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응? 언제 저렇게 따라왔지?”
한가하게 언제 왔는지 계산할 시간이 없었다. 자칫하다가는 백여 명에 이르는 저 추격자에게 난도질을 당하게 생겼으니까.
“같이 가자, 이놈아!”
순식간에 자신과 백여 장의 거리를 벌린 정호기를 쫓아 현정훈이 발을 굴렀다.
-이쪽으로 가면… 너 설마?
-맞습니다, 인화산장이지요.
소란이 전해졌는지 인화산장에서 무사들이 나와 진을 치고 있었는데, 정호기를 잡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가 장원으로 뛰어드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었다.
어느새 보물이 된 정호기에게 눈이 먼 이들이 오백여 명으로 불어나 뒤를 쫓고 있었기 때문에, 만약 정호기가 인화산장으로 들어가고 눈이 뒤집힌 그들이 따라 들어갔다가는 난리가 날 판이었으니까.
-설마 저놈들이 인화산장으로 뛰어들겠느냐?
인화산장은 무당의 속가. 아무리 보물에 눈이 뒤집혔어도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 있는 것이다.
-아직 모르시는군요.
-뭘?
-개인과 집단의 차이요. 곧 알게 되실 겁니다.
그들이 점점 인화산장으로 다가갈 때, 앞에서 커다란 외침이 들렸다.
“멈추시오!”
그런다고 멈출 것 같았으면 오지도 않았다.
“더 이상 접근하면 공격하겠소!”
친절하게도 정호기에게 그 소리는 이제부터 공격할 테니 준비하시오란 소리나 같았다.
그래서 정호기가 그들의 친절을 받아들여 호아를 꺼내 들었다.
“쏴라!”
티티티티팅!
화살 따위가 정호기를 해할 수는 없었다.
물론 개중에는 내력이 깃든 화살도 있었지만, 무흔 정도의 수준이 아니고서야 지금의 정호기를 위협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하압!”
화살을 막은 정호기가 공중으로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호아를 내리그었다.
콰콰콰쾅!
단 한 수에 의해 인화산장 앞을 지키던 이들이 만들어 놓은 벽에 구멍이 생겼고, 정호기가 그곳을 통해 빠르게 지나쳤다.
쾅!
인화산장의 벽을 몸으로 뚫어 버린 정호기가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가더니 전각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말리고자 사람들이 뛰쳐나왔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러던 정호기가 가장 큰 전각을 골라 안으로 들어가더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찾아라!”
정호기를 찾고자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여러분, 이성을 찾으십시오! 이곳은 무당의 속가인 인화산장입니다!”
차라리 그냥 나가 달란 말을 했어야 했다.
“무당이란 이름으로 우리를 핍박하는 것이오?”
누군가의 외침이 도화선이 되었다.
“인화산장이 정호기를 독차지하려 한다!”
다른 누군가의 외침은 불씨가 되었다.
“아닙니다! 어찌 우리가 그러겠습니까? 핍박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우리 장원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는 행동은 무단 침입이란 말입니다. 도의를 아시는 분들이라면 지금이라도 떠나 주십시오. 그렇게 해 주신다면 더 이상의 책임은 묻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무슨 도적 떼라도 된단 말이오! 책임을 묻겠다니!”
또 다른 누군가의 외침이 기름이 되어 성난 군중을 휘감았는데, 유심히 들었다면 그 세 개의 외침이 모두 남자의 것이고 어쩐지 비슷한 음색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겠지만, 지금 여기서 그것을 신경 쓸 위인들은 거의 없었다.
정호기를 잡고자 하는 생각에 어떻게든 누군가가 먼저 인화산장을 상대로 일을 벌이기만을 바라고 있었으니까.
“저기다! 정호기가 저기 있다!”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를 지르며 전각으로 뛰어들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를 따라 신형을 날렸다.
“이러지 마십시오! 이성을 찾으십시오!”
단지 말로 말리기에는 벌써 시기를 놓쳐도 한참을 놓친 상태였다.
이제 성난 군중은 폭도가 되어 인화산장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앞서 들렸던 외침과 비슷한 목소리가 인화산장을 울렸다.
“인화산장이 사람을 죽였다!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 정호기를 독차지하려고 우리에게 살수를 쓰고 있다!”
어느새 우리란 말로 폭도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만들었으며,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단 위협을 가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해 보면 그 말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리라.
인화산장 같은 곳에서는 금자 백 냥이 ‘겨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돌이키기에는 너무도 먼 길을 온 셈이었다.
“죽여라!”
그 소리와 함께 인화산장의 무인이 죽음을 당했고, 그가 지른 비명 소리가 거대한 재난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다.
“장을 수호하라!”
결국 인화산장도 무력으로 맞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
“네놈도 참으로 독한 놈이구나.”
현정훈의 말에 정호기가 왜 그러냐는 듯이 바라보았는데, 본래의 그가 아닌 축골공으로 몸을 줄인 상태였다.
“축골공으로 사람들 틈에 숨어들어 그들을 이용하다니… 저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멀리 보이는 인화산장은 거대한 화염에 휩싸였는데, 그곳을 빠져나오기 전에 정호기가 손수 이곳저곳에 불을 질렀기 때문이었다.
그런 인화산장에서 아직도 비명 소리와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보물을 탐한 죄지요.”
“쯧쯧, 네놈도 곱게 죽지는 못할 게다.”
현정훈의 말에 정호기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지도 모르지요.”
말을 마친 정호기가 몸을 돌리더니 빠르게 그곳에서 멀어졌는데, 그가 향하는 방향은 중경이었다.
“설마하니 중경까지 쫓아오는 놈들이 있겠느냐?”
“가는 길에 수작 좀 부리면 쫓아오지 않을까요?”
“어떻게?”
“어르신께서 좀 도와주십시오.”
“내가?”
“예, 개방을 통해 소문을 흘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소문이라……. 어떤 걸 말이냐?”
“제 현상금이 금자 천 냥으로 올랐다고 해 주세요. 각 성마다 빠짐없이 소문이 퍼져야 합니다.”
정호기의 말에 현정훈이 순간적으로 묘한 표정을 지었다가 의문이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
“금자 천 냥? 어차피 흑룡문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금방 거짓이라는 것이 들통 날 텐데?”
“흑룡문이 개방처럼 빠르고 넓은 정보 집단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도 제 현상금이 먼저 퍼질 테지요.”
“그렇게 되면 올 놈은 오겠구나.”
“그렇지요. 그리고 설사 오지 않는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흑룡문에 악몽을 안겨 주는 건 저일 테니까요. 다만 제가 중경에 있단 사실이 널리 퍼지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알았다, 그렇게 하마.”
“가는 길에 개방의 분타에 들러 일을 처리하시지요?”
“오냐.”
개방의 분타에 들른 정호기는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현정훈은 정호기의 부탁을 들어주고자 분타주를 만나고 있었다.
“역시 축골공을 계속 사용하니 몸에 무리가 오는구나.”
축골공은 골격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혈도 자체도 정상적이지 않은 상태로 만들기 때문에 장시간 펼치거나 짧은 기간에 연속적으로 펼치면 몸에 이상을 주었다.
“응? 어째서 축골공을 푼 것이냐?”
현정훈의 말에 정호기가 몸을 움직이며 답했다.
“답답해서요.”
“그렇다고 여기서 풀면 어쩐단 말이냐? 혹시라도 누가 본다면…….”
“개방의 분타에 누가 오겠습니까? 와 봤자 개방도일 텐데, 그들이 저를 밀고할 리가 있겠습니까?”
맞는 말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같지 않은 것처럼 개방도들 중에서도 은밀히 뒷거래를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래도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어서 축골공을 펼쳐라. 자칫하면 이곳이 쑥대밭이 될 수 있음이다.”
“알겠습니다.”
말을 마친 정호기가 축골공으로 몸을 줄이고는 옷을 갈아입었다.
“어르신도 변장 좀 하시지요? 오늘 저녁은 무당산 밑에 있는 마을에서 보낼 것이니.”
그 말에 현정훈이 기겁을 했다.
무당산에는 무당파가 있고, 그곳에는 사시사철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기 때문이었다.
일부러라도 피해야 할 곳을 자진해서 찾아간다니, 현정훈으로서는 정호기가 제정신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뭐? 무당에 가겠단 말이냐?”
“예.”
“제정신이냐?”
“말짱합니다. 자, 어서 변장 좀 하세요. 역용할 도구가 있으시면 주름 좀 지우고 머리도 염색 좀 하시고요.”
결국 정호기의 성화에 못 이긴 현정훈이 역용을 하였는데, 모두 끝난 자리엔 중년 남성이 서 있었다.
“어르신도 꾸미니 좀 나은데요? 자, 그럼 무당을 구경하러 가 볼까요?”
역용을 한 정호기와 현정훈이 느릿한 걸음으로 무당을 향해 길을 떠났다.
***
“어찌 생각하는가?”
조당의 물음에 공손우가 긍정을 표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저도 그런 것은 전혀 생각지 못했으니까요.”
“그럼 어디쯤에 있을 것 같은가?”
“모를 일이지요. 다만 두 가지의 경우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문에서 가깝든지, 아니면 아주 멀리 떨어져 있겠지요.”
“현재 가용한 인력이 얼마나 되지?”
“은밀히 탐색하는 데 가용할 수 있는 인원은 대략 이백 명입니다.”
“대놓고 한다면?”
“그럼 분타와 지부들을 모두 동원할 수 있으니 오천 가까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오천이라… 하지만 드러내 놓고 할 수는 없는 일. 일단 이백을 동원하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은?”
“벌써 선별을 마치고 내보냈습니다. 조금 있으면 무림은 정호기로 인해 커다란 혼란을 맞을 것입니다.”
“알았네. 수고해 주게.”
“예.”
명을 받은 공손우가 방을 나서자 조당이 등잔에서 흔들리는 불을 바라보았다.
“등하불명이라…….”
뜻모를 말을 내뱉는 그의 얼굴에 결연한 표정이 감돌았다.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났다. 네가 아니라 어떤 누가 와도 그것을 막을 수는 없는 일.”
하늘을 수놓은 별들을 바라보며 조당은 앞으로의 일을 그리고 있었다.
***
“갑자기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이냐?”
무당산 아래에 자리한 마을에 있는 객점에 여장을 푼 후, 현정훈이 정호기에게 물었다.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중경에 가기 전에 한번 들르고 싶어 온 것뿐입니다.”
“그래?”
“예.”
말을 마친 정호기가 행낭을 침상에 던져 놓고는 나갈 채비를 했다.
“어디 가려고?”
“숨겨 둔 호아를 가지러 갑니다.”
몸은 작은 주제에 커다란 도를 들고 다닐 수는 없는 법이었기에 금을 구해 그곳에 숨기고 다녔는데, 인화산장에 난입하면서 금이 부서져서 호아를 땅속에 묻어 두고 마을에 들어 온 상황이었다.
“호아를 숨길 수 있는 금도 하나 장만하고요.”
“돈은 있느냐?”
“인화산장에서 좀 챙겼습니다.”
말을 마친 정호기가 방을 나서자 현정훈이 침상에 몸을 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