수가 좌무량의 몸을 적셨다.

“이놈!”

땅을 박찬 좌무량이 돌멩이가 날아온 곳으로 몸을 날렸지만, 이미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펑!

하늘을 수놓는 불꽃을 보며 좌무량은 혹시나 이 혼란을 틈타 적들이 기습이라도 할 것 같아 나무 위로 올라가 주위를 살폈지만,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궁주님!”

“아버님!”

전여욱과 좌기정이 좌무량의 곁으로 달려왔다.

“불꽃은 누가 쏘아 올린 것이냐?”

좌무량이 나무에서 내려오며 물었다.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쪽에서 쏜 것은 아닙니다.”

소통의 부재였다.

“움직임은?”

“정찰을 보냈으니 곧 보고가 올라올 것입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속속 정찰을 나갔던 이들이 돌아오며 다른 움직임은 없다고 보고했다.

‘일단 불러들이자.’

“냉 대주에게 신호를 보내라.”

“예.”

밝고 환한 빛이 허공에서 아름다운 꽃을 만들어 냈고, 그러는 사이 파천궁의 인물들도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원형진을 유지하고 외부에 각 조장을 비롯해 수뇌들을 배치하여 기습에 대비하도록 하여라!”

“예!”

아까와 같은 돌멩이 공격이 다시 시작된다면 하급 무사들만으로는 막아 내기 쉽지 않을 것이었다.

옆에서 머리가 터지고 몸이 찢겨 나간다면 당연히 동요가 일어날 것이기에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고수들을 외곽에 배치하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말을 하려던 좌무량이 입을 멈추며 위로 고개를 치켜들자, 다른 이들의 시선도 그를 따라 옮겨졌다.

“저게 뭐…….”

쾅!

마치 월식이 일어나듯 달을 가리며 떠올랐던, 너비 이 장은 됨 직한 커다란 바윗덩어리가 뚝 떨어지며 일대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고, 뒤이어 어른 몸통만 한 바위들이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허둥대지 마라! 겨우 바윗덩어리일 뿐이다! 공간을 벌려 피하면 그만이다!”

떨어지는 바윗덩어리들을 부수며 좌무량과 수뇌부들이 동요하는 것을 막으려고 했지만, 이 산에 있는 바위란 바위는 다 모아서 던지는지 바위는 계속 그들을 향해 쏘아졌다.

거기다 돌멩이로 인한 공격을 막기 위해 모여 있었기에 피해가 더 커졌다.

쾅! 쾅! 쾅! 쾅! 퍽! 퍽!

바위가 깨지는 소리에 그보다 작은 소리가 섞였다.

“기름이다!”

뒤이어 날아온 횃불은 파천궁의 진영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아악!”

“사, 살려 줘!”

불이 붙은 이들의 옷을 동료가 찢고 몸에 붙은 불에 흙을 뿌려 가며 껐지만,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리고 그 와중에 또다시 돌멩이가 날아오니 파천궁도들이 모여 있는 곳은 아비규환의 장이 되었다.

“이곳을 벗어나라! 달려라!”

좌무량의 외침에 사람들이 일제히 그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쪽으로 가지?’

달리는 좌무량의 시선이 불타고 있는 대나무 숲과 어둠 속에 가려져 있는 샛길로 향했다.

‘샛길은 이미 확인을 했다고 했으니 그곳으로 가자.’

좁은 길목이었기에 위험이 있었지만, 거기가 더 안전해 보였다.

***

“헉, 헉…….”

거친 숨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좌무량은 수하들을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사십 리 길을 달려온 것보다 겨우 백여 장 달린 것으로 더 지쳤구나.’

다행히 샛길을 빠져나오는 동안에는 아무런 공격도 없었기에 피해가 커지지는 않았지만, 심적으로 많은 타격을 입은 상태였다.

‘이걸 노린 것인가?’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샛길을 통과하는 동안 공격을 했다면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었음에도 그러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놈의 속셈이 뭐란 말인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그의 눈에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냉백의 모습이 보였다.

“으득! 놈!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좌무량의 눈에서 살기가 줄줄이 뿜어져 나왔다.

***

“우리가 약속한 것은 지켰다고 봅니다.”

정운성의 말에 오도방주인 곽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런데 문주님께서는 바쁘신가 봅니다?”

태력문의 문주인 정재명이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고 정운성이 무리를 이끌고 있는 것에 대한 말이었다.

“뒷문을 잘 지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니까요. 파천궁이 흑룡문과 연수를 하고 있는 마당에 어찌 경계를 소홀히 하겠습니까?”

“그렇긴 합니다만……. 그나저나 대단한 청년이더군요. 파천궁의 혼을 빼놓다니. 태력문에 복이 굴러 들어왔나 봅니다.”

이미 파천궁의 상황을 전해 받은 두 사람이었다.

“허허허! 우리 모두의 복이지요.”

“그럼 마지막 부탁도 문제없을 것이라 여기겠습니다.”

두 사람이 얘기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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