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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110화 (111/137)
  • 110화

    “내 목숨을 노리는 놈들 따위 가차 없이 모가지를 따고 싶지만, 인생이 불쌍한 것 같아서 한번 기회를 주고자 함이었다.”

    결국 중년인의 목이 정호기의 손아귀에 잡혔다.

    “이 시간 이후로, 나를 노리는 놈들에겐 자비를 베풀지 않겠다. 설사 그것이 어린아이가 되었든, 무공을 모르는 연약한 여인이 되었든 그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우둑!

    정호기가 손에 힘을 주자 중년인의 목이 그대로 부러지며 몸이 축 늘어졌고, 그런 중년인의 시체를 휙 하고 배 밖으로 던진 정호기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앞에 있는 이들을 바라보자 모두가 그의 눈길을 피했다.

    “자비는 여기까지다. 너희가 살기를 띤 그 순간 너희는 스스로 살 수 있는 기회를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중경으로 갈 것이니 죽고 싶은 자들은 나를 따라오도록. 그리고 개방에 의해서 나를 사칭하는 이들은 모두 흑룡문에서 내보낸 자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과연 흑룡문이 그런 혼란을 틈타 너희 같은 머저리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을 조장하는 것이 무엇을 위해서인지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란다.”

    말을 마친 정호기가 현정훈이 뭐라 하기도 전에 호아가 들어 있는 금을 들더니 그를 안고 뱃전을 박찼다.

    풍덩!

    “어푸, 푸… 뭐하는 짓이냐? 배가 선착장에 닿을 때까지 기다리면 될 것을!”

    “아까 허공섭물을 펼치느라 내상을 입어서 그렇습니다. 더 있다가 제가 땀이라도 흘렸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말을 하는 정호기의 입가로 피가 조금 흘렀는데, 약한 모습을 보였다면 죽자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마을에서 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단 강 저편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강의 너비만도 백여 장은 되어, 건너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나 좀 놔라. 비록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지만, 이따위 강 하나 헤엄치지 못할 내가 아니니까.”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정호기의 팔에서 벗어난 현정훈이 유유히 강물을 헤엄쳤다.

    “좋습니다! 그럼 강 맞은편까지 누가 먼저 가나 내기할까요? 지는 사람이 저녁 책임지는 겁니다! 참고로 전 멧돼지가 맛있더군요.”

    “흥! 너야말로 발이 닳도록 황구를 찾아다녀야 할 거다!”

    마치 누군가에게 들으라는 듯이 큰 소리를 지른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헤엄을 치기 시작했다.

    한편, 뱃전에 모인 사람들은 지금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이, 이봐, 아까 그거 분명 허공섭물인가 하는 거 맞지?”

    “응.”

    “근데, 그게 사람을 들 수 있을 정도인가?”

    “모르지. 절대고수들은 바위도 든다는 얘길 들은 것도 같은데…….”

    “예끼, 이 사람아! 그거야 전설로만 전해지는 얘기 아니었나?”

    “그러게 말이네. 나도 전설인 줄 알았다네.”

    모두가 같은 심정일 것이다.

    “험, 험! 태력문과 파천궁이 싸우고 있는 산서가 돈벌이가 된다니, 이참에 산서나 가야겠군. 자네도 같이 갈 텐가?”

    “그러세. 좀 있으면 몰려들 것 같은데 미리 가서 품삯 높을 때 받아야겠네.”

    “나도 그래야겠구먼.”

    다음 선착장에 도착했을 때, 뱃전에 남아 있는 것은 무공을 모르는 세 명의 남자뿐이었다.

    ***

    “어디까지 갈 생각이냐?”

    강을 건넌 정호기가 현정훈을 안고 달린 지 벌써 이 각 가까이 지난 시점이었고, 산속 깊숙이 들어온 상태였다.

    “이만하면 됐겠죠?”

    “그래. 아무리 소문이 빨리 퍼진다고 해도 당분간은 걱정 없을 것 같으니, 일단 여기서 운기라도 하고 가자.”

    “예. 그럼 어르신 먼저 하세요. 전 이 주변을 돌아보고 올게요.”

    “너는 괜찮겠느냐?”

    “아직은 버틸 만합니다.”

    “알았다.”

    나무 그늘에 현정훈을 내려놓은 정호기가 산세를 훑어보고는 산 정상을 향해 몸을 날렸다.

    “허허, 이런 꼴을 당하다니. 나도 늙었나?”

    정호기가 기습적으로 혈을 점할 때 꼼짝도 못했던 자신이 한심했는지 현정훈이 헛웃음을 흘린 후 자리를 잡고 가부좌를 틀었다.

    ‘내상이 있지만, 그때의 나는 방심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혈을 찍힌 것은 정호기 저놈의 손속이 그만큼 빨랐다는 것이겠지?’

    현정훈은 바로 운기에 들지 않았다.

    내상이 제법 심각한 것이었기에 서둘러야 했음에도 한동안 주위를 살피며 경계하더니, 아무런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자 그때야 천천히 운기에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내기를 안정시키고 이제 상처를 입은 혈도와 단전을 치료하려는 찰나, 소란스런 움직임 때문에 결국 운공요상을 마치지 못하고 눈을 떴다.

    “저 새끼를 잡아! 잡으란 말이다!”

    “죽여! 죽여 버려!”

    산중을 울리는 고함 소리에 살기가 흥건히 적셔 있었다.

    “어르신, 일어나십시오!”

    다급한 정호기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것은 다 허세였단 말인가? 자신을 노리면 절대 봐주지 않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더니만…….’

    뱃전에서 보였던 신위라면 상대가 누구든 저렇듯 쫓긴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내상이 생각보다 깊었나?’

    달려오는 정호기의 얼굴이 보였는데, 입가로 흐르는 핏물이 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했다.

    -어르신, 달리십시오! 어르신이 나서서 싸울 수는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현정훈은 개방의 장로였다.

    정호기의 말마따나 함부로 살수를 쓰기도 힘든 일인 것이다.

    -약발이 안 먹혔나 보구나.

    어느새 자신의 앞에 다가온 정호기의 손을 잡더니 경공을 시전한 현정훈이 빠르게 앞으로 달려가며 물었다.

    -그런가 봅니다. 아무래도 소문이 아직 제대로 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허허! 아주 살기가 등등하구나.

    쌍욕을 날리면서 쫓아오는 추격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현정훈이 헛웃음을 흘렸다.

    -운기에 방해가 되지는 않았나 모르겠네요.

    -마침 끝마치려던 참이었다.

    완전한 것은 아니었다.

    -다행입니다.

    현정훈의 경공은 실로 뛰어나 정호기를 매달다시피 하고도 추격자들을 쉽게 따돌렸다.

    “어르신, 저기 보이는 강을 건너가지요?”

    “강을?”

    “예. 제 행적이 드러난 만큼 이곳에서 머물기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앞에 보이는 강을 건넌다고 해서 중경으로 가지 못할 것은 없었다.

    어차피 동에서 서로 흐르는 강이기에 건넌 후에 서쪽으로 진로를 잡으면 그곳이 중경이었으니까.

    말을 하는 정호기의 안색은 파리했고 입 주위에는 핏자국이 선명했는데, 서둘러 운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견딜 수 있겠느냐?”

    “예.”

    “좋아, 그러자꾸나.”

    뒤를 한 번 바라본 현정훈이 강으로 뛰어들었고, 나중에 추격자들이 강가에 왔을 때는 두 사람은 이미 헤엄을 쳐 강을 건넌 후였다.

    타닥타닥 모닥불이 타들어 가는 동굴에서 정호기가 운기를 하고 있었고, 그런 그를 보면서 현정훈이 가끔 밤의 장막이 드리운 동굴 밖을 살피며 경계를 했다.

    “후우…….”

    심호흡과 함께 깨어난 정호기가 현정훈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운기를 하는 동안 지켜 준 것에 대한 인사였다.

    “고마운 줄 알면 가서 뭐라도 한 마리 잡아 오너라. 원, 배 속에서 난리가 났구나.”

    “금방 잡아 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정호기가 어둠 속으로 몸을 날렸다.

    ***

    “그게 무슨 소리냐?”

    중경을 코앞에 둔 산흥면에서 정호기의 말을 들은 현정훈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르신을 생각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몸도 다 나았겠다, 이제부터는 진짜 저를 노리는 이들을 상대로 인정을 베풀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 저와 어르신이 계속 같이 다니다가는 어떤 소문이 퍼질지 모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괜찮다! 남의 목숨을, 그것도 돈 때문에 노리는 놈들이 제 목숨 거는 거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느냐? 그리고 방주께서도 그런 일까지 염두에 두시고 나를 네 옆에 두셨느니라.”

    이제 떠나라는 정호기의 말에 입가에 검댕과 기름을 잔뜩 묻힌 현정훈이 펄쩍 뛰었다.

    “거기다 제 위치가 드러나면 흑룡문에서도 찾아올 것인데, 어르신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놈들이 온다면 이번엔 진짜 쓴맛을 보여 줄 생각이다. 그때는 내가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한 것이야.”

    “알았습니다. 대신 중경에 들어가서 사흘만 저 혼자 어디 좀 다녀오겠습니다.”

    “응? 사흘?”

    “예. 긴히 갔다 올 곳이 좀 있어서요.”

    “중경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느냐?”

    “비밀입니다.”

    말을 마친 정호기가 자리에 눕자 현정훈이 그 곁으로 은근슬쩍 다가왔다.

    “에이, 우리 사이에 무슨 비밀씩이나 만들고 그러냐. 뭔데? 응?”

    “우리가 어떤 사이인데요?”

    “사선을 헤치고 갈 사이 아니냐. 서로의 등을 지켜 주고 역경을 헤치고 나가 흑룡문의 음모를 분쇄하여 중원의 등불이 된다. 캬아~ 멋지지 않냐?”

    말하다 스스로 도취되었는지 현정훈의 얼굴이 몽롱하게 변했다.

    “드르렁~”

    정호기는 별로 감명을 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자냐? 응? 자는 거야?”

    “드르렁! 드르렁!”

    ***

    “근데 말이다.”

    한적한 산길을 걸으며 현정훈이 정호기에게 물었다.

    “굳이 위험을 무릅쓰면서 흑룡문이 버티고 있는 중경으로 들어갈 이유가 있냐?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다고 해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호랑이 아가리로 걸어 들어가는 멧돼지의 형국이었다.

    “꼭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그게 뭐냔 말이다.”

    “아무리 사선을 함께 넘고 등을 맡길 수 있는 우리 사이라도 가르쳐 드릴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 일만 끝나면 바로 중경을 떠날 것이니 그리 큰 위험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거면 어째서 네 종적을 노출시키면서 가는 거냐? 은밀히 들어갔다 나오면 될 것을. 네놈을 쫓는 것들을 중경으로 끌어들이려 한다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만, 솔직히 그따위 놈들이 흑룡문에 얼마만한 피해를 줄 것인지도 의심스럽고. 게다가 네가 선상에서 한 행동으로 인해 중경으로 오는 이들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 것이 아니냐.”

    “처음부터 딱히 어떤 피해를 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제 실력이 소문났다고 해도 올 놈은 올 것이니 제 계획에 차질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얼마 전에 도망친 일도 있으니, 분명 제 실력에 의문을 품을 테지요.”

    “그러니까 그 계획이 뭐냐고!”

    “아직은 변수가 있으니 뭐라 말할 단계가 아닙니다. 제가 볼일을 보고 나면 확실해질 테니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래? 알았다. 뭐, 정히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단념했는지 현정훈이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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