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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71화 (72/137)

71화

‘귀접을 기다리는 것인가?’

사실 당가에서 누가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기에 정호기는 내심 흐뭇한 표정을 지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사준우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당 대협이 어째서? 당 소저를 보호하기 위함인가?’

분명 자신이 파악하기로 정호기는 마라문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았고, 은연중 그 뜻을 보였다.

그리고 자신이 파악한 것을 당혜미가 알아차리지 못할 리 없건만, 떠날 줄 알았던 당혜미가 동참하고 거기에 당평까지 합세한 것이다.

‘가문에 다시 전서를 띄워야겠구나. 이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지도 몰라.’

사준우는 자신의 두 번째 전서가 전혀 의외의 인물을 불러들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 *

“할아버지?”

정호기와 마주 앉아 있는 사비연의 모습을 본 사준우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 녀석이, 할아비를 봤으면 냉큼 인사나 할 것이지, 뭘 그리 뚫어지게 보고만 있는 것이냐?”

“아, 안녕하셨어요?”

“안녕하지 못했으면 좋겠느냐?”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나저나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은… 네가 도와달라고 해서 왔지.”

“예? 제가 언제요?”

“전서로 징징거리지 않았느냐. 당 대협이 와서 세가 밀리는 것 같으니 비슷한 사람으로 보내 달라고. 그래서 내가 온 건데. 왜? 이 할아비로도 부족한 것 같으냐?”

“정말 여기 계실 거라고요?”

“그래. 아무튼 그렇게 됐으니 잘 부탁하네.”

사비연의 말을 들은 정호기가 고개를 숙였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자, 그럼 인사도 했으니 그만 가서 쉬어야겠구나. 앞장서라.”

사비연을 자신의 전각으로 모시고 가는 사준우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져 있었는데, 자신이 원하던 결과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저긴 활기차구나.”

가정호와 화세걸이 묵고 있는 전각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렸는데, 각각 서른 명과 스무 명을 가문에서 보내준 탓이었다.

“나도 좀 데리고 올 걸 그랬나?”

“분명히 아버지는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가시라 하셨을 텐데, 당 대협이 혼자 왔다니까 할아버지께서 거절하신 거지요?”

안 봐도 뻔했고, 그것이 사실이었다.

“그럼 모양새 빠지게 주렁주렁 매달고 오란 말이냐?”

“그래도 어떻게 혼자 오실 생각을 했어요? 누가 할아버지 시중을 들라고…….”

딱!

“네 녀석이 들면 되지. 자, 여기 돈 있으니까 알아서 쓰고.”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아 있던 사준우가 돈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설마 빼돌리신 건 아니죠?”

“이 녀석이! 할아비를 뭐로 보고!”

“할아버지니까 여쭤 보는 거지요.”

“뭐?”

사비연의 손이 다시 올라가자 사준우가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뒤에서 사비연이 가슴 어림을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두들겼는데, 사준우의 말대로 두둑이 챙긴 돈 때문이었다.

‘뭐, 할아버지가 가져갈 것을 알고 더 넣어 주셨겠지.’

사준우도 그냥 해 본 말에 불과했다.

어차피 그의 부친도 사비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니까.

“쯧쯧, 그나저나 회주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은 모양이구나. 저렇게 파리 떼처럼 잔뜩 몰려온 것을 보면.”

“예?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다. 어서 가기나 하자. 배고파 죽겠다.”

사비연의 말에 사준우도 가정호와 화세걸이 있는 무리를 바라보았지만, 그가 한 말의 뜻을 알 수 없었다.

‘정 소협의 의도? 뭔가 다른 뜻이 있었나?’

* * *

“제가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밑에서부터 치고 가다간 오히려 위험을 자초할 것 같습니다. 그러니 바로 마라문을 치겠습니다.”

정호기가 모두를 부른 자리에서 한 말이었고, 그것을 들은 사비연이 얼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마라문을 친다고 하셨는가?”

“예.”

정호기의 대답을 들은 사비연이 당평을 바라보았다.

“당 대협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종일관 무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당평의 얼굴에 연한 미소가 어렸다.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사비연이 재차 물었지만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그러자 이번엔 시선을 정호기에게로 돌렸다.

“자넨 섬서에 흑도문파가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나?”

사비연의 물음에 정호기가 바로 대답했다.

“현마다 두세 곳이 있다 계산하면, 한 백여 개 되지 않겠습니까?”

“내가 예전에 한번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크고 작은 흑도문파의 개수가 무려 오백여 곳이 넘더구먼. 사라진 곳도 있겠지만, 그만큼 다시 만들어지니 지금도 비슷하다고 봐야겠지. 아니, 오히려 더 늘었을지도 모르고. 물론 그중에서 마라문과 같은 곳은 십여 개에 불과하네. 나머지들은 이삼십 명이 전부인 작은 곳이지.”

“생각보다 많군요.”

“그렇다네. 사파 척결? 자네는 그들 모두를 상대할 생각인가?”

“어느 정도 압박을 가하면 지리멸렬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뒷골목 부랑배들까지 사파로 치부할 생각은 없습니다.”

“자네가 생각하는 사파는 모두 일정 세력을 가지고 있는 이들인가? 그들은 오히려 서민의 생활과는 무관한 이들이 더 많네. 자네가 무시하려는 뒷골목 부랑배들이 더 서민의 고혈을 빨아먹는 악독한 놈들이지.”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사파척결의 의지를 내세우며 정호기가 했던 말이었고.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그것에 반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알고 있을 사준우도, 가정호도 누구 하나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사준우는 노리는 바가 있었고, 가정호는 알면서도 정호기의 뜻을 거스를까 함구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자네의 말대로 마라문을 쳤다고 치세나. 만일 그들 중에 생존자가 있고, 원한을 품는다면 우리는 관부에 의해 살인자로 수배를 받을 수도 있네.”

관례처럼 무인들 간의 다툼에는 관이 나서지 않는 법이지만, 신고가 접수되면 예외였다.

거기다 관원이 그쪽 사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뇌물이라도 받았다간 무인뿐만이 아니라 문파 전체가 관의 조사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신고하는 일도 거의 없고, 대부분의 정파도 관에 인맥이 있기에 문파 자체가 조사를 받는 경우는 없지만, 세상에는 예외란 말이 있으니 아예 배제할 수도 없었다.

“또한 만일 자네의 행동이 사파를 자극해 그들이 뭉치고 정사대전이라도 벌어진다면 무수히 많은 이들의 목숨이 위험하게 될 것이네. 그렇게 되면 그 희생의 책임을 자네가 질 텐가?”

극단적인 말이었지만, 이것이야말로 정파가 사파를 놔두는 이유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부끄러운 말이지만, 정파 중에는 그런 사파와 긴밀한 교류를 하는 곳도 있고, 다는 아니라고 해도 문파 중의 누군가가 인연을 맺고 있는 곳도 있네. 그런 이들의 이해관계를 따져 보기는 했나? 만일 정파 중에서 그들의 손을 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그들과도 싸울 텐가?”

정호기가 좌중을 둘러보았는데, 가정호와 화세걸을 제외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사비연의 말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렇듯 사파 척결의 기치는 좋은 것이라 할 수 있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라네.”

“그렇기 때문에 정파가 그 색을 잃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정의는 관심 없고 오로지 자파의 이익에만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전 그것을 바꾸고 싶다는 겁니다.”

열의에 찬 정호기의 얼굴을 본 사비연이 사준우를 바라보았다.

-네 녀석 말대로 크게 사고 칠 놈이구나.

사비연의 전음에 사준우가 고소를 지었다.

-그런데 왜 오셨어요?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사실은 너도 정 소협과 뜻이 같지 않느냐? 그렇기에 전서에도 동참하고 싶다는 뜻을 비춘 것이고.

-마라문이 사가장과 만금장 사이에 버젓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뭡니까? 할아버지도 잘 아시잖아요. 이제 그만 고름을 짜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내분을 막으려면 외부에 적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고, 그때를 틈타 썩은 부위를 도려내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사준우의 전음을 들은 사비연이 다시 정호기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사파 척결의 기치를 내걸고 그들을 친다면 사파도 최선을 다해 반격을 해 올 것이네. 우리가 이득을 위해 자신들을 핍박한다고 하거나, 가문을 습격하거나, 친분이 있는 정파인들을 선동해 무자비한 살육자로 몰아갈 수도 있네. 그러한 모든 것들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예!”

사비연의 고개가 유옥접과 가정호, 그리고 화세걸에게로 향했다.

당평과 당혜미를 바라보지 않은 것은 이 일에 대해 예외라고 치부해도 좋았기 때문이었는데, 감히 사천에서 당가를 쳐들어갈 정도로 배짱이 좋은 사파도 없고, 그들 근처에 둥지를 튼 사파도 없었다.

섬서의 사파도 마찬가지였다.

당문이 있는 사천까지 굳이 내려가서 죽고 싶은 사파는 없는 것이다.

차라리 집에서 자결을 하는 게 그나마 깨끗한 시체를 보존하는 길이었다.

“자네들은 어떤가?”

“전 상관없습니다.”

유옥접이 바로 대답을 한 반면, 가정호와 화세걸은 쭈뼛거리며 대답을 하지 못하였는데, 그들은 지금 처음 정호기가 마라문을 친다는 말이 그냥 해본 말인 줄 알았다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 되어가자 얼이 빠진 상태였고, 사비연이 한 말들로 인해 겁에 질려 있었다.

“나와 당 대협이 있다고 해서 자네들의 가문이 안전할 것이란 생각은 버리게.”

사비연이 말을 마치고 당평을 바라보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가 입을 열었다.

“저와 혜미는 갈의를 입을 생각입니다.”

당가에서 녹의가 아닌 갈의를 입는다는 것은 가문을 떠나 그들 개인의 의사로 일을 벌인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설사 당평과 당혜미가 죽는다고 해도 당가에서는 상대에게 어떠한 책임도 물을 수가 없었다.

당평의 말을 들은 사비연이 다시 가정호와 화세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정 소협의 생각을 제대로 가문에 알리지 않았다면 이제라도 가문에 알리고 제대로 된 답변을 듣는 것이 좋을 게야.”

“아, 알겠습니다.”

“뭐하나? 알았으면 한시라도 빨리 가서 가문에 전갈을 넣지 않고.”

“예? 아, 예.”

가정호와 화세걸이 밖으로 나가자 사비연이 정호기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는데, 그것은 어린아이가 예쁜 짓을 하고 부모를 바라보는 그것과 같았다.

“겁이란 이렇게 주는 거라네. 어떤가? 나 잘하지 않았는가? 잘했으면 칭찬이 있어야지. 어째서 가만히 있는 겐가?”

“고맙습니다.”

정호기의 인사에 사비연이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씨는 던져졌고, 어디부터 건드려 볼 텐가?”

“일단 밑에서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제풀에 지쳐 뛰쳐나오겠지요.”

두 사람의 말에 사준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기… 두 분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인지 모르겠는데요. 마라문을 치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사비연이 그런 사준우를 보면서 혀를 찼다.

“쯧쯧, 좀 영리한 것 같아도 이럴 때 보면 확실히 모자란 구석이 많구나. 너도 이참에 회주와 의형제를 맺고 대형으로 모시는 것이 어떠냐?”

“…….”

“허허허, 사 대협. 너무 그렇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모르는 것은 사 소협 혼자가 아닌 듯하니…….”

당평의 말마따나 당혜미와 유옥접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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