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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117화 (118/137)
  • 117화

    “어서어서 서두르지 않고 뭣들 하나!”

    내명준의 호통에 사람들이 주섬주섬 짐을 싸 들고 일어났다.

    그들이 간 곳은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이었다.

    “자, 신입이다!”

    내명준의 말에 건물에 있던 이십여 명의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는데, 그런 그들의 눈에는 살기와 함께 측은한 빛이 감돌았다.

    “통성명할 시간 있으면 칼 한 번이라도 더 휘두르고!”

    말을 마친 내명준은 그렇게 신입들을 버려두고는 다시 건물을 나섰다.

    “난 부조장 장소라고 한다. 비어 있는 곳 아무 곳이나 자리 잡고 쉬도록.”

    장소도 그 말만 남겨 두고 검을 들고 밖으로 나갔는데, 아마도 수련을 하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를 따라 다른 사람들도 건물을 벗어났다.

    “쳇! 벌써부터 분위기 조성하는구먼.”

    정호기에게 말을 걸었던 노인이 투덜거리며 가장 안쪽에 자리를 잡고는 가지고 온 짐을 풀었다.

    그런 노인의 옆에 자리를 잡은 정호기도 지금의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이렇게 치열했던가?’

    이곳에 올 때까지도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붙지는 않았다고 들었는데, 막상 피부로 느끼니 그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소문이 돌지 않은 것이지?’

    보아하니 하루 이틀 된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에도 소문이 퍼지지 않은 것은 문제가 있는 일이었다.

    ‘기습인가?’

    파천궁과 태력문이 서로의 사업장이나 분타를 기습하는 지루한 소모전을 벌이는 것이리라.

    ‘그럼 어제는 기습을 하러 갔다가 매복에 걸린 모양이군.’

    자리에서 일어난 정호기가 도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열심이군.’

    건물들이 있는 곳에 위치한 넓은 연무장에 방금 건물을 나선 오 조의 사람들이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는데, 그들을 제외하고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오 조라면, 저 건물들에는 나머지 조들이 있겠군.’

    여섯 개의 건물이 있고 다섯 번째가 오 조이니, 그 앞으로 사 조에서 일 조까지 이어지리라.

    ‘그런데 어찌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을까?’

    여자들이 머물고 있는 건물을 제외하면 건물들이 있는 곳은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건물 하나당 최소 칠십 명은 수용 가능한 공간이다. 그런 건물들이 모두 비어 있다는 것은 지금 모두 전투에 투입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겠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총력전이 아닌 다음에야 이렇게 아무도 없을 리가 없잖아?’

    그때 누군가가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여~ 도가 멋진데?”

    내명준이었다.

    “특별히 만든 것이지요. 요즘 이런 모양으로 많이 만든다고 하던데요.”

    “칼 맞기 딱 좋은 모양이지. 보아하니 정호기란 놈의 도와 아주 비슷한데? 자네가 덩치만 좀 더 컸으면 분명 사냥 당했을 거야.”

    “정호기의 도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못 본 놈이 있겠나? 어지간한 대장간에는 그놈의 도가 그려진 그림이 걸려 있을 정도니. 죽지 못해 환장한 것들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 흠, 흠.”

    정호기를 의식한 것인지 말을 줄인 내명준이 헛기침을 했다.

    “듣고 보니 저도 후회가 되는군요. 하지만 워낙 돈을 들인 놈이라 버릴 수도 없고……. 그나저나 너무 조용하군요.”

    “여긴 모집하는 곳일 뿐이니 당연할 수밖에.”

    “전장은 다른 곳입니까?”

    “태력문과 연맹을 맺은 오도(五刀)방에 모두 모여 있다네. 여기 태력문은 작전에 나갔던 이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인원을 충당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

    “그럼 우리도 바로 출전하게 되는 겁니까?”

    “이르면 오늘 저녁, 늦어도 내일 오후에는 떠나게 될 것이네.”

    “그 정도로 여유가 없습니까?”

    “곧 또 한 무리가 들어오게 될 테니까. 그들은 또 충원이 이뤄질 때까지 쉬겠지. 어찌 보면 자네들이 너무 빨리 충원되는 바람에 우리가 쉴 시간이 없는 셈이야.”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군요.”

    “얼마 안 됐으니까. 이제 소문이 퍼지면 찾아오는 사람들도 줄어들겠지.”

    말을 마친 내명준이 정호기에게 다가오더니 은근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자네가 죽으면 그 도는 내가 가져도 될까?”

    “그러십시오.”

    “하하하! 자네, 화끈하군. 좋아! 자네가 혹시라도 죽으면 내 필히 시체는 챙겨 주지.”

    ***

    “컥!”

    날아온 화살에 가슴을 맞은 중년인이 외마디 신음과 함께 쓰러지자 내명준이 황급히 나무 뒤로 숨으면서 소리를 질렀다.

    “기습이다!”

    타타타탁!

    콩 볶는 소리와 함께 화살비가 지나간 자리에 서너 구의 시체가 더 땅 위에 드러누웠다.

    정호기의 의도와는 다르게 태력문에 오래 있지 못하고 그곳을 떠난 오 조의 사람들은, 오도문으로 향하는 도중에 기습을 당했다.

    “개새끼들이 어떻게 알았지?”

    한차례 화살비가 내린 후에 내명준이 나무 옆으로 얼굴을 빠끔 내밀고는 주위를 살피며 씹어 뱉듯 말을 내뱉었다.

    “크악!”

    “뭐야?”

    순간 비명 소리가 들리자 내명준이 혹시나 배후를 습격당했는지 두리번거렸는데, 아군이 있는 곳에서 들린 것 같지 않았다.

    분명 앞에서 들린 것이다.

    내명준의 시선이 앞으로 향했다.

    “허…….”

    전신(戰神).

    그 말이 가장 어울리는 사내가 커다란 도를 휘두르고 있었다.

    서걱.

    정호기의 도가 지나간 자리에 반으로 잘린 시체들이 쓰러졌다.

    티티티티팅!

    그를 노리고 날아온 화살은 도면을 두들길 뿐 그의 몸에 상처 하나 내지 못했다.

    정호기가 화살을 막고 돌진하자 기습했던 이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나저나 언제 저기까지 올라갔단 말인가?”

    지금 정호기가 도를 휘두르는 곳은 못해도 오 장의 높이는 되어 보이는 절벽 위였다.

    “저놈은?”

    정호기에게 검을 앞세우고 달려드는 이는 내명준도 익히 알고 있는 이였다.

    바로 이틀 전에 그가 이끌고 있는 오 조를 급습해 많은 피해를 안겨 준 놈이었으니까.

    “뭘 멍청히 보고 있는 거야! 돌격!”

    정호기로 인해서 파천궁의 공격이 맥이 끊겼고, 반격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이것을 놓친다면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이리라.

    내명준은 그런 바보가 아니었기에 호통을 치고는 바로 도를 뽑아 들고는 신형을 날렸다.

    “이놈!”

    형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검이었지만, 정호기는 이미 그 검이 도달하기도 전에 옆으로 신형을 옮긴 후였다.

    그렇게 정호기를 놓치고 검이 땅을 찍었다 싶은 순간, 흙을 한 움큼 퍼 올린 검이 사선으로 정호기를 갈라갔다.

    검보다 먼저 흙먼지가 정호기에게 쏘아지며 그의 시야를 가렸고, 뒤이어 날카로운 기운을 풍기는 검이 뒤따랐다.

    휭!

    이번에도 역시나 검이 허공을 갈랐고, 당황한 검의 주인이 수비 태세를 갖추며 뒤로 신형을 물릴 때 경호성이 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대장님! 뒤!”

    “뭐?”

    황급히 신형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지만, 허깨비와 같은 정호기의 잔상을 가를 뿐이었다.

    “컥!”

    정호기의 주먹이 사내의 명치에 틀어박혔고, 연결 동작으로 주르륵 사내의 가슴을 스치며 올라간 주먹이 사내의 모가지를 틀어쥐었다.

    우둑!

    묵직한 소리와 함께 사내의 목이 부러지며 목숨이 끊어졌다.

    “후, 후퇴하라!”

    누군가의 외침에 살아남은 이십여 명의 파천궁도가 빠르게 그 자리를 벗어났다.

    “쫓지 마라!”

    뒤늦게 그곳에 올라선 내명준이 도망가는 파천궁도들을 쫓으려는 이들을 말렸다.

    “자네, 정체가 뭔가?”

    내명준의 물음에 정호기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사마진혁이라는 무림초출입니다.”

    “그걸 묻는 게 아니지 않나. 사부님의 함자가 어떻게 되시나?”

    “죄송합니다.”

    그 말을 마치고는 정호기가 고개를 돌렸고, 그런 그의 뒤통수를 내명준이 의심 가득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전진!”

    죽은 사람의 시신을 일일이 챙길 수는 없었다.

    시체를 버려두고 부상당한 이들을 둘러멘 사람들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

    “방세야를 가볍게 죽였다고?”

    삼절검 방세야는 파천궁에서도 제법 검을 쓴다는 축에 속했고, 중원에도 별호와 이름이 좀 알려진 자였다.

    그런 인물이 이제 약관의 청년에게 손도 써 보지 못하고 죽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예.”

    내명준의 보고를 들은 정운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름이 뭐라고?”

    “사마진혁이라고 했습니다.”

    “사마진혁이라…….”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었다.

    물론 같은 이름으로 유명한 이가 있기는 했지만, 그와 동일 인물은 아닐 것이었기에 당연히 제외했고.

    “정호기란 놈의 도와 똑같은 도를 들고 다니고, 사마진혁이란 이름에 무공이 높다?”

    공교롭다면 공교로운 일이었다.

    “어디 있지?”

    “막사에 있습니다. 데리고 올까요?”

    “아니, 내가 만나러 가지.”

    정운성이 의자에서 일어나자 내명준은 마치 태산이 자신을 덮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는데, 이는 정운성의 덩치가 태력문에서도 수위를 다툴 정도로 컸기 때문이었다.

    거의 칠 장에 이르는 키와 어지간한 남정네의 허벅지를 연상시키는 팔뚝은 보는 이를 질리게 했다.

    ‘무슨 종자들이 이렇게 다 큰지…….’

    외부에서 영입을 한다고 하지만 태력문도 당문과 마찬가지로 친족들로 이루어진 문파라고 할 수 있었다.

    ‘씨가 다르다지만 밭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유지될 수 있는 거겠지.’

    중원의 덩치 큰 남녀들은 모두 모아 놓은 것 같았다.

    “이쪽입니다.”

    “응?”

    “아, 따로 두었습니다. 어차피 오 조에는 오래 있을 것 같지 않아서.”

    “잘했다.”

    내명준이 정운성을 안내한 곳은 오 조의 인물들이 머물고 있는 전각 뒤쪽에 자리한 별관이었는데, 내명준이 묵고 있는 곳이었다.

    드르륵.

    열리는 문으로 들어오는 커다란 덩치의 인물을 보는 정호기는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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