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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84화 (85/137)

84화

‘어쨌거나 도박은 성공했다.’

잠룡승천공의 요결을 들은 이상 함부로 사람을 붙이지 못할 것이었다.

혹시라도 정호기가 모든 요결을 알고 있고, 그것을 누설하기라도 한다면 일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를 테니까.

결국 조당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인 공손우가 그 책임을 지고 정호기를 감시함과 동시에 수발을 들고 있었다.

‘오 일에 한 번 먹었고, 오늘 먹었으니 앞으로 오 일은 안전하려나?’

공손우가 몽황단을 주는 시기는 오 일 간격이었지만, 마냥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언제 바꿀지 모르고, 느닷없이 조당이 들이닥칠 수도 있었으니까.

툭.

정호기가 의자에서 일어나며 무릎을 한 번 치고는 어깨가 결린 듯 두어 번 양쪽 어깨를 두드렸다.

‘조당, 너는 잠룡승천공을 대성하지 못했고, 그것이 너와 나의 차이면서 내 구명줄이다.’

흑룡문 사상 처음으로 잠룡승천공과 광랑십삼검을 극성으로 익힌 정호기와 그러지 못한 조당은 그 차이가 분명히 존재했다.

‘잠룡승천공은 몽황단뿐만 아니라 모든 미약과 산공독을 몰아낼 수 있는 효능이 있단 것을 아직 알지 못하겠지? 그러한 네 무지가 나에게 기회를 주는구나.’

그것이 정호기가 정파와의 대결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비결 중의 하나였다.

암수가 통하지 않으니 오로지 실력으로 정호기를 상대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됐으니까.

‘내 인내력을 시험할 시간이 왔군.’

침상으로 향하며 허리 어름을 두들긴 정호기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몸을 숙이며 단전을 후려쳤다.

‘크윽!’

절로 신음이 새 나올 정도로 극심한 고통이 전신을 휘감았지만, 간신히 그것을 속으로 참아 내며 최대한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침상에 누운 정호기가 천장을 바라보았다.

감시자가 없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았으니까.

‘거기 있겠지? 공손우와 함께 조당의 신임을 독차지하고 있는 너, 야제(夜帝)가.’

홍여립이 무흔, 무영, 무심을 데리고 있는 것처럼 조당도 자신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야제를 거느리고 있었다.

정호기도 딱 한 번, 그것도 복면을 쓴 모습만 봤을 정도로 신비한 인물이었는데, 조당이 죽음과 동시에 그의 모습도 흑룡문에서 사라져 다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으음…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건가?’

겉으로 보기에 정호기의 얼굴은 조금 피곤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 어떠한 고통의 흔적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정호기는 수많은 개미가 살을 파먹는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으며, 힘줄이 하나하나 끊어져 나가는 느낌에 절로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 중이었다.

약 일각이 지났을 무렵 정호기가 신음을 흘리더니 그의 전신에서 땀이 배어 나왔고, 조금씩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으음…….”

마치 악몽을 꾸는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것이 멈췄다 계속되기를 근 한 시진 동안이나 이어졌다.

‘겨우 진정되었구나.’

혈신이었을 당시의 내공과 깨달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예 몽황단 자체가 통하지 않았을 것이었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흑룡문의 힘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야.’

자책은 들었지만,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래도 그때의 경험이 도움이 될 줄은 몰랐군.’

방은진으로 인해 유만걸이 배신한 사건을 겪은 후, 한동안 의심의 골이 깊을 대로 깊어진 정호기는 최악의 상황에 대해 고심했었다.

그러다 자신을 노리고 몽황단을 쓴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이 들어, 내공을 억누른 후에 스스로 몽황단에 중독이 된 적이 있었다.

당연히 해독약을 가지고 있었기에 실패한다고 해도 딱히 위험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진기는 똑같이 흩어져 있지만 상황이 다르지.’

몽황단에 중독된 것과 같이 진기가 흩어져 있지만, 지금은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였다.

즉,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내공을 쓸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나저나 너무 지치는구나.’

아까 눕기 전에 몸을 두들긴 것은 내공을 격발시키는 방법이었는데, 잠력을 이용하는 것이었고 내공이 있어도 쓰지 못하였기에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서둘러 체력을 회복해야지. 남아 있는 기간은 오 일. 그 안에 수를 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잠력을 격발시킨 탓에 내공을 계속 흩어 놓는 것은 장기적으로 위험을 가져올 수 있었다.

어서 안전한 곳에서 내공을 갈무리해야 했다.

‘어쨌거나 이제는 몰아넣은 몽황단을 배출시키기만 하면 끝인데…….’

방광에 쑤셔 넣은 것까지는 좋았지만 몸에 힘이 없어서 자칫 실수를 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 이전에 자연스럽게 일을 봐야 했다.

“헉!”

마치 악몽이라도 꾼 사람처럼 벌떡 일어난 정호기가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았는데, 그 행동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이제 이대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일어나 볼일을 보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침상을 벗어나려던 정호기가 이번엔 진짜 놀라서 몸이 그대로 굳었다.

창가에서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한 인물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마검 조당이었다.

***

“내가 누군지 알겠느냐?”

조당의 물음에 정호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놈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영웅회에 소속된 인물들과 그들이 속한 문파가 전부였다. 그나마도 마라문과 싸우느라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해 개방에 의뢰를 하는 실정이더구나.”

조당이 말을 할 때, 정호기가 침상을 벗어나더니 오물을 담아 둔 통을 연 후, 힘을 주어 빠르게 볼일을 보고는 뚜껑을 닫았다.

혹시라도 소변에서 몽황단의 흔적이 느껴질 것을 저어한 때문이었다.

소변을 보고 다시 침상으로 돌아가 앉은 정호기가 맞은편의 조당을 바라보았다.

“지난 열흘간 모든 정보 조직을 동원해서 찾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을 것 같으냐?”

정호기가 가만히 바라보자 조당이 빙긋 웃었다.

“나에게는 말을 해도 된다.”

“과연 나를 찾는 움직임이 어디서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지 파악하는 것이었겠지요.”

정호기의 말에 조당이 고개를 갸웃했는데, 그가 존대를 했기 때문이었다.

듣기로 공손우에게도 반말로 일관을 했다기에 자신에게도 그따위로 나오면 손을 좀 봐주려 했었다.

“죽기는 싫은 모양이구나.”

조당이 말한 의도를 파악했는지 정호기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겁니다.”

“예의?”

“예.”

대답을 한 정호기가 싸늘한 눈초리로 조당을 바라보더니 준비해 두었던 패를 꺼내 들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사백.”

“사백?”

정호기의 말을 들은 조당은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난데없이 사백이라니?

“처음이니 이번만큼은 정식으로 인사드리지요.”

말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난 정호기가 조당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정의문 십팔 대 제자 정호기가 사백을 뵙습니다.”

가까스로 참고 있기에 망정이지, 지금 입을 열었다면 조당의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왔을 것이다.

‘정의문을 알아?’

대대로 흑룡문주가 된 이들이 가진 비밀.

그것은 바로 그들의 뿌리가 정파에 있다는 것이었다.

“사백… 사백이라? 어째서 내가 너의 사백이 된다는 것이냐?”

“사부님은 사조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사부께서 아들을 두셨다?”

“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설사 그런 일이 있었다면 분명 나에게 말씀을 하셨을 것이다. 얼마나 바라고 바라던 일인데 그것을 감추셨겠느냐!”

“사조님은 분명 바라던 일이 맞습니다. 그러나 사백께서도 바라던 일이신지요?”

“뭐? 나도 당연히…….”

“흑룡문주의 자리를 얻지 못하셨더라도 말입니까?”

말을 자르면서 정호기가 입을 열자 조당이 침묵했다.

“사조께선 뒤늦게 얻은 아들의 존재가 사백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알고 계셨기에 감추신 겁니다.”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겼던 조당이 의자에 다가가더니 풀썩 주저앉았다.

[당아, 부디 내 꿈을 이루어다오.]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인자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사부의 얼굴과 못다 한 중원 정복의 꿈을 이루어 달라던 한 서린 음성이 떠올랐다.

‘사부께서?’

그렇게 생각하면 앞뒤가 맞아 들어갔다.

‘움직임이 없는 정파와 황궁. 거기다 문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까지. 무엇보다 잠룡승천공의 구결을 알고 있다는 것이 저 말을 뒷받침하고 있고.’

내부에서 시작된 일이었기에 찾아내지 못했고, 중원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렇겠지. 말씀하실 수 없으셨겠지…….’

유일한 제자이면서 후계자로 인식이 된 상황이었고, 젊었을 때의 조당은 거칠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야심만만한 인물이었기에 만일 경쟁자가 생긴다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원하는 위치를 차지했을 것이다.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하구나.’

차라리 외부의 적이었다면 망설임 없이 검을 뽑아 심장에 구멍을 냈겠지만,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사부의 수족일까?’

일급비밀들이 유출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핵심 인물이 깊숙이 개입되어 있다는 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아니야… 아니겠지.’

있어서도 안 될 일이지만, 문득 조당의 머릿속으로 공손우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정호기와 내통하는 자라면 모든 일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렇다면 내 명령을 무시하고 살려서 데리고 온 것도 말이 돼. 그럼 뭘 노린 걸까? 나와 대면을 시키기 위한 것이었을까? 무엇 때문에?’

[문주님이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제가 하겠습니다.]

이번 계획을 실행할 때 자신이 나선다고 하자 공손우가 적극 말렸었다.

‘아니야. 공손우 그놈이 이놈의 편이라면 나를 없앨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공손우가 정호기와 한패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죽여 버릴까?’

누가 되었든, 어떤 계획을 세웠든 여기서 정호기가 죽어 버린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되는 것이었기에 조당은 내심 갈등하고 있었다.

‘그것이 아니라고 하여도 놈의 팔 하나쯤은 잘라 버려도 될 것 같은데…….’

그때 침묵하던 정호기가 침상에서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사부님께서는 저와 네 분 사형을 가르치시면서 항상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말을 하면서 정호기는 눈을 빛내며 창밖을 주시했는데, 마치 뭔가를 살피는 것 같았다.

그런 정호기를 보며 조당은 ‘다섯’이라는 숫자에 주목했다.

‘다섯이나 키웠단 말인가? 거기다 이놈이 막내?’

넷이나 있다는 사형들이 정호기와 같거나 뛰어날지도 모를 일이니, 그들이 모두 뛰쳐나온다면 만만치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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