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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77화 (78/137)

77화

-알았다.

대답을 하고 술을 마시던 정자를 내려가니 홍성한이 대나무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두 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비록 술에 취하지 않았다고는 하나 술을 마신 상태에서 진검으로 비무를 하기는 뭣하니 이것으로 하면 어떻겠습니까?”

“좋습니다.”

훙! 훙!

대나무를 받아 들고 몇 번 휘둘렀는데, 그 느낌이 좋았다.

‘그나저나 대나무를 안전하다고 생각하다니. 이놈은 아직 쓴 맛을 못 본 모양이구나.’

몇 번만 잘못 부딪혀도 쩍쩍 갈라지고 부러져 상대에게 치명적인 부상을 입힐 수 있는 것이 바로 대나무였다.

홍성한도 대나무를 몇 번 공중에 휘두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워 이전에도 대나무를 이용해 비무를 해 본 경험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럼 모르지 않을 텐데? 뭘 노리는 거지?’

“잘 부탁드립니다.”

말을 한 홍성한이 대나무를 정호기에게 겨누고 다른 손을 뒤로 하며 기수식을 취했다.

그 모습을 보고 정호기도 대나무를 앞으로 세웠는데, 그 순간 땅을 박찬 홍성한이 빠르게 쇄도해 들어갔다.

‘한 방이면…….’

홍성한이라고 정호기의 실력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사가장의 소장주인 만큼 무공이 낮을 리 없는 사준우를 가볍게 이겼다고 했다.

그만큼 자신이라고 해서 쉽사리 이길 수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바로 대나무를 이용한 대련이었다.

‘중도를 사용한다고 했으니 필시 힘을 중시할 터. 사 소협을 꺾은 것을 보면 속과 환에도 어느 정도 진전이 있겠지만, 그 밑바탕은 분명 힘일 것이다.’

시작하기 전 허공에 대나무를 휘두를 때 살펴보았지만, 역시나 강하게 내리찍는 동작을 취했고, 그것은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해 주었다.

‘만일 연습할 때처럼 힘을 이용해 내리찍는다면 그 순간 비무는 끝이 날 것이다!’

대나무는 단단하지만, 그렇다고 쇠로 만들어진 검이나 나무를 깎아 만든 목검과 같지는 않았다.

그것들보다 약하기 때문에 홍성한은 지금까지 몇 번 상대의 죽검을 부러뜨린 적이 있었다.

‘굳이 이길 필요도 없다. 몸에 한 방이라도 적중시키면 그것으로 족하니까.’

실상 그렇게 되면 비무는 끝이 난다고 할 수 있었다.

홍성한이 손을 살짝 흔들자 대나무의 끝이 흔들리며 화려한 꽃송이를 피워 냈다.

대나무를 부러뜨리는 요령 중에는 상대의 죽검 마디와 마디 사이를 자신의 죽검 끝 부분으로 치는 방법이 있는데, 옆면을 치는 것보다 죽검의 끝부분으로 내리치는 상대의 죽검을 찌르면 더욱 확실하였다.

바로 지금처럼!

‘끝났다!’

자신을 양단할 것처럼 떨어지는 죽검을 보며 홍성한은 승리를 직감했다.

역시나 자신이 환을 이용한 공격을 하자, 그것을 부수기 위해 강을 사용한 것이다.

꽃잎이 하나로 모아지듯 순식간에 죽검의 환영이 사라지며 드러난 실체가 정호기의 죽검을 목표로 찔러 들어갔다.

쩍!

파죽지세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정호기의 죽검과 홍성한의 죽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홍성한의 죽검이 그대로 정확이 이등분 되어 쪼개졌으니까.

딱!

홍성한의 머리에서 호두를 깰 때나 남 직한 소리가 들리며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오라버니!”

홍초희가 놀라 달려올 만큼 홍성한의 머리에서 난 소리는 심상치 않았다.

“으…….”

신음을 흘리며 비틀거리다 쓰러지는 홍성한의 몸을 홍초희가 잡았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홍성한의 머리에서 피가 흐르며 홍초희의 옷을 붉게 물들였다.

“이런, 제가 좀 봐도 되겠습니까?”

정호기가 급히 다가가 지혈을 시키고는 그를 안았다.

“서둘러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정호기가 홍성한을 안고 앞장섰고, 그 뒤를 홍초희가 따랐는데, 그것으로 술자리는 사실상 끝이 났다.

***

“흥! 잔꾀를 쓰다가 당한 거지. 대형, 대형이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굳이 사준우가 말을 하지 않아도 정호기는 별 다른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구나.”

“그거야 홍 소협 잘못이지요. 기세가 강했기에 멈추지 못하고 오히려 들이민 꼴이잖습니까? 만일 대형의 죽검이 부러졌다면 홍 소협의 죽검이 대형의 안면을 때렸을 겁니다.”

사준우의 말에 나상진이 거들었다.

“맞습니다, 대형. 그렇기에 깨어난 홍 소협이 오히려 사과를 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상진의 말대로 장으로 돌아와 정신을 차린 홍성한이 정호기에게 먼저 사과를 했었다.

“어쨌거나 이 일이 홍 대협의 결정에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할 터인데, 걱정이다.”

“별일 없을 겁니다. 홍 대협이 그렇게 사리가 어두운 분도 아니니까요.”

“알았다. 준우, 너는 그만 가 보거라.”

“예.”

사준우가 나간 뒤, 나상진과 영초린을 앞에 두고 정호기가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미리 말을 한 것처럼 이제 우리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과 같다. 모두 각오를 하도록 해라.

-예.

-흑룡문은 분명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리를 죽이려 할 것이다. 그만큼 도발을 했으니 가만히 있다면 오히려 그것이 더 이상하겠지.

말을 마친 정호기가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죽지 마라.

두 사람을 보낸 후 정호기는 홀로 앞으로 있을 전쟁을 그려 보고 있었다.

‘드디어 진짜 싸움의 시작인가?’

피가 튀기고 살점이 날아다니는 잔혹한 싸움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놈들은 필사적으로 내 가족을 찾기 위해 움직일 거다.’

이제부터는 누가 더 빨리 적의 심장에 칼을 겨누는지가 관건인 싸움이었다.

‘최대한 정파를 끌어들여야 한다.’

단순히 영웅회와 마라문의 싸움으로 끝나서는 안 되었다.

‘그러기 위한 희생은 불가피하다.’

누가 죽고, 누가 살 것인가?

‘지금쯤 놈들은 첩자를 색출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겠지?’

안 봐도 눈에 훤히 그려졌다.

‘한바탕 놀아 보자꾸나.’

싸움이 커지면 커질수록 전생의 혈신이던 시절, 자신의 등을 지켜주던 흑룡문도들이 오히려 자신에게 칼을 겨누고 목숨을 빼앗고자 달려들 것이었다.

새삼 여진욱의 얼굴이 떠올랐다.

‘추억은 되새길수록 아름다워진다고 하더니,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니었구나.’

혈신 정호기에게 있어 유일하게 정을 줄 수 있었던 그들의 기억이 지금 그의 머릿속에서 춤을 추듯 떠오르다 사라졌다.

전장에서 핀 사나이들의 우정이었고, 목숨을 맡길 수 있는 신뢰였다.

‘다시 가질 수 있을까?’

지금 그의 곁에 있는 이들은 모두 그의 필요에 의해서,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서 불러 모은 이들이었다.

영초린이나 나상진이 만일 그를 위해 죽는다고 해도 그때와 같은 감정은 느끼지 못할 것 같았다.

‘으음… 현실을 살고 있건만, 어째서 지금의 내가 더 허상처럼 느껴지는 걸까?’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졌다.

***

“우리도 뜻을 같이 하겠습니다.”

홍금한의 말에 사비연이 감사의 인사를 한 연후에 최소한의 인원만 영웅회에 보내줄 것을 요구했다.

“제 동생인 청한이와 함께 자식들을 보내겠습니다.”

홍금한이 홍성한과 홍초희를 보내는 것은 영웅회와 함께 있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일이 시작되면 누가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르니, 외부에 내보내는 것이 더 안전하겠지. 사 대협이 사 소협을 데리고 있는 이유도 그것일 테니.’

내부적으로 사파와 내통하던 이들을 처리하려면 그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었고, 궁지에 몰린 그들이 가족을 위협할 수도 있었다.

“알겠습니다.”

-사 대협, 어느 정도 부르셨습니까?

홍금한의 전음에 사비연이 고소를 짓고는 답했다.

-한풍대와 적열대가 있습니다.

‘역시!’

사비연, 사준우가 있는데 사가장에서 가만 놔둘 리 없었고, 대외적으로 마라문과 싸운다고 했으니 그에 맞는 전력을 보냈을 것이라 예상했었는데, 그의 예상대로 사가장에서 가장 전투력이 높다는 두 개의 대가 그들을 따르고 있었다.

-그럼 저도 비천단과 폭풍단을 따르게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만금장을 나선 정호기 일행은 다시 영웅회가 있는 장원으로 돌아왔다.

“일단 오늘과 내일은 푹 쉬십시오. 모레 저녁에는 화진으로 이동할 것이니 말입니다.”

“화진현입니까?”

정호기의 말을 들은 홍청한이 고개를 갸웃하면서 물었다.

“예. 바로 마라문을 치기에는 우리의 전력이 약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놈들의 수족을 먼저 잘라낼 생각입니다.”

“화진현에 마라문의 하부조직이 있습니까?”

“예. 이미 조사는 마쳤으니, 서서히 놈들의 숨통을 조여 나가면 될 것입니다.”

정호기의 말에 홍청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형님의 말씀대로군.’

그가 보기에 정호기는 마라문과 진짜 싸움을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밑의 조직 몇 개 부숴 봤자 그들은 마라문에게 있어 소모품 정도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풍대와 적열대도 마라문과의 싸움을 대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 대협과 사 소협을 지키기 위해 있는 것일 게야.’

그가 그런 생각을 할 때, 정호기가 다시 한 번 주의를 주고 있었다.

“분명 소문이 그들의 귀에 들어갔으니, 마라문이 언제 도발을 할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주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부 조직을 상대한다는 마음가짐을 갖지 마시고 마라문을 상대한다는 생각으로 놈들을 대하십시오. 마라문에서 어떤 함정을 파고 기다릴지도 모르니 말입니다.”

‘웃기는군. 뻔히 그 속을 다 알고 있는데도 저렇게 말하다니.’

아무리 사실을 말해도 왜곡된 결론으로 받아들이기에 사실이 거짓이 될 수도 있었고, 그것이 바로 지금 홍청한의 경우였다.

‘어서 형님이 장을 정리하셔야 우리도 돌아갈 수 있을 텐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형인 홍금한이 걱정되었다.

‘폭풍단은 놔두고 올 걸 그랬나? 괜히 사가장이 두 개의 대를 보냈다고 해서 폭풍단까지 데리고 온 것은 낭비 같은데… 지금이라도 돌려보내?’

홍청한의 이 생각은 이틀 만에 완전히 바뀌었다.

***

“막아! 어서 막으란 말이다! 폭풍단은 어디 있느냐! 왜 아직도 오지 않느냐!”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검을 휘두르는 홍청한은 뒤를 바짝 따를 것이라던 폭풍단주의 멱살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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