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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신 다시 살다!-67화 (68/137)

67화

“대형!”

무영의 목뼈를 부러뜨리고 축 늘어진 그의 시체를 손에 쥔 채 떨어지는 정호기를 보면서 영초린은 고마움과 함께 경외감을 느끼고 있었다.

‘방금 전 느꼈던 파동은 역시 대형의 것이었어.’

일촉즉발의 순간 영초린도 엄청난 기의 파동을 느꼈고, 그것이 정호기의 것이란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살아서 그를 만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꼼짝없이 죽을 것이라 여겼는데 또다시 목숨을 살려 주었기에 고마움을 느낀 것이고, 천천히 허공을 내려오는 정호기의 모습에서 경외감을 느낀 것이었다.

‘능공허도!’

영초린도 완전한 능공허도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떨어지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었고, 지금 정호기의 나이에 그와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는 현재 중원에 없을 것이며 고금을 뒤진다고 해도 찾기 힘들 것이었다.

“아직 미숙하구나. 내가 분명히 너보다 한 수 위라고 했거늘.”

“죄송합니다.”

나이는 영초린이 더 많았지만, 영초린은 한 번도 정호기가 자신보다 어리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물론 그를 주군으로 섬기려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었기에 그러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영초린은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대형은 거목이다.’

앞으로도 그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다시금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폐관에 든지 얼마나 지났느냐?”

“만 하루가 조금 못 되었습니다.”

“그래?”

정호기는 며칠은 흘렀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것에 놀랐다.

“일단 나가자.”

천장에서 먼지와 함께 잔해가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무래도 건물이 무너질 것 같았다.

그들이 채 건물을 다 나가기도 전에 다가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무슨 일입니까?”

가장 먼저 달려 온 것은 영웅회의 인물들이었고, 그 뒤로 장원에서 일하는 하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무슨… 그놈은 뭔가요?”

유옥접의 물음에 정호기가 무영의 시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무래도 귀접을 따르던 잔당이 남은 것 같습니다. 당 소저, 이것을 한 번 봐 주시겠습니까?”

정호기가 무영이 들고 있던 단검을 건네자, 그것을 바라보던 당혜미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지금으로써는 뭐라 말씀을 드리기 힘들지만, 이건 상당히 독특한 독인 것 같군요.”

“그렇습니까?”

“예.”

대답을 하며 당혜미가 다시 단검을 건네자 정호기가 손을 저었다.

“당 소저께 드리겠습니다.”

“정말인가요?”

무인에게 보검이 커다란 선물인 것처럼 독을 다루는 이에게는 극독, 그것도 새로운 독은 보검에 비견될 정도의 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당혜미가 정호기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그리고 귀접의 신물을 훔쳐간 것도 이놈들 같습니다. 그러고는 복수를 위해 우리를 찾은 것이지요.”

“흐음…….”

가정호의 얼굴이 굳어졌는데, 그와는 다르게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한 이들도 있었다.

바로 사준우와 당혜미였고, 그들은 정호기의 전신을 훑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시선을 느낀 정호기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을 하였다.

“약간의 진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간의 진전이라고 말하기에는 아까 발출했던 기의 파동이 심상치 않았다.

지금은 안으로 갈무리되어 알아볼 수가 없지만, 분명히 사준우는 그때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여러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정호기는 앞으로의 계획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네놈들을 수면 위로 끌어내 주마.’

더 이상 눈치를 보며 숨어 지낼 필요도 없었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나갈 생각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네놈들을 끌어내는 것이 내가 가족을 만나는 날이 가까워지는 것이겠지?’

“추, 축하드립니다.”

가정호가 뻘쭘한 표정으로 정호기에게 축하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말을 마친 정호기가 바로 고개를 돌리더니 사준우와 당혜미를 바라보았다.

“이놈은 제가 조사를 해 보고 싶은데, 그래도 되겠습니까? 물론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혹시나 모르니까요.”

“그렇게 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럼.”

말을 마친 정호기가 눈짓을 하고 걸어가자, 영초린이 무영의 시신을 안아 들고 정호기의 뒤를 따랐다.

그런 정호기의 뒷모습을 보면서 가정호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인원이 그리 많지 않았기에 영웅회가 자리 잡은 이 장원에 빈 전각은 많았고, 다른 이들의 전각과 떨어진 것들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간 정호기가 의자에 앉자 영초린이 무영의 시신을 바닥에 내려놓고는 옷을 벗겼다.

-대형, 너무 떨어진 것은 아닙니까?

지금 정호기가 찾아온 이 전각은 다른 이들이 있는 곳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기에 무영의 옷을 벗기며 영초린이 물은 것이었다.

-상관없다. 이제 내게 있어 위험한 것은 없으니까.

말을 하는 정호기는 상당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뭐 좀 있느냐?”

“별다른 것은 없습니다. 전낭과 자기병 두 개, 그리고 검집뿐입니다.”

-이놈을 살려뒀더라면 흑룡문과의 관계를 알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도 유용하고 말입니다.

-아니. 어차피 살아 있었어도 대답할 정도로 유약한 놈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당시 상황이 급박하지 않았느냐?

정호기의 말에 영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기병을 줘 보거라.”

“여기 있습니다.”

자기병을 건네받은 정호기가 그것을 유심히 들여다보았지만, 내용물을 알아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것의 뚜껑을 열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검집은?”

“검이 빠져나가면 자연스레 입구가 닫히도록 만들어져 있어 안전합니다.”

독검이란 것은 공격할 때 유용하긴 하지만 보관이나 휴대가 불편한 단점도 존재했는데, 그런 단점을 없애기 위해 이런 검집을 만든 모양이었다.

“적당한 것을 넣어 두면 독검으로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당 소저는 검집을 요구하지 않았을까요?”

“염치는 있는 것이겠지. 전낭은?”

“돈이 제법 됩니다만, 다른 것은 없습니다.”

“알았다. 그나저나 눈치는 더럽게 없구나.”

“예?”

“아니다. 옷을 다시 입혀라.”

영초린이 무영에게 옷을 입히고 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과 함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 소협, 접니다.”

가정호였다.

정호기가 눈치 없다 말한 인물이 찾아온 것이다.

“들어오십시오.”

문이 열리며 가정호가 들어오자 정호기가 영초린을 내보냈다.

“어쩐 일이십니까?”

조금은 쌀쌀한 정호기의 말투였지만 가정호는 개의치 않고 가지고 온 것을 내밀었다.

“정 소협의 성취를 축하하고자 이렇게 술을 가지고 왔습니다. 일단 이것으로 목을 축이시고, 밖으로 나가시지요. 제가 거나하게 한잔 사겠습니다.”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은 술이 아니라 휴식입니다.”

“…….”

“이만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차가운 축객령이었다.

머뭇머뭇 의자에서 엉덩이를 뗀 가정호가 쭈뼛거리면서 문가로 가더니 정호기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고는 문을 나섰다.

‘못난 놈.’

정호기는 가정호에게 더 이상의 볼일은 없었다.

‘내가 힘을 가졌고, 또한 놈들이 나를 노린다는 것을 안 이상 이대로 천천히 계획을 실행할 여유는 없다고 봐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무작정 사파들을 공격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정호기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가정호, 네놈은 조금 더 나를 도와주어야겠구나.’

비록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가정호를 쓸 곳이 생겼다. 그것도 요긴하게.

***

날이 밝자마자 영웅회의 인물들이 한자리에 모여 무영의 습격에 대해서 회의했다.

“어젯밤에 저를 습격했던 놈에게서는 별다른 단서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분명 아직도 남은 잔당이 있을 것이라 판단되니, 각별히 조심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 올까요?”

“그럴 것입니다. 그놈 혼자만 남지 않았을 테니까요. 아, 아실지 모르겠지만 용호방에서 저를 노렸던 놈들 중에는 활을 사용하는 놈도 있었습니다.”

“활이요?”

“예. 사신방에서 놈들을 상대할 때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용호방에서는 분명히 저에게 화살을 날렸었습니다. 그런데 그 수법이 참으로 교묘하고 위력이 대단해 하마터면 죽을 뻔했었지요. 어제 온 놈의 손을 살펴보니 활보다는 검을 위주로 수련을 한 것 같더군요. 그런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아직 활을 사용하는 놈은 잡히지 않았다고 봅니다.”

정호기의 말을 들은 이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정호기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도 영웅회에서 최고수라 여겼는데, 그가 생명의 위협을 느꼈을 정도라면 다른 이들은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게다가 어제 그놈이 나타난 것으로 보면 조만간 활을 사용하는 놈도 또다시 저를 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런데 어째서 정 소협만 노리는 걸까요?”

가정호가 몸을 뒤로 젖히며 물었다.

지금 일행은 정호기, 영초린, 유옥접, 당혜미, 사준우가 가정호와 화세걸을 마주 보며 앉아 있었는데, 그것이 마치 대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무슨 말씀입니까? 사신방에서는 놈들이 목표를 헷갈린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이고, 어제의 습격은 그날의 원수를 갚으려는 것이지요.”

어쩐 일인지 사준우가 정호기를 두둔하고 나섰다.

그런 그의 말에 가정호가 비릿하게 웃었다.

“정말 그럴까요? 그런 실력을 지닌 놈들이 목표를 헷갈릴 정도의 사소한 실수를 했을까요? 척 봐도 다른데 말이지요. 단지 그 전각에 있었단 이유만으로 정 소협을 공격한 게 맞을까요?”

“무슨 말씀이지요?”

유옥접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목표가 처음부터 정 소협이었을 수도 있다는 겁니다.”

가정호가 말을 하자 옆에 있던 화세걸이 거들었다.

“생각해 보십시오. 광견이란 놈이 정 소협과 얼마나 다른지 말입니다. 살수가 그것을 혼동할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거기다 어설픈 놈들도 아닌 것 같았는데 말이지요.”

사실 그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고, 당혜미나 사준우, 그리고 유옥접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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