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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94화 (95/137)

94화

사준우가 애써 떨어지지 않는 걸음으로 사비연을 쫓아간 후에 남은 이들이 모두 정호기를 바라보았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인가?”

당평의 물음에 정호기가 영초린이 건네주는 호아를 받으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마라문과의 싸움을 끝낼 생각입니다.”

정호기의 대답을 들은 당평이 전음을 보냈다.

-천수신의께서 믿을 수 없는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네. 가주께서도 반신반의하고 계신 실정이지.

-어떤 말씀이셨는지요?

-흑룡문이 오래전부터 중원을 도모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으며, 자네의 진짜 사부가 그것들을 조사하다 실종되었단 얘기였네. 사실인가?

-예, 사실입니다.

-일단은 그것의 진위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이나, 이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세나.

당평이 이것을 전음으로 하는 이유는 유옥접 때문이었고, 그것을 나타내기라도 하듯이 슬쩍 눈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전음을 마친 정호기가 남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마치 눈에 새기기라도 하듯이 강한 눈빛으로 한 번씩 바라보았다.

“놈들과 싸우기 전에 소개시켜 드리고 싶은 분이 있으니, 일단 저를 따라오십시오.”

정호기가 모두를 이끌고 향한 곳은 영웅회의 건물이 있는 곳에서 멀지 않은 산이었다.

그곳에 폐가가 있었고,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

“역시 황구가 제일 입맛에 맞는 것 같지 않습니까?”

“그런가요? 전 백구가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황구는 어쩐지 노린내가 나는 것 같아서…….”

“어허, 진정한 개고기의 맛을 모르셔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개고기의 지존은 역시나 황구이지요.”

개고기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가뭄과 장마로 식량이 떨어지자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개를 잡아먹으며 널리 퍼졌다 할 수 있었다.

인육을 먹는단 흉흉한 소문이 퍼질 정도로 굶주림에 시달린 시절이었고, 개뿐만 아니라 쥐까지도 잡아먹을 정도였었다.

그 후 개고기는 사람들에게 주요한 영양분을 공급하는 재료가 되었고, 요리법도 다양하게 발전되었다.

“마침 호기가 오는군요.”

개고기를 두고 설전을 벌이던 진청운이 정호기와 함께 다가오는 이들을 보자 일어섰고, 입가에 기름을 잔뜩 묻힌 현정훈도 그를 따라 일어섰다.

“현 대협이 아니십니까?”

당평이 알은체를 하자 현정훈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 인사를 받았다.

“당 대협이 오시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덕분에 이렇게 현 대협을 뵙게 되지 않았습니까? 따라오길 잘한 것 같습니다.”

당평이 다가갈수록 어쩐지 현정훈은 조금씩 멀어지는 것 같았다.

“역시나 황구겠지요?”

“예? 아, 예…….”

“당가에 있는 황구의 씨를 말려 버린 현 대협을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이렇게도 만나는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허허허, 좋은 추억이라 생각하면 안 되겠습니까?”

“추억이라……. 가주님과 십여 년을 함께한 황룡을 들고 튀지만 않으셨어도 그렇게 될 뻔했지요.”

당평의 얼굴에 미소가 어릴수록 현정훈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솟고 있었다.

“그, 그건…….”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자, 잘 부탁합니다.”

“흐음, 냄새가 구수하군요. 어서 오십시오. 제가 친히 한 그릇 퍼 드릴 테니.”

당평이 솥단지 옆에 있는 그릇을 들고 현정훈을 불렀지만, 그는 가까이 오려 하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좋아하는 황구탕이었음에도.

“갑자기 배가 부르군요. 저는 됐으니 많이 드십시오.”

당가에 화를 끼치고도 당가의 무인이 건네는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

“어허, 제 손이 다 무안합니다. 어서 받으십시오.”

건네는 당평의 손가락이 국물에 살짝 닿았다 떨어지는 것을 본 현정훈은 절대 그것을 받고 싶지 않았다.

“혜미야, 내가 드리니 받지 않으시는 모양이구나. 네가 가져다 드리도록 하여라.”

“예, 숙부님.”

생글거리며 그릇을 받아 들고 걸어오는 당혜미의 얼굴이 현정훈에게는 마치 나찰의 그것과 같아 보였다.

“자, 어르신. 받으세요.”

“으, 응. 고, 고맙구나.”

“벌써 오 년이 지났네요.”

그릇을 넘기고 현정훈의 옆에 앉은 당혜미가 마치 지난날의 추억을 떠올리듯 하늘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 작고 귀여운 설봉이 사라진 지.”

“캑, 캑…….”

“어머, 왜 그러세요?”

설봉은 당혜미가 키우던 작은 강아지였고, 현정훈이 이빨을 쑤시며 다니던 날 사라졌다.

“아, 아니다.”

“어서 드세요. 다 드시면 또 한 그릇 퍼다 드릴게요.”

“그, 그래.”

***

“아이고~ 가, 같이 가자, 이것아!”

숲 속에서 주저앉아 있던 현정훈은 똥구멍이 찢어질 듯한 아픔 속에서도 주섬주섬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정호기 등이 떠날 채비를 했기 때문이다.

“서두르지 않으시면 우리 먼저 가겠습니다.”

냉정한 정호기의 말에 현정훈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감정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개미 똥만큼도 없는 놈아! 늙은이가 배탈이 나서 좀 싸지르고 있으면 괜찮냐는 말이라도 한번 해 보겠다!”

“괜찮으십니까?”

“당연히 안 괜찮… 윽!”

소리를 지르느라 아랫배에 힘을 너무 준 모양이었다.

뜨끈한 것이 살짝 고개를 내밀려 했다.

“어르신, 배탈이 나셨으면 진즉에 말씀을 하셨어야죠. 자, 이것을 한번 드셔 보세요. 배탈에 아주 좋답니다.”

당혜미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작은 자기병에서 검은색의 환약을 꺼내 건넸는데, 현정훈이 잽싸게 그것을 받아 들더니 꿀꺽 삼켰다.

“고, 고맙구나.”

자고로 당가에는 두 개의 독이 존재한다고 세간에 알려졌으니, 그것은 대놓고 주는 독과 은밀히 주는 독이었다.

그리고 지금처럼 대놓고 주는 독은 독이 아니라 약이었고, 은밀히 주는 것이 바로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독이라 했다.

“아니에요, 어르신. 그런데 혹시나 저 때문에 탈이 났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무슨 그런 소리를 하느냐! 어떻게 감히 내가 너를 의심할 수 있단 말이냐? 절대 그런 생각일랑 하지 말거라. 알았지? 원래 거지들이란 것이 이것저것 잘도 주워 먹기에 배탈 따위는 늘 달고 산단다.”

그렇게 보기에는 당혜미가 준 약이 너무 잘 들었다.

벌써 뱃속에서 꾸르륵거리던 소리가 사라졌다.

마치 독을 풀고 해약을 준 것처럼. 그리고 누가 보더라도 그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그럼그럼, 내 이 은혜는 잊지 않고 꼭 갚아 주도록 하마.”

“아이, 은혜라니요. 어머, 정 소협께서 움직이시네요.”

말을 마치고는 당혜미가 정호기의 옆으로 이동을 했는데, 어쩐지 그녀의 행동이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한 것 같았다.

이전에는 정호기의 곁에 있어도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았었는데, 유옥접과 경쟁이라도 하듯이 정호기의 곁에 바짝 붙어 있었다.

아마도 이번 정호기의 실종이 그녀의 심경에 변화를 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변화보다 더욱 심한 변화를 보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유옥접이었다.

“정 가가.”

유옥접의 부름에 정호기가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시오?”

정호기의 대답에 유옥접은 만족한 미소를 지었는데, 그녀가 ‘가가’라 호칭한 다음에 정호기도 말투를 바꿨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오.”

유옥접의 얼굴에 근심이 어렸다.

“하지만…….”

“난 앞으로 힘든 싸움을 이어 가야 하오. 그런데 내가 약한 모습을 보이면 누가 있어 나와 함께 싸워 주겠소? 마라문은 그러기 위한 발판이니 잘 다져 놓을 생각이오.”

정호기는 사람들을 끌어 모을 생각이었다.

억지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신의 일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자고로 영웅심을 품은 젊은이들은 불물 안 가리고 덤비는 법이었고, 약자가 강자에 대항해 선전을 펼치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법이었으니까.

‘이 싸움을 선과 악, 정과 마의 싸움으로 이끌어야 해. 물론 내가 의외의 실력을 보이면 냉획을 죽였을 수도 있단 소리가 나올 수 있지만,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 약한 모습을 보이면 동정은 하더라도 동참은 하지 않을 테니까.’

그러기 위해서는 마라문을 잘 다져 놓을 필요가 있었다.

아주 잘근잘근 씹기 좋게.

‘냉백이 정파의 체면을 세워 준다고 늑장을 부리는 지금이 더없이 좋은 기회지.’

장화표국을 이용해서 흑룡문과 파천궁을 이간질하려는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어찌 된 일인지 파천궁에서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장화표국이 화마에 휩싸였고, 그것이 마라문의 소행이라는 것은 만천하에 알려진 사실임에도 파천궁은 침묵을 지켰다.

‘아무래도 파천궁이 뭔가를 알아차린 모양이야. 한발 물러서서 관망하겠단 심보겠지.’

흑룡문보다는 못해도 이대 사파 가운데 하나인 파천궁이었다.

그들이 지금 무림에 흐르는 이상기류를 눈치 챘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어째서 마라문이 갑자기 전쟁을 멈췄는지는 알아내지 못한 것이오?”

“네.”

실상 싸움을 멈춘 것은 마라문이었다.

정호기가 탈출하기 전부터 이미 마라문은 본거지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고 했다.

“갑자기 안으로 틀어박혀 꽁꽁 숨어 버렸으니까요. 불리했다면 모르지만, 마라문이 시종일관 유리한 싸움을 하고 있었기에 의문이 드는 일이었지요. 물론 화산과 종남에서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직전이었기에 그것을 피하고자 그런 것일 거라 짐작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정확한 속내는 모르고 있어요.”

유옥접의 말을 들은 정호기는 대충 그들의 속셈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언제부터 그러한 마음을 먹었는가인데……. 시기적으로 봤을 때 내가 탈출하기 전이니, 만일 내가 생각하는 것이 맞는다면 공손우는 처음부터 전면전을 염두에 두고 일을 벌였음이 분명하다.’

정호기의 생각처럼 공손우가 처음 계획한 것은 길고 지루 한 싸움이 맞았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도 진행 중이었고.

“왜 그러시는가?”

갑자기 멈춰 선 정호기에게 당평이 물었다.

“모두들 이쪽으로 와 주십시오.”

정호기가 사람들을 불러 모았는데, 자신이 생각한 바를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마라문은 질 싸움을 할 것 같습니다.”

그의 말에 당평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미 그도 그러한 짐작을 한 모양이었다.

“자네도 그런 결론을 내린 것 같군. 사 대협께서도 그것을 알기에 우리를 보낼 수 있었던 것일세. 문제는 어떤 형태로 질 것인가 하는 것일 뿐.”

“당 대협께서 보시기엔 어떨 것 같습니까?”

“최대한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노력하겠지. 하지만 희생은 있을 것이라 생각하네. 그래야 말이 될 테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무너진다는 것부터가 일단 말이 되지 않는 일이지 않습니까?”

“우리가 모르는 우리의 조력자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네. 만일 일이 그렇게 흘러간다면 우리는 좀 더 수월한 싸움을 할 수도 있겠지.”

당평의 말은 자신들도 모르는 조력자가 자신들을 도울 수 있다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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