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화
흙먼지 자욱한 가운데 신음 소리가 들렸다.
“컥!”
단 한 수의 격돌.
거기다 조당과 해량 도장은 직접적인 겨룸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신음이 터졌고, 그것은 바로 해량 도장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크헉!”
조당의 손에 목이 잡힌 해량 도장의 입에서 피거품이 흘러나왔는데, 그런 그의 배에는 무수히 가는 침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고 조당의 검은 해량 도장의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멍청한 놈.”
조당이 냉정하게 말했다.
암수도 공격의 일부라거나, 경계를 게을리 한 네 잘못이라거나, 전투에서 방심은 금물이라거나 하는 상투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해량 도장의 어리석음을 꾸짖듯 말한 것이 전부였다.
조당은 해량 도장의 숨이 끊어지는 것도 확인하지 않고 그를 꿰뚫은 검을 이용해 척추를 끊어 버리고는 한쪽으로 패대기쳤다.
무당 도인들이 처음에 속절없이 밀렸다고는 하지만 무당은 무당이었다.
몇몇 이들이 검진을 이뤄 흑룡문도들에게 대항하고 있었는데, 그들을 중심으로 차츰 안정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진을 이루는 데에는 서로의 협력이 가장 중요했는데, 흙먼지 밖으로 내동댕이쳐지는 장문인의 시체를 본 몇몇이 동요하면서 그들의 진에 틈이 벌어졌다.
그리고 그곳으로 조당의 신형이 벼락처럼 떨어져 내렸다.
쨍!
“오늘로 무당은 사라진다!”
조당의 외침이 무당산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
은밀히 숨어드는 정호기의 모습은 마치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그림자 같았다.
우둑!
뼈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축 늘어지며 쓰러졌다.
‘이만하면 된 것 같은데, 들어가 볼까?’
이십여 명의 보초를 죽인 정호기가 파천궁 내원에 높게 서 있는 칠 층 전각을 바라보았다.
‘냉백이 있다면 어디 있을까?’
파천궁의 내부는 거의 알고 있었고, 중요한 손님들을 머물게 하는 곳이 어디인지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곳의 수가 여러 개라는 것이었다.
‘그때 왔을 때는 좌측에 있는 삼 층 전각에 머물렀었지?’
냉백도 그곳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파천궁주인 좌무량보다는 냉백이 정호기의 최종 목표였다.
‘일단 준비를 해 놓고 기다려 볼까?’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정호기의 옆구리에는 여섯 자루의 검이 들려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삐이이익!
날카로운 호각 소리가 밤하늘을 뒤흔들었고,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커졌다.
“침입자다!”
곳곳에서 불이 밝혀지며 파천궁에서 어둠이 그 모습을 감추려는 그때, 중앙에 자리한 칠 층 전각으로 빠르게 날아드는 것이 있었다.
쾅!
단 한 번의 충돌로 칠 층 전각의 한 귀퉁이가 뜯겨져 나갔다.
‘역시 반응이 다르군.’
은신했던 자리를 벗어나며 전각에서 튀어나오는 이들을 향해 가지고 있던 검을 날렸다.
“막아!”
연이어 쏘아져 오는 검들을 향해 파천궁의 무사들이 각자의 무기를 앞세우고 몸을 던졌다.
“컥!”
첫 번째로 막으려던 무사는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몸이 꿰뚫렸다.
챙!
두 번째로 몸을 던진 무사는 검을 때리긴 했지만, 역시나 그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옆구리가 한 줌이나 뜯겨 나갔다.
마지막 세 번째 무사의 검을 맞은 후에야 정호기가 날린 검이 칠 층 전각을 비껴갔는데, 공교롭게도 그 방향이 정호기가 냉백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 삼 층 전각이었다.
쾅!
삼 층 전각 맨 위층에서 경력이 쏘아지며 날아오던 검과 충돌했다.
‘역시 거기였군.’
눈에 익은 경력이었다.
‘언제까지 웅크려 있는지 볼까?’
“여기다!”
딱히 숨으려고 한 것이 아니었기에 정호기가 발각되는 것은 금방이었다.
하지만 찾은 후가 더 문제라는 것을 그들은 알지 못했다.
서걱!
제일 처음 자신을 향해 검을 휘두른 무사의 목을 날린 정호기가 호아에 잔뜩 기를 불어넣었다.
“나, 정호기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파천궁이 멸망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내공을 실은 정호기의 음성이 파천궁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쾅!
가로막은 벽들을 부수면서 내달리는 정호기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날아오는 화살 따위는 호신강기에 튕겨 나갔고, 건물을 비롯해 사람까지도 호신강기 앞에서는 무기력했다.
***
퍽!
“크윽…….”
좌무량이 날린 벼루에 머리를 맞은 외총관인 전여욱이 뒤로 발라당 쓰러졌다.
“그따위 놈 하나가 휘젓고 다닐 만큼 우리 궁이 형편없었느냐?”
겨우 그따위 놈이 아니란 것은 맞은 전여욱이나 때린 좌무량이나 직접 봐서 알고 있었다.
가로막는 것은 모조리 부숴 버리고 잘라 버리는 호신강기와 시퍼렇게 빛나던 대도가 주는 위압감은 멀리서 지켜보는 그들에게도 전해졌으니까.
좌무량의 지금 행동은 그저 화풀이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놈은?”
“그것이…….”
“아직도 놈의 행방을 파악하지 못했단 말이냐!”
좌무량의 호통에 전여욱이 고개를 푹 숙였다.
“도대체 정호기란 놈이 왜 우리를 공격하는 것이냐?”
정호기가 도망가면서 외친 ‘불구대천의 원수’라는 말이 지금 파천궁 내에 급속도로 퍼지는 중이었다.
거기다 흑룡문의 사자 격인 냉백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들의 입을 통해 정호기와 흑룡문의 갈등이 더해져 소문은 점점 부풀려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흑룡문과 연수를 할 것이란 정보를 입수해서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전여욱의 말에 좌무량이 주먹을 쥐락 펴락 했다.
당연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뻔한 말 말고 다른 의견은 없는 거냐?”
“…….”
“놈이 또 올지 모르니 오늘부터 궁내 전체에 횃불을 밝혀라! 횃불이 부족하면 양초라도 동원해 대낮같이 만들어 한 치의 움직임도 놓치지 마라!”
좌무량의 말에 전여욱이 입술을 움찔거렸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느냐?”
“촛불은 악령을 부른다고…….”
빡!
고수답지 않게 전여욱이 귀신을 무서워하고 미신을 믿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예전 같으면 그냥 흘려들었을 것이나, 지금의 좌무량은 그런 투정을 받아 줄 정도로 여유가 없었다.
“이 개 같은 년아! 죽여 버리기 전에 썩 꺼져!”
좌무량이 살기를 띠며 말하자 전여욱이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후다닥 뛰쳐나갔다.
그런 그녀와 엇갈리며 들어오는 이가 있었으니, 내총관을 맡고 있는 나경언이었다.
“궁주님, 서찰이 왔습니다.”
나경언이 내민 서찰을 편 좌무량이 그것을 읽고는 고민에 빠졌다.
<불구대천의 원수인 흑룡문과 손을 잡는다면 같은 무리로밖에 볼 수 없다. 그들을 내보내지 않는다면 공격은 계속될 것이다.>
“그놈이겠지?”
“예? 아,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언놈이 썼는지를 말해 주는 주어가 없기에 그놈이라고 볼 수도 없…….”
“나가.”
“예?”
“주둥아리 찢어 버리기 전에 당장 나가라고!”
잠자리가 뛰어나다고 중책을 맡긴 것이 잘못이었다.
전여욱이나 나경언이나 하나같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곤 주둥아리 나불대는 것뿐이라, 실무를 맡아서 할 이들을 서넛은 더 붙여 주어야 했다.
“똑똑한 놈들이 그리워지는구나.”
궁주의 자리에 올라 파천궁을 대대적으로 증축하는 과정에서 궁의 재정을 염려하며 짜증 나게 하는 것들을 모두 내친 결과였다.
그때 등장한 것이 바로 전여욱과 나경언이었고, 두 사람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기간보다도 훨씬 빠른 시간에 증축을 마쳤었다.
물론 그 와중에 죽어 나가는 이들이 있었지만 몰래 처리했기에 크게 세간에 알려지진 않았다.
“이참에 확 갈아 버려?”
나이도 먹을 대로 먹어 몸뚱이는 처졌고, 증축 공사를 하는 와중에 꼬불친 돈이 어마어마하다는 증거도 포착했다.
“이년들을 보내려면 고새헌이도 같이 보내야 하는데…….”
외당주직을 맡고 있는 고새헌까지 셋이 작당해서 한밑천 챙긴 것을 알고 궁의 재정이 어려울 때 조금 내놓으라고 했더니 대답한 것이 떠올랐다.
[궁주님, 요새 애들에게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가는지 아십니까? 딸자식 둘이 있는 것이 학자가 되겠다고 북경에 글공부를 한다고 떠나지 않았습니까? 그것들 뒷바라지하는 데 죽겠습니다.]
자식들 백 명은 북경에 보내고도 남을 돈이 있다는 것을 아는데도 씨불인 소리였다.
‘고새헌이 그 새끼도 싹수가 노래.’
이번 전쟁이 끝나고 산서를 평정하게 되면 대대적인 정리를 좀 하기로 마음먹었다.
‘정호기 그 자식이 지금 이따위 짓을 하는 것은 태력문과 손을 잡았기 때문일 테니, 냉 대협의 손을 빌려야겠구나.’
정호기는 흑룡문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인물이니 그들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전력으로도 태력문과 오도방은 능히 제압할 수 있어.’
다만 그 피해가 커질 것을 염려해 냉백과 그가 데리고 온 수라파천대와 나찰지옥도객들을 쓰려고 했었다.
‘그놈이 아무리 호신강기를 쓴다고 해도 재빨리 도망친 것을 보면 무리한 것이 분명해. 우리가 태력문과 오도방을 상대로 대치하고 있는 사이, 그 정호기란 놈을 죽이고 그놈들의 옆구리를 친다면 의외로 쉽게 끝낼 수 있을 거야.’
오늘이었다.
그동안 파천궁도 태력문 등과 일전을 벌이기 위해 안으로 힘을 비축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볼일이 있다며 빠져나간 수라파천대와 나찰지옥도객들이 돌아오기로 한 날이 오늘이었다.
‘늦어도 오 일이면 결판이 난다.’
그토록 염원하던 산서 패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으리란 기대감에 가슴이 요동쳤다.
거기다 흑룡문이 무당의 현판을 부수고 자소궁을 불태웠으며 조사동을 허물어뜨렸다는 소식은 그의 야망을 더욱 높이 날게 했다.
‘흑룡문이 이번에 아주 작정을 한 것이 틀림없어. 거기다 많은 준비를 했기에 무당을 단숨에 무너뜨린 것이겠지. 그런 흑룡문과 연수를 하게 되면 산서가 아니라 더한 자리까지도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꿈이 이루어질 날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했다.
‘겨우 오 일이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제 분수를 모르는 태력문과 오도방에 따끔한 일침을 가할 것이다.
“겨우 오 일이야.”
***
“무려 사흘째다!”
세 번의 공격으로 파천궁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내원에서부터 외원으로 이어지는 세 갈래의 길이 뻥 뚫렸는데, 정호기가 밤마다 침입을 해서 도망칠 때 담이고 건물이고 모두 부숴 버린 탓이었다.
“그놈이 설치는 꼴을 언제까지 두고 볼 참이냐!”
살기를 담고 쏘아지는 좌무량의 눈빛은 한쪽에 앉아 있는 냉백에게로 이어졌다.
“냉 대주께서는 어찌 수수방관하시는지 알고 싶습니다.”
좌무량의 물음에 지금까지 한 번도 부하들을 내보내지 않은 냉백이 입을 열었다.
“지금 싸워 봤자 어차피 도망가면 놈을 잡을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렇게 틀어박혀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셨소?”
발끈하는 좌무량을 보며 냉백은 속으로 혀를 찼다.
‘쯧쯧! 소갈딱지하곤…….’
냉백이 주위에 앉아 있는 이들의 면면을 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