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화
“개방에서는 이 일을 어찌 보고 있습니까?”
해신 도장은 무당의 정보를 담당하고 있었기에 개방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해량 도장이 그에게 개방의 일을 물은 것이었다.
“아직까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처음에 있었으니까요. 그들의 행방을 따르며 예의 주시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흑룡문은 어떻습니까?”
“일단 겉으로 보기엔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정 소협을 쫓는 이들을 제외하면 그곳을 떠난 이들은 없다고 합니다만, 모르는 일이지요.”
“그중에 진짜 정 소협이 계실 것 같습니까?”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뒤를 따르고 있습니다.”
“소림도 전갈을 받았겠지요?”
“예. 개방에서 각 문파에 현재의 상황을 알리고 있습니다.”
해신 도장의 말이 끝날 때 급박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문을 두들겼다.
“장문인, 주유입니다.”
“들어오게.”
문을 열고 들어선 다부진 체격의 주유 도장은 정보각 소속이었다.
“개방에서 긴급 전갈이 도착했습니다.”
손을 내미는 주유 도장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는데, 내용이 심상치 않은 모양이었다.
“으음…….”
전서를 읽던 무당의 장문인인 해량 도장의 얼굴에 깊은 주름이 생겼는데, 그것을 보고 해신 도장이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중경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호북을 향하고 있다는 보고외다.”
“예?”
해량 도장이 넘겨준 서신을 보던 해신 도장이 침음을 흘렸다.
“으음…….”
그가 침음을 흘리게 한 것은, 정호기로 보이는 이들의 움직임 때문이기도 했지만 마지막에 쓰여 있는 내용이 더 큰 이유였다.
<왕진이 전국에 포고령을 내렸습니다. 관과 무림은 상호 불가침이니 무림인들 간의 전투에 관이 끼어들지 말 것이며, 무림인이 관을 먼저 해하지 않는 한 관은 무림인들과 마찰을 빗지 말라는 내용입니다.>
“장문인, 아마도 흑룡문에서 수작을 부린 것이겠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
무당과 소림은 단순한 문파가 아니었고, 도교와 불교의 대표 격인 곳이었다.
그렇기에 서민들 사이에서도 그들을 따르는 이들이 있었고, 관에도 무당과 소림을 추종하는 무리가 있었다.
그렇기에 무당이나 소림이 공격을 받으면 때때로 관에서 그곳을 침공한 이들에게 압력을 가하곤 했는데, 이번 왕진의 포고령으로 그것이 불가능하게 된 것이다.
“모든 제자들에게 문으로 돌아오라 이르고, 경계를 강화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속가제자들에게도 가능한 한 힘을 빌려 달라 이르고, 제갈세가에도 협조를 요청하도록 하십시오.”
해신 도장의 말에 해량 도장이 대답을 하고 물러가려는 그때, 멀리서 폭음이 들렸다.
해량 도장과 해신 도장의 머리가 그쪽을 향하더니, 이내 방을 벗어나 그곳으로 달려갔다.
“으음… 무량수불…….”
산산이 깨진 무당파의 정문을 뒷짐 진 채 걸어오는 인물을 발견한 해량 도장의 입에서 절로 도호가 나왔다.
“잘 지내셨소, 해량 장문인?”
장검을 손에 든 채 환한 미소를 짓는 인물, 바로 조당이었다.
***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각이었기에 일반 향화객들은 없었지만, 신분이 높은 이들이나 고관대작, 그들의 자녀들은 무당에서 숙박을 할 수 있게 건물을 빌려 주었기에 남아 있는 이들도 있었다.
“반 시진을 드리겠소이다. 내려보낼 분들은 알아서 내려보내시구려.”
속속 조당의 뒤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을 보면서 해량 도장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흑룡문도들이 늘어가는 것이 부담이 되었지만, 지금 이대로 전투를 시작하게 되면 무고한 이들까지 말려들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내보내면서 어린 동량들을 같이 보낼 수 있으니 무당으로서도 그렇게까지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조 문주님의 배려에 감사드리오이다.”
‘벌써 저렇게…….’
말하는 해량 도장의 얼굴에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지금 조당의 뒤로 내려서는 이들의 숫자는 어느새 이백을 훌쩍 넘기고 있었으며, 사방에서 계속 나타나며 그 수를 불리고 있었다.
‘정 소협을 닮은 무리를 보낸 것은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였구나.’
허둥지둥 무당을 빠져나가는 무리와 울음을 삼키며 그들과 함께 걸음을 옮기는 어린 동량들을 보면서 해량 도장은 길보다 흉이 더 많을 것임을 직감했다.
‘자신이 있으니 저리 여유를 보이는 것이겠지?’
어느덧 조당의 뒤에 위치한 이들의 수는 무려 오백 명을 넘어서고 있었는데, 그들의 앞에서 조당은 천천히 무당의 전경을 둘러보고 있었다.
‘무량수불. 원시천존이시여, 어찌 이런 시련을 제게 주시나이까?’
한편으로는 어째서 개방이 이렇게까지 흑룡문의 움직임을 놓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 대협께서 어떤 방법으로 이곳까지 행차하셨는지 물어도 되겠소이까?”
해량 도장의 질문을 받은 조당이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군은 훈련을 많이 하지요.”
짧은 대답이었지만,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군의 훈련을 핑계 삼아 목적한 곳까지 군을 이동시키고, 그 속에 흑룡문도들을 숨겨 이동시켰다면 개방이나 정파의 눈에 띄지 않은 것이 설명되었다.
‘십여 일 전에 중경에서 대규모의 군대가 호북 경계까지 왔다고 하더니, 그것인 모양이군. 왕진, 네놈이 나라뿐만 아니라 무림까지도 망치는구나.’
군이 자발적으로 그러한 부탁을 들어주었을 리 없었다.
그리고 아무리 뇌물을 받았다고 해도 예정에 없던 대규모의 이동을 윗선의 허락 없이 혼자서 결정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새삼 해량 도장의 눈이 조당과 흑룡문도들에게로 향했다.
‘어림잡아 육백여 명. 이 정도의 인원이 무당에 오를 때까지도 알지 못했다니. 아마도 번을 서고 있던 이들은 모두 죽음을 당했으리라.’
가슴이 저려 왔다.
거기다 이후에 있을 전투를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
“후우…….”
‘상대가 흑룡문이라고 해도 이쪽은 무당이다.
그동안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고, 모든 침입자들을 물리쳐 왔다.
보이는 흑룡문은 겨우 육백여 명.
저 정도의 숫자로 이곳에 온 것이 만용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리라.’
무당 소속이라는 자부심과 자신들의 역량을 생각하니 마음이 안정되었다.
하지만 전투는 희생을 부르기 마련이었기에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흑룡문이 이 정도까지 정면으로 치고 들어올 만큼 당당했던가?’
사파가 왜 사파겠는가?
치졸한 암수도 꺼리지 않기에 사파라 부르지 않던가.
그런 사파의 종주 격인 흑룡문이 향화객들을 내보낼 시간을 준 것이다.
‘황궁을 의식한 것이겠지?’
무당에 찾아오는 향화객들 중에서 지위가 높은 이들이나 그들의 친인척을 의식한 행동이리라.
‘이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군.’
내보낼 이들을 모두 내보낸 무당 도인들이 해량 도장의 뒤로 속속 모여들었다.
약속한 반 시진은 이미 지난 후였지만, 흑룡문도 무당도 아직 서로를 주시한 채 노려보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뭘 기다리는 것이지? 설마 우리가 먼저 공격하기를 기다리는 것인가?’
해량 도장이 속으로 의아해하는 찰나, 후방에서 굉음이 들렸다.
쾅!
정적 속에서 터진 굉음은 무의식중에 무당 도인들의 신경을 그쪽으로 쏠리게 했고, 아차 하며 그들이 고개를 돌렸을 때 쏜 살 같이 빠르게 날아오는 뭔가를 보아야만 했다.
‘천뢰!’
벽력탄을 만들 수 있는 문파는 몇 되지 않았지만 흑룡문도 그중의 하나였고, 그들이 사용하는 천뢰는 사천당문의 벽력탄과 비교해도 그 위력이 뒤지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거무튀튀한 천뢰는 사천당문의 벽력탄이 둥그런 것과는 달리 고슴도치의 털과 같이 가시가 있는 것이 특징이었고, 그 안에 특수 제작된 바늘과 같은 침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만드는 것이 무척이나 어려워 십 년에 한 개 만들면 잘했다는 소리를 듣는 천뢰가 무려 열 개나 날아오고 있었는데, 해량 도장이 그것을 보고 호신강기를 펼침과 동시에 장풍을 쏘아내는 찰나 천뢰가 제 몸을 터뜨렸다.
콰콰쾅!
커다란 벌통에서 쏟아진 수만 마리의 벌 떼처럼 침들이 해량 도장과 무당 도인들을 향해 날아갔다.
“피해!”
해량 도장의 경고성과 동시에 비명 소리가 무당산을 집어삼켰다.
“크아아악!”
아비규환.
그 한마디로 설명될 수 있는 곳으로 무기를 손에 쥔 악귀들이 달려들었다.
“크하하하하! 죽어라!”
검이 몸을 꼬치 꿰듯 찌르고, 도가 사지를 자르고, 도끼가 머리를 찍었다.
철퇴에 머리가 부서지며 쓰러지는 시체를 밟고 뛰어오른 박가량의 손이 그 앞을 막고 있는 적의 가슴에 쑤셔 박혔다.
“오늘로 무당이라는 이름은 무림에서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펄떡펄떡 뛰는 심장을 손에 쥔 박가량의 외침에 여기저기서 화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온갖 비명 소리와 절규가 하늘에 떠돌았지만, 해량 도장의 귀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
폭풍처럼 솟아오른 그의 분노에 반경 오 장으로는 아무도 접근하지 않았다.
펄럭이는 그의 도포가 그의 분노를 대신하고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쓰러지는 사형제들과 아직 채 피지도 않은 꽃봉오리와 같은 어린 도사들의 마지막 숨이 그를 감쌌지만 그는 자리에서 떠날 수 없었다.
자신이 움직이면 조당도 움직일 것이기에.
“겨우 이 정도였던가!”
해량 도장의 외침에 담긴 짙은 살기가 전면을 향해 쏘아졌다.
“흥!”
자신을 향해 쏘아져 오는 살기를 향해 손을 내민 조당이 코웃음을 쳤다.
팡!
손과 살기가 만나 폭음과 함께 조당의 주위로 바람이 넘실거렸다.
“당신들은 우리를 사파라 부르며 무엇을 기대하셨소? 설마 한 명씩 나와서 자웅을 겨루고 그 결과로 승복하길 바라셨던 것이오?”
담담한 조당의 말에 해량 도장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렇다.
흑룡문은 사파인 것이다.
그 사실을 잊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언제까지 자책만 하며 분노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조당을 제압할 수만 있다면 이 사태를 막을 수도 있음이니까.
챙!
“그대가 아무리 사파라고 하여도 일문의 수장! 나와 일전을 겨루는 것을 피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혹시라도 조당이 승부를 피하고 도망 다니는 것을 경계하는 해량 도장이 조당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오시오.”
조당도 검을 앞세우며 해량 도장을 바라보았다.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해량 도장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는데, 그와 함께 거대한 폭풍이 조당을 집어삼킬 듯이 달려갔다.
보통 단순한 동작에 이런 힘이 숨어 있는 것을 보면서 정식으로 초식을 전개하면 더욱 무시무시한 위력의 무공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무공이 높아질수록 고수는 자신의 초식을 줄이려 노력하고, 단순함에 복잡한 것을 집어넣으려 노력했다.
그것이 지금 해량 도장의 손에서 펼쳐진 것이다.
“하압!”
폭풍이 덮치자 조당이 광폭하게 검을 휘둘렀는데, 검에서 뿜어진 날카로운 이빨들이 폭풍을 찢어발겼다.
콰콰콰콰쾅!
조당이 찢어 버린 폭풍의 파편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폭음을 터뜨렸는데, 벽력탄과 천뢰에 의한 것보다도 컸으며 땅을 통해 은은한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