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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81화 (82/137)

81화

‘역시 쫓아오는군.’

이것들을 영초린에게 알려 주고 유인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실패할 가능성도 있었다.

‘무심, 너는 별호처럼 무심했어야 했다.’

혈신이던 시절 홍여립을 죽일 당시, 홍여립과 무영이 동시에 위기에 처했을 때도 무심은 무영을 구하기 위해 몸을 날렸었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가족을 미끼로 무심을 협박하고 모습을 드러내 그의 감정을 폭발시킨 것이었다.

‘그러나 저들 둘만으로는 효과가 반감되지. 초린이가 잘 해줘야 할 텐데…….’

쫓아가는 것을 막아야 할 두 사람이 먼저 몸을 날려 추격자를 쫓았으니, 영초린이 잘만 한다면 마라문도들을 이끌고 자신이 말한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었다.

‘저기가 좋겠군.’

멀리 보이는 산자락이 눈에 들어왔는데, 지금 현재 정호기가 향하는 곳은 장화표국이 있는 기오산이 아니라 그와는 정 반대 방향인 개화산이었다.

슝!

옆구리를 스치며 화살이 빠르게 날아갔다.

‘아직 멀었어. 더 쫓아와라.’

화살은 정호기를 맞추려는 의도보다 속도를 줄이려는 목적이었지만, 이미 알고 있는 정호기였기에 가볍게 피하고는 다시 앞을 향해 땅을 박찼을 때, 그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헉!”

화살을 잡은 손이 찌릿했지만, 놀란 심장만큼은 아니었다.

조금만 늦었다면 오른쪽 다리에 구멍이 났으리라.

부지불식간 오른쪽에서 화살이 그를 노리고 날아왔던 것이다.

“놈!”

정호기가 멈춰 서자, 무심이 검을 곧추세우고 몸을 날렸다.

챙!

불꽃이 튀며 순식간에 수십여 회의 공방이 오갔다.

밑에서 올라온 검이 옆구리를 노리고 스쳤다 싶은 순간, 오른쪽 어깨를 찔렀다.

형체도 없이 마치 순간 이동이라도 하듯 나타나는 검날을 요리조리 잘도 피하거나 막는 정호기였지만, 그의 신경은 무심의 검날보다 뒤에서 바라보고 있는 무흔과 주위에 있을 적에게 더 쏠려 있었다.

‘누구지?’

조금 무리를 한다면 단숨에 무심을 베어 버리고 무흔까지 처리할 수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적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조금 더 살펴보는 수밖에.’

공방을 이어 가며 기회를 노리기로 결정을 한 그 순간,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무심이 갑자기 뒤로 신형을 날렸다.

전방엔 무심, 그리고 후방엔 무흔이 정호기를 포위한 형국이었는데, 뻥 뚫린 좌, 우가 정호기는 더욱 신경 쓰였다.

‘누굴까? 저렇듯 살기가 뻗친 무심을 말릴 수 있는 놈이?’

무심은 여전히 살기 가득한 눈으로 정호기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자의로 물러선 것 같지 않았다.

“설마, 홍여립?”

“하하, 아쉽지만 틀렸소이다.”

부채를 들고 나타난 복면인을 보는 순간, 정호기는 또다시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공손우!”

“허, 이거. 복면이 무색해지는군. 정말 당신의 정체가 궁금해 죽겠소.”

복면인, 공손우가 허탈한 듯, 그리고 호기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계산 착오다. 공손우를 보내다니…….’

설마하니 공손우를 보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공손우가 어떤 인물인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흑룡문의 모든 계획을 총괄 지휘하다시피 하는 인물이 아닌가?

그런 인물을 밖으로 내돌리다니.

‘조당, 네놈을 과소평가했나?’

정호기에게 있어 흑룡문주인 마검 조당은 진정한 사부라 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에게 잠룡승천공과 광랑십삼검을 배웠으니까.

‘생각보다 대범하군.’

공손우를 지키기 위해 주변에 얼마나 많은 인물들이 숨어 있을지를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했다.

‘그래도 너는 그 대범함의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조당이 공손우를 보낸 것이 실수라는 것을 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공손우를 죽임으로써!

***

“휴우…….”

숨을 내쉬며 마음을 안정시킨 정호기가 서서히 진기를 휘돌리기 시작했다.

“정호기. 진청운의 제자. 이제 약관의 나이. 우리가 아는 것은 이것이 전부인데, 혹 저에게 하시고픈 말씀은 없으신지?”

“공손우. 흑룡문의 군사. 마중마 연성 계획과 천이 계획을 총괄하는 자. 슬하에 자식이라곤 하나뿐이지만, 기대에 못 미처 버려두다시피 방치. 아, 하나 더. 생긴 것 같지 않게 어린 여아를 밝히며 채음보양을 함. 나에게 더 할 말 있나?”

복면을 쓰고 있어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입을 벌린 채 멍하니 있는 한심한 꼴을 수하들에게 보였을 것이다.

“어, 어떻게?”

“이미 그대들의 계획은 만천하에 드러났다. 정파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리라 생각하나?”

“거짓말하지 마라!”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십 년에 한 번도 보기 어렵다는 공손우가 소리를 질렀다.

“그래? 정말 그럴까? 내가 거짓말을 하는 걸까?”

“어디 소속이냐?”

“알아서 뭐하게?”

순간 공손우가 숨을 두어 번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끝까지 그렇게 나오면 좋을 것이 없소이다.”

어느 정도 안정을 찾았는지 평소의 말투로 돌아왔다.

“지금 하고 있는 모든 계획을 중지하고 자중하지 않으면 멸문을 면치 못할 것이다.”

“멸문이라… 우리 문을 향해 함부로 그렇게 말을 할 정도의 집단이 어디 있을까?”

“신민이면 신민의 도리를 다하라!”

“신민의 도리라? 궁에서 나오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오?”

“…….”

“무언은 긍정. 하지만 그대의 말을 믿을 수가 없구려. 이미 황궁의 전력은 모두 파악하였기에.”

“그대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전부에 들어가지도 않을 정도면 신경 쓸 가치도 없는 것 아니겠소, 쥐새끼 나리?”

공손우가 말을 마치며 부채를 휘젓자 사방에서 화살이 정호기를 향해 쏘아 졌다.

채채채채챙!

“생긴 것 같지 않게 상당히 음흉하구려. 그 상황에서도 기를 모으고 있다니.”

화살들을 막아 내느라 모아 놓았던 기가 흩어진 정호기는 단숨에 공손우를 죽이고 빠져나가려는 계획을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심.”

“예, 군사.”

“죽이지 않고 잡을 자신이 있으신가요? 그렇지 않다면 물러나시지요.”

“자신 있습니다.”

“좋습니다.”

공손우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무심이 신형을 날렸다.

‘좋지 않아…….’

어느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공손우를 보면서 정호기는 이 자리가 득보다 실이 많을 것임을 깨달았다.

‘내가 무심을 꾀어낼 것을 예측하다니… 과연 만악복이야.’

조금 더 신중했어야 했다.

‘놈은 나를 잡기 위해서라면 무심의 생명은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무심과 싸우는 와중에도 거침없이 화살을 날릴 위인이 바로 공손우였다.

‘그것뿐이면 다행이겠지만…….’

그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양 주위를 붉은 안개가 감싸기 시작했다.

* * *

챙!

무심의 검을 막아 낸 정호기가 아무도 없는 왼쪽을 향해 도를 휘둘렀다.

도풍을 일으켜 붉은 안개를 멀리 보냈지만, 지금 있는 지형은 사방이 꽉 막힌 곳이었기에 바람 한 점 불지 않아 곧 붉은 안개가 그를 향해 스멀스멀 다가올 것이었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이러다간 내공이 바닥난다.’

무심을 죽일 수는 있겠지만, 목숨을 도외시하고 공격을 하고 있기에 아무런 상처도 없이 죽이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거기다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는 무흔도 신경을 써야 했다.

바로 지금처럼.

팅!

다리를 노리고 날아온 화살을 쳐 낸 정호기가 팔을 노리고 떨어지는 무심의 검을 막고는 빠르게 주위를 훑어보았다.

‘최소 이십에서 최대 사십. 붉은 연무는 분명 몽황분(夢徨粉)이 분명할 테니, 숨을 참는다고 해결되지 않으리라.’

미약과 몽혼약, 그리고 산공독을 섞어 만든 몽황분은 호흡기뿐만 아니라 피부로도 침투가 가능했기에 단순히 숨을 참고 뚫는다고 능사가 아니었다.

‘펼칠 수 있는 한계는 반의반 각도 되지 않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군.’

내공을 폭발시켜 호신강기와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설사 운 좋게 계획이 성공하더라도 내공은 바닥을 보일 것이니, 도망친다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방법이 없었기에 결심을 굳힌 정호기가 숨을 깊게 들이쉬고는 단전에 있는 내공을 급격하게 끌어 올렸다.

챙! 챙! 챙!

이제까지 소극적이었던 정호기가 갑자기 무심에게로 달려들어 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신경 쓰지 않는 사이, 몽황분은 서서히 두 사람을 감싸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완전히 그들을 삼켜 버렸다.

* * *

‘흐음… 놈이 몽황분의 효능은 모르는 모양이구나.’

안개 속에서 들리는 병장기 소리에 무흔은 곧 정호기가 그들의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길다!’

자신이 아는 무심은 몽환분 안에서 저토록 오래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아니었다.

자신만 하더라도 저 속에 들어가면 숨을 참더라도 채 백을 세기 전에 쓰러지고 말리라.

‘다가온다!’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몽환분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챙!

‘이상해.’

챙!

소리는 아까와 비슷했지만, 뭔가가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 무흔의 신경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었다.

‘뭐지?’

그가 그런 의문을 품을 때, 안개 속에서 뭔가가 빠르게 그를 향해 쏘아졌다.

“윽!”

날카로운 검봉이 그의 왼쪽 뺨을 스치듯 지나갈 때, 그 뒤를 따라 두꺼운 날의 도가 다시 그의 목을 노렸다.

쾅!

자신도 모르게 들어 올린 활이 부러지면서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해주었지만,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잡아!”

쓰러지는 무흔은 자신의 눈 위로 무수히 많은 화살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고, 그 뒤로 신형을 날리는 복면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그거였어…….’

이질적인 느낌은 다름 아닌 긴박감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무기가 서로 부딪치고는 있지만, 마치 악기를 연주하듯 일정한 박자를 타고 있었다.

“쯧쯧, 그대를 너무 믿었군요.”

정신을 수습하고 일어난 무흔의 눈에 복면을 한 공손우의 모습이 보였다.

“군사…….”

서너 명이 커다란 부채를 이용해 몽황분을 한 곳으로 빼내자, 목이 잘린 채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경!”

“그만. 아직 몽환분이 다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가가려는 무흔을 공손우가 제지했다.

“무심의 시신은 수하들이 수습할 것입니다. 당신은 아직 당신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어요.”

공손우의 말에 입술을 깨문 무흔이 몸을 돌리자, 복면인 하나가 다가와 그에게 활을 내밀었다.

그 활을 받아 들고 달려 나가려던 무흔이 나무에 박혀 있는 무심의 검을 보고는 자신의 옷자락을 찢어 손잡이를 잡고 힘껏 뽑아 들었다.

“죽이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빠르게 쏘아지는 무흔의 귀에 공손우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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