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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107화 (108/137)

107화

“크음, 좋구나.”

금을 산 연후에 호아를 그 속에 숨긴 정호기가 그것을 방에 가져다 둔 후, 주루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네 녀석을 보면 도통 모르겠구나. 아무리 역용을 하고 축골공을 시전했다고는 해도 이렇게 무인들이 많은 곳에서 태연하게 술을 마시다니 말이다.”

“들킬 염려가 없는데 뭐가 걱정이겠습니까? 저 하면 커다란 덩치, 그리고 거대한 검이지요. 하지만 지금은 그 두 가지 모두 해당 사항이 없지 않습니까? 게다가 개방이 제 편인데 뭐가 두렵겠습니까?”

만일 개방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런 여유는 즐길 수 없었을지 몰랐다.

아무리 역용을 하고 변장을 한다고 해도 들킬 염려가 있었으니까.

“개방 말고도 정보 집단은 여럿 있다. 그들이 너를 연구하고 분석한 후에 찾고자 한다면 못 찾을 것도 없단 말이다.”

“하지만 시일이 걸리겠지요.”

“그렇지. 그러나 지금 너는 호북이라는 지명과 특징이 모두 알려진 상태다. 그들의 손길이 너를 향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말이지. 네놈이 금자 천 냥이라는 엄청난 보물덩어리가 되었으니.”

말을 하는 현정훈의 눈에 은근한 빛이 감돌았는데, 그것은 값비싼 도자기를 바라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거짓이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그런 눈빛을 보내시는 겁니까?”

정호기의 말에 현정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짓이 아니니 문제이지.”

“예?”

“진짜로 흑룡문이 너에게 금자 천 냥을 걸었다.”

“정말입니까?”

“그래, 네가 호아를 찾으러 간 사이에 들은 소식이다.”

‘이게 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군.’

사람들을 이끌고 중경으로 들어가려는 계획에 있어서는 도움이 될 것이지만, 어쩐지 일말의 불안감이 들었다.

***

때아닌 무림인들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인간 보물인 정호기 때문이었는데, 살아 있든 죽었든 상관하지 않고 금자 천 냥을 지급하겠다는 흑룡문의 발표가 있은 직후였다.

그것으로 인해 수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정호기와 같이 덩치가 크고 대도를 사용하는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정호기로 오인당해 죽음을 당하거나 쫓기는 신세가 되기도 했다.

결국 정호기가 현재 호북에 있으며 중경으로 향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사건이 일단락되었지만, 그것은 더 큰 사건을 예고하는 것에 불과했다.

무당산 아래에서 열흘을 꼼짝 않고 머물던 정호기가 무당산에 오르고자 움직였다.

-말 안 해 줄래?

-그냥 휴식을 좀 취했다니까요.

방구석에 틀어박혀 열흘이란 시간을 보내고 나온 정호기는 뭘 했냐는 현정훈의 물음에 제대로 답을 하지 않고 있었다.

-흥! 알았다, 알았어. 그나저나 지금 너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 것 같으냐?

-뭐, 대충 한 몇백 명 정도 되지 않을까요?

-최소 이삼 천이다.

-예?

-게다가 나라가 아니라 각 성에서 너를 잡고자 움직이는 사람들의 숫자가 그 정도란 말이다. 게다가 관과 군에서도 은밀히 사람을 보냈다는구나.

최소 이삼 천이라니,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역시 돈은 있고 봐야겠네요.

-돈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지. 네가 흑룡문주의 목에 그만한 상금을 걸었다고 해서 누가 움직일 것 같으냐?

현정훈의 말마따나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흑룡문주를 죽이겠다고 달려드는 인간들은 별로 없을 터였다.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걸까요?

지금 무당으로 향하는 사람들은 끝이 안 보일 정도였는데, 평소와 비교하면 거의 세 배에 이르는 인원수였다.

-너의 흔적이 이 부근에서 끊어졌다는 것이 이미 알려진 때문이지.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무당으로 향하는 것이고. 그리고 개중에는 이왕 여기까지 온 김에 무당을 구경하고자 하는 이들도 있겠지.

“어? 멈췄는데요?”

어느 순간 위로 오르던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곤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당에서 통제를 하는 모양이구나.”

하긴 그럴 만도 했다. 평소에도 시인묵객이나 무인들이 자주 찾는 무당이었는데, 오늘은 그 세 배에 이르는 인원이 한꺼번에 몰렸으니 말이다.

“어? 우리도 저들을 따라갈까요?”

길이 막히자 길을 버리고 산을 타는 이들이 생겨났는데, 무인들이 그들이었다.

“꼭 무당에 가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느냐?”

현정훈의 물음에 정호기가 무당파가 자리하고 있는 봉우리를 한 번 바라보더니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그냥 내려가지요.”

그런 정호기를 묘한 눈으로 쳐다본 현정훈이 발길을 돌리는 정호기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얼마를 내려갔을까?

올라왔던 길의 반 정도를 내려간 시점에서 무당산을 울리는 커다란 외침이 들렸다.

“정호기다! 정호기가 나타났다!”

그 말에 같이 하산하던 사람들의 절반이 신형을 날려 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또 누가 너로 오해를 산 모양이구나.

-그런가 보네요.

-미안한 마음은 없는 게냐?

-미안하긴 하지요. 하지만 그게 제 탓입니까? 현상금을 건 흑룡문과 덩치를 크게 타고 태어난 운 나쁜 누군가의 탓이지요.

정호기가 그런 말을 할 때 무당산자락을 빠르게 내려오는 이가 있었는데, 그를 보고 정호기와 현정훈이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어찌 된 일이냐? 혹시 네게 쌍둥이 형제라도 있었던 거냐?

-아니요.

수많은 이에게 쫓겨 산자락을 내려오는 이는 정호기의 외모와 너무도 흡사했고, 심지어는 그가 들고 있는 도의 형태도 호아와 비슷했다.

“맞았다!”

무공만은 정호기에게 못 미치는지, 누군가가 던진 창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내가 맞혔다, 내가! 그러니 내 것이다!”

이미 쓰러진 이는 생명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물건이 되어 있었다.

“웃기지 마라!”

소유권을 주장한 이의 말을 가볍게 씹어 준 도를 든 장한이 쓰러진 이에게 달려들어 그의 목을 쳐 내고는 머리를 들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내놔라!”

몸뚱이를 가지고 정호기라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기에 가장 확실한 것은 역시나 머리였다.

“흥! 내가 벴으니 내 것… 컥!”

장한의 가슴에 검을 꽂은 노파가 정호기의 머리를 낚아채더니 쏜 살 같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귀대랑, 네년이 감히 내 물건에 손을 대? 거기 서라!”

아마도 머리를 낚아채 달아나는 노파를 알고 있는 것인지 창을 던진 중년인이 분노를 터뜨리며 그녀를 쫓았고, 그런 중년인의 뒤를 수십 명의 인물이 각기 욕심에 벌게진 눈을 하고 따랐다.

-아무래도 사태가 심상치 않은 것 같구나. 일단 숙소로 돌아가자.

-네.

***

“어떻게 생각하느냐?”

현정훈의 물음에 정호기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대답했다.

“아마도 놈들은 오래전부터 이 일을 계획한 것 같습니다. 저와 닮은 덩치와 호아와 비슷한 도를 만들려면 하루 이틀에는 힘든 일이니까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튼 이 일은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으니 분타에 다녀오마.”

“예.”

현정훈이 나간 후 잠시 침상에 누워 있던 정호기가 벌떡 일어나더니 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아무래도 빨리 완성을 시켜야겠구나.’

정호기가 꺼낸 것은 둥근 철판 조각들이었는데, 그것에 가죽이 덧대 있었다.

‘바느질이 쉽지 않네. 더 큰 바늘을 사올 걸 그랬나?’

그의 손가락에 들려 있는 바늘은 보통 바늘보다 크기가 큰 대바늘이었지만, 정호기의 손에 들리니 그것도 작아 보였다.

입으면 딱 달라붙을 것 같은 상의에 벌써 여러 개의 철판들이 꿰매져 있었는데, 그 부위 하나하나가 혈도가 위치한 곳이었다.

아마도 보호대를 만드는 모양인데, 사실은 이것을 만들고자 무당에 들르자는 핑계를 댄 것이었다.

지금 정호기가 무당파에 가서 할 일이란 없었으니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드디어 철판들을 모두 옷에 꿰맨 정호기가 그것을 자신의 행낭에 넣었는데, 지금은 축골공으로 몸을 줄인 상태라 입어도 별 효험이 없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없군.’

기감으로 주변을 살핀 후 축골공을 풀고 몸을 이리저리 움직인 후에 가부좌를 틀고 짧은 운기를 통해 축골공을 유지하느라 막혔던 혈도들을 내공을 이용해 어루만졌다.

언제 원래대로 돌아가더라도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하려면 이렇게 계속 몸을 풀어 줘야 했다.

운기를 마친 정호기가 이내 생각에 잠겼는데, 작금의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식이면 무림은 엄청난 혼란을 맞이하게 된다. 게다가 부모님이나 의제들이 이 소식을 들으면 어떻게 행동할지도 알 수 없고.’

백 냥과 천 냥은 단순히 열 배 차이가 나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것이 금자이고 보면 그 파급효과는 열 배가 아닌 백 배, 천 배가 될 수도 있었다.

‘역시 조당은 이번 기회에 전면전을 펼칠 생각이야. 이것은 그것을 위한 사전 준비에 해당하는 것이고.’

얼마나 많은 목숨이 사라질지 몰랐다.

‘나라면 여기에 불을 지르겠다.’

혼란을 가중시키기란 쉬울 것 같았다.

‘전대의 고수가 남긴 비급이라도 무림에 던져 놓거나, 그것이 있는 곳의 장보도를 던지면 아주 가관이겠지.’

이미 정호기로 인해 무림 기조가 보물사냥으로 바뀐 지금, 장보도가 나타난다면 그 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고수부터 하수에 이르기까지 전 무림이 보물 사냥에 뛰어들게 될 거야. 처음 검을 잡은 놈들까지도 설치게 되겠지.’

그 혼란을 틈타 흑룡문이 일을 벌이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었다.

‘흐름을 주도할 수만 있다면 소림을 도모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오늘처럼 죽음을 각오하고 사람들을 선동한다면 흑룡문이 노리는 곳은 초토화가 될 것이었다.

‘군중을 동원해 정파와 싸울 셈인가?’

일이 커지면 정파에서 손 놓고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제자들을 내보낼 것이고, 힘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보물에 눈이 뒤집힌 군중들과 마찰이 빚어질 것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다.

‘관과 군에서도 사람들을 내보냈다고 했는데, 만일 정파와 그들이 붙기라도 하면?’

어느 쪽이 다치든 곱게 넘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어쨌거나 사람들을 이끌고 중경으로 넘어가 혼란을 일으키려던 내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구나.’

실패일 뿐만 아니라 역공을 당해 위기에 처한 꼴이라 할 수 있었다.

‘돌아오는군.’

그때 인기척이 들렸는데, 현정훈이 돌아온 모양이었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오는 현정훈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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