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신 다시 살다!-119화 (120/137)

119화

“그들과 내통을 하던 중 뜻밖의 비밀을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흑룡문이 다시 한 번 중원을 도모하려 하고 있고 이미 상당 부분 진행이 되어 곧 이빨을 드러내리란 것이었습니다.”

“뭣이? 사실이냐?”

“예. 어찌할까 고민하던 차에 외조부님이신 천수신의 님의 힘을 빌려 소림에 연통을 넣었습니다. 그리고 가족을 모종의 장소로 이동시킨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러한 연락이 흑룡문에서 저를 찾아내는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진 사부님과 노력했던 모든 것들이 물거품이 되고, 결국 그것으로 인해 진 사부님이 유명을 달리하신 것이지요.”

정호기가 말을 마치고 정운성을 바라보니, 심각한 표정으로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이지?’

“파천궁에서 냉백을 보았다는 정보가 있었다.”

“역시…….”

“알고 있었느냐?”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만산에서 갑자기 자취를 감췄으니까요. 제가 이곳에 온 것도 그것을 확인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만일 냉백이 모종의 이유로 이곳에 왔다면 가문과 파천궁, 두 곳이 목적지일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냉백이 파천궁에 간 이유가 연수를 제의하기 위함이겠군.”

“예. 그리고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흑룡문의 발호가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정호기의 대답을 들은 정운성의 얼굴이 점점 굳어 갔다.

“진즉부터 흑룡문과 얘기가 오가고 있었던 걸까?”

“그들이 먼저 도발했습니까?”

“처음엔 사소한 시비였고 언제나 그렇듯 그냥 넘어갈 줄 알았는데, 끝까지 물고 늘어지더니 판을 키우더구나. 결국에는 사람이 죽어 나가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지. 흑룡문에서 내건 현상금을 타기 위해 죽였다는 소문은 와전된 것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덕을 좀 보았지. 의외로 우리를 지지하는 낭인들이 더 많았거든.”

“저를 조카로 인정하시는 겁니까?”

“그 얼굴에 그 덩치, 거기다 무공을 모른다는 말이 결정적이었지. 우리 가족 말고는 운룡이가 무공을 안 배웠다는 정보를 아는 이가 없거든.”

사실 정호기의 얼굴은 부친인 정운룡보다 정운성의 얼굴을 더 닮았다고 할 수 있었다.

덩치와 크기에서 오는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같이 세워 놓고 물으면 열에 여덟은 정운성을 부친이라고 지목할 정도로.

“그래,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지금 전황은 어떻습니까?”

“아직은 일진일퇴를 반복하는 중이지. 사실 지금 싸우는 이들은 대부분 낭인들이고 서로의 주력은 내놓지도 않았거든.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도발이 심해졌습니까?”

“그래. 우리가 밀리는 형국이지.”

“그렇습니까? 하지만 이곳은 조용하군요.”

“오도방과 파천궁의 중간에 있는 고현현을 중심으로 그곳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을 하는 중이다. 그곳에 있는 운중산이 지형적으로 너무도 중요한 곳이기에 낭인들을 쏟아 붓고 있는 상황인데, 그것도 이제는 거의 한계에 달했다고 봐야 할 거다.”

계속 죽어 나가는 곳에 낭인들이 몰릴 리 없었다.

곧 사망자 숫자와 형세 등의 소문이 퍼지면 낭인들의 발길도 잦아들리라.

“한 번에 치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러려고 해도 일단 우리는 아직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아서 힘들구나.”

하나의 문파가 아니라 여러 문파가 연합하는 형국이었고, 태력문과 오도방이 대표가 되어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결국 수장이 둘이란 말이었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이들도 둘로 나뉘어 있었기에 아직까지 파천궁의 공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오도방이 파천궁과 더 가까이 있기에 그들이 전면에 나섰고, 우리가 양보하고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주도권을 넘겨준 것은 아니란다. 시작이 우리였으니 우리가 싸움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지.”

“가문에서는 이곳에 얼마나 와 있습니까?”

“거웅대 이십 명과 대호대 이십 명, 그리고 홍붕대 삼십 명이 와 있단다.”

홍붕(弘鵬)대는 여인들로 이루어진 곳으로, 역시나 크고 넓다는 뜻의 홍과 붕새 붕 자를 쓰는 곳이었다.

“낭인은 총 얼마나 됩니까?”

“가용 인원을 따지자면 한 이백여 명은 되지.”

가만히 생각에 잠겼던 정호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오도방과 가문이 총공격을 하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어야 할까요?”

“총공격? 글쎄다. 서두르면 열흘 안에는 가능하겠구나. 흩어져 있는 인원을 모아야 할 테니.”

그동안 싸움을 하고 있었기에 열흘이지, 아니었다면 족히 한 달은 걸릴 것이었다.

“칠 생각이냐?”

“먼저 길을 뚫고 단숨에 몰아치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물쩍거리다 흑룡문에서 지원이라도 오는 날이면 일은 더욱 심각해질 테니까요.”

“수라파천대와 나찰십팔도객은 무시 못 할 강자들이다.”

나찰지옥도객들은 소림의 나한진을 의식했는지 열여덟 명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다른 이름으로 나찰십팔도객이라 부르기도 했다.

“알고 계셨습니까?”

“그래. 다만 그 행방을 몰랐는데, 냉백이 파천궁에 있다면 그들도 그곳에 있을 확률이 높지 않겠느냐?”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가 상대할 수 있습니다.”

“너 혼자서 말이냐?”

“예. 괜히 흑룡문이 저를 잡으려 하는 것이 아니고, 잡히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가문의 제가를 얻고 오도방의 동의를 얻으려면 최소한 열흘은 더 걸릴 것이다.”

“가문은 천천히 와도 괜찮습니다. 일단 오도방과 나머지 문파들만 뒤를 받쳐 주면 되니 말입니다.”

“어떻게?”

“제가 세 개의 대를 이끌고 운중산을 치겠습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파천궁을 향해 나아갈 것이니, 그 뒤를 따라오면서 확실한 세력권을 형성하시면 됩니다.”

“자신 있느냐? 운중산은 벌써 한 달째 혈투가 벌어졌지만 누구도 우위를 점하지 못한 곳이다.”

“백부님 말씀처럼 주력이 투입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뒤에 있는 파천궁의 주력이다. 밀리는 것 같으면 바로 그들을 투입할 것이니까.”

“걱정 마십시오. 자신 있습니다.”

“알았다. 그럼 언제 가겠느냐?”

“내일이라도 당장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물론 세 개의 대가 출발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준비는 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도 완벽히 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니 그럼 사흘 뒤에 가는 것으로 하자.”

“예. 그런데 제가 무공을 온전히 쓰려면 도법을 써야 하는데…….”

“그 문제라면 걱정할 것 없다. 우리도 모두 도를 들고 가면 되니까.”

“예?”

“태력문은 권장을 주로 하지만 무기를 사용함에 있어서도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 무기는 그저 손의 연장에 지나지 않으니까.”

물론 그렇게들 말하지만, 맞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권술에 통달한 이들은 모든 무기에 있어서도 통달해야 하니까.

그것이 아니기에 정호기의 얼굴에 근심이 서린 것이다.

“제 칼에 베일 정도는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무기야 주변의 대장간을 뒤지면 충분히 구할 수 있고, 또 칼이 아니라고 해도 부나 장검들로 충당하면 될 것이다.”

“제가 역용을 하긴 하겠지만, 오래지 않아 들킬 수 있습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만일 네 말대로라면 들키는 시점이 빠르건 늦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구나. 요는 흑룡문이 파천궁에 힘을 싣거나 야욕을 드러내기 전에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니 말이다.”

정운성의 대답을 들은 정호기가 고개를 끄덕인 후에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전 뭐라 설명하실 것입니까?”

“너? 그냥 그대로 말하면 되지. 집 나간 운룡이의 자식이라고 말이다.”

“쩝… 역용을 할 필요도 없겠는데요?”

정운룡과 정호기.

이것만 들어도 연상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갑자기 네가 나타나 출중한 실력을 뽐낸다면 어차피 저들이 알아내는 것은 순식간이란 생각이 들지 않느냐?”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단숨에 파천궁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축골공을 시전한 상태에서 싸울 수 없었다.

언제 냉백이 모습을 드러낼지 모르니까.

“그럼 어떻게 하지요?”

정호기의 말에 정운성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강행 돌파.”

“예?”

“우리 가문은 지금까지 어떠한 난관도 피하거나 뒤로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그것이 이 산서에서 파천궁에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지. 네 존재가 알려지면 현상금을 노리는 것들이 들러붙을 수도 있겠지만, 그따위 것들이 무서워 네 존재를 숨길 정도로 우리 가문은 물러 터지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지만 흑룡문은…….”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흑룡문이 우리 가문을 내버려 둘 것 같지 않은데… 뭐, 변할 것이야 있겠느냐?”

“알겠습니다.”

“잠깐만 나갔다 오마. 식사도 해야 할 것 같으니 준비시키고 처리할 일도 있으니 그것만 서둘러 마치고 오겠다.”

“예.”

정호기의 배웅을 받으며 방을 나선 정운성은 천천히 자신의 집무실로 향하며 머릿속에서 앞으로의 할 일을 정리하고 있었다.

***

다섯 명의 건장한 사람이 서 있으니 정운성의 집무실이 좁아 보였다.

“호성이는 섬서 정가장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아 오너라. 장주의 용모파기와 가족들의 용모파기도 함께.”

“예!”

“호정이는 파천궁의 동태에 대해서 빠짐없이 알아 오고. 뭔가 조금이라도 변화가 있으면 바로 알리도록 해라.”

“예!”

“호만이와 호창이는 거웅대, 대호대, 홍붕대의 출전 준비를 마쳐라.”

“알겠습니다.”

“호접이는 가문에 연락해서 지금의 상황에 대해 알리고, 운한이를 최대한 빨리 보내라고 전해라. 그리고 또한 출전 준비를 마치라 하고.”

“예.”

대답을 하는 정호접은 정운성에 비해 조금 왜소했지만, 어지간한 장정들보다 건장한 몸을 가진 여인이었다.

다섯 명의 조카를 내보낸 정운성은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한 사람의 등장으로 전세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그것이 절대고수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만일 그자가 운룡이의 아들이라면,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정도의 무공을 가지고 있다면 단숨에 파천궁까지 치고 들어갈 수 있을 거야.”

정호기에 대해서는 소문으로 들었었다.

특히나 뱃전에서 있었다는, 사람을 허공섭물로 끌어당긴 이야기는 삽시간에 중원 곳곳으로 퍼지는 중이었다.

“아니라도 상관없다. 우리를 등에 업고 흑룡문에서 벗어날 속셈이라도 말이야. 일단 파천궁을 쓸어버릴 수만 있다면 흑룡문은 우리에게 손을 내밀게 되겠지. 그때 선물로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

물론 그것은 정호기가 조카가 아니란 전제하에서 생각하는 것이었다.

“운중산에서 그 무위를 시험해 보고 사실이라면 단숨에 파천궁을 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도방을 설득해야 하리라.

“먼저 선봉에 서서 길을 열겠다는데도 뒤로 빠지지는 못하겠지.”

실상 지금 태력문은 모든 여력을 모아서 파천궁과 결전을 보자는 심산이었는데, 그것을 오도방이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일단 실력을 보여 자신들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면 파천궁이 알아서 물러서리란 주장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정운성은 자신의 조카든 아니든 상관없이 정호기가 소문대로의 실력을 가지고 있기를 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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