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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114화 (115/137)
  • 114화

    “저, 문 대협.”

    홍적하의 부름에 파산검이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러시오?”

    “저기… 저놈이 죽인 이가 조개 현 대협이 아닐까요?”

    “아마도 그런 것 같소이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파산검을 보면서 홍적하가 긴장된 어투로 말했다.

    “그럼 큰일이지 않습니까?”

    “무엇이 말이오?”

    “저들이 현 대협을 죽인 것을 우리가 목격했으니, 혹 살인멸구를 하려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오. 보시오. 저들이 저렇듯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시오?”

    그 말에 홍적하가 뭔가를 알아차린 듯 흥분한 얼굴이 되었다.

    “놈이 가까이 있는 것이군요.”

    “그렇소. 저들이 우리를 의식하는 것은 혹시라도 우리가 먼저 그놈을 먼저 발견할까 우려하기 때문이오.”

    “그럼 이럴 게 아니지. 뭣들 하느냐! 어서 찾지 않고!”

    홍적하의 호통에 그의 수하들이 빠르게 주위로 흩어졌다.

    “문 대협께선?”

    “나까지 움직이는 것은 좋지 않다고 보오. 아까 말씀하신 것도 있고. 하지만 내가 이곳에서 살피고 있는 한 저들은 서툰 수작을 부리지 못할 것이오.”

    파산검의 말을 들은 홍적하는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흑룡문이라면 벌써 파산검의 정체를 파악했겠지? 그렇다면 저놈들이 섣불리 달려들지 못하는 것도 문 대협 때문이리라. 이렇게 되면 먼저 찾는 쪽이 임자구나!’

    “그럼 저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시오. 난 여기서 저놈들의 동태를 살피며 놈이 어디쯤 있을지 산세를 살피도록 할 테니.”

    “알겠습니다.”

    홍적하도 정호기를 찾는 것에 동참하자 파산검은 한동안 그들과 정철심 등의 동태를 살폈다.

    ‘좋지 않아…….’

    만일 아까 죽은 거지가 진짜 현정훈이라면 뭔가 일이 잘못되어도 한참은 잘못된 것이었다.

    ‘나와 호각을 이뤘던 현 대협이었다.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뛰어날 수도 있어. 그런 현 대협이 단 한 수에 죽었다?’

    믿을 수 없었다.

    ‘저놈은 어디서 하나 주워 온 거지일 수도 있어. 현 대협의 죽음을 꾸미고 우리를 유인하려는. 도대체 뭐하자는 수작일까?’

    얼굴은 그가 알고 있는 현정훈이 맞았다.

    덤불 속에서 솟구칠 때 그의 얼굴을 확인했으니까.

    하지만 너무도 허망하게 죽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까 싸우는 것을 봤지만, 정철심은 결코 그의 적수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우리를 유인하려는 계책이겠지? 여차하면 이 자리를 벗어나야겠구나.’

    어디까지나 이곳은 중경이었고, 흑룡문의 세력권이었다.

    어떤 일을 당해도 저들이 함구하면 그저 세상에서 실종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지금에서야 우리를 유인하려는 목적이 뭘까?’

    여기까지 생각한 파산검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 어딘가에 정호기 그놈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허연 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주변을 둘러보던 파산검의 얼굴이 굳어졌다.

    ‘작정을 했구나!’

    흑룡문도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

    넓게 퍼져 뭔가를 찾고 있지만 조금씩 자신과 홍적하를 포위하는 형국이었다.

    돈이 아무리 궁하다고 해도 목숨과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홍가 놈을 데리고 온 것은 역시나 잘한 일이었어.’

    간에 붙었다 쓸개에 붙었다 하는 행동을 하는 홍적하였고, 한창 중원을 유랑하던 시절에는 그의 그런 행동거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거기다 뒤로 미약 거래나 인신매매와 같은 일을 한다는 소문도 있었기에 그를 벌레 보듯 했었다.

    ‘같이 오는 조건으로 선수금을 두둑이 받았으니, 더 이상 꾸물거릴 이유가 없지.’

    젊을 때 같으면 호기를 부려 보겠지만, 이제는 그러기에는 너무 나이가 들었다.

    거기다 어린 부인을 얻은 후에는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고 싶었다.

    ‘주책바가지라고 해도 상관없다. 어차피 이 상황이라면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이 자리를 벗어날 테니까.’

    슬쩍 주위를 돌아본 파산검이 신형을 뒤로 날리자 그때까지 그를 주시하고 있던 정철심이 고함을 질렀다.

    “죽여!”

    순간 주변을 뒤지는 시늉을 하던 흑룡문도들이 홍적하 등을 향해 몸을 날렸고, 정철심은 파산검의 뒤를 쫓았다.

    ***

    ‘흠… 저놈을 구해 줘야 하나?’

    꽁무니를 빼는 파산검의 실력은 확실히 정철심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이곳이 흑룡문의 영역이라는 것과 곧 동조자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심리적인 압박이 그 차이를 메우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저놈이 도망칠 줄은 몰랐는데?’

    [이 몸이 가루가 된다고 해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

    무릎 밑으로 잘린 오른쪽 다리에서 피가 철철 흘러넘치면서도 혈신이었던 정호기의 앞에 당당히 서 있던 파산검이었다.

    ‘원래 저런 놈이었는데, 상황이 그래서 그랬나?’

    만삭의 파산검의 부인을 죽인 것은 흑룡문도들이었고, 그 시체를 부여잡고 오열하던 그가 신위를 떨치자 어쩔 수 없이 정호기가 나서게 된 것이었다.

    ‘충분히 정가 놈 따위는 제압을 하고 현가 놈의 시체를 확인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면 저놈이 소문을 퍼뜨리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정호기의 계획은 현정훈을 흑룡문도가 죽이는 것을 파산검이 목격하고 그것을 정파에 알려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현정훈의 숨을 끊은 후에 덤불 속에 숨어 있다가 시체를 던진 것이었는데, 일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고 있었다.

    ‘그럼 정파는 그렇다 치고, 조당은 어떨까? 현가 놈, 야제의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둘의 관계가 친밀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정확한 것은 모르고 있었다.

    ‘뭐,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이겠지.’

    도망치는 파산검과 그를 쫓는 정철심의 모습을 보던 정호기가 신형을 날렸다.

    ‘이제 이곳에서의 볼일은 없어.’

    그가 향하는 곳, 그곳은 북쪽이었다.

    ***

    “뭐?”

    공손우의 말을 들은 조당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죄송합니다. 되도록 정파와 부딪치지 말라고 하셨는데 정가 놈이 사고를 친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놈의 말을 빌리면 마치 죽으려고 환장한 사람처럼 무방비로 몸을 날렸다고 하더군요.”

    “저, 정말 그가 죽었단 말이냐?”

    “예. 그리고 그것을 파산검이 목격……. 문주님?”

    무너지듯 의자에 몸을 맡기는 조당을 보면서 공손우는 뭔가 일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았다.

    ‘혹시?’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여기하면서도 늘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던 생각.

    ‘조개, 현정훈… 그가 정말 야제, 그분이었단 말인가?’

    의심을 하기는 했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나름 조개에 대해 알아본 바로는, 어려서부터 개방에서 커 온 전형적인 개방의 인물이었다.

    ‘누가 침투시킨 것도 아니고 전대 개방의 장로였던 무심개가 직접 골라 데리고 온 제자였다. 그런 그가 야제 그분이라고?’

    솔직히 이번 정호기와의 동행이 없었다면 그가 야제일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현정훈은 공손우가 가지고 있는 정파 인물들의 살생부에서도 상위를 차지하는 인물이었으니까.

    넓은 인맥으로 정파를 단결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인물로 분류되어 있었다.

    “문주님?”

    “그만. 혼자 있고 싶으니 이만 물러가도록.”

    “알겠습니다.”

    슬픔이 가득한 조당의 얼굴을 본 공손우가 더 이상 묻지 않고 방을 나섰다.

    ‘저렇게까지 동요하시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아무래도 계획에 많은 변동이 올 것 같아.’

    공손우는 조당의 불같은 성격과 마음속에 자리한 파괴 본능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슬픔 뒤에 찾아올 분노를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은 문주님의 결정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구나.’

    평소엔 대부분의 일을 수하들이 알아서 하도록 하지만, 일단 그가 하고자 하는 결정을 내린 뒤에는 누구도 그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일단은 시신을 수습한 후에 정철심 그놈을 데려다 놔야겠군.’

    근신하라고 말을 했지만, 분명 어딘가의 주점에서 술을 퍼먹고 있을 것이었다.

    ***

    탁!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조당은 먼 옛날의 기억 속으로 침잠했다.

    [형아, 어디 갔다 와?]

    웬 중년인과 함께 들어선 형의 얼굴은 무척이나 상기되어 있었는데, 조당은 그런 형의 얼굴이나 중년인보다 형의 손에 들린 포자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었다.

    [자, 먹어.]

    그것을 받아 들고 게걸스럽게 먹는 동안 중년인이 그런 조당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지만, 조당은 그것을 느끼지도 못했다.

    [어떻습니까?]

    [너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근골이 뛰어나구나. 음… 둘이 같이 가는 것은 어떻겠느냐?]

    [동생만 부탁드립니다.]

    그때 같이 왔던 중년인이 조당의 사부였던 사마진혁이었고, 이미 형에게 개방의 무심개가 관심을 나타냈다는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처음엔 형인 현정훈이 자신의 성을 없애고 이름인 조당만 사용하게 하는 것이 이상하였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형과의 이별이라는 슬픔과 배를 곯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 그리고 계속되는 고된 수련 속에서 현조당은 사라지고 오로지 조당만 남게 되었다.

    ‘형님…….’

    이렇게 죽을 형이 아니었다.

    개방에 가게 되면 고생을 할 것 같아 사마진혁에게 동생을 보냈고, 자신은 개방에 남아 나중에라도 동생을 도우려는 마음이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사마진혁이 흑룡문의 문주라는 것을 현정훈도 모르고 그저 무공이 강한 부유한 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으득!

    슬픔이 한차례 지나고 나자 이번에는 분노가 그의 가슴을 채웠다.

    “그래도 사부님의 자식이라서 죽이지는 않을 생각이었는데, 네가 내 가슴에 비수를 꽂았구나.”

    굳이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가급적이면 모두 생포해서 연금시킬 계획이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조당이 침실로 들어가더니 그곳에 있는 줄을 당겼다.

    “부르셨습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문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군사는?”

    “회의청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았다. 내가 곧 갈 것이니, 당주급 이상은 모두 모이라 일러라.”

    “예.”

    수하를 보내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조당이 흑의 무복으로 갈아입고는 허리에 사문의 보검인 청운검을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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