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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80화 (81/137)

80화

‘삼엄한데?’

어둠 속에서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마라문도를 보면서 영초린은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어차피 놈들을 이끌고 가기만 하면 되니 꼭 하귀를 기습할 필요는 없지.’

주변을 살피며 상대적으로 경계가 덜한 곳을 찾은 영초린이 암영보법을 펼쳐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응?”

“왜?”

어둠 속에서 두 명의 복면인이 튀어나왔다.

“방금 뭔가 지나가지 않았나?”

“지나가긴 뭐가 지나갔다고 그래?”

“분명 바람을 느낀 것 같은데…….”

“자네가 예민한 탓이겠지. 설마 우리 둘이 뻔히 지켜보는데 누가 지나갔겠나?”

“그런가?”

다시 두 복면인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미 영초린은 그들을 지나쳐 삼 층 전각의 처마에 매달려 있었다.

‘다섯… 아니 여섯이군.’

분명 그들은 서로의 사각을 중심으로 경계를 펼치고 있을 것이니 그곳을 파고들기란 쉽지 않을 것이었다.

‘단순히 파고든다면 그렇겠지.’

천천히 조금씩 움직인 영초린이 어둠 속에서 숨을 죽인 채 숨어 있는 복면인을 발견했다.

‘육각을 이루고 있군.’

그것은 전각의 형태와도 맞는 것으로, 각 모서리에 등을 대고 각각의 면을 바라보고 있으리라.

‘틈이 없으면… 만들면 되지.’

슉!

“끄……!”

작은 대롱으로 쏜 독침이 정확히 복면인의 목을 맞혀 목숨을 빼앗았지만, 영초린이 원한 틈은 만들어 지지 않았다.

“침입자다!”

어디서 소리가 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였다.

‘어쩔 수 없군.’

생각보다 더욱 철저히 교육된 놈들이었다.

동료가 죽었음에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침입자의 등장만을 알리다니.

어차피 이곳에 누가 있는지도 몰랐기에 더 깊이 파고들 생각은 없었다.

‘이제 빠져나가는 일만 남은 것인가?’

경계가 허술한 곳을 노린 것도 빠져나가는데 수월하기 위해서였으니, 지금 몸을 빼면 놈들을 충분히 따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스윽.

몸을 돌리는 찰나, 밑에서 뭔가가 바닥을 뚫고 날아왔다.

콰직!

가슴 어림을 길게 찢으면서 지나간 것은 다름 아닌 화살이었는데, 가까스로 몸을 돌렸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심장이 그대로 뚫렸으리라.

화살을 피하며 위치를 노출 시킨 탓인지, 매복하고 있던 복면인들에게 들켰고, 그들이 일제히 단검과 독침을 퍼부어 댔다.

타타탓!

단검과 독침이 나무에 박히는 소리를 들으며 영초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도망쳤다.

“잡아라!”

여기저기서 웅성대며 사라지는 영초린을 뒤쫓으려고 했지만, 그들을 말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멈춰! 모두 자리를 지켜라!”

검은 수염이 가득한 얼굴의 중년인은 손에 활을 들고 있었다.

***

“그놈이었나?”

활을 든 중년인은 무흔이었는데, 그에게 질문을 던진 깡마른 체구에 눈이 날카로운 중년인이 바로 정호기에게 죽은 무영의 형인 무심이었다.

“체격으로 봤을 때는 아니었네. 그리고 우리의 감각까지 속이고 들어온 것으로 보아서 전문적으로 살수 훈련을 받은 놈이지 싶네.”

“그래? 하긴, 그놈이든 아니든 상관없지. 어차피 우리는 움직이지 못하니 말이네.”

“그렇지.”

키이이익.

무심의 손에 들린 숫돌이 검날을 지나치며 거친 쇳소리를 토해냈다.

“군사에게선 아직 인가?”

“그러네.”

“남찬우는?”

“창양현을 지났다고 했으니 늦어도 내일 저녁이면 도착할 것이네. 그가 오면 원한을 갚을 수 있겠지.”

남찬우는 염화귀 관홍과 마찬가지로 흑룡문에서 파천궁에 심어 놓은 간자였다.

광도(狂刀) 남찬우.

한 자루 도를 들고 적을 상대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도저히 제정신인 사람이라 볼 수 없기에 광도란 이름이 붙여졌다.

자신의 피든 적의 피든, 피를 보고나면 목숨을 도외시하고 오로지 상대를 죽이기 위해 전진만을 고집하였고, 혹자는 그가 상대의 생살을 씹고 있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는 소문을 들었다고도 하였다.

키이잉.

다시 숫돌이 검날을 지나치며 그와 함께 무심의 마음속에 있는 복수라는 이름의 검의 날도 날카롭게 세웠다.

***

‘쫓아오지 않는다?’

벌써 세 번이나 마라문에 침투해 여섯을 죽였지만, 누구도 담을 넘어서까지 추격하지는 않았다.

‘어떻게 한다?’

아예 나올 생각을 않는 놈들이었기에 정호기의 명을 이행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군.’

정호기에게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놈들이 꼼짝을 하지 않는다고?

-예. 그리고 저를 공격한 놈은 화살을 이용했습니다.

-화살?

-예.

화살을 이용했다는 말에 정호기의 뇌리에 스치고 지나간 것은 무흔이었다.

‘놈일까? 놈일 가능성이 많다. 그럼 무심도 같이 있을 지도 모르겠군.’

무영과 무심이 형제지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정호기였기에, 무흔이 모습을 드러냈다면 형인 무심이 오지 않을 리 없기에 무심도 같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홍여립도 같이 왔을까?’

그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놈이 수련동을 비울 리 없지. 지금 한창 경쟁을 할 시기이고 자신들의 밑에 있는 수련생들을 단속하기 바쁠 테니까. 그럼 무흔, 무심만 있단 가정 하에 생각을 해 봐야겠구나. 왜 그들을 보냈을까? 그리고 어째서 가만히 있을까?’

머리를 굴린 결과 한 가지가 떠올랐다.

‘자리를 지키는 것은 뭔가를 기다리는 거지. 그것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리고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그게 누굴까?’

누군지 몰라도 한 가지는 확실했다.

‘시간을 주면 안 된다는 것!’

놈들이 나오지 않겠다면 끌어내야 하고, 나오려면 집어넣어야 했다.

적이 원하지 않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야 말로 적을 상대하는 기본 원칙이라고 배웠으니까.

‘공손우, 네놈이라면 그렇게 하겠지?’

계략에 대한 것들 대부분은 공손우에게 배운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좋아, 간다!’

-초린아.

-예.

-놈들이 있던 곳을 기억하느냐?

-예.

-이번엔 나와 함께 간다.

야행의를 입고 복면을 쓴 정호기가 호아가 아닌 좀 큰 박도를 들고 영초린과 함께 마라문을 찾았다.

영초린이 벌인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어수선할 것이라 생각했던 마라문은 의외로 쥐 죽은 듯 조용했고, 번을 서는 보초들만이 왔다 갔다 할 뿐이었다.

-놈들의 이목을 최대한 끌어라. 줄일 수 있는 만큼 수를 줄이고. 만일 놈들이 너를 쫓는다면 처음 계획대로 장화표국으로 가라.

-알겠습니다.

-일각 뒤에 시작하겠다.

영초린이 마라문의 담을 넘어 사라지고, 일각의 시간이 흐른 후 밤하늘을 타고 흐르는 유성이 보였다.

퍽!

“불이다!”

“불을 꺼라!”

유성은 계속해서 마라문으로 날아왔으며, 서쪽에 있는 전각 대부분에 옮겨 붙었다.

“크악!”

“기습이다! 침입자다!”

“찾아라!”

영초린의 활약으로 인해 불을 끄려고 나오던 마라문도들이 죽음을 맞았다.

***

“무슨 일인가?”

무심의 물음에 무흔이 활을 들며 대답했다.

“서쪽에 일이 생긴 것 같네.”

“그래?”

무심도 검을 갈무리하고 창가에 다가가 불타고 있는 전각들을 바라보았다.

“설마 성동격서를 저리 어수룩하게 펼쳤을까?”

“그래도 대비는 해야 하지 않겠나?”

두 사람이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들의 귓속을 파고드는 전음이 들려왔다.

-무심, 무흔! 무영의 시신을 찾고 싶나?

무심과 무흔은 전음의 내용에 심장이 덜컥할 정도로 놀랐다.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것이 그것이었는데, 지금 마라문에 있는 이들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이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아는 이도 공손우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행적을 가지고 유추할 수 없으니 본 얼굴을 알아봤다는 것인데,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이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정체를 드러내는 것은 거의 이십 년 만이었으니까.

‘어떻게?’

둘의 마음이 통했는지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 이름이 싫다면 강동 삼괴라 불러줄까?

“이, 이럴 수가?”

이십 년 전, 홍여립을 만나기 전에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별호였고, 그것을 현재 알고 있는 이는 홍여립이 유일했다.

심지어 자신들의 가족들도 모르는 사실인 것이다.

아니, 가족들은 그들이 흑룡문 소속의 무사인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놀람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으니…….

-지금 나오지 않는다면, 서림현에 있는 네놈들의 가족들은 내일 떠오르는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멀리 담벼락에 보이는 모습.

거대한 덩치와 커다란 박도.

“정호기!”

-선택해라!

말을 마친 정호기가 뒤로 돌아 달려가자 무심이 몸을 날리려 했다.

“경! 참게!”

“놔!”

붉게 타오르는 무심의 눈에는 복수심이 철철 넘치고 있었다.

“주군의 명을 생각하게!”

“마지막 불충이다!”

씹어뱉듯 말하는 무심이 살기까지 발하자, 무흔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아야 했다.

“같이 가겠네.”

무흔이 말을 할 무렵엔 이미 무심의 신형은 마라문의 담벼락을 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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