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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76화 (77/137)
  • 76화

    “그나저나 사 소협이 정 소협을 대형이라 부르는 것을 어떻게 보느냐?”

    “치기 어린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저나 형님도 그 나이 때는 그런 것이 멋있어 보였지 않습니까?”

    “그렇게 받아들이기엔 사 대협의 태도가 이상하더구나.”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정 소협을 이용하려는 생각에서 사 소협으로 하여금 경계심을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맡겼을 수도 있습니다.”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뒤에 숨어 일을 꾸미고 모든 책임은 정 소협에게 전가한다?”

    “그렇지요. 나중에 발을 뺄 때가 되면 서슴없이 그를 희생양으로 삼을 것입니다.”

    점점 말이 되어 가고 있었다.

    “우리도 시기를 잘 맞춰야겠구나.”

    “예. 사가장의 동태를 감시하다 그들이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이면, 선수를 쳐서 먼저 빠지면 될 것입니다.”

    아주 바람직한 계획까지 만들어 졌다.

    “좋아, 그렇게 하자꾸나.”

    바깥쪽에서 바라본 영웅회의 관계가 다른 결과를 도출하게 했다.

    ***

    “호오, 마라문을 노린다?”

    전서를 받아든 공손우가 미소를 지었다.

    “네놈이 그곳까지 파악을 한 것 같구나. 정파, 사파, 거기다 하오문까지. 과연 네놈이 모르는 것은 무얼까?”

    전서를 탁자에 내려놓은 공손우가 부복해 있는 수하를 바라보았다.

    “놈의 가족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직 찾지 못했느냐?”

    “하남으로 향한 것은 파악이 되었는데, 그 뒤로는 행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정호기의 가족들을 인질로 잡으려는 계획은 초장부터 실패했다고 할 수 있었다.

    “볼수록 영악한 놈이구나. 그렇다면 우리가 마라문을 이용해 놈을 공격할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겠지? 흐음, 그럼에도 대놓고 마라문을 노린다? 놈이 노리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할수록 더욱 늪에 빠지게 만드는 존재였다.

    “광추.”

    “예.”

    “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공손우의 질문을 받은 광추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지금까지 파악한 정보가 모두 사실이라면 놈은 군사님이나 저, 둘 중의 하나여야지만 됩니다.”

    “그렇지? 문주님께서 문을 배신할 리는 없으니 문주님은 당연히 아니실 테고, 너와 나를 제외하면 누구도 알지 못하는 정보를 그는 알고 있다. 인화산장을 아는 사람은 셋뿐이었거든. 인화산장처럼 숨어있는 다른 곳들도 그는 알고 있을까?”

    “알고 있다 생각하고 앞으로의 일을 계획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 맞는 말이지. 그렇게 생각해야겠지. 자, 그럼 다시 그놈을 분석해 볼까? 일단 인화산장은 오래된 곳이지. 일 년에 한 번 정도 보고가 올라오기에 나도 가끔은 잊어버릴 때가 있을 만큼 말이야.”

    일부러 보고를 최소한으로 하게 했다.

    어떤 실수가 있어 정체가 발각될지 모르니까.

    “그런데 이번 귀접을 이용한 작전은 최신이랄 수 있는 정보야. 나조차도 문주님께 듣기 전에는 몰랐을 정도로.”

    모든 정보는 흑룡문주인 조당에게 보고가 되지만, 그것들이 들어오는 경로는 크게 네 군데였다.

    공손우와 홍여립, 그리고 냉백과 문주 직속의 비밀 정보대인 구천대.

    네 군데 모두 정보의 교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핵심적인 것들은 움켜쥐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그들 모두가 가지고 있는 비밀 정보를 아는 이는 문주인 조당이 유일하다 할 수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정호기의 행보를 보면 조당이 배신을 해서 정호기를 조종하고 있다는 결론밖에 없었다.

    그것을 공손우가 물었고 광추가 대답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버젓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있지 않느냐?”

    그게 문제였다.

    분명 있을 수 없는 현실인데도 실현되었으니 말이다.

    “문주님의 시비들은 어떻게 되었느냐?”

    “고문과 미약을 통해 심문하였지만, 어떤 혐의점도 찾지 못했습니다.”

    “놈들이 신이 아닌 다음에야 분명 어딘가 우리가 모르는 허점이 있을 것이다. 정파쪽 동향은?”

    “너무도 조용합니다. 그 어디에서도 우리에 대한 얘기를 하는 곳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도 계속 각지에서 전서들이 올라오고 있지만, 아마도 같은 내용일 것 같습니다.”

    “황궁에도 손을 썼겠지?”

    “예. 막대한 양의 금괴를 왕진에게 보내도록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놈이 황궁 소속이라면 곧 어떤 언질이나 조치가 있을 것이라 사료됩니다.”

    “좋아.”

    말을 마친 공손우가 부채를 흔들며 천천히 좌우로 움직였고, 광추는 고개를 숙인 체 그의 명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는 어떠냐?”

    귓가에서 들리는 목소리.

    목에는 어느새 부채의 깃털이 간질이고 있었다.

    “명하신다면 죽겠습니다.”

    “쯧쯧, 그따위 말은 진짜 첩자나 하는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

    “…….”

    의심을 받는 상황이 닥치면 의심을 종식시키고 숨어 있는 다른 이들을 위해 결백을 주장하며 목숨을 끊는 것.

    그것이 흑룡문이 간자들을 보낼 때 교육시키는 내용이었고, 사실 그렇게 죽는 것이 나중에 사로잡혀 온갖 고문을 당하다 죽는 것보다 나았다.

    “몇 년이나 되었지?”

    “올 해로 이십오 년째입니다.”

    “정확히는 이십사 년 구 개월 하고 십사 일이 지났다. 너를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오르는 구나.”

    지금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자신들이 한 짓거리가 있으니 아무리 오래되었다고 해도 신뢰할 수 없었다.

    “배신하지는 않았겠지?”

    “예.”

    “좋아, 정보부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모든 이들의 신상을 다시금 파악해라. 그들의 부모는 물론이고 조부, 고향까지 전부!”

    “알겠습니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드는 놈들은 모조리 잡아다 철저하게 파헤치도록.”

    “예!”

    광추가 나간 후 공손우가 이마를 문질렀다.

    ‘누구지? 누가 있어 이런 일을 계획했을까? 그놈의 배후가 누굴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알 수 없었다.

    * * *

    홍성한이 일행을 데리고 간 곳은 운치도 있고, 전각이 각각의 공간에 자리해 다른 이들의 방해도 받지 않는 곳이었다.

    “대나무가 참으로 좋군요.”

    어린아이 주먹 만한 굵기의 대나무는 봄날의 정취를 더욱 돋웠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잎들이 만들어 내는 음률은 술맛을 좋게 만들었다.

    “좋구나.”

    “대형. 여기도 좋지만, 신양현의 영화루란 곳은 강가에 자리해 탁 트인 전망과 석양이 근사한 곳이지요. 언젠가 제가 그곳에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알았다. 그럼 그때는 내가 사도록 하마.”

    “약속 하신 겁니다.”

    “그래.”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옆에서 지켜보며 홍성한, 홍초희 남매는 자신들이 아는 사준우가 맞는지 의아해 했다.

    [사 제. 이 근처에 경치 좋은 곳이 있나?]

    [홍 소협, 비록 제가 나이가 어리다고는 하나 사가장의 소장주입니다. 예의를 지켜 주시지요.]

    네 번째의 만남을 가진 자리에서 한 말이었고, 열두 살의 어린 나이였었다.

    그리고 그 태도는 아직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그런 그였는데…….

    “대형, 어째서 제 술은 안 받으시는 겁니까? 자, 제 술도 받으세요.”

    정호기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하는 꼴이 마치 제 친형제보다도 더 살갑게 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남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또 있었는데, 바로 당혜미와 유옥접이었다.

    “동생, 너무 마시는 거 아니야?”

    “언니, 많이 마시기는요. 괜찮아요, 괜찮아.”

    마치 술을 들이붓듯 마시는 유옥접과 그녀를 말리는 당혜미 또한 친 자매 같았다.

    -이거야 하나의 조직이라기보다는 가족 같잖아?

    마치 가족들의 나들이에 초청받지 않은 외인이 된 기분이었다.

    -그러게요. 전부 배다른 형제 같네요.

    홍성한의 전음에 홍초희가 어이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흠흠, 정 소협.”

    “예.”

    “늦게나마 사가장의 무림대회에서 우승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홍성한이 술병을 들면서 권하자, 정호기가 자신의 잔에 있던 술을 마시고는 잔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홍 소협도 우승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제 잔도 한 잔 받으시지요.”

    이번 만금장에서 열린 무림대회의 우승자는 다름 아닌 홍성한이었는데, 사준우가 자신의 장원에서 열리는 대회에 출전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결정된 일이었다.

    정호기가 따라 준 술을 마신 홍성한이 슬쩍 사준우를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전 솔직히 사 소협이 우승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죽기 살기로 싸웠지요.”

    “제가 운이 좋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정호기가 사준우를 배려한 대답이었지만, 홍성한은 그것을 물고 늘어졌다.

    “운이라니요. 겸손하시군요. 듣자 하니 정 소협이 압도적인 우위로 우승을 하셨다고 하던데요. 마치 어린아이와 어른의 싸움 같았다고 들었습니다.”

    홍성한은 이 말을 듣고 사준우가 발끈하기를 바랐지만, 그의 바람대로 되지는 않았다.

    “맞습니다, 대형. 그게 어떻게 운입니까? 만일 대형이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면 전 아마 이렇게 걸어 다니지도 못했을 겁니다.”

    체면을 세워 줬건만 이건 오히려 스스로를 더욱 낮추는 것이 아닌가.

    ‘이놈은 자존심도 없나?’

    어쨌거나 홍성한의 계획은 이게 끝이 아니었기에 바로 정호기를 자극했다.

    “저는 사실 그때 사 소협이 우승하길 바랐답니다. 그동안 한 번도 없었던 두 대회의 우승자끼리 비무를 해 보고 싶었거든요.”

    은근한 눈빛을 보내는 홍성한을 보면서 정호기는 이놈이 아까부터 이렇게 살갑게 구는 이유가 자신과 대련을 하고 싶어서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 속내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다.

    ‘이놈이 왜 이러는 거지?’

    “두 가문의 후계자가 서로 우승자가 되어 기량을 겨룬다? 한 편의 영웅지와 같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그렇군요.”

    “그런데 사 소협이 덜컥 정 소협께 지는 바람에 그것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지요.”

    “아쉬우시다면 지금이라도 상대해 드릴 수 있습니다.”

    사준우의 말을 들은 홍성한이 고개를 저었다.

    “사 소협께서는 정 소협께 패한 그 순간 자격을 잃었다 할 수 있지요.”

    말을 하고는 정호기를 바라보는데, 그 눈빛이 사뭇 도전적이었다.

    그런 홍성한의 태도에 사준우가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으련만 그는 전혀 화를 내지 않았다.

    “설마… 홍 소협은 대형과 비무를 하고 싶으신 겁니까?”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그의 눈에 깃든 열망이 그것을 대신하고 있었다.

    “제가 오늘은 술이 과한 것 같으니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그때 하도록 하지요.”

    정호기의 말에 홍성한이 술병을 들더니 자신의 잔에 가득 부었다.

    “사실 정 소협이 드시는 것에 맞춰 같은 수의 잔을 마셨지만, 비무를 청하는 입장이니 세 잔의 술을 더 마시겠습니다.”

    그러더니 누가 뭐라 하기도 전에 연거푸 세 잔의 술을 더 마신 후에 정호기를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비무 요청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적당히 상대해 주면 되겠지.’

    만금장을 끌어들이러 온 길이니만큼 화기(和氣)를 해칠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생각으로 막 몸을 일으킬 때, 사준우가 주먹을 꽉 쥐는 모습이 보였다.

    -대형, 부탁드립니다.

    정호기가 너무 대등하게 싸우거나 밀리는 모습을 보인 채 비무를 마치게 된다면 상대적으로 사준우의 실력이 떨어져 보이게 되니,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였다.

    거기다 비공식적으로는 사비연도 정호기에게 패하지 않았는가?

    사준우는 정호기가 그런 모습을 보일까 봐 이런 말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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