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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108화 (109/137)
  • 108화

    “무슨 안 좋은 소식이라도 있습니까?”

    “흑룡문에서 작정을 한 모양이다. 이틀 전, 사천에서 너와 비슷한 이가 나타났었다는구나.”

    “역시… 몇 명이나 더 있을까요?”

    “그건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한두 명으로 끝날 일은 아닌 것 같다.”

    “정파에 소식을 전하셨습니까?”

    “그래. 하지만 내가 알리지 않더라도 너와 비슷한 이들이 나타난 것으로 흑룡문의 소행임을 짐작하고 있지 않겠느냐?”

    “그렇지만 증거가 없지요.”

    “그렇지. 증거가 없지.”

    이것은 현재 정호기의 상태나 같았다.

    흑룡문에서는 정호기가 냉획을 죽였다고 주장하지만, 명확한 증거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흑룡문이 주도해서 정호기와 비슷한 이들로 혼란을 야기하고 있지만 그들의 짓이라는 증거가 없는 것이다.

    “아무튼 이곳에서 사태의 추이를 조금 더 지켜보자꾸나.”

    “그러도록 하지요.”

    ***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수록 사태는 점점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뭐라고요?”

    “네가 아니라 너와 비슷한 놈의 머리를 들고 흑룡문을 찾았다가 은자 삼십 냥을 받은 인물이 나왔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그게 정말입니까?”

    “그래, 아주 막가자는 심보인 모양이다.”

    그 소문의 근원지가 어디인지는 안 봐도 뻔한 상황이었다.

    “정파는 어떤가요? 아직까지도 행동을 개시하지 않았나요?”

    정호기의 물음에 현정훈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사실은 너를 사람들의 이목이 닿지 않는 곳으로 이동을 시킨 후에, 대기하라는 명을 받았다.”

    잠시 말을 멈춘 현정훈이 정호기의 안색을 살피다 말을 이었다.

    “어차피 지금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지 않으냐? 이대로 정파로 간다면 안전도 확보하고 소란도 끝낼 수 있으니 좋은 기회 같다만…….”

    정호기는 현정훈의 생각과 달랐다.

    ‘아니, 혼란은 더욱 커져야 한다. 조당의 계획이 전면전이라면 되도록 빨리 일어나는 편이 나에게는 더 좋은 것이니까.’

    어차피 일어날 정사대전이라면 조금이라도 빨리 일어나는 것이 좋았다.

    ‘내 이름이 세인들에게 각인되는 것도 좋은 현상이지.’

    비록 지금은 흑룡문에서 내건 상금으로 인해 보물이 된 신세이지만, 만일 정사대전이 벌어지고 정호기가 신위를 떨친다면 흑룡문이 그토록 많은 상금을 걸고서 잡으려 했던 것이 정호기의 위상을 높여 줄 것이었다.

    ‘어느 모로 보나 지금 정파에 틀어박힐 이유가 없다.’

    “어르신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나?”

    “예. 전 이만 헤어졌으면 해서요. 어르신이 계시면 정파에서 제 위치를 계속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전 아직 정파에 몸을 의탁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헤어지다니? 그거라면 염려 말거라. 내가 방주의 약점을 틀어쥐고 있거든. 정보야 시전에서 얻어도 충분하고 돈으로 사도 되는 것이니, 굳이 나란 걸 알릴 필요도 없고 말이다.”

    “그럼 저를 도와주시겠단 말씀입니까?”

    “당연하지 않으냐?”

    “왜요?”

    “왜는, 너와 나 사이에 당연한 일인 것을.”

    “우리 사이요?”

    “사선을 함께 헤치고 지난 사이이지 않느냐?”

    “정파의 명숙들이 모두 모이는 자리를 피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요?”

    그 말에 현정훈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무림에 큰일이 벌어지면 정파는 회동이라는 것을 하는데, 그때는 각 파에서 어느 정도 배분이 있는 이들이 참석했다.

    문제는 현정훈이 그들 거의 대부분에게 안 좋은 추억을 선사했다는 것이었고.

    “절 따라붙었단 핑계로 방에 돌아가기 싫으신 생각이신가 본데, 그러자면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예.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이미 한 번 했으니, 다음부터는 공자님과 하인의 역할을 하는 것이 어떨까요?”

    이제는 정호기가 상전이 되어 현정훈을 부려 먹겠다는 심보였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현정훈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좋다. 하지만 나도 조건이 있다.”

    “뭔데요?”

    “나중에라도 혹시 방주와 만나게 되면, 나는 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간곡하게 너에게 머물라고 했지만 네가 너무도 강경하게 떠날 의지를 피력하였기에 어쩔 수 없이 내가 따라붙었다는 말을 해 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간곡한 부탁이라는 것이 단 한 번, 그것도 ‘좋을 것 같다’는 듯이 말한 것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언제 떠날 것이냐?”

    “지금 가지요. 어차피 이곳에 더 있어 봤자 얻을 것은 없을 것 같으니까요.”

    “무당은?”

    “언제 또 기회가 있겠지요.”

    “그럼 그냥 놀러 온 것이었단 말이냐?”

    “중경에 가는 길에 잠시 들렀던 것뿐입니다.”

    정호기의 말을 들은 현정훈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잘못되었습니까?”

    “아, 아니다. 그럼 잠시 기다리겠느냐? 내, 후딱 분타에 가서 최대한 중경에 관한 정보를 얻어 오마.”

    “아닙니다. 어차피 정보란 사면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였으니, 지금 바로 출발하시지요.”

    행낭을 챙겨 들고 방을 나서는 정호기를 현정훈이 허겁지겁 자신의 짐을 챙겨 뒤따랐다.

    ***

    “누구냐!”

    보초를 서고 있던 막운은 어둠 속에서 뭔가가 움직인 것 같았기에 소리를 지른 후에 재빨리 다가갔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슨 일이냐?”

    막운의 외침을 들은 해천 진인이 다가와 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본 모양입니다.”

    “그러냐? 요새 사람들이 몰려든 까닭에 지친 것 같구나. 그럴 수도 있으니 괘념치 말고 경계에 충실하도록 해라.”

    “예.”

    자리로 돌아가는 막운을 보면서 해천 진인은 무당파의 권위가 많이 쇄락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인화산장이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것도 그렇고, 스스럼없이 본 산에서 살육을 자행하는 것도 그렇고. 예전의 무당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거늘…….’

    정호기란 사람 때문에 요즘 무당은 골머리를 앓고 있었는데, 얼마 전 그와 비슷한 인상착의의 사람이 죽으면서 그 사태는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어찌 사람을 물건 취급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이 비단 악인이라고 하여도 생명을 취함에 있어 두 번, 세 번 생각해야 하는데…….’

    목숨을 경시하는 풍조가 안타까웠다.

    그가 탄식을 터뜨리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어둠이 슬금슬금 자리를 옮기며 그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

    “어떻더냐?”

    “경계가 삼엄해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복면인의 보고를 받은 중년 사내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어떻게 해서든 알아내라고 명이 내려왔는데 어쩌란 말인가?”

    “안에 있는 취에게는 연락을 보낼 수 없습니까?”

    “별도의 명이 내려올 때까지 둥지를 튼 이들과는 내왕하지 말라는 문주님의 특명이 떨어졌다.”

    “하지만 이것은 신물에 의한 명령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문주님의 명령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겠습니까? 그편이 훨씬 수월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따지면 우리와 접선한 것부터가 문주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 됩니다. 우리도 문에 관계된 어떤 인물하고도 접촉하지 말라는 명을 받지 않았습니까?”

    복면인의 말에 중년 사내가 한참을 고심한 끝에 입을 열었다.

    “좋다. 이것은 문주님의 신물로 받은 명령이니 네 말대로 문주님의 명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취에게 연락을 하여 무당에 외인이 머물고 있는지 확인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복면인이 나간 후에 중년 사내는 창으로 다가가 멀리 보이는 무당산을 응시했다.

    ‘도대체 그들이 누구이기에 신물을 내세워 알아 오라는 것이지?’

    어둠 속에서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던 복면인이 떠오르자 몸이 부르르 떨렸다.

    ‘마치 어둠과 동화된 듯한 그의 모습은 어둠 그 자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인물 중에서 문주님의 신물을 받을 정도의 인물이 있었던가?’

    그의 기억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누굴까?’

    ***

    무당산을 떠난 정호기와 현정훈은 지금 뱃길을 따라 중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뱃전에 나란히 앉아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주위 사람들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봐, 확실한 정보지?”

    “그렇다니까 그러네. 분명히 정호기 그놈이 방현에 모습을 드러냈었단 말이네. 방현에 있는 비호방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는 자취를 감췄다고 했네.”

    어디를 가나 정호기의 행방에 관한 것이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그놈의 동선을 보면 분명 중경으로 향하는 것이 맞네. 아니라면 내가 성을 갈겠네.”

    중년인은 아주 확신에 차 있었다.

    그때, 중년인의 얘기를 듣고 있던 한 청년이 걱정스런 음성을 흘렸다.

    “그런데 말입니다.”

    “응? 뭔가?”

    “그 정호기란 놈을 죽여서 흑룡문을 찾아간다고 해도 현상금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 사람, 참 걱정도 팔자네. 그 말도 못 들었나? 그놈하고 비슷한 놈을 죽여서 모가지만 가지고 갔는데도 은자 삼십 냥을 받았단 말 말이네.”

    “듣긴 했지만, 그것이 사실일까요?”

    “벌써 여럿 받았다고 하더구먼. 그러니 사실이지 않겠나?”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상금을 준다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아서 그럽니다. 단지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돈을 주다니요?”

    “하긴, 그게 문제가 크긴 하지. 그 일로 생목숨이 많이 끊겼다고 하더군.”

    “생목숨요?”

    “그래. 특히 머리가 큰 이들을 중점으로 노리는 사냥꾼마저 등장했다고 하더라고. 정호기 그놈이 덩치만큼이나 얼굴도 크다고 하지 않나? 아마도 그래서 그런 모양일세.”

    옆에서 중년인의 말을 듣고 있던 현정훈이 정호기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 얼굴이 좀 크긴 하지.

    -제 몸이랑 비교하면 정상입니다.

    -범인(凡人)과 비교를 해야지.

    그렇게 현정훈과 얼굴 크기를 가지고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 정호기의 귀에 낯익은 이름이 들려왔다.

    “태력문인가? 거기 소식을 들었나?”

    태력문은 정호기의 친가였다.

    비록 정운룡이 뛰쳐나오기는 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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